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4화 〉144화. 뒤처리 (144/648)



〈 144화 〉144화. 뒤처리

테러 때문에 생긴 환자들은 아카데미의 의료시설에서 맡았다.

아카데미 소속인 백아영도 양호실에서 나와 치료를 돕고 있었다.

"네… 아프진 않으시구요?"

"흐읍… 아파요. 아파…."

"알겠습니다. 치료할게요."

"흐으윽…. 너무 아픈데."

"성, 아니. 양호 선생님.  환자 팔을 놓으셔야…."

환자의 환부를 직접 잡고 치료하는 백아영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의료팀이 백아영에게 말을 걸었다.

"아, 아앗.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괘, 괜찮습니다. 흑."

백아영 자신도 깜짝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 환자에게 사과했다.

환자는 정말 더럽게 아팠지만 차마 미안해하는 백아영의 얼굴에 욕을 할 순 없었으니 눈물을 삼켰다.

우여곡절 끝에 치료를 마쳤지만, 백아영은 다음 환자를 받을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저, 양호 선생님. 컨디션이  좋으시면 쉬시는 게…."

"… 미안해요. 오늘은 먼저 들어갈게요."

백아영의 상태를 본 의료팀이 먼저 쉬기를 권했다.

이대로 계속 버티고 있어봤자 민폐일 뿐이란 걸 백아영도 잘 알고 있었다.

백아영은 의료팀 건물을 빠져나와 양호실로 향했다.

터덜터덜.

테러를 복구하는 현장을 지나는 백아영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백아영은 인사를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기에 옅게 웃을 뿐이었다.

다행히 의료팀 건물의 바로 옆이었기에 많은 사람과 마주치진 않았다.

백아영은 힘없는 걸음걸이로 3층 숙소에 올라갔다.

남자와 여자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침대에 백아영은 그대로 몸을 맡겼다.

"하아…."

백아영은 손을 천장으로 뻗고 생각에 빠졌다.

어젯밤 일이 꿈만 같았다.

이호연과 여러 번 관계를 맺었지만, 어제는 정말 길고 짜릿한 밤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아쉽고 서운한 감정이 드는지 백아영도 의문이었다.

둘은 처음부터 그런 관계였다.

백아영은 약점을 잡혀서 강제로 당하는 피해자고, 이호연은 쓰레기 같은 가해자다.

당장 경찰에 신고하면 이호연은 이제 얼굴을 들고 다니지도 못하겠지.

아니, 돌아다니질 못할거다. 감옥에서 평생 썩을테니까.

백아영이 쌓아온 성녀의 이미지는 그 정도였다.

물론 백아영도 그런 플레이를 즐겼기 때문에 신고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그냥 이런 관계가 계속되길 바랐다.

하지만 백아영은 어젯밤에 받은 충격을 떨쳐내지 못했다.

뜨거운 관계를 가진 후에 자신과 이호연 사이에 그어지는 선.

이호연은 백아영을 아직도 성욕의 배출구로 보고 있었다.

백아영도 그걸 원하고 있었으니 아무 문제 없는 행동이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공허했다.

"어째서… 어째서? 흐윽…."

백아영의 눈꼬리를 따라 흘러내린 눈물이 귀를 타고 떨어졌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다만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기 싫었고 이해하기도 싫었다.

왜 이렇게 멍청한지 자기 자신을 자책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좋아해… 좋아져 버렸어."

이상해졌다.

이호연을 만난 이후로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더이상 치료 중에 흥분하지 않았다.

목숨이 위태로운 남성이 백아영을 음욕에 찬 눈으로 바라볼 때, 젖은 팬티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자세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얼굴을 모르는 남자한테 강간당하는 상상을 하며 자위하는 날이 없어졌다.

백아영의 자위 소재는 이제 한 남자로 고정되었다.

확실하게 선이 그어지고 나서야 이 감정을 인지해버렸다.

"사랑해. 너무 사랑해요. 여보."

백아영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간범과 피해자의 관계에서 사랑이 싹틀 수는 없다.

그녀의 상식에 그딴 러브스토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애초에 강간범을 여보라고 부르는 미친 년은 자신밖에 세상에 없다.

혼자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이호연에게 자신은 어디까지나 '놀이' 이자 '도구'였다.

숨이  막히고 목이 매어왔지만 울음소리를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이런 감정은 욕심이니까.

절대 티 내면 안되는 감정이니까.

다만 그녀는 최대한 이런 관계를 오래 유지하도록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백아영이 지금 생각할  있는 한계였다.



*


스칼렛은 나를 조사하는 중이라고 보고한 뒤에 엘리스를 조사하러 갔다.

