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648)

*

어두운 사무실. 

기득권층들의 더러운 일을 맡기로 유명한 작업소였다.

그 안에서 사무실 책상에 앉은 남자가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며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반응이 뜨겁지가 않잖아!

스마트 워치에서는 아직 앳된 20대 초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죄송합니다. 하지만 원래 여론조작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저희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일단은 진정하시고…."

-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돈을 얼마나 받아놓고 이 지랄로 일하는 거야! 주, 중요한 건 결과야! 나락으로 떨어뜨리라고. 이호연을 고개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어!

"예. 예.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더 과감하게 행동하겠습니다."

- 됐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면 알아서 해! 아빠한테 연락해서 다시는 이 바닥에 발 못 붙이게 만들어줄 테니까!

뚜- 뚜-

"하아… 이 병신같은 애새끼가 진짜."

의자에 앉은 남자는 담배를 입에 꼬나물었다.

"진정하시죠."

딸깍-

옆에 서 있던 비서가 불을 붙여주고, 한숨이 섞인 담배 연기를 내뿜은 남자는 입을 열었다.

"들었지? 내일부터 아카데미에 있던 신영 길드 인맥들에 연락 돌려."

"… 벌써요? 아직 여론이 제대로 반응하질 않았는데요.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여론몰이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냥 하라면 해. 지들이 알아서 책임지겠지. 병신같은 새끼들."

"예. 알겠습니다. 신영 길드는 참 힘들어지겠네요."

"자식 관리를 못 하는 것도 잘못이야. 우리는 받은 만큼,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거야. 정 안된다 싶으면 신영 길드라는 증거 뿌리고 우리는 도망가야지 뭐."

후우-

남자는 새하얀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일요일 아침.

몰려오는 잠을 밀어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거실에서 섀도복싱을 하며 정신을 각성시켰다. 

"후. 후."

예전부터 사용한 잠에서 바로 깨어날 수 있는 비기다.

"또 이상한 짓 하고 있네…."

릴리아나가 나를 보며 중얼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엘리스의 집에 찾아가는 역사적인 날이니까.

약속시간은 오전 10시. 

아마 밥을 대접하거나 하진 않을 것 같으니,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어야지.

"릴리아나. 아침은 제육볶음이다. 어제 먹던 게 남았으니까."

레시피대로 만들다 보니 3인분은 못 만들고 4인분을 만들어버렸다.

근데 의외로 스칼렛이 많이 안 먹어서 꽤 남았다.

"마음대로 해. 난 치킨 아니면 다 똑같아."

"미친 치킨무새 같으니라고."

언제부턴가 치킨만 시켜 먹더니 이제 완전히 치킨무새가 되어버렸다.

주인님이 열심히 만든 제육볶음인데. 쯧.

나라도 맛있게 먹어야지.

물론 말은 저렇게 해도 릴리아나는 나와 같이 아침을 먹어줬다.

"먹다 보니 나쁘진 않네. 맛있어."

"고맙다 고마워."

아침을 먹고 나니 오전 8시 30분이었다. 

약속 시간이 슬슬 다가왔다.

엘리스의 집은 아카데미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니 말끔하게 준비를 마치고 가면 될 거다.

사용할 일은 없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니 내 아랫도리를 포함해 몸 구석구석까지 깨끗이 씻었다.

몸에 냄새 하나 나면 안 되니까 바디워시도 팍팍 사용했다.

개운하게 나와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말리는데, 릴리아나가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어제 해준 마사지 있잖아. 이따 또 해줄 수 있어?"

"그건 왜?"

"확실히 마나가 더 빨리 도는 것 같아서. 자주 받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진짜로?"

"응.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사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내 마사지가 진짜 효과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내 마사지를 받은 후에는 엘리스의 몸놀림이 이상하게 빨라졌으니까.

그래서 오늘 오후에 훈련실에 가서 내 몸에 사용해보려고 했는데, 릴리아나까지 증언을 해주니 이 정도면 확실한 것 같다.

오후에 꼭 해봐야겠네.

"혹시 마사지의 신이 된 건가…?"

"어쨌든 부탁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만졌다.

마사지해 주는 거야 어렵지 않으니까.

"나쁘지 않네. 아주 좋아."

외출 준비 끝이다. 

스마트 워치로 남자 셀프 헤어 세팅법을 찾아서 머리를 넘겨봤는데 꽤 잘 됐다.

"릴리아나, 내 머리 어때?"

"멋있긴 한데, 느끼해. 으으 소름."

릴리아나는 자기 손으로 열심히 팔을 문댔다.

잘생겼으면 그냥 그렇다고 하지. 괜히 사족을 붙여.

"나 간다. 집 잘 지키고 있어. 스칼렛 오면 같이 놀고 있고."

"응. 빠이."

엘리스의 집 주소를 보며 길을 걸었다.

"203로… 이쪽이네."

엘리스가 알려준 주소는 누가 봐도 잘 사는 동네라는 느낌이 흠뻑 나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집이 엘리스가 알려준 주소였다.

"아니 저기를 조용히 오라고 한 거야?"

이렇게 큰 집에 엘리스같은 유명인이 산다면 내가 들어가는 게 안 들킬 수가 없잖아. 

나는 엘리스에게 문자를 남겼다.

- 나 : 인식 방해 결계를 치고 들어갈 테니까 문 열어놔 줘.

