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140화. 테러 (2)
20대 중후반 미녀 둘이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솔이, 요즘은 초코 사랑이 좀 준 거 같은데? 예전에는 초콜릿 프라페 3잔씩 마시고 그랬잖아."
"그냥 뭐… 초코보다 단 걸 찾아서."
쪽쪽.
임솔은 카페에서 친구와 만나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람보다 연구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축제인 만큼 미뤄왔던 약속을 다 처리하는 거다.
철혈길드의 팀장 민예지.
원래는 어제 만날 생각이었지만 백아영과 약속이 생기면서 오늘로 미뤄졌다.
둘은 오랜만에 보는 만큼 서로 쌓인 얘기가 많았다.
"그래서 협회장 늙은이 새끼랑 엄청나게 싸웠다니까."
"고생했네."
홀짝.
"거기에 길드장도 빨리 뭐라도 해보라고 난리지. 아으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니까 길드는 할 일이 많다고 했잖아."
물론 대부분 민예지가 말을 걸면 임솔은 받아주는 형식이었다.
둘은 생도 때부터 알던 사이였다. 임솔은 마법 연구를 위해 짧은 현역 활동 후 교수로 넘어갔고, 민예지는 돈과 명예를 위해 대형 길드에 들어갔다.
한 명은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초청 교수이고 한 명은 대형길드의 팀장이니 둘 다 출세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너처럼 교수는 좀…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못해. 돈도 더 벌고 싶고."
"그놈의 돈이 뭐라고. 지금도 충분히 많잖아."
"돈은 벌어도 벌어도 부족하다구."
민예지는 또 상급자에게 연락이 왔는지 스마트워치를 두들겼다.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임솔은 길드에 들어가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아… 이호연 생도도 축제 때 접촉했어야 하는데. 너 진짜 어딨는지 몰라?"
"응. 몰라. 나도 축제 때 한 번도 못 봤어."
임솔은 친구가 상급자에게 깨지는 것보다 이호연이 귀찮아지는 게 더 싫었다.
'안 그래도 바쁠텐데 얘한테 걸리면 얼마나 귀찮아지겠어.'
"아이 씨잉. 연락도 안 받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접촉하라는 거야. 미친놈들."
"진정해. 하늘에 기도하다 보면 언젠간 만나겠…."
콰앙- 콰앙-
그때 밖에서 정체불명의 폭음이 들렸다.
"…!"
둘은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축제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났고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있었다.
"…테러야. 나는 수습을 도우러 갈게."
임솔은 아카데미의 교수로서 테러를 막을 의무가 있다.
하지만 바로 연기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려는 임솔을 민예지가 저지했다.
"솔아. 잠시만. 이거 수상해."
대형 길드의 팀장인 민예지는 판데믹과의 싸움이 익숙했다. 그렇기에 테러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폭발의 소리에 비해 연기가 너무 약해. 추가적인 테러가 있을 수도 있어. 잠시 상황을 지켜봐야 해."
"… 네 말이 맞네."
임솔도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분명 소리에 비해 다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며 수상한 사람을 찾던 임솔의 눈에 이호연이 들어왔다.
"어?"
"수상한 놈이라도 찾았어?"
"아니, 저기…."
민예지도 이호연을 발견했는지 그쪽을 바라봤다.
이호연은 양손에 불꽃을 일으키며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더니, 한 경비병력의 얼굴에 화염을 처박았다.
-끄아악!
경비 병력은 그대로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바닥에 뒹굴었다.
"저, 저게 무슨?"
"…!"
민예지와 임솔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이호연에게 달려갔다.
*
패닉에 빠져서 경비병력에게 달라붙는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내 [마나 감응] 덕에, 경비 병력으로 위장한 마인이 몸속에서 마나를 끌어올리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콰지직-!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마인의 얼굴에 파이어 펀치를 처박았다.
"끄아악!"
"내 주변에서 떨어져요! 마인입니다!"
꾸륵- 꾸르륵-
주먹에 맞은 마인의 얼굴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마인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경비 병력 중에 마인이 숨어있다고 소리를 질러도 되지만, 위장한 마인은 경비병력의 1/5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이 더욱 혼란스러워질 바에는 그냥 내가 빨리 마인을 처리하는 편이 낫다.
"뭐, 뭐야!"
"사람이 죽었어! 이호연이 사람을 덮쳤다!"
"마인이래잖아! 도망쳐!"
물론 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더 패닉에 빠진 것 같지만, 마인한테 죽는 것보단 낫잖아.
