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99화. 1대1 결투 (5) (99/648)



〈 99화 〉99화. 1대1 결투 (5)



"아… 이러면 무조건 1등 해야 되는데."


사실 결승에서 남다은한테 져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벌써 남다은 루트에 들어가면 너무 복잡해지기도 하고, 남다은의 약점을 쥐고 있는 바이어 길드와 척을 지기엔 아직 불안하다.


물론  인맥을 총동원하면 할만할지도 모르지만 굳이 그래야 하나 싶다.

어차피 반년이면 내 입지도 더 탄탄해질 거고, 내 능력도 더욱 성장할 거다.

그때 상대하는  훨씬 편하겠지.

그런데 모든 히로인 호감도 1이라…


"이건 꽤 커."

현재 히로인은 루시, 루미, 남다은, 엘리스, 문수린, 임솔, 릴리아나, 백아영 까지 총 8명.

무려 호감도 8짜리 퀘스트다.


"쓰읍… 그냥 우승해버릴까."

바이어 길드든 뭐든 열심히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A클래스 엘리스 생도와 A클래스 남다은 생도의 대결이 곧 시작됩니다! 관람객분들은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경기는 보고 생각하자.


화면 안에서 엘리스와 남다은은 대련장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벌써 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5, 4, 3, 2, 1, 경기 시작!]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남다은이 엘리스와 거리를 좁히며 뛰어들었다.

민첩한 움직임으로 먼저 거리를 좁힌 남다은이 검을 휘둘렀다.


엘리스는 근접전보단 적당히 검을 부딪치다가 거리를 두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순수 검의 대결로는 남다은을 이길  없으니까.

결국 엘리스가 제대로 마법을 사용할 틈을 주냐의 싸움인데, 남다은이 그런 틈을 줄 리가 없지.


허공에서 튀어나온 덩굴들이 남다은의 팔에 감기며 움직임을 방해했다. 남다은은 덩굴들을 빠르게 잘라내고 엘리스를 덮쳤다.


엘리스는 검을 받아치면서 마법진을 그렸고,  바닥에서 솟아오른 불기둥에 남다은이 뒤로 뛰면서 거리를 벌렸다.

"수준 높네…."

확실히 다른 생도들과 격이 다르다.

둘은 계속해서 공방을 나누었다.


언뜻 보면 비등해 보였지만, 내가 보기엔 이번에도 엘리스의 패배였다.

선천적 마력 장애 덕에  한계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


경기을 이어가던 엘리스의 표정이 잠깐이지만 굳는다.


마석으로 충전한 마력이 다 떨어진 거다.

그때부터 엘리스는 소극적인 전투방식을 취했다.

최대한 남다은의 공격을 받아치며 빈틈을 노렸지만, 남다은은 당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몸의 속도를 높여서 더욱 압박에 들어갔다.

"크읏!"

남다은의 공간 지배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반응도 빨라진다.

그렇기에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엘리스는 밀릴 수밖에 없었고, 마법의 사용 빈도까지 줄었으니 당해내질 못했다.

결국 엘리스는 몸에 상처가 점점 늘어나다가, 가슴에 큰 자상을 허락하며 패배했다.

[승자는 A클래스 남다은 생도입니다!]

엘리스는 분한 듯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다가,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련장에서 내려왔다.


"마력 장애를 고치기 전까지는 확실히 안 되겠네."


엘리스의 선천적 마력 장애를 고치는 방법을, 나는 당연히 알고 있다.


엘리스 루트의 핵심이나 마찬가지니까.

엘리스의 언니인 아이린과 대립, 그리고 마력 장애 치료.

두 가지 과제를 완수하면 엘리스의 공략은 거의 끝이다.

엘리스의 공략시기도 남다은과 비슷하다.


마력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빌런이 게임 중후반에 등장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완벽하게 공략하지 못한다.


게임에서는 굉장히 답답한 요소였지만, 내겐 차라리 이게 나았다.

괜히 공략도  하는 히로인하고 많이 가까워지면 할 일만 많아지고 힘들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엘리스의 호감도가 급증해서 조금 당황스럽지만, 이왕 오른 거 이대로 공략 루트가 나올 때까지 유지되면 좋겠네.


[대망의 빅토리아 아카데미 1학년 1대1 결투. 결승전만이 남아있습니다. A클래스 이호연 생도와 A클래스 남다은 생도의 빅매치! 선수들의 마지막 컨디션 체크를 위해 쉬는 시간을 가진 후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준결승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1시간 정도 생겼다.


"이제 뭐 하지…?"

일단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계속 대기실에만 있기는 답답했다.


