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2화 〉92화. 정보길드의 실력자 (92/648)



〈 92화 〉92화. 정보길드의 실력자



"축하해요. 이호연 생도. 10단계 9초라니, 이건 신기록이에요. 이번 실전 괴수 훈련의 1등은 떼놓은 당상이네요."


"… 감사합니다."


나보다도 더 기뻐하는 게. 참 착한 교수님이네.


"역시, 아카데미의 유망주다워요. 앞으로도 화이팅!"

"네…."

교수의 응원을 받으며 대련장 밑으로 내려왔다.


설마 그 허수아비가 '하멜 던전의 악몽'일 줄이야.

확실히 기분 나쁘게 생기긴 했었지.

"이호연! 뭐야~!"


"호연 씨 대, 대단해요!"

내려오자마자 기다리던 루시와 루미가 날 반겨줬다.

"운이 좋았어. 나랑 상성이 좋았거든."


물론 다른  나왔어도 이겼겠지만, 9초라는 기록은 못 세웠을 테니까.

랜덤으로 정신 공격 특화 몬스터가 나왔고, 나도 효과를 잘 모르던 특전이 사실은 정신 공격에 면역이었다.

이건 운이라고밖에 말할  없다.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예요!"


"맞아… 나는 8단계 하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너네도 금방 세질 거야. 우리  다 끝났으면 나갈까?"

  다 시험이 끝났으니, 시험장에 있을 필요가 없다.


"에엥. 다른 사람들 구경 안 해?"


"어… 구경?"


"당연하지! 남 싸움 구경이 얼마나 재밌는데."

솔직히 나는  관심없다.


근데 일찍 나가도 할 것도 없고, 그냥 어울려 줄까.

알았다고 말하려던 순간, 내 시야의 한편에 남다은의 모습이 잡혔다.


남다은은 나와 눈이 마주치고 동공이 흔들리더니 뒤로 돌아 재빠르게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잠시만, 저거 따라가야 하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게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우리랑 같이 구경하자 응?"

"가, 같이 있어요…."


"어…."

루시가 내 한쪽 팔에 팔짱을 끼며 붙잡고, 루미는 조심스럽게 내 옷자락을 잡는다.

둘이 같이 부탁하니 거절하기도 좀 뭐하고.

남다은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서 따라가긴 늦었다.

"그래. 같이 보자."


"이예!"

어차피 여동생하고 통화하러 가는 거겠지 뭐.


저 정도로 멘탈이 나갈 만큼 약한 애는 아닐거다.


원작에서도 잘 버텼으니까.



*


이호연의 대련장에 도착한 남다은은 현실을 직시했다.


[9sec]

대련장 위에 빛나고 있는 초시계는 9초를 가리키고 있었고, 생도들은 신기록에 환호하고 있었다.


"이번 실기는 진짜 1등이 바뀔 수도 있겠는데?"


"그러게. 이호연 폼이 너무 좋아."


"남다은은 진짜 세긴 한데… 뭐랄까 발전이 없잖아."

생도들이 되는대로 떠들어대는 악평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미 저런 걸 신경 쓸 시기는 지났다.

문제는 교수들도 이호연을 극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측정이 8단계인데 저렇게 강하다라…."

"마나량이 적은 것에 비해 마나 운용능력이 뛰어난 거고,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또 인터넷에 난리 나겠네요."


"나는 내일 1대1 결투 때 참관 올 길드 스카우트들이 더 걱정이야. 하아…."

"그거야 김진혁 교수한테 맡겨야죠."


남다은의 뛰어난 감각은 멀리서 떠드는 교수들의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복잡한 감정에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이호연과 눈이 맞았다.

이호연은 저런 기록을 세워놓고도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고 있었다.

'나는 이 시험에 목숨이 걸려있는데.'


남다은은 시험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호연에 대한 질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만큼이나 재능을 타고났으면서 왜 저렇게 행복한 거야?'


나는  재능 때문에 이런 삶을 살고 있는데.

어째서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걸까.


모두가 나처럼 불행했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고.

짝!

남다은은 자신의 볼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나쁜 생각들을 지워냈다.

"하아, 추한 질투는 하지 말자."

요즘 따라 이런 비관적인 생각들이 많이 든다.


이럴 때 일수록 더욱 힘내야하는데.

남다은은 스마트 워치를 켜고 입원하고 있는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유일한 힐링이자 마음의 휴식처. 동생인 남다희.

저번에 바로 영상통화를 걸었다가 화장실인데  하는 거냐고 질책을 받은 이후로 항상 메시지를 먼저 보내고 있다.


-  : 다희야. 통화 괜찮아?

- 우리 다희 : 응. 괜찮아!