자기 말로는 자신이 아이리스 길드에서 손꼽히는 은신 능력자라고 했으니 엘리스에게 걸릴 일은 없겠지.

"그나저나 저 정도가 손꼽히는 은신 능력이면, 확실히 마나 감응이 사기긴 하네."

[마나 감응]에 각성까지 해버렸으니  감지 능력은 엄청나졌다.

 정도면 웬만해서 습격 걱정은 없을 것 같다.

"냠, 뭐라공?"

"아니야. 많이 먹어."

스칼렛이 오늘 안에 배신 생각을 한다 안 한다로 내기를 해서 릴리아나가 이겼기 때문에,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마나가 함유되어 있어 엄청나게 맛있는 치킨을 뜯으며 나는 스마트워치를 두들겼다.

원래 축제 기간에 문수린과   만나려고 했지만, 테러의 후폭풍 때문에 학생회장인 문수린은 엄청나게 바쁘겠지.

- 나 : 수린 누나. 바쁘실 것 같아서 문자 남겨요. 일이 좀 해결되면 다음에 꼭 밥 먹어요.

'답장이 없네.'

원래 아무리 바빠도 내 메시지에는 답장을 금방 해줬는데, 답장이 없는  보니 정말 바쁜 모양이다.

 : 아영 씨. 바빠요? 부상자가 엄청나게 많다던데.

"…."

단체로  중독에 빠졌나.

백아영은 메시지  틈은 있을 텐데.

"이 사람도 바쁜가 보지 뭐."

항상  메시지에 답장하려고 기다리는 것도 이상하다. 가끔씩은 사정이 있는 거니까.

'...혹시 삐진 건 아니겠지?'

하긴, 너무 모질게 대하긴 했다.

'다음에 볼 때 잘 풀어줘야지.'

이제  명 정도는 확실하게 공략할 필요가 있다.

 타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백아영이나 루미가 되지 않을까.

나는 치킨을 마저 먹은 후에 생도복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었다.

"응?"

주머니 안에 무언가 들어있길래 꺼내 봤더니, 빨간색 복주머니가 있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장비 상태창을 확인해도 평범한 복주머니였다.

"쓰레기네. 아, 맞다."

복주머니를 보니 갑자기 마왕에 대한 게 생각났다.

릴리아나가 마왕의 존재를 아는지 물어봐야 한다.

복주머니를 쓰레기통에 던져서 골인시키고 방송 준비 중인 릴리아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릴리아나. 잠깐 시간 있어?"

"곧 방송 할건데, 왜?"

"너 마왕이 누군지 아냐?"

"응? 마왕? 지옥의 마왕님 말하는 거야?"

"알아?!"

안다고? 역시 릴리아나는 도움이 되는 서큐버스구나.

"당연히 알지. 근데 마왕님은 왜?"

"그냥 궁금해서. 마왕에 대한 정보 좀 알려줘."

"나도 많이 아는 건 없어… 마왕님은 지옥의 지배자이자 최강이야. 나 같은 일반인한테 정보가 많지는 않아."

"뭐야. 김새네."

얘는 도움이 될  안될 듯 애매해서 문제다.

한쪽으로 확실하게 노선을 정하면 좋을 텐데. 괜히 기대하게 만든다.

"누가 물어보래! 나 방송해야 돼. 나가."

"알았어. 화이팅."

일을 방해할 순 없지.

방을 나온 뒤,  할까 고민을 했다.

생도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오늘은 기숙사에서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스칼렛이나 데리고  걸 그랬네."

괜히 일찍 보냈다. 어차피 엘리스도 집에 있을 텐데.

"릴리아나의 어머님이라면 뭔가 알지않을까."

이따 릴리아나의 방송이 끝나면 지옥의 계약서도 한 번 다시 봐야겠다.

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누워서 스마트 워치를 만졌다.

가끔은 이렇게 빈둥거려도 되잖아. 내가 얼마나 몸을 열심히 굴리는데.

띠링-

소파에 누워서 웃긴 영상을 보고 있는데 메시지가 왔다.

발신자는 수린 누나였다.

- 수린 누나 : 바빠서 답장이 늦었네. 미안해. 밥은 나중에 먹자. 그리고 남들이 뭐라고 해도 신경 쓰지 마.

"…?"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누나는.


*

"그럼 이만 가볼게요. 엘리스 양. 만나서 즐거웠어요."

"네. 고생하셨어요."

노령의 마나 마사지사가 방 밖으로 나간 후, 엘리스는 속옷을 챙겼다.

'이번에도 아니야.'

이게  명째인지도 모르겠다.

만난 인원이 벌써 몇십을 넘어 오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사지를 받다 보니 몸이 이상해진 것 같기도 하다.

