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104화. 주말 (3)
"여보… 으으응…."
"고생했어요."
내 팔베개 위에 누운 백아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봉사랍시고 와서 이러고 있는 게 웃기긴 하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혹시라도 아이들이 깰까 봐 아이들의 귀 부근은 마력으로 막아놓았고, 룬의 결계로 방 밖에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했으니 걸릴 일은 없었다.
우리는 누워서 섹스 후의 여운을 즐겼다.
"아영 씨. 이리 와요."
"여보… 흐읍. 쪽…."
부드러운 키스를 즐기며 백아영의 몸을 더듬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성욕이 올라왔지만, 더 하기엔 약간 부담이었다.
아이들의 낮잠 시간이 슬슬 끝나갔으니까.
나는 백아영에게서 입을 떼고 아이들을 바라봤다.
"근데 애들 진짜 귀엽네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예쁠까."
"…그러게. 아이들이 너무 예뻐."
백아영은 아이들을 보며 무슨 생각에 빠진 건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89 ] (+0.5)
- [ 성욕 : 8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35 ]
현재 상태 : 나도 저렇게 귀여운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는데… 여보랑…?
슬쩍 나를 보는 백아영의 눈이 무서워서 눈을 피했다.
벌써 그런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아영 씨.
저도 제 미래 와이프가 몇 명일지 모르겠거든요.
"크흠. 이제 슬슬 보육 선생님이 올 것 같아요."
"응. 그럴 시간이네."
곧 아이들 낮잠 시간도 끝난다.
클린 마법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한둘씩 깨어나는 아이들을 챙겼다.
똑 똑
보육 선생님도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 어머, 벌써 일어났네."
보육 선생님이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으니, 우리는 자리를 비워주는 게 맞겠지.
"저희는 가볼게요."
"네. 고생하셨어요."
낮잠 자는 아이들 옆에서 섹스 밖에 안 했는데 고생했다는 말을 듣다니 세상 참 좋다.
'이게 봉사지.'
그래도 아이들이랑 노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못 보고 가는 건 좀 아쉽네.
"약간 아쉽네요. 뭔가 제대로 봉사활동을 한 것 같지는 않아서."
"응. 그러게."
백아영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영 섭섭한 얼굴이었다.
이 사람도 아이들을 좋아했으니까.
"형아!"
"언니!"
마지막으로 원장님한테 인사를 드리려고 원장실로 가는데, 우리를 향해 아이들이 달려왔다.
항상 앞장서던 빨간 머리 남자아이가 와다다 달려왔다.
저번에 나랑 백아영의 섹스를 들킬뻔한 남자애다.
그 뒤에는 열 명이 넘는 아이들과 원장님이 따라오고 있었다.
"형아! 우리랑 놀자!"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어?"
"또 도망가버렸어."
"도망갔다고?"
분명 아이들과 놀아주는 봉사자들이 5명이 넘었는데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새로 온 분들은 보통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이 넘치더라도, 실제로 아이들과 노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면 금방 돌아가시거든요. 다시 오지도 않고요."
"아…."
뒤에서 따라오던 원장님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은 아닌데… 사람들이 워낙 많이 와서 어쩔 수 없어서요…."
실제로 그런 행동은 아이들에게 버림받았다는 마음이 들게 하거나 사람을 믿지 않는 경향을 심어줄 수 있다.
보육원에서 홍보부 활동을 한 게 이런 악영향이 있을 줄이야….
"형아?"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와 백아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영 씨. 아이들하고 조금만 놀다 갈까요?"
"응. 그러자."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옅게 웃었다.
역시 백아영과는 마음이 잘 통했다.
*
"아영 씨. 다음에 양호실로 찾아갈게요."
"응. 나중에 봐."
백아영과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아마 다음주에는 못 볼텐데, 백아영이 아쉬워하지 않는 걸 보니 백아영은 모르는 건가?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89 ] (+0.5)
- [ 성욕 : 8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35 ]
현재 상태 : 서바이벌 시험에는 어떻게 따라가야하지...?
'아니구나.'
