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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화 〉130화. 축제 (130/648)



〈 130화 〉130화. 축제




"어…."

저렇게 개소리로 치고 들어오면 어떻게 받아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히 사회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쯤하고, 오늘의 주인공들과 잠깐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신동민 생도?]


"예."

[솔직히 3년간 봐왔으니 궁금한 거 없죠? 이호연 생도에게 넘어가겠습니다!]


"푸흡."

자신에게 올 질문을 기다리던 신동민은 사회자의 말에 똥 씹은 표정이 되었고, 그걸 본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신동민이 이글이글한 시선을 쏘았지만, 나는 무시하며 사회자를 바라봤다.


[1학년은 어제까지 서바이벌 시험을 진행했다고 들었는데요. 이호연 생도의 피곤한 얼굴을 보니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모양입니다. 맞나요?!]

강당의 커다란 홀로그램 화면에서는 내 얼굴이 비춰지고 있었다.


정기가 빨려서 그런지 푸석푸석해진 머리에 핼쑥한 볼, 충혈된 눈에 다크서클까지. 몰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얼굴이 잘생겨서 추하기보단 털털한 미남 느낌이 났다.

"아… 맞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늦잠을 잤거든요. 지각을 해버려서 사회자님이 고생하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덕분에 분위기가 엄청나게 달아올랐습니다.]

"가즈아!!! 부회장!"

"신동민! 신동민! 신동민!"

슬프게도 강당은 대부분 신동민의 편이었다.

남자들이 대부분 신동민의 편이었는데 거의 다 목소리가 컸거든.


"이호연 화이팅!"


"잘생겼다!"

나를 응원하는 소리도 있었지만 그렇게 크진 않았다.


[3학년과의 친선 대련인 만큼 패배를 예상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이호연 생도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결과로 보여드릴게요."

이제 슬슬 시작하면 안 되나.


머리가  아프다.


[오오오! 자신감 넘치는 발언! 과연 승부의 행방은 어떻게 될지!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요? 먼저 대련장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강당 중심에 펼쳐진 마법진이 발동되며 커다란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벤트 매치인 만큼 대련장의 필드는 랜덤으로 정해지는데요! 여기서 어떤 필드가 나오냐에 따라 이호연 생도도 충분히 할만한 대결이 될  있겠습니다!]

"음…."

1대1 결투에서 실력을 드러냈어도 이런 여론이 있다. 아무래도 상대가 1학년이니까 그렇겠지.


이번에 확실히 끝냈으면 좋겠네. 이제 이런 소리는 안 들을 때가 됐잖아.

두구두구-

룰렛이 점점 속도를 줄이고, 바늘이 한 부분을 가리켰다.


[아-! 바다 위 부표 필드가 설정되었습니다! 이호연 생도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죠! 신동민 생도에게 완전히 유리한 지형이에요!]


"큭, 미안하게 됐다."

'… 뻔하다 뻔해.'

저 얼굴을 보니 분명 뒷공작이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코에 짭짤한 바다 내음이 풍겨왔다.


정신을 차린 순간 내 주변이 바다로 변했다.


대련장을 둘러싼 공간 확장 마법진이 대련장의 크기를 넓히며 커다란 바다로 만들었다. 나와 신동민의 발밑에는 몇십 미터 크기의 부표가 바다에 떠 있었다.

[그럼! 이호연 생도와 신동민 생도의 친선 대련을 지금부터 시자아악~ 하겠습니다!]

내가 필드를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이없게도, 릴리아나와의 섹스는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

릴리아나의 비밀은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준 높은 마법들을 파훼하는 과정에서  마법 수준은  단계 올라갔다.

예전에 내가 각성했다는 찌라시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여론이 난리가 났었다.


그때는 아직 1학년이 각성했을리가 없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었었다.

'이번에는 진짜 난리 나겠네.'

나와 신동민 사이를 가로막던 마나막이 사라지고, 출렁이는 파도들이 위로 솟기 시작했다.


촤르륵! 파악-

두근. 두근.


