*
"하아... 하아... 고생했다."
"너도 고생했어."
나와 남다은은 대련장 위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대련장에선 마법진이 작동해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남다은의 안위를 생각하지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싸우면 내가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
남다은도 날 죽일 기세로 덤비니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도대체 무슨 훈련을 한 건지 저번보다 훨씬 강해졌다.
스펀지도 아니고 훈련을 하는 만큼 강해지는 게 말이 되나?
"후우... 그러고 보니 어제는 여동생 보러 갔다 온 거야?"
"어제 갔다 왔어. 그리고 내일 모레쯤 또 가."
"오, 그래? 자주 보러 가는구나."
"원래 일주일에 한 번인데 1등 한 보상으로... 아니, 아니지. 그게 아니라 병원 규정이 바뀌었어."
"아하... 그렇구나."
남다은은 자신의 말실수를 인지하고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나는 스윗매너남이니까 당연히 모르는 척해줬다.
그래도 다행이네.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을 자주 보면 남다은의 멘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얘도 언제 폭주할 지 모르는 캐릭터니까.
"맞다. 저번 특별 시험 때는 고마웠어."
나는 주머니에 넣어온 지갑을 내밀었다.
"어, 이게 뭐야?"
"시험 때 감사 겸, 대련도 해주니까 고마움 표시야. 부담 갖지 말고 받아."
"이건... 이건 좀...."
갑자기 고액의 선물에 당황한 건지 남다은이 말을 더듬었다.
이대로 가다간 거절당한다.
남다은이 부담이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바로 선수를 쳤다.
"우리 사이에 뭘. 대련까지 한 사이인데."
"그런가...?
"응. 이렇게 대련까지 하는 사이면 엄청 친한 사이잖아. 내 마음이니까 받아줘."
"... 알았어. 여동생한테 자랑해야겠네."
남다은은 옅게 웃으며 지갑을 챙겼다.
휴, 이제야 좀 마음이 편해지네
구멍이 뿅뿅 난 지갑을 들고 다니면 나도 마음이 아프잖아.
내일 성적발표를 하면 더 얼굴이 밝아지겠지. 그러면 친구도 좀 만들고 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갑을 양손으로 꼭 쥐고 있는 남다은을 보며 속으로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섹시한 옷을 입고 방에서 기다려보는 건 어때? 그럼 흥분해서 막 덮쳐주지 않을까?"
"그건 너무 뻔하지 않을까요."
이호연이 남다은과 대련을 하러 갔을 때, 릴리아나와 스칼렛은 방에서 이호연을 확실히 잡을 작전을 짰다.
"흐으음… 맞아. 뻔한 건 싫어."
"호연 님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는 건 어떨까요?"
스칼렛이 낸 의견에 릴리아나가 귀를 기울였다.
"평소와 다른 모습?"
"네. 아무래도 릴리아나님은 밝고 장난기가 많으니까,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거에요. 예를 들면 진지한 모습이나 배려심 깊은 모습 같은거요."
"오… 괜찮은데? 역시 스카웃하고 같이 고민하니까 좋당."
"감사… 합, 흐윽… 흣."
쓰담쓰담.
릴리아나는 꼬리를 이용해 스칼렛의 음부를 쓰다듬었다.
나름의 칭찬이었다.
"이, 일단 저도 호연 님께 받은 임무가 있어서 가봐야 해요. 나머지는 릴리아나님이 생각해보세요."
"알았어. 내일은 언제 올 거야?
"음… 점심 이후에 오겠습니다."
릴리아나는 스칼렛의 몸에서 꼬리를 떼어냈고, 스칼렛은 그제서야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그랭그랭. 낼 보자. 스카웃. "
"넷. 안녕히 계세요."
타닥-
스칼렛은 천장에 딱 붙어서 슈슈슉- 하고 밖으로 나갔다.
"저거 하지 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버릇 고치기가 쉽지 않구나."
릴리아나는 고개를 저은 후에,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고민했다.
"다른 모습… 평소와 다른 모습…?"
스칼렛과 대화를 통해 떠올린 방법이지만 혼자 생각하기엔 좀 어려웠다.
그때 이호연이 준 편지지가 생각났다.
지옥에 있는 릴리아나의 어머니와 연락할 수 있는 편지다.
이호연이 마왕에 관해 물어보라고 준 편지였지만, 책상에 올려둔 채 며칠 동안 까먹고 있었다.
"엄마한테 물어볼까?"
엄마가 아빠 얘기를 잘해주진 않지만, 가끔씩 꾸미고 나가는 걸 보면 누군가 만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왠지 엄마는 모르는 게 없을 거 같았다.
내가 게임을 할 때 갈구는 거만 빼면 완벽한 엄마였으니까.
"그래. 모를 땐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릴리아나는 펜을 들고 엄마에게 남자 꼬시는 법에 관해 묻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여 기숙사.
루미는 침대에 누운 채 베개에 머리를 박고 끙끙대고 있었다.
"으으… 너무 변태 같나? 하지만 하고 싶어…."
이호연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했지만 몇 번이나 내용을 썼다 지웠다 하다가 결국 침대에 누워버렸다.
루미는 다시 스마트워치를 켜서 메시지를 작성했다.
- 나 : 호연 씨. 다음 주는 바쁘세요? 시간이 괜찮으시면… 다음 비밀 친구 활동을 모텔에서 하고 싶어요.