"하아…."

하지만 그렇게 많은 마사지를 받고도 아직 그때의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엘리스는 자신의 방에서 상의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 세바스 찬."

"예. 아가씨."

세바스 찬은 마사지사를 배웅한 뒤에 엘리스의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아니야."

"알겠습니다. 다른 마사지사를 구해보겠습니다."

"… 마사지사가 더 있긴 해?"

이제 잘나가는 여성 마사지사와는 모두 연결해봤다.

오늘 노령의 마사지사가 온 이유도 이제 더는 젊은 사람 중에서는 수준에 맞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리스트를 찾아보겠습니다."

"됐어. 능력 없는 사람을 찾아와봤자 효과가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제는 여성 마사지사가 아니라면 남성밖에 없다.

세바스 찬은 그 얘기를 하고 있었다.

"됐어. 그냥 마사지사를 찾는 건 그만하자. 너무 민폐야."

엘리스를 만나는 마사지사는 모두 발설 금지 제약을 걸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보수를 받아 간다.

물론 아이리스 길드에게는 큰돈이 아니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씩 만나다 보니 그 돈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하지만…."

"그냥 내가 알아서 해볼게. 신경 쓰지 마."

아직 이호연에게 마사지를 받은 사실 자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마나 마사지를 받으면 좋아질 것 같다.'라는 엘리스의  한마디로 이런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럴 거면 그냥 이호연에게 가는 게 낫겠어.'

"그러고 보니 스칼렛은 어떻게 되고 있어?"

이호연의 조사를 맡겼지만, 엘리스는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다.

스칼렛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직감이었다.

"마침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이호연이 집 안의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 건 확인을 마쳤고, 일단 조심스럽게 접근해보겠다고 합니다. 영상을 찍는  쉬운 일은 아니니 괜찮은 판단 같습니다."

"으응…  바로 결과가 나오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좀 쉴게."

"예. 알겠습니다."

세바스 찬은 엘리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수 있도록 저택 바로 옆에 있는 집에서 생활한다.

엘리스는 태연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옆집으로 세바스 찬이 들어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창문을 닫고 결계를 쳤다.

'오늘도 상상으로 해야겠네.'

자료가 영 생기질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엘리스는 상의를 벗고 이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의 팬티 안쪽이 습해지는 게 느껴졌다.

"흐으응… 흐으. 이호연…."

그리곤 미간을 찌푸리며 서바이벌 시험의 기억을 떠올렸다.

엘리스는 성적인 경험이 아예 없었다.

사실 노력하기도 바빴으니 그럴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 맞겠지.

그런 그녀가 처음 접한게 이호연의 섹스였고 그녀에게 너무 이른 자극이었다.

그 뒤로 호기심이 생긴 엘리스는 조금씩 그런 매체에 접했지만, 이호연이 주었던 충격을 덮어줄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그 거대한 물건과 기분 좋아 보이던 백아영과 루미의 얼굴은 엘리스의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연기나 가짜가 아닌 정말 순수하게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으니까.

천천히 이유식부터 먹어야 할 아이가 치킨에 맛이 들려서 이유식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건드리며 자위하던 엘리스는 백아영의 기분 좋아 보이던 얼굴을 떠올렸다.

"흐읍…."

엘리스의 몸이 순간 움찔거리며 절정에 달했다.

"하아. 하아…."

하지만  번으로는 부족했다.

엘리스는 이호연에게 마사지 받던 때를 떠올렸다.

 몸이 뜨거워지고 피가 빠르게 순환하며 심장이 두근대고 척추가 찌릿한 감각.

자위를 알고 나서야 그 감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흥분이었다.

'이호연에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흥분했다니, 나는 변태인 걸까?'

엘리스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손가락을 멈추지 못했다.

"이호연… 으으…."

엘리스는 마사지를 받던 감각을 되새기며 이호연의 자지가 루미에게 들어가는 광경을 떠올렸다.

[호연씨, 좋아요. 좋아. 아앙….]

루미의 기분 좋아 보이던 신음이 엘리스의 귀에 들리는 같았다.

질척하게 애액을 뿜는 보지를 손가락으로 만지면서 엘리스는 숨을 헐떡였다.

"호, 호연아…. 나도… 흡."

자위를 하며 이호연의 이름을 부르면  상황에 직접 몰입하는 것 같아서 절정에 달했을 때 기분이 더 상쾌했다.

자위 중에 알아낸 사실이었다.

"흣, 아… 호연아. 하읏."

엘리스는 그렇게 한참 동안 자위에 몰두했다.

그리고, 엘리스 방 천장에 붙어있던 스칼렛은 생각했다.

'어쩌면 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스칼렛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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