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117화. 서바이벌 시험 (10)
"맨살로 하면… 더 효과 좋은 거 맞지?"
엘리스는 어깨에 얹은 내 손을 잡고, 나와 눈을 마주치며얘기했다.
"어… 잠시만. 기다려봐."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을 하면서 정작 눈은 진지하니 내가 더 당황했다.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 호감도 : 38 ]
- [ 성욕 : 59 ]
- [ 식욕 : 40]
- [ 피로도 : 61 ]
현재 상태 :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어.
"…음."
내가 또 잘못 건드린 것 같은데.
엘리스는 본래 자존심이 강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마력 장애 때문에 본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본국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다.
프랑스에선 엘리스를 아이리스 길드의 유망주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엘리스는 이 상황을 파훼하려고 더욱 노력하고, 어떻게든 마력 장애를 숨기려고 한다.
그리고 빨리 강해지기 위해서 마력 장애를 극복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몇 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치료법을 찾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치료법을 가져와 버렸다.
물론 구라지만… 내가 마나를 주입할 때만큼은 마나 회로가 늘어나는 느낌을 받을 테니 엘리스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내가 대충 둘러댄 마사지에 대해 진심인 거다.
"일단 그건 밤에 하자. 지금은 너무 밝잖아."
"알았어."
저렇게 덤덤하면 오히려 내가 창피한데.
어차피 지금은 너무 밝아서 엘리스의 맨살을 보일 수 없다.
엘리스가 괜찮다고 해도 안 된다. 내가 싫으니까. 혹시 누가 지나가다가 보면 어떡해.
"어… 일단 밥 먹을래?"
나는 애매해진 분위기를 밥으로 환기시켰다.
할 거 없을 땐 밥이 최고지.
"그래."
엘리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표정하게 내 뒤를 따랐다.
갑자기 또 차가워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마음가짐에 변화가 생긴 건가?
우리는 어젯밤을 보냈던 텐트로 돌아와 식사를 준비했다.
물을 끓이고 즉석밥을 넣고 데우는 동안, 내 누적 포인트를 확인했다.
살아있는 생도는 당연히 130명.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로 넘어가면 생도 수가 갱신된다.
"350점… 이대로만 가면 1등 하겠는데?"
몬스터와 보스몬스터, 생도나 보물 등에서 포인트를 꽤 많이 얻었다.
원작에서 1등은 어떤 루트를 타냐에 따라 다르지만,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지막 날의 점수는 평균 700점 정도.
이 정도면 충분히 순항 중이다.
"350점으로 될까? 남다은도 있잖아."
"남다은? 아마 기권했을걸."
엘리스는 남다은을 견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다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중간고사는 총 세 과목이다.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 그리고 특별 시험.
특별 시험은 순수 전투력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운 요소가 크다.
그래서 실기 1등이라는 조건에 들어가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첫날 밤에 동생과 통화를 위해 기권한다.
아마 이번 시험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 하긴, 실기 빼고는 관심이 없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네."
"응, 아마 확실할 거야."
남다은의 포기는 모든 루트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다. 특이사항이 없다면 확실할 거다.
우리는 뜨거워진 밥과 훈제 삼겹살로 점심을 해결했다.
'반찬 좀 다양하게 사 올 걸.'
혹시나 상할까 봐 훈제류를 많이 샀는데, 진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어? 저거 보급 상자 아니야?"
밥을 먹은 후 몸을 풀고 있는데, 여기서 약간 먼 곳에 보급상자가 떨어지고 있었다.
"멀긴 하지만 달려가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갈래?"
"응. 근데 그 전에 넣어줘야 해."
"오케이."
엘리스의 어깨를 잡고 마나를 주입했다.
이제 슬슬 마나를 주입하는 감각이 익숙해졌다.
'마나 회로 안쪽에 자극을 주는 것도 시도해볼 만 한데.'
내 마나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마나회로에 자극이 간다.
만약 내가 그 자극을 유도할 수 있다면, 엘리스가 느끼는 치료 효과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진짜 치료 효과가 있지는 않지만, 어차피 속는 거라면 기분 좋게 속는 게 좋잖아.
"가자."
마나를 적당히 넣어준 후에 보급 상자로 달려갔다.
운 좋게 다른 생도와 만나지 않고 보급 상자까지 도착했다.
두근대며 연 보급 상자 안에는 육포와 이불이 들어있었다.
"아이씨… 꽝이네."
우리에게 필요는 없지만 남 좋은 일 시켜주기 싫어서 아공간 주머니에 박아놨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게 남았다.
보급 상자에 스마트 워치를 대고 코드를 스캔했다.
[97번째 보급 상자입니다. 서바이벌 시험 어플이 업데이트됩니다.]
[24시간마다 두 번씩, 모든 생도의 포인트 랭킹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 대박이야 이거."
보급 상자의 코드는 랜덤으로 어플을 업데이트시켜준다.
나오는 능력도 제각각이다. 가장 좋은 건 주변 생도 위치 파악이나 랭킹 확인이다.
그중에서 포인트 랭킹 확인이 나왔으니 당첨이었다.
"바로 한 번 쓸까?"
"그래. 써보자."
엘리스도 내 스마트워치에 눈을 보내는 게 순위가 궁금한 눈치였다.
[100% 체력 회복권]이 있던 자리에 어느새 [포인트 랭킹 확인]이라는 아이콘이 생겨있었다.
'아마 압도적 1등이겠지.'
아이콘을 터치하자 스마트 워치 위로 홀로그램 화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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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섬 내의 포인트 랭킹 순위.