본선 진출자 대기실은 이제 나와 남다은만 사용하고 있다.

다른 대기실은 이름표도 없었고 비어있었다.

조용한 복도에 누가 쓰는지도 모를 음료수 자판기 하나만 덜렁 서 있었다.


관람석이라도 가볼까. 김영한이나 루시루미도 거기 있을 텐데.

나는 대기실이 있는 층에서 내려와 관람석으로 향했다.

"안녕?"


그 때 스르륵 다가온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어…, 안녕. 경기 잘 봤어."

"고마워. 져버렸지만."

엘리스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 먼저 인사를 해올 정도라니, 진짜 왜 이렇게 상냥해진거야?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 호감도 : 62 ]
- [ 성욕 : 25 ]
- [ 식욕 : 30 ]
- [ 피로도 : 20 ]

현재 상태 : 나도 성녀님이랑 상담을 해봐야겠어.



'상담…?'


무슨 상담을 한다는 거지?

그리고 나를 보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또 뭐야.

이건 나중에 백아영한테 물어봐야겠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엘리스가 먼저 물어왔다.

"그냥, 관람석 가서 애들 얼굴이라도 볼까 해서."


"안 가는  좋을걸. 기자들 쫙 깔려서 엄청 복잡해."


"… 그럼 나중에 가야겠네."


기자들한테 잡혔다가 실수라도  번 하면 진짜 큰일 난다.


"결승전 힘내. 그렇다고 무리하지는 말고."

"응. 너도 몸조리 잘해."


엘리스는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예쁜 애가 착해지니까 보기는 좋았다.

근데 좀 아쉽긴 하네. 틱틱대는 매력이 있었는데.


관람석에는 기자들이 깔려있다고 하니 다시 대기실로 돌아갈까.

나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대기실에 들어가서 명상이라도 하려는데, 아까 복도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음료수 자판기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뭐야.'

나는 남다은의 옆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벽 뒤에 숨었다.

남다은은 음료수 자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입을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31 ]
- [ 성욕 : 2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33 ]

현재 상태 : 달달한 민트초코, 먹고 싶은데… 이걸 먹으면 다희를 만나러 갈  걸어가야 해…

어제 마트에서 착한 척을 해서 그런가, 호감도가 11에서 31까지 올랐다.

달달한 민트초코 는 뭐지?


아, 모르겠다. 일단 다가가 보자.


"안녕?"


"… 안녕."


남다은은 갑자기 등장한 나를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하긴 곧 싸울 상대인데 친한 척하는 것도 좀 이상한가.


나는 자연스럽게 스마트워치를 결제 탭에 갖다 대었다.

- 음료수를 선택해주시길 바랍니다.


음료수 중에는 달달한 민트초코 라는 음료수도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바나나 우유로 손가락을 가져가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진 척 달달한 민트초코를 눌렀다.

"어?"

덜컹-

"아, 잘못 눌렀네."

덜컹-


다시 바나나 우유를 눌러서 음료수를 꺼내고, 난처한 듯 얘기했다.


"이걸 어쩌지. 민트 초코는 안 먹는데. 혹시  먹을래?"


내가 봐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어…?"

남다은은 갑자기 말을 거는 내가 어색한 듯 되물었다.


"내가 민트 초코를 안 먹어서, 근데 실수로 뽑아버렸어."


"… 준다면  먹을게."


남다은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민트초코를 받아들었다.

왜 부끄러워 하는 거야?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31 ]
- [ 성욕 : 2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33 ]


현재 상태 : 먹고 싶은 게 그렇게 티 났나… 실수인 척 뽑아주기까지 하고…



'어떻게 안 거지?!'


연기는 완벽했는데… 확실히 눈치가 빠르다.

"어, 기분 나빴으면 미안. 그냥 사주고 싶어서 사준 거야. 다른 의미는 없어."


연기가 들켰으면 사과를 해야 한다.

혹시라도 동정으로 음료수를 뽑아줬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나쁠테니까.


"잘 마실게."


다행히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대기실에 가야해서. 이따 보자."


남다은은 대화를 끝내고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나는 뭔가 아쉬웠다.

결승전만 남은 상황에다가 남다은과 호감도가 높아진 지금, 조금이라도 더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건 아니다.

"남다은."

"응?"


결국 나는 대기실에 들어가려는 남다은을 붙잡았다.

"어차피 결승까지 시간도 남았는데 얘기나 할래?"


허락할 것 같진 않지만, 밑져야 본전이니까. 시도라도 해보자.

"… 그럴까? 그럼 내 대기실로 와."

어? 됐네?