- 끄악, 끄아악! 끄륵. 끄르르륵!
점점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역겹고 추악한 소리를 내는 마인에게 나는 화력을 높였다.
"호연아!"
그때 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님?"
임솔 교수가 다급하게 내게 달려왔다.
밖에서 호연아라고 부르는 건 처음이라 좀 놀랐다.
옆에는 전에 표창 수여식에서 봤던 고양이상의 여자도 따라오고 있었다.
'저 사람이 민예지였지.'
하도 연락이 와서 찾아봤더니 꽤 미녀였던 기억이 난다.
임솔 교수와 같이 앉아있길래 친분이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 만날 정도였다니, 내 생각보다 더 친한 모양이다.
"너 이게… 어?"
"마인이에요. 경비 병력으로 위장하고 있었어요."
임솔도 가까이에서 보자 마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챈 모양이다.
-끼액… 끄그그극!
콰드득-
파이어 펀치를 맞은 마인은 어깻죽지부터 몸이 찢어지며 새로운 몸을 드러냈다.
뭐라고 할까.
기분 나쁠 정도로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이었다.
-끄아아아악! 죽어! 죽어!
마인은 아직도 얼굴을 누르고 있는 파이어 펀치의 고통을 참을 수 없는지 내 팔을 잡으려 했다.
'개안'을 발동하고 있던 나는 손을 빠르게 빼낸 뒤에 살짝 거리를 벌렸다.
"지랄났네."
이상한 액체가 묻어있는 주먹을 털어내고 다시 불꽃으로 덮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 마법으로 상대하기보단 이런 식으로 상대하는 게 낫다.
'가속'
마인이 반응하지 못할 속도의 주먹을 배에 꼽았다.
푹-
"크흡?!"
속도가 빠른 만큼 당연히 파괴력도 강한 법.
아인슈타인 파이어 펀치를 맞은 마인은 그대로 절명했다.
"꺄아아악!"
"도, 도망쳐!"
경비 병력이 마인으로 변하는 꼴을 본 일반인들은 경비 병력에게서 떨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여러분! 경비 병력에게서 떨어지시면 안 됩니다! 뭉치세요!"
어딘가에서 나온 교수들이 사태를 진압하려고 했지만, 수 많은 사람들을 몇 명이 컨트롤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호연아. 이게 무슨…."
"교수님. 마인을 구별하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저 좀 도와주세요. 처음 뵙지만 민예지 씨도요."
판데믹의 간부들도 하나하나의 특성이 다르다.
함정이고 뭐고 힘으로 다 뚫어버리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책략가처럼 주의 깊게 행동하고 작전대로 움직이는 간부도 있다.
지금 테러는 분명 꽤 치밀하게 준비한 테러였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간부 중 이런 식으로 치밀한 놈은 한 명뿐이다.
길 스티븐.
"뭐라고? 너 지금 마인을 구별한다고 했어?"
임솔 교수는 마인을 구별한다는 내 말에 의문을 표했다.
"완벽한 구별법이 아니에요. 지금 현장에 있는 놈들만 구별할 수 있어요."
제대로 정체를 숨긴 마인을 구별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관에서 마인과 전쟁이 끝나지 않는 거다.
하지만 길 스티븐의 수하들은 다르다.
다들 같은 마법진을 심장에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 마법진을 알기만 한다면 구별할 수 있다.
나는 즉시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방금 마인을 죽이면서 파악한 마법진이다.
"이 마법진이 느껴지는 경비 병력은 마인이에요. 저는 다른 곳을 구하러 갈 테니까 교수님하고 민예지씨가 이곳을 맡아주세요."
"호연아! 잠깐만!"
"이호연 생도?!"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길 스티븐.
판데믹에서도 두뇌파로 귀찮은 작전들을 많이 내는 놈이다.
초반부에 처리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이놈의 작전은 항상 신박하고 허를 찌르지만,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완벽주의.
작전을 완벽하게 끝내고 싶어 하며, 혹시라도 실수가 있었다면 다음에 보완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노력파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상에서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을 느끼기 위해, 그 새끼는 항상 현장을 직접 지켜본다.
작전지의 한 가운데서 말이다.
그 사실을 아는 나는 전투 중에 마나 감지를 돌리며 이미 그 위치를 파악했다.
"끄으… 흑."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아이고, 아이고. 이 늙은이 좀 도와주게…."
폭발에 휘말려 다리를 다쳤는지 엎드린 채 테러의 한 복판에 쓰러져있던 노인에게 다가갔다.