1. 남다은. 1,125p
2. 이호연. 350p
3. 엘리스. 324p
4. 김영한. 250p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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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둘은 랭킹을 보고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아까 남다은은 확실히 기권했다고 하지 않았어?"
"… 미안."
엘리스가 나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거 참, 사람이 틀릴 수도 있지….
'아니, 틀리면 안 되잖아.'
그리고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점수가 1,125점이냐고….
"… 머리아프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
"대장님. 이호연의 위치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스와 같이 있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대장님이 뭐야."
"재밌잖아. 전쟁하는 것 같고."
"하긴, 미남하고 엘리스를 상대로 두면 전쟁이지. 학생회 홍보부잖아."
김영한은 미소를 띠며 생도들을 바라봤다.
30명이 넘는 생도들이 팀을 이루고 있었다.
목표는 단 한 명.
이호연이다.
김영한은 둘째 날 보급 상자에서 생도 위치 파악권이 나온 후, 꾸준히 생도들을 포섭했다.
미끼는 당연히 이호연이 가지고 있는 식량들.
아무리 이호연이 먹을 걸 많이 챙겨왔다고 해서 여기 있는 생도들이 일주일간 버틸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30명이 적당히 나눠 먹는다면 많아봤자 두 끼 정도의 분량이다.
하지만 3일 동안 열매만 먹으면서 버텨온 생도들에겐 따뜻한 밥이 너무 필요했다.
"치사하게 자기들만 맛있는 걸 먹고 있는 거야?"
"뭐, 사실 생존 시험을 예상하고 다 가져온 이호연이 미친놈이지."
"그래도! 좀 나눠줄 수 있잖아."
"너라면 나눠줄 거야?"
남생도는 김영한의 일침에 불만인 듯 입을 다물었다.
"… 김영한. 너 우리 대장이면서 이호연 편을 들면 안 되지."
"나는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라~."
김영한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돌렸다.
"9시 방향에 보급 상자 하나 더!"
"오케이! 기다려!"
보급 상자의 스캔은 김영한이 몰아서 하고 있다.
코드를 스캔하면 무작위로 업데이트되는 서바이벌 시험의 어플.
업데이트로 추가되는 능력은 겹치지 않는다. 즉 한 번 능력을 얻었다면 다시 그 능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발견한 김영한은 자신에게 코드를 몰아달라고 부탁했다.
[지정한 생도 위치 추적권이 추가됩니다.]
[24시간에 한 번. 원하는 생도의 위치 좌표를 제공합니다.]
"드디어 나왔다…."
이호연을 노릴 수 있는 능력이 드디어 나왔다.
"미남한테 1대1 결투의 복수를 할 수 있겠어."
"영한이 너 재미로 한다고 하지 않았냐?"
옆에 있던 생도가 어이없다는 듯이 묻자, 김영한은 또 어깨를 으쓱했다.
"재미야 재미."
"잠시만, 이쪽으로 누가 오는데…."
생도의 말을 들은 김영한도 그쪽을 바라봤다.
뚜벅뚜벅
깎아내린 듯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눈동자를 가진 매력적인 여자.
남다은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남한테 관심이 없는 얼굴이었다. 30명이나 모여있으면 신경을 쓸 법도 한데 일말의 관심도 없어 보였다.
"… 어떡하지. 일단 친한 척해볼까?"
"ㄱ, 그래. 우리도 30명이 넘는 데 쫄 필요 없다고."
원래라면 남다은은 무시하고 보냈겠지만, 엘리스와 이호연이 뭉쳤으니 이 쪽도 강한 전력이 필요했다.
"다은아, 안녕?"
김영한은 자신 있게 남다은 앞에 섰다.
"…?"
남다은은 의문을 표하며 김영한을 바라봤다.
"그, 우리 팀이랑 같이 다닐래? 벌써 30명이나 모여있어."
"아니."
"응… 그래."
김영한은 예상한 답변에 깔끔하게 물러났다.
컨트롤할 수 없는 사람을 억지로 무리에 넣을 순 없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하지만 그대로 사라질 줄 알았던 남다은이 질문을 던졌다.
"뭔데?"
"이호연… 어딨는지 알아?"
"…."
김영한은, 잘하면 남다은을 데려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밤이 되고, 우리는 익숙하게 텐트 칠 자리를 잡았다.
"여기 즈음이 좋겠네."
원터치 자동 텐트를 펼치고 안에 이불과 베개를 깔았다.
두 명이 불침번을 돌아가며 서느라 텐트에서 같이 잘 일은 없었다.
물론 서로 베개와 이불을 공유하지만… 그 정도야 뭐. 서바이벌이라는 핑계로 가능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부스럭 부스럭-
엘리스는 텐트 안에서 옷을 벗고 있었다.
'설마 다 벗지는 않겠지.'
엘리스가 어디까지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얼마 안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효과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맨살에 마사지를 하는 만큼 더 효과가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 들어와."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새하얀 등이 내 시선을 뺏었다.
풀린 브래지어의 끈은 양쪽에서 나풀대고 있었고, 생도 복과 브래지어로 배와 가슴을 가린 엘리스는 내게 뒷모습만 보여주고 있었다.
"빠, 빨리해줘."
엘리스는 평소 같지 않은 여자 같은 목소리를 냈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이건 무조건 해내야 한다. 효과가 없으면 좆된다.
'개안'
내 눈이 금빛으로 물들고, 손가락 마디 끝에 마나를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