남다은은 먼저 대기실로 들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당연하겠지만 내 대기실과 구조가 똑같았다.

"…."

"…."


근데 무슨 말을 하지?


"어, 엘리스와 경기  봤어."

"고마워. 너도 잘하더라."

"…."

남다은의 취미가 뭐였더라? 집안일? 세일하는 물건 쇼핑?

'이런 얘기를 지금 할 순 없잖아.'

띠링-

남다은의 스마트워치가 울렸다. 메시지가 온 모양이다.

슬쩍 나를 흘겨보는 게, 내가 있는 게 불편한가? 어쩌면 동생과 통화 시간일지도 모른다.

"급한 일이면 그냥 가볼게. 이따가 보자."


"이호연. 너도… 1등 하고 싶지?"

불편하지 않도록 내가 먼저 선수 쳐서 대기실을 나가려는데, 남다은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남다은이 내 이름을 처음 불렀다. 중요한 일인  같다.


"어… 그렇지. 1등 하면 좋지."


여기서 아니라고 할 순 없다. 그러면 결승까지 아득바득 올라온 게 이상해지니까.

"남들한테 한 번도 보여준  없는데… 하아."

남다은은 갑자기 스마트워치로 영상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저기…?"

언니이!

스마트 워치에서 들려오는 발랄한 여동생의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 나는 남다은의 옆에 앉아있다. 하지만 카메라에서 벗어나 화면에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내가 옆에 있는  잘못은 아니라도 왠지 나오면 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 있었어?"


응응! 언니 준결승 영상 봤어! 엄청 세더라!


"벌써 봤구나?"




남다은은 나를 신경 쓰지 않으며 여동생과 통화를 이어갔다.

- 이거 볼래? 언니가 결승 이기는 장면을 그렸어!


"후훗. 귀엽네. 저기 쓰러져 있는 남자가  상대편이야?"

- 응! 잘생긴 오빠. 하지만 언니한테는 안되지!

"…."


삐뚤빼뚤한 그림체로 그려진 여자  명이 만세를 하고 있었고, 남자 한 명이 눈이 x가 된 채로 쓰러져있었다.

저게 나라고?

남다은은 10분 넘게 여동생과 통화를 이어갔다.


"언니는 이제 슬슬 가볼게. 결승전 끝나고 다시 연락하자."


- 응, 꼭 이겨야 해! 언니! 사랑해!

"나도 사랑해. 다희야."

뚜우-


남다은은 통화를 끝내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나를 바라봤다.

"내 여동생이야. 여동생의 병원비를 지원받기 위해선 내가 꼭 실기시험에서 1등을 해야 해. 그게 내가 1등을 해야 하는 이유야."


"… 그렇구나."


"조별 과제에서 협력하지 못한  미안해. 그냥… 미안."


남다은이 벌써 자기 속내를 털어놓다니 확실히 운 좋게 성공한 이미지 관리 한 번이 효과가 있던 건가?


물론 완전히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이걸로도 큰 발전이다.

"그러니까… 내가 1등 해도 날 원망하진 말아줘."

어쩌면 벌써 한계가 찾아온 건가?


사람 마음이란 게 단순하지가 않다. 약한 자극으로 큰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태풍을 만들듯이, 남다은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괜히 이상하게 대답했다가 꼬이는 건 싫은데.


똑 똑 똑.


그때, 내 고민을 잠재우듯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남다은 생도~. 결승 전에 마지막 메디컬 체크에요."

"네, 들어오세요."

덜컥-

"어?"

"안녕하세요. 양호 선생님."

백아영은, 남다은의 대기실에 있는 나를 보고 당황한 듯 동공을 떨었다.

"여, 여기있었네요. 이호연 생도."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87] (+0.4)
[ 성욕 : 73 ]
[ 식욕 : 30 ]
- [ 피로도 : 35 ]

현재 상태 : 빨리 끝내고 찾아가려고 했는데… 왜 여기 있지?

또 찾아오려고 하네.


아까 임솔 때문에 못했던 걸 보상받으려는 건가?


"양호 선생님. 메디컬 체크면 여기서 한 번에 같이 하면 되겠네요."


"어…? 그, 그것보단 따로 진행하는 게…."

백아영은 '이게 아닌데….' 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쩝. 더 놀려주기엔 남다은이 보고있으니 그만 해야지.

"농담이에요. 그럼 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응, 으응. 금방 끝내고 갈게."


'결승전 직전에는 좀 자제해주면 좋겠는데.'

나도 컨디션 관리는 좀 해야지.

내 대기실로 오면 놀려먹다가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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