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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화 〉110화. 서바이벌 시험 (3) (110/648)



〈 110화 〉110화. 서바이벌 시험 (3)

시험이 시작한 지 두 세시간 정도 지났다.


나는 지금 강가를 따라 올라가며 텐트를 칠만한 자리를 찾고 있었다.


이왕이면 좋은 자리를 찾아 계속 쓰는 게 좋으니까.

"왜 이렇게 덥냐. 아오."

섬의 위치가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도 부근인  같다. 햇빛도 쨍쨍하고 습한 게 기분 나쁜 날씨였다.

"배고픈데 뭐라도 먹을까."

식사 말고도 간식거리로 챙겨온 게 많이 있었다.

주변에 있던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감자칩 하나를 깠다.

냠.

역시 간식거리도 챙겨오길 잘했네.


"… 뭐야 저건?"

과자를 먹으며 잠시 쉬고 있는데, 내 시야 한 구석에 금색 무언가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강가 상류에서 금발 여자 생도가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다.

"저거... 엘리스 아니야?"


얼굴을 물에 박은 채 내려오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익숙한 체형과 머리 길이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감자칩을 내던지고 강가로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정신을 못 차리고 물에 빠져있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었으니까.

혹시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일지도 몰랐다.


엘리스를  밖으로 건져냈다.

다행히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아닌지 숨은 붙어 있었다.

상태창이 있는 생도는 그렇게 쉽게 죽질 않는다. 상태창을 각성하고 능력치를 올리면 일반인과 전혀 다른 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발견한 게 천만다행인 건 맞다.


물 좀 먹는다고 죽는 몸은 아니지만, 그게 무적이란 뜻은 아니다.


저 상태로 30분만 더 있었어도 생명이 위험했을 거다.


"… 일단 여기에 자리 잡아야겠네."


물에 홀딱 젖은 엘리스를 데리고 이동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이곳에 자리 잡았다.

만약을 대비해 내 마나로 엘리스의 몸을 한 번 훑었다.

몸 내부도 이상이 없었다. 저체온증을 대비해 옷만 말려주면   같다.

저체온증이 아니더라도 옷이 젖으면 찝찝하니까.

장작으로 쓸만한 나무들을 구해오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엘리스의 생도복을 벗겼다.


속옷까지 다 벗겨서 말리는  제일 효과적이지만, 지금 처럼 호감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간 진짜 나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타다닥- 따닥-


장작이 타는 소리를 들으며 엘리스의 겉옷을 주변 바위 위에 널어놓았다.

"... 할 것도 없는데 밥이나 먹자."


엘리스가 정신을 차릴 때까진 내가 지켜줘야 한다.


준비해온 후라이팬을 장작 위에 올리고 훈제오리를 굽기 시작했다.

"역시 다 챙기길 잘했어."

식욕을 돋구는 기름진 냄새가 풍긴다.


'생각해보니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애들도 있겠네.'


뭐, 히로인이면 나눠주고 모르는 놈이면 포인트를 뺏으면 된다.

아직까지는 생도들도 배고픔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거다.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은 돼야 진짜 생존이 뭔지 깨닫겠지.


물론 나는 따뜻한 텐트에서 잘 거다.


"와, 맛있겠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훈제오리들을 그릇에 담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부스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으으응…."

엘리스가 몸을 꼼지락거리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최대한 옷을 말리라고 장작불 옆에 눕혀놨더니 따뜻함 덕에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나는 계속 밥 먹을 준비를 하며 엘리스를 관찰했다.


"끄으응… 하아, 하아…."

잠시 후 엘리스는 숨을 몰아쉬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손으로 자기 몸을 더듬으면서 주변을 살피는 게 마지막에 물에 빠졌던 기억이 남아있는 것 같다.

"괜찮아?"

"히익?"

엘리스는 뒤에서 들린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참고로 나는 즉석밥을 데우면서 훈제오리를 먹고 있었다.


