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109화. 서바이벌 시험 (2)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다 가져오라는 김진혁 교수의 말에 생도들이 쭈뼛쭈뼛 일어나 아침에 먹으려고 사놓은 간식이나 음료수를 검사 맡기 시작했다.
엘리스는 마석 10 댓 개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마나가 떨어질 때를 대비한 예비용일 거다. 엘리스는 저걸로 어찌어찌 일주일간 살아남는다.
근데 쟤는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이해가 안 되네.
상태창을 읽어봐도 쓰레기니, 오물이니 같은 생각밖에 안 하니 알 수가 없다.
잠시만.
혹시 루미랑 동아리방에서 섹스하던 걸 본 게 엘리스 쪽인가?
엘리스가 정보 길드인 아이리스 길드의 딸인 걸 생각하면, 길드원한테 내 뒷조사를 명령했을 수 있다.
그러다가 내 부주의로 들키게 되고 그게 엘리스의 귀로 들어간 거다.
'근데 여자친구랑 동아리방에서 섹스한 게 쓰레기라고까지 불릴 일인가…?'
들킨 건 루미밖에 없으니 조사원도 그냥 여자친구라고 생각할 텐데.
하, 모르겠네. 애초에 이 추측이 확실한 것도 아니고.
"한 명씩 차례대로 들어가라."
우리는 한 명씩 이동포탈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걸 타면 무인도에 도착하는 거겠지.
나도 포탈에 몸을 맡겼다. 눈을 뜨자 망망대해가 보였고 뒤에는 아마존처럼 우거진 나무들이 보인다.
주변에 생도들이 떠들고 있는 이곳은 한 섬의 해안가였다.
"A클래스는 여기로 집합해라."
담임 교수인 김진혁이 마지막으로 포탈을 타고 나오며 우리를 집합시켰다.
"이곳은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 구입한 무인도다. 사람의 흔적은 하나도 없고,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가 유지되온 곳이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일요일까지 생존해야 한다."
김진혁 교수가 특별 시험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확실히 빽빽하게 자라있는 나무들은 열대우림 같았고 사람의 손떼가 묻지 않은 것 같았다.
"섬에는 독이 있는 동물이나 괴수도 많이 존재한다. 물론 독이 없더라도 너희들의 생명을 위협할만한 몬스터들이 많이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스마트워치로 나에게 연락하도록. 혹시라도 긴급상황이 발생해서 생명에 지장이 있을 것 같으면 이걸 사용해라."
김진혁은 스마트워치에 부착할 수 있는 스티커를 생도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스티커를 찢으면 안전한 곳으로 즉시 이동한다. 단, 스티커를 찢는 순간 시험은 최하점이다."
지금까지의 훈련과 다르게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 엄청난 수의 드론과 감시카메라가 섬을 감시하고 있으니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나 여자친구한테 연락도 못 했는데…."
김진혁 교수는 웅성거리는 아이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시험 방식을 설명하마. 너희에겐 기본적으로 10포인트가 주어진다. 섬 곳곳에는 포인트를 올릴 수단이 존재한다. 첫째로 괴수를 잡고 스마트워치로 인식하면 포인트가 오른다. 그리고 생도끼리의 전투도 당연히 가능하…."
김진혁의 설명은 더럽게 길었다.
쉽게 말하면 몬스터를 잡아도 포인트고, 생도를 잡아도 포인트다.
약한 몬스터는 적당한 점수를 주고, 강한 몬스터일 수록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생도 한 명을 처리하고 스마트워치끼리 인식시키면 그 생도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의 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몬스터 외에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보급 상자나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이 점수를 준다.
"다른 생도의 점수를 빼앗으려면, 스마트 워치를 빼앗으면 된다. 스마트워치로 다른 스마트워치를 읽으면 거기 저장되어있는 포인트의 반을 가져오고, 상대는 탈락하게 된다."
김진혁은 자신의 스마트 워치를 톡톡 치면서 설명했다.
"시험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울 위인들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 이건 어디까지나 훈련의 일환이다. 너희들이 겪어보지 않은 위기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경험해보는 과정이다. 겨우 자존심때문에 목숨을 위험하게 하지 마라."