"이, 이걸 어떻게 보내. 말도 안 돼…."
이호연과 만난 초반에는 모텔을 두 번이나 갔다.
하지만 그 후로는 모두 화장실이나 동아리실 같은 곳에서만 섹스를 해왔다.
그것도 좋았지만, 가끔은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하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메시지는 못 보내겠어.'
루미는 혼자 고개를 저었다가, 아랫배가 울리는 걸 느꼈다.
꿍-
자지를 원하는 듯이 울리는 자궁의 감각에 루미는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하으… 몰라."
루미는 창피함은 순간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사실 천천히 안부를 묻다가 타이밍을 보고 슬쩍 얘기를 꺼내는 게 베스트지만, 루미에겐 그런 말솜씨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
그때 화장실에서 나온 루시가 루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루미, 뭐해?"
"무, 문자 메시지를 좀 했어. 깜짝 놀랐잖아. 루시."
루미는 갑자기 다가온 루시에게 놀라며 스마트 워치를 재빨리 종료했다.
"아하… 누군데?"
"어… 그냥 아는 사람이랑."
"그렇구나~."
루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루미의 옆에 누워서 생각했다.
'루미가 문자 보낼 사람은 이호연밖에 없잖아.'
친구가 적은 루미가 편하게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이호연밖에 없다.
왜 굳이 나한테 그걸 숨기는 걸까.
나는 루미한테 모든 걸 숨기지 않는데.
루시는 이번에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
남다은과 대련을 마치고 대련장에서 나왔다.
훈련실에 마련되어 있는 샤워장에서 몸을 씻은 후에 옷을 챙겨입었다.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자 메시지가 몇 개 와있었다.
- 루미 : 호연 씨. 다음 주는 바쁘세요? 시간이 괜찮으시면… 다음 비밀 친구 활동을 모텔에서 하고 싶어요.
"엥? 갑자기?"
뭔가 전후 사정이 없이 본론부터 나와서 좀 당황스러웠지만, 나쁘진 않았다.
내가 별로 손해 보는 것도 없으니까.
루미에게 긍정의 답변을 보내고 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 임솔 교수님 : 확인했어. 내가 어떻게든 도와줄게. 너한테 불이익은 절대 없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민예지랑 아영이도 도와주기로 했어.
"오… 임솔 교수님. 아니 임솔 눈나…."
역시 능력 있는 여자는 멋있다.
불이익은 절대 없게 한다고 단언하는 게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백아영도 도와준다는 말에 메시지가 왔나 확인했지만, 따로 연락이 오진 않았다.
- 나 : 아영 씨. 임솔 교수님한테 저를 도와주기로 했다는 말 들었어요. 고마워요. 한 번 찾아갈 테니까 편한 날짜 알려주세요.
백아영은 상태를 보러 한 번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원래는 기다리다가 백아영이 못 참고 접근하면 공략하려 했는데, 혹시라도 혼자 끙끙대다가 멘탈이 나갈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민예지… 진짜 한 번 만나긴 해야겠네.
근데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으니 만나봤자 할 게 없다.
일단 조건은 들어볼까?
여러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기숙사에 도착했다.
띠링-
스칼렛은 이미 돌아갔는지 소파에 릴리아나만 앉아있었다.
"나 왔어. 뭐해?"
"어엉. 그냥 방송 끝내고 쉬고 있었어."
"그렇구나. 저녁은 먹었어?"
"아니, 너 기다렸지."
"배고픈데 저녁 먹자. 치킨 고?"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었으니 저녁은 릴리아나가 좋아하는 걸로 먹어줘야지.
"괜찮아.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
이 미친 서큐버스가 뭘 잘못 먹었나.
왜 착한 척이야 갑자기.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치킨이나 먹자."
"나다운 게 뭔데? 난 항상 이랬어."
"…?"
사춘기가 온 건가.
나는 릴리아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이 나진 않는데…."
"괜찮아. 우리 밥이나 먹자. 메뉴는 호연이 네가 정해."
원래 저녁 시간대에는 치킨을 먹자고 빼액빼액 소리를 질러야 할 타이밍인데 계속 저러니까 좀 의심스러웠다.
내가 이마에 손을 얹어도 별 반응이 없는 것도 좀 이상했다.
★ 히로인 상태창
[릴리아나]
- [ 호감도 : 93 ] ( +1.2 )
- [ 성욕 : 92 ]
- [ 식욕 : 45 ]
- [ 피로도 : 35 ]
현재 상태 : 오늘은 대범한 모습을 보여줘야겠어. 나도 한다면 하는 서큐버스라고!
"…."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지?
"그럼 회 먹자."
"끄읏…."
릴리아나가 제일 싫어하는 게 회였다.
지옥에서 사는 동안 싱싱한 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도저히 못 먹겠다나.
"왜, 혹시 싫어?"
"아, 아니… 회 좋지. 시키자. 큼!"
이래도 안 넘어오네.
"그럼 회 시킨다~."
"으, 으응…."
릴리아나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우울해졌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계속 회를 시킨다고 협박했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저렇게 놀릴 거리를 주면 놀릴 수밖에 없잖아.
물론 언젠가 저 컨셉이 끝나면 지랄할 게 뻔하니까 손으로는 치킨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