나한테 언급이 없는 걸 보니 백아영도 아카데미의 직원으로서 마나의 맹세 같은 걸 맺은 모양이다.
괜히 억지로 따라온다고 사고만 안 치면 좋겠네.
백아영과 헤어지고, 기숙사로 방향을 잡았다. 시간은 4시를 넘어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쯤 한창 릴리아나가 방송할 시간이다.
내가 집에 들어오면 릴리아나도 그에 맞춰 방송을 종료한다.
투덜대더라도 나랑 놀고 싶은 거겠지. 내가 집에 있을 때만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귀가에 맞춰 방송을 종료하는 게 방송성장에 있어서 긍정적일 것 같진 않았다.
"들어가긴 싫은데… 할 게 없네. 아, 쇼핑이나 할까."
다음 주에 있을 서바이벌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선 살 물품이 많다.
원작 게임에서 2회차 특전과 비슷한 건데, 서바이벌 시험은 당일 공지 후에 갑자기 끌고 가기 때문에 준비할 틈이 없다.
지급되는 약간의 식량만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식량부터 잠자리까지 자급자족해야 한다.
여기서 꼼수가 있다.
월요일 등교할 때 아공간 아티팩트를 몰래 가져가면 된다.
당일 공지 후에 무인도로 바로 이동하는 만큼, 소지품 검사는 없으니까.
갈 곳이 생각났으니 몸을 뒤로 돌렸다. 저번에 남다은을 만났던 대형마트로 가보자.
캠핑 도구 같은 걸 사면 되겠지.
"이호연!"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텐션 높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루시와 루미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호연 하이! 어디 가고 있었어?"
"안녕하세요. 호연 씨."
"안녕. 루시, 루미. 나야 뭐… 살 게 있어서 나가고 있었어."
아무리 친한 애들이라도 서바이벌에 대한 정보를 유출해선 안 된다.
나 한 명이야 미친놈이 준비를 철저하게 했네. 하고 넘어가더라도 그게 여러 명이 되면 의심당할 테니까.
"그래? 우리 카페 가서 놀려고 했는데 같이 갈래?"
"카페?"
나쁘지 않긴 한데… 시간이 애매하긴 하지만 사실 쇼핑은 내일 가도 상관없다.
"저녁은 드셨어요? 떡볶이도 먹을 건데…."
"오케이. 가자."
루시루미 쌍둥이와 친한 것 치고 아카데미 밖에서 논 적이 없다.
루미랑은 빙의 초기에 좀 만났지만, 비밀 친구가 된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으니 슬슬 때가 되기도 했다.
뭐, 저런 사정 말고도 주말에 예쁜 여자 둘과 카페 데이트를 거절할 멍청이가 어딨어.
"기쁜 마음으로 임하겠습니다."
"풋. 머래."
우리는 같이 아카데미 상가로 향했다.
괜찮아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음료를 시켰다.
"끌레르 로즈 라떼…? 너 되게 이상한 거 좋아하네."
"나름 맛있어."
사실 문수린이 좋아하는 거라 가끔 먹었는데, 먹다 보니 괜찮더라.
달콤하고 은은한 장미 향이 입안을 맴돌다가, 민트를 먹은 것처럼 시원해졌다가, 마지막에는 매워지는 신기한 맛이다.
"너도 한 입 먹어볼래?"
"어, 응? 그냥 먹어?"
"그럼 그냥 먹지. 어떻게 먹어."
내가 먹던 끌레르 로즈 라떼를 루시에게 내밀자, 루시는 약간 당황한 듯했다.
설마 간접키스 같은 걸 걱정하는 거야? 애도 아니고.
루시는 결국 내 눈치를 보다가 빨대에 입을 대고 음료를 쪽 빨아 먹었다.
"으응? 으, 으엑. 이상해."
"그렇게 맛없어?"
먹다 보니 괜찮던데.
"이걸 왜 먹어… 으으. 입 세척해야지."
루시는 그러면서 자기 앞에 있는 딸기라떼를 열심히 마셨다.