"교수님… 하지만 싸우다 보면 감정이 과격해질 수도 있지 않나요?"
한 생도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나름 말이 되는 질문이지만… 그런 게 통할 곳이었다면 애초에 여기 끌고 오지도 않았겠지.
"너희들은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학생이다. 남들보다 재능이 있든, 집안이 좋든, 돈이 많든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상 힘들고 위험한 훈련에 노출되는 건 당연하다."
빅토리아 아카데미는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교육기관이다.
내로라하는 헌터들을 배출한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뒷면에는 이런 스파르타 교육이 숨어있었지만, 확실히 힘든 시련일수록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맞는 말이다.
"자신이 없다면 내게 연락해서 포기하면 된다. 죽을 위기에 처했어도 스티커를 찢으면 된다. 숨만 붙어있다면 대기하고 있는 의료팀이 어떻게든 살려낼 테니 걱정하지 마라. 대신 자기가 죽을 위기인 줄도 모르고 고집부리다 멍청하게 죽는 놈들까지 챙겨주진 않는다."
저렇게 말하니까 무섭네. 물론 난 안 죽을거니까 상관없다.
"이걸로 전파해야 할 사항들은 전파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개인 지도와 비상식량을 주지."
개인당 하나씩 지도 한 장과 파우치 하나를 받았다.
비상식량이라고 쓰여 있는 파우치에는 초코바 두 개와 계란 두 개가 들어있었다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각자 지도에 마크가 되어있을 거다. 모든 인원이 자신의 마크에 도착하면 시험이 시작된다. 지금부터 시험이 시작할 때 까지 서로 대화나 접촉을 금지한다. 적발되는 즉시 탈락이고, 30분 내로 자신의 마크에 위치하지 않아도 탈락이다. 그럼 이동!"
김진혁은 그걸로 할 말이 끝난 건지 포탈을 타고 사라졌다.
아마 상황실 같은 곳에 가서 시험을 지켜보겠지.
생도들은 당황하는 눈치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이 상황은 다른 클래스도 마찬가지였다.
200명이 넘는 1학년 인원 전체가 해안에 버려졌으니 그렇겠지.
물론 몇 초 정도 고민하던 생도들은 다들 조용히 숲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루시와 루미에게 눈인사를 한 뒤에,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갔다.
*
지정된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다 보니 스마트 워치에 알림이 도착했다.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합니다! 포기하고 싶으면 이 어플을 실행시키고 포기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시험 준비를 위해 깔아놓은 어플이다.
나중에 이 어플로 다른 생도들 추적도 하고, 여러 군데 쓸 일이 많다. 지금은 못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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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가 전송되었습니다.』
[문무겸비에 스페셜함까지!]
문무겸비한 당신!
특별 시험에서 월등한 성적을 보여주세요!
- 보상 : 민첩 능력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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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서브 퀘스트도 떴다.
근데 나 실기 1등 아닌데. 왜 문무겸비래?
보상은 또 왜 민첩 능력치를 올려주려는 거야. 마력이나 올려주지.
어차피 특별 시험은 열심히 해야 한다.
7일 차에 나오는 보스 몬스터한테서 내게 필요한 물건이 나온다.
이건 겸사겸사 보너스라고 생각하지 뭐.
일단… 잠자리를 찾아보자.
거점 한 군데를 정해서 거길 중심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괜히 돌아다니기도 싫고, 아까 해안에서 나한테 물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게 모든 1학년들에게 소문이 나버렸다.
"좀 좋은 곳 없나…? 산으로 가볼까."
산이 지형이 좋은 곳이 많다. 동굴이 있을 수도 있고.
"물이 가까운 곳이면 좋겠는데. 씻기도 좋고."
세면도구들을 가져왔으니 흐르는 물만 있으면 된다.
나는 지도를 보며 가까운 강을 찾아 갈래를 잡았다.
*
엘리스는 찝찝한 기분으로 특별 시험을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이호연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짜증이 올라왔는데, 특별 시험이랍시고 이딴 곳에 끌려오는 것도 짜증 났다.
"변태 같은 새끼."
다시 생각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설마 그렇게 문란한 남자였을 줄이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남자였는데….'
아직도 묘하게 아쉬움은 남았지만, 생리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도리도리.