"강에서 떠내려오길래 내가 건졌어.  옷은 여기 말리고 있다."


오해하지 않도록 검지손가락으로 바위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 하아, 고마워. 그럼 갈게."


엘리스는 아직 마르지도 않은 생도복을 챙겨서 바로 자리를 뜨려 했다.

"옷 아직  말랐잖아. 말리면서 밥이라도 먹고 가."

"무슨 꿍꿍이인데? 식량을 나눠주겠다고?"

"꿍꿍이가 어딨어. 우리 같은 학생회 홍보부잖아. 애초에 식량은 너 주고도 남을 정도로 많이 있어."


히로인들한테 나눠주려고 많이 산 건데, 왜  받으려고 하는 거야.

"… 됐어."

엘리스는 고기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래. 배고프면 연락해. 위치 공유해줄 테니까."

특별 시험이 진행되는 무인도는 통신망이 안 통해서 교수를 제외하고는 연락을  수 없다.


하지만, 한  마주친 생도끼리는 원한다면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동맹 관계를 위한 장치인지 위치정보도 공유할 수 있길래 아까 엘리스가 정신을 잃은 틈에  설정해놨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나한테 왜 위치를 공유해주는데?"


"아니 그냥… 같은 홍보부잖아. 친구고."


'널 꼬시려고 그래.'라고 말할 수 없으니 생각나는 데로 변명을 내뱉었다.

"… 하아."


엘리스는 대답하기도 싫은지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떴다.

저렇게까지 부정적이면, 내 뒷조사를 한 건 맞는 거 같은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신이 없으니 들이댈 수가 없다.


어차피 시험이 아무리 힘들어도 엘리스는 포기하지 않을 거다. 본국에서 받는 기대감이 꽤 클 테니까. 프랑스의 대표 유망주라는 타이틀이든, 아이리스 길드의 딸이라는 타이틀이든, 둘 다 큰 부담일 거다.



특히 언니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걸 나는 알고 있다.


힘들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밥 조금 나눠주고 호감도가 오르면 엄청난 이득이다.

안 찾아오면 어쩔 수 없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

'그러고 보니 예비용 마석은 어디에 숨겨놨지?'

아까 겉옷 주머니에는 없던데, 옷 안쪽에 숨겨놓은 건가?





*



"…."

엘리스는 표정을 찡그리며 열대우림을 헤맸다.

물에 젖은 옷은 찝찝함 뿐만 아니라 불편함과 불쾌함까지 가져왔고, 들러붙는 날벌레들은 짜증을 유발했다.


슬슬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는데도 엘리스는 식량으로 삼을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바닥에는 드문드문 버섯이 나있었지만, 아까 식용으로 보이는 버섯을 먹었다가 배탈이 난 이후로 버섯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아까 밥을 얻어먹었어야 했나….'

이호연이 먹고있던 훈제오리가  앞을 맴돌았다.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나를 구해준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봤자 자신의 몸을 노리고 하는 행동이란  엘리스는 알고 있었다.

세바스 찬의 보고로 인해 이호연이 매일같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아카데미의 교수들과도 문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녀와 임솔 교수… 둘 다 실망이야.'


하필이면 아카데미에서 가장 제대로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두 교수가 그런 사람이었다니, 엘리스는 실망감을 감출  없었다.


그리고 이호연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

'정말 친해지고 싶었는데.'


같은 마력장애를 가지고도 노력하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는데, 이렇게 꼬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쨌든 이호연의 도움을 걷어찬 덕에 자존심은 지켰지만, 배가 고팠다.

설상가상 마석까지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  막막한 상황이었다.

엘리스는 슬쩍 스마트워치로 이호연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호연은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 아니야. 보물을 찾아보자."

보물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몰라도, 생존에 도움이 되는 물건인 건 확실하다.


어떻게든 일주일간 살아남기만 하면 상위권은 확실하다.