'강하긴 하네.'


확실히 파워 밸런스를 잘못 잡은 게임이다. 현역 헌터들보다 아카데미 생도가 강하다니.


두근.


익숙한 전투 감각이 내 몸을 휘감는다.

신동민은 미리 준비해놓은 듯 마법진을 펼쳤다. 손이 휘저어질 때마다 주변의 물이 여러 모양으로 조형된다.


나를 향해 덮치는 거대한 파도를 보며 천천히 마력을 집중했다.

그오오-!


파도 뒤에 승천하는 수룡(水龍)들이 나타났다.


"말도 안 돼! 수룡이라고?!"


"끝났어. 필드까지 신동민의 편을 들어주네."


관객석에서 들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게 신기했다.

1대1 결투 때는 안 들렸는데, 이벤트라 그런가?

[신동민 생도! 말도 안 되는 마법 구사 능력입니다! 순식간에 수룡 5마리를 소환합니다!]


나를 덮치는 거대한 해일과 수룡 5마리.

관객석에서도 엄청난 마법이라고 난리가 났다.

확실히 멋있긴 하다.


"근데 뭐 어쩌라고."

내겐 저딴 물장난이 중요한 게 아니다.

릴리아나랑 놀아주기로 했는데, 이런 데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두근.


나는  속에서 끌어오르는 마력을 그대로 해방했다.


불속성 마법을 연습하느라 다른 속성은 오랜만이지만… 괜찮다.

지금의 나는   있으니까.

빠드득-!

까캉. 

까드드득. 깡.

내 몸을 중심으로 냉기가 펼쳐졌다.

나를 덮치던 수룡과 파도들은 냉기와 마주치며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콰득. 빠드득-

파도는 위협적인 크기 그대로 얼음 조각이 되었다.


의지를 가진 수룡들은 어떻게든 얼어붙는 몸을 막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더욱 추한 모습으로 얼어붙을 뿐이었다.



딱. 딱. 따닥.


다음 먹잇감을 찾아 나선 냉기는 바다까지 얼리기 시작했다.

빠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범위를 넓히는 얼음에 신동민은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어, 얼음이라고?"

[… 이,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호연 생도가 얼음 속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건… 이중 속성인가요? 이중 속성?!]


까득- 까드득-


바다가 얼어붙었다.


파도에 철렁이며 흔들리던 부표가 그 증거였다.

"설마 이걸로 끝은 아니죠?"

신동민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줬다.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 겨우 이걸로 포기할 건 아니잖아.


"…."

"오. 자존심은 있네."

신동민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마법진을 그렸다.


물이 없다고  속성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물을 소환하는 데에 마력을 덜 써서 유리할 뿐, 원래 물속성 마법은 물을 만드는 과정까지 포함이니까.


두근. 두근.


방금 마력을 꽤 많이 사용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 보니 빠르게 끝내는  좋을 것 같다.


나는 남은 마력을 이용해 얼어붙은 바다를 조각조각 들어 올렸다.

마법진을 그리던 신동민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안색이 파래졌다.


"내가 이기면 뭐든 다 해준다고 했지? 다신 회장님한테 접근하지 마. 다음에 걸리면 진짜 죽여버릴 테니까."


카득!


수백 개의 얼음덩어리가 신동민에게 쇄도했다.

"으아아아아!"
캉! 캉! 캉!


 십개정도는 악으로 열심히 마법진을 그리며 막아냈지만, 이미 처음 마법이 막힌 순간 경기는 끝났다.

콰가가각-!


얼음덩어리들은 신동민의 마법을 뚫으며 몸에 박히기 시작했고, 누적되는 피해에 신동민의 마법도 점점 약해졌다.

"어째서! 어째서어!!!"


괴성을 지르며 얼음덩어리를 막고 있는 신동민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필드 조작할 시간에 노력이나 하지 그랬어요. 선배님. 그럼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끄아아아!"


팍. 팍. 팍. 팍. 팍.