엘리스는 이호연에 대한 생각을 지워냈다. 지금은 시험이 중요했다.
"마석이 10개…."
실습 수업하나 따라가는 데에도 마석이 두세 개는 필요한 엘리스에게 10개란 양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시험을 포기할 순 없으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엘리스는 일단 보물을 찾아보기로 했다. 혹시 마나와 관련된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도를 보며 보물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던 엘리스는 섬의 중앙으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가, 이호연이 중앙으로 향했던 걸 기억해냈다.
"… 이쪽으로 가자."
중앙으로 가는 게 마음에 들긴 하지만, 이호연을 생각하니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았다.
엘리스는 지도를 바라보며 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고난 길치 속성이 그녀의 길 찾기를 방해했고, 결국에는 원래 생각했던 곳과 전혀 다른 곳으로 와버렸다.
"여기가 어디지…?"
넓은 폭의 강이 엘리스의 앞에 나타났다. 무인도를 관통하는 강의 원류였다.
강을 건너기위해 덜렁거리는 나무다리에 올라간 엘리스는, 지도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건너편에 은신해있는 생도들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엘리스가 건너오는 것은 건너편에서도 원하지 않았다.
"야… 시발 존버가 답은 무슨, 엘리스 오잖아. 미친 새끼야."
풀숲에 숨어있던 남생도 둘은 다리를 건너던 엘리스의 모습을 보고 허둥지둥하기 시작했다.
"좆됐다. 잘못걸렸어. 마주치면 답도 없다. 튀어야해."
"야, 잠시만. 아직 우리 눈치 못 챈 거 같은데, 한 번 해볼까?"
둘 중에 활을 든 생도가 긴장하며 말했다.
"우리가 기습해도 못 이길 텐데 굳이?"
창을 등 뒤에 끼고 있는 생도는 정확한 지적을 했지만, 활을 든 생도가 고개를 저었다.
"엘리스 말고 저 다리를 노리는 거야. 우리 쪽에 연결된 곳만 부수면 되잖아."
"오…? 그런가?"
엘리스가 건너고 있는 다리를 부수는 터무니없는 작전. 만전 상태의 엘리스라면 절대 걸리지 않았을 허접한 작전이지만, 지금은 기분이 더러운 데다가 길을 찾는데 모든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지금 처리해도 점수 많이 못 먹어. 그냥 경쟁자 한 명을 지워놓는 거지."
"오케이. 해보자. 안 되면 바로 도망가면 되니까."
엘리스는 아직도 지도를 보며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니… 여기도 나무고 여기도 나무고, 저기도 산이고 저기도 산인데 어디로 가라는 거야."
바스락-
나뭇잎이 움직이는 인공적인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인기척.
그와 동시에 이 쪽으로 날아오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늦었다!'
엘리스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격에 대비해 급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카앙-!
하지만 자신을 노리는 공격은 하나도 없었다.
삐그덕거리는 나무다리를 노리고 날아온 투창과 화살들은, 나무다리를 유지하던 줄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어…?"
엘리스는 이쪽을 기습한 후에 성공이라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두 명과 눈이 마주치고, 엘리스는 강으로 빠졌다.
꼬르르르르-
'마석을 꺼내야해….'
기습을 막기 위해 억지로 마력을 뽑아냈더니 마력 장애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장 물에서 탈출하려면 마석으로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옷 안쪽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마석을 꺼내려던 엘리스는, 예상외로 강한 물살에 마석을 잡은 손을 놓쳐버렸다.
"…!"
그와 동시에 엘리스의 손 때문에 벌려진 안주머니에서 마석들이 빠져나왔다.
단 10개 밖에 없던 예비용 마석이 강에 휩쓸려 내려갔고, 엘리스는 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 쳤지만 억지로 마력을 뽑은 후유증으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진짜 위험… 아악-."
엘리스는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에 스마트워치의 비상 스티커를 떼려고 마음먹었지만, 그 순간 물살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던 머리가 튀어나와 있던 바위와 충돌했다.
부족한 호흡과 몸 내부의 마력장애, 후두부에서 느껴지는 고통까지 한꺼번에 몰려오자 엘리스는 결국 정신을 잃은 채 물에 떠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