아우-


그때,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마법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엘리스는 일단 어딘가에 숨기로 했다.

가져온 검은 강에 빠지면서 잃어버렸다. 물론 맨손으로도 약한 몬스터는 제압할  있지만, 체력에 한계가 있기에 무조건 도망치는 게 옳았다.

아우-

컹컹-

엘리스는 밤새도록 몬스터들에게 쫓기면서 숲을 헤맸다.

저딴 허접한 몬스터들에게 쫓긴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억울했지만, 어쩔  없는 일이었다.


탁-

"아읏."


밤이라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나무 덩굴을 밟고 넘어진 엘리스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아프더라도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조금 더 걸어가니 동굴이 보였다.


엘리스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벌레들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기분 나쁜 소음이 엘리스의 귀를 괴롭혔지만, 몬스터들의 위협은 훨씬 덜했으니 안심이었다.

엘리스는 그렇게 동굴에서 잠이 들었다.


*




"으읏…."

엘리스는 온몸에서 근육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돌아다니다가 불편한 자리에서 이상한 자세로 잠을 자고 나니, 정말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는 안 된다.

엘리스는 스마트워치를 켜고 이호연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호연은 어제 그 위치는 아니었지만, 강가 주변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직 잠을 자는 모양이다.


"적어도 마석이라도 얻어야 해."

이호연도 마력 장애를 가지고있으니, 마석이 많이 있을거다.

'아까 소지품 검사를 자세히 볼걸.'

엘리스는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짐을 그렇게 싸들고 왔는데 마석도 많이 가져왔겠지.


자존심이 상하는 건 잠깐뿐이다.


몸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면 괜찮을 거다.


꼬르륵-

엘리스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스마트워치에서 빛나는 위치 좌표를 향해 비척비척 걸어갔다.





*




특별 시험 전용 어플에서는 현재 남은 생존자도 볼  있었다.


"탈락자가 벌써 생겼네."


특별 시험 어플은 날이 바뀌는 시간인 자정에 남은 생도의 수를 갱신시켜준다.


200명이 넘는 생도 중에 40명 정도가 탈락했다.

"그냥 존버만 해도 반은  텐데. 멍청하네 다들."

막말로 마지막 날까지 숨어있기만 해도 상위권일 거다.


첫날에 1/5가 사라졌으니 아무것도 안 하고 첫날만 넘겼어도 이미 하위권은 벗어나는 거다.

"근데 왜 나랑은 안 마주치지? 내가 너무 안 돌아다녔나?"

물론 40명이 다 싸워서 탈락한 건 아닐 거다. 대부분이 직접 기권한 인원이겠지.


아무 준비 없이 이 환경에서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냥 성적을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기권하는 생도들도 있을 거다.

오늘부터 열심히 하는 사람들끼리의 경쟁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보급 상자와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 포인트를 많이 주는 보스몬스터 등을 얻기 위해 엄청나게 싸워댈  뻔하다.

그걸 지켜보며 체력을 보존하다가 열심히 포인트를 쌓은 생도를 덮치는 생도들도 있을거고.

결국 눈치싸움이다. 먼저 나대다가 표적이 되어 죽을 수도 있고, 기회만 보다가 아무것도  얻을 수도 있다.


"나는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결국 승자는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다.

그리고 지금 막 좋은 자리도 찾아냈다.

엘리스가 떠난 뒤에 식사를 마치고 쉬다가, 밤이  때까지 발을 움직인 성과였다.


동굴은 아니지만 바로 뒤에 산이 있고 옆에는 강이 흐르고 있는 지형이었다.

잘 준비를 하기 위해 텐트를 펼치고 결계를 피려는데, 부스럭- 하고 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나는 즉시 손에 불꽃을 피워올리며 그쪽을 경계했다.

"호, 호연 씨…."

내 경고에 벌벌 떨면서 풀숲을 헤치고 나온 사람은… 루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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