얼음덩어리들은 신동민 주변에 마구 박혔고, 결국 얼음을 막지 못한 신동민을 중심으로 거대한 얼음 기둥이 만들어졌다.


엘사도 아니고 인간 눈사람이 되어버렸네.

[아… 경기 종료! 승자는 이호연 생도입니다!]

스르륵-

얼어붙은 바다가 사라지며 원래 대련장으로 변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얼음에 갇혀있던 신동민은 얼음이 사라지자 털썩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곧 의료진들이 달려와 신동민을 들것에 올리고 데려갔다.

저번엔 내가 실려 갔는데. 이번엔 상대가 실려 갔네.

"어으."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빨리 가서 자야 할 것 같아.

[이호연 생도? 승리의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어느새 사회자가 내게 다가왔다. 피곤해서 빨리 가고 싶지만, 내가 늦은 시간을  사람이 끌어줬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아… 감사합니다. 숨겨왔던 무기를 이번에 공개했는데 다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천상제 재밌게 즐기세요. 전 자러 갑니다."


[이야! 멋있어요. 멋있어! 이호연 생도가 너무 피곤해 보이니, 이중 속성에 관한 얘기는 길드 관계자분들이 직접 해주세요! 저는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다행히 사회자도  몰골을 보고 다른 질문은 더 하지 않았다.

어우, 힘들어.


대련장 밑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학생회 사람들한테 인사는 하고 가야지.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가볼게요."

"후배님 완전 멋있어… 나머진 우리한테 맡겨!"


"네네. 감사해요. 회장님은 어디 계세요?"

주변을 둘러봐도 문수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 저쪽에 계셨는데, 어디 가셨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여생도를 내버려 두고 관계자 대기실로 들어갔다.

아마 사람이 많은 곳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거다.


"호연아…!"


마침 밖으로 나오던 문수린과 딱 마주쳤다.

"수린 누나. 감사해요. 피곤해서 가볼게요. 인사하려고 왔어요."

"응. 가서 푹 쉬어. 얼굴이 말이 아니다."


내  뺨에 손을 얹고 걱정해주는 수린 누나에게 감사를 전하고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이제 진짜 기숙사로 가야지.


"여어~ 미남이! 고생했어."

"… 내 이름은 미남이로 고정이냐?"

대강당을 빠져나와 기숙사로 가려는데, 김영한이 내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밖에서 날 기다린 모양이다.

"응!"

헤헤 웃는 꼴이 마음에 안 드네.

"하아… 그냥 이름으로 불러."


"왜? 좋잖아. 미남이. 입에 착착 붙는데."


"에휴,   피곤하냐?"


얘도 나랑 같이 마지막 날 까지 살아남았는데, 힘이 넘쳐 보이네.


"그야 나는 미남이처럼 열심히 싸우질 않았잖아. 마지막 날엔 도망만 다녔거든."

"한 번만  미남이라고 부르면 나도 이제부터 가시 싸개 4등 따리라고 부른다?"

"…."

"난 가서 좀 쉰다. 피곤해."

내 말에 시무룩해 하는 김영한을 무시하고 기숙사로 향했다.


릴리아나를 끌어안고 잘 생각을 하니 가슴이 포근해진다.

띠링-

기숙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숙사를 뛰쳐나온 게 8시 50분이었는데, 1시간도 안 돼서 다시 들어왔다.


방에 들어가는 길에 헨젤과 그레텔처럼 흔적을 남기며 생도복을 벗었다.

방에는 릴리아나가 나갈  모습 그대로 자고 있었다.


나도 옷을 벗고 그 옆에 누웠다.

꼼지락꼼지락.


릴리아나에게 딱 붙어서 손을 가슴 위에 얹었다.

몸과 손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하아…."


침대에 눕고 나니 긴장과 피곤이 한꺼번에 몸에 몰아쳤다.


'자고 일어나서 릴리아나랑 놀아야지. 아, 그러고 보니 릴리아나의 마법도  번 물어봐야….'


뚝-


내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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