골목에 들어가 룬의 결계로 내 주변을 감쌌다.

평소에 가볍게 사용한 결계보다 더욱 강한 결계였다.

스칼렛같은 실력자라면 몰라도, 일반인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거다.

- 엘리스 : 지금 열 테니까 들어와.

끼익-

메시지와 동시에 엘리스의 저택 대문이 살짝 열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사이로 들어가 문을 닫고, 저택으로 향했다.

*

"하아…."

엘리스는 이호연을 기다리며 소파에 앉았다.

이호연과 연락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끝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이 길밖에 없었다.

엘리스에게 원하는 마사지는 이호연만이 가능했으니까.

물론 이호연을 맡았던 마사지사를 물어봐도 되겠지만… 엘리스도 여자였다.

굳이 같은 효과의 마사지를 받는다면 나이 많은 남자보단 젊고 잘생긴 또래의 남자에게 받고 싶었다.

은퇴했다고도 했으니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띠링-

- 이호연 : 인식 방해 결계를 치고 들어갈 테니까 문 열어놔 줘.

'드디어 왔구나.'

엘리스는 저택 대문을 개방하는 장치로 문을 열었다.

세바스 찬과 아빠를 제외한 남자가 자신의 개인 공간에 들어오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두근.

그래서 그런가, 아까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절대 마사지가 기대된다든지 서바이벌에서 봤던 이호연과 다른 여자들의 섹스가 생각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외간 남자가 내 공간에 들어오는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스는 괜히 옷차림에 힘을 줬다.

얼마 전에 산 검은색 치마와 마음에 드는 흰색 블라우스까지 챙겨입었다.

똑똑-

"엘리스?"

덜컥-

"들어와. 결계 풀지 말고."

엘리스는 이호연의 모습을 보고 꽤 놀랐다.

처음 학생회 홍보부 활동을 할 때 봤던 꾸민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엘리스의 취향을 관통하는 그 때의 어른스러운 모습 그대로였다.

이호연은 엘리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른 채 도시를 처음 본 시골 쥐처럼 이리저리 저택을 구경했다.

"집 엄청 좋네…. 이제 결계 풀어도 되지?"

"안 돼. 내 비서한테 들키면 안 되거든. 지금은 자고 있지만, 우리 집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면서 바로 여기로 달려올 거야."

원래는 세바스 찬이 이렇게 길게 자리를 비우지 않지만, 오늘은 집에만 있을 테니 푹 자고 오라고 말해놨다.

알람 마법진이 깔려있으니 세바스 찬도 안심하고 잠에 들었을 거다.

"그럼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한다고?"

"내 방 안에는 알람 마법진이 없으니까 조금만 참아."

두근.

엘리스는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앞장서서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으흠… 뭐, 알았어."

이호연은 별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엘리스의 아버지가 엄청난 딸바보인 걸 알기 때문이다.

아마 딸이 남자랑 엮이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다.

"… 마사지 준비는 해 왔지?"

"응. 근데 나한테 받아도 괜찮아?"

"괜찮아. 비용은 프로 마사지사들하고 똑같이 책정해줄게."

"알았어."

여기서 굳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건 의심만 당할 뿐이다.

이호연은 돈을 거절하지 않았다.

잠시 후 엘리스의 방에 도착했다.

채광이 좋고 넓은 방이었다.

핑크핑크한 소품들이 몇 개 놓여져있는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중앙에는 꽤 사이즈가 큰 침대가 놓여있었다.

"여기 계약서. 내가 준비할 동안 밖에서 읽어보고 있어."

"오케이."

이호연은 엘리스의 준비를 기다리며 밖으로 나왔다.

문 안쪽에 살짝 귀를 기울이자 바스락바스락 옷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 듣자.'

이 소리를 더 듣고있다간 이상한 상상을 할 것 같았다.

이호연은 문에서 떨어져 계약서를 살폈다.

그리고 계약금과 마사지 비용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이제 릴리아나 앞에서 기죽지 않아도 되겠다.'

드디어 제대로 된 가장이 될 수 있다.

마사지 한 번이면 릴리아나의 월 수입을 땡겨올 수 있으니까.

한편 엘리스는 방 안에서 상의를 벗었다.

"마사지…."

역시 첫날부터 맨살을 보여주는 건 좀 그런가?

엘리스는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서바이벌에서는 워낙 상황이 급하다 보니 맨살을 빨리 허용했지만, 여기서도 그러는 게 맞는 걸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차피 이미 보여준 맨 살인데 굳이 이렇게 뺄 필요가 있을까?

엘리스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맨살로 받았던 마사지의 느낌을 떠올렸다.

두근.

마나 회로가 확장되면서 느껴지는 마나의 감각.

부드러운 이호연의 손이 등에 닿는 촉감.

온몸이 뜨거워짐과 동시에 날아갈 것 같은 흥분.

꿀꺽.

침을 한 번 삼킨 엘리스는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 들어와."

"들어갈게."

문이 열리고, 이호연은 침대에 앉은 엘리스를 발견했다.

검은색 치마는 그대로였지만, 위에 입고 있던 흰색 블라우스는 벗어서 가슴 부근을 가리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살짝 홍조가 진 얼굴로 이호연과 눈을 마주친 엘리스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눕히고 양손으로 가슴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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