나는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며 부축을 도와주었고, 노인은 신음을 내며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
"흐읍!!"
그와 동시에 노인은 남은 한 손으로 단도를 찔러왔다.
파직-
눈 깜짝할 속도였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던 코튼 가드에 단검은 힘없이 막혀버렸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당연히 처음부터죠. 길 스티븐 씨."
당황한 얼굴의 노인네를 보고 조소를 지었다.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놈들이 놀라는 얼굴은 볼 때마다 참 웃기다.
"도대체 어떻게 이름까지… 내 진짜 얼굴을 아는 사람은 판데믹 내에도 얼마 없는데. 스파이가 있는 건가?"
"그건 당신 알 바 아니고."
두근.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뛴다.
[전투 감각]이 약하게 발동되었다는 뜻이다.
역시, 내 판단이 맞았다.
첫 번째 나오는 간부는 내가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
내 성장 속도는 이미 원작보다 월등히 앞서있다.
타다닥-
길 스티븐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력을 일으켰다.
"주인님을 위하여… 눈 앞의 제물을 데려가겠습니다."
"진짜 미친 새끼."
판데믹의 간부 대부분은 저런 광신도 상태다.
마에스트로의 능력 때문이다.
길 스티븐의 몸이 울긋불긋해지며 일렁거리는 마력이 솟았다.
물론, 나는 하나도 긴장되지 않았다.
"죽어라…!"
길 스티븐의 마력이 솟아올랐고 마법진이 그려졌다.
탁-
나는 놈의 마법진의 핵심회로를 건드렸고, 마법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어, 어떻게!"
"흐음… 논문에 쓸 실습자료를 확보하고 싶었는데 수준이 너무 낮아서 도움이 안 되네."
"무슨 개소리냐!"
길 스티븐은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마자 뒤돌아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수준 차이를 몸으로 느낀 것이다.
"참, 쥐새기같은 게 판단은 빨라요."
길 스티븐은 중앙 분수 옆에 있는 아카데미 강당 앞에 섰고, 나는 그 앞으로 따라갔다.
"이제 그냥 포기해라 응?"
혹시나 정보라도 좀 빼낼 수 있을까 해서 시간을 끌었는데, 시간만 아까울 것 같았다.
"큭, 큭…. 마지막 불꽃을 불태울 것이다. 내 주인님을 위해!"
"…."
길 스티븐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마나가 급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뭐지? 함정인가?'
이놈이 서 있는 곳은 아카데미 명예관.
아카데미 출신의 유명인 동상이나 초상화 등이 전시되어 있고, 아카데미에서 보유 중인 아티팩트들….
'아티팩트?'
나는 즉시 명예관을 향해 마나 감지를 사용했다.
이미 테러가 발생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충 대피한 상태였다.
다행히 안쪽에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마나의 요동이 느껴졌다. 거대한 마법진의 흐름이었다.
"나 한 몸으로 수천의 제물을 얻는다면… 이 또한 가치 있는 행동이겠지."
길 스티븐은 삶을 달관한 사람처럼 눈을 감고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희생으로 무언가 일으키려는 게 분명했다.
'아티팩트로 뭘 할 수 있지?'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아티팩트. 분명 원작에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났다."
아티팩트는 마나가 가득 찬 장비다.
그 마나를 이용하는 공격 방법이 있었다.
아티팩트의 마나를 폭주 시켜 폭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분명 원작에서 그런 공격수단이 등장했다. 물론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내용으로 나왔을 뿐이지만, 분명히 기억났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하자 명예관에 그려져있던 마법진의 마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아티팩트를 마나화 해서 폭발시키는 마법진이었다.
'막아야 해.'
아마 원작에서는 이런 게 있더라도 혹시 모를 보험으로 남겨놓고 터트리진 않았을 거다.
이런 마법을 사용하려면 마나 또한 엄청나게 요구되고, 필연적으로 길 스티븐의 희생이 있을테니까.
지금은 어차피 죽을 목숨. 가는 길에 제물을 데려가겠다고 마법을 발동시켜버린 거다.
'어쩐지 수준 차이를 느끼자마자 바로 도망가더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폭탄이 두렵다면, 터지기 전에 조치하면 된다.
그럼 아티팩트 폭탄은 어떻게 해야할까.
'아티팩트가 폭탄으로 사용 되기 전에 부숴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아티팩트의 마력은 장비가 실존해야지 성립된다. 아티팩트를 부숴버린다고 해서 거기 있는 마나를 영약처럼 흡수할 수는 없다.
나는 손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