루미는 우리의 대화를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호연 씨는 월요일 특별 시험 준비하고 있으세요?"
"준비를 할 게 있어야지. 뭘 할지 모르잖아."
"작년 중간고사 때는 1학년 전체를 강당에 모아놓고 배틀로얄을 시켰대. 그다음 시험은 술래잡기라면서 아카데미를 거의 반 부숴놨다는데."
"… 그래?"
루시가 말해준 저번 시험들은 꽤나 난폭했다.
그런 설정도 있었구나. 하긴 매년 서바이벌 시험만 하면 대비를 안 하는 게 멍청한 거니까.
중간고사의 특별 시험은 항상 저런 식으로 특별한 시험을 진행했다.
"아아~ 나는 몸이 힘든 거만 아니면 좋겠어. 배고픈 것도 싫고."
"괜찮아 루시. 에브리데이에서 보니까 이번에는 편한 게 나올 거래. 1년 주기로 어려운 거랑 편한 게 돌아가면서 나온다고 했거든."
"그런 거 믿지 마… 걔내들 다 우리 같은 생도야."
루미는 인터넷을 너무 잘 믿어서 탈이다. 이번 시험이 지금까지 시험 중 제일 귀찮을 거다.
'아공간에 먹을 거를 좀 많이 가져가야겠네.'
게임에서는 내게 필요한 물품만 챙겼지만, 지금은 워낙 챙길 사람이 많으니까.
"으으응~ 나는 화장실 좀 다녀올게."
루시가 자리를 뜨고, 나와 루미가 눈을 마주쳤다.
"호연 씨. 이번에 나온 새로운 캐릭터 보셨어요?"
"응? 아… 봤지 봤어."
순간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행히 루미가 오타쿠라는 게 생각났다.
★ 히로인 상태창
[루미]
- [ 호감도 : 89 ] (+0.1)
- [ 성욕 : 80 ]
- [ 식욕 : 20 ]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요즘도 아이돌 파티 챙겨보시려나…? 히나타짱이 나왔는데.
"히나타 말하는 거지? 그냥 적당히 예쁘더라."
"네! 맞아요. 저는 엄청 예쁘던데. 그리고 히나타짱이…."
적당히 맞춰주자, 루미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히나타 짱에 대한 쓸데없는 정보를 마구 쏟아내고 있는 루미를 보고 있자니, 아직 아싸티를 다 벗어내진 못한 것 같다.
귀여운 루미가 저러니까 받아주는 거지, 다른 사람이 저랬으면 참지 못했을 거다.
"루미. 이따가 화장실로 올래?"
결국 난 루미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네…?"
"오랜만에 비밀 친구 활동해야지. 남자 화장실 마지막 칸으로 와. 내가 먼저 가 있을게."
"아……. 네엣."
루미는 내 말에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아까 상태창에 성욕이 꽤 높은 걸 봤으니, 티를 안 낼 뿐 쌓여있을 거다.
나는 루시가 돌아오기 전에 화장실로 향했다.
둘이 같이 가는 건 의심당할 수도 있으니 내가 먼저 갔다.
아카데미 주변의 고급 카페다 보니 화장실도 깨끗하고 깔끔했다.
루미에게 말한 대로 화장실 마지막 칸에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다 보니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호연 씨. 저 왔어요."
"너, 루미 맞아? 증거를 대봐."
"네에? 빨리 열어주세요… 누가 들어올지도 몰라요...!"
원래 루미같이 반응이 좋은 애를 놀려야 재밌는 법이다.
그리고 아까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오타쿠 얘기를 하던 벌을 줘야지.
"팬티만 벗어서 넘겨줘."
"호연 씨…."
"빨리 안 벗으면 누가 들어올지도 몰라."
"흐으…."
문밖에서 들리는 부스럭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 밑으로 분홍색 천이 들어왔다.
벌써 습기가 느껴지는 팬티는 확실히 루미의 것이 맞았다.
덜컹.
"루미가 맞네. 들어와."
들어온 루미는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너무해요… 흐으."
그러게 누가 이상한 얘기 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