남다은은 답장을 받자마자 남다희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언니이! 보고 싶었어!


"응, 나도. 오늘은 뭐 했어?"

- 그림 그렸어! 볼래?


남다희는 삐뚤빼뚤한 사람 두 명이 손을 잡고 웃고 있는 그림을 보여줬다.

나랑 언니야. 이쁘지?

"… 응. 너무 예쁘다. 그림에도 재능이 있는걸?"


스케치북을 잡고 웃고있는 동생을 보는 남다은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눈물이   같았다.

남다은은 남다희와 통화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원래라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뛰어놀아야 할 어린 동생이 하루종일 침대에서 말라가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고, 이 세상이 미웠다.

하지만 그래도 동생을 보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저 아이를 두고 혼자 떠날  없으니까.

동생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바이어 길드원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같이 죽을 수 있었다.

남다은은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힘들었다.


언니! 이번에도 1등 할거지? 내가 미리 그림 그려놓을게!

"… 응. 당연하지. 꼭 1등이야."


- 응응! 아, 나 간호사 언니가 와서. 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괜찮지?

"알았어. 메시지 보내줘."


- 언니 사랑해! 쪽쪽.

"응, 나도…."

뚜우-


영상은 곧 검은 색으로 점멸했고, 남다은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난 무조건 1등을 해야 해. 무조건…."

 얼굴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있어.



남다은이 다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



엘리스는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았다.


오늘도 10단계를 뚫지 못했다.

'마지막에 마법진을 조금만 빨리 그렸어도 이겼을 텐데…!'

9단계는 항상 무난하지만, 10단계에서 난이도가 확 뛰는 바람에 항상 막혔다.


남다은은 또 30초 만에 10단계를 깨버렸고, 차에 타서 에브리데이를 확인하니 이호연은 9초 만에 깨버렸다고 해서 스트레스만 더더욱 쌓였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저번보다 더 아쉽게 졌으니, 다음에는 이길 가능성이 더 올라갔다.


"후우…."


스트레스 해소 겸 와인의 향을 즐기고 있는데, 운전석에 앉아있는 세바스찬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이호연 생도에 대한 중간보고 드리겠습니다."


"…중간보고? 조사할 게 그렇게 많아?"


분명 그냥 감이니까 대충해달라고 했는데,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닌가.

"음, 하다 보니 제가 신이 나서요.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친구더군요."

세바스찬은 운전대를 잡고 시야를 정면에 고정하고도 잘만 보고를 이어갔다.

"보고 드리기에 앞서 굉장히 창피한 말이지만… 조사 중에 방심한 나머지 들켜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뒤로 보디가드가 붙더군요."

"… 아저씨가 이호연한테 들켰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이리스 길드 간부의 은신을 일개 생도가 눈치챌 수 있다니…?

"그게 이호연 생도의 능력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다른 협력자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뒷배가 있다는 겁니다."


"흐음… 그래서요?"


뒷배가 있는 거야 이상한  아니다.


 정도 능력의 남자라면 누군가 눈치채고 달라붙었겠지.


문수린과 친한  생각해보면 아카데미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쩌면 백아영이나 임솔처럼 개인이 뒤를 봐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예 다른 길드가 있을지도 모르고.

"일단 주기적으로 치료를 위해 성녀를 만나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 지병이라도 있는 건가?"

주기적으로 치료를 위해 성녀를 만난다면 얼마나 심한 병이 있는 걸까.


"글쎄요. 양호 선생님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친분이  두텁더군요. 약  달 전부터 꾸준히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녀와의 관계가 시작됨과 비슷한 시기에, 이호연 생도가 검사에서 마법사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진로 변경… 그건 그냥 시선 끌기 용이잖아."


갑작스러운 진로 변경은 엘리스도 보았다. 그때는 저런 인재일 줄 몰라서 무시했지만, 대부분의 생도가 그때의 이호연을 무시했을 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법을 배운지 한 달밖에  됐다는 사람이 저 정도의 능력을 보여줄 리가 없죠. 하지만 마법을 예전부터 했다기엔 마나량이 굉장히 부족한 듯 보였습니다."


"확실히, 다들 마법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렇다고 추측하고 있더라고."

"예. 하지만 그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가정이니까요. 추가적으로 정체불명의 자금으로 최고급 마석을 매수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최고급 마석…? 그걸 생도가  사? 중 하급 마석에 비해 효율도 안 좋고 가격도 비싸잖아."


실생활에 쓰이는 중하급 마석들과 달리 최고급 마석은 연구용이나 아티팩트 제작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현역 헌터들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얻기도 힘들어서 공급은 적어지지만, 나름대로 수요는 고정되어있다보니 가격이 점점 오르고 있었다.


"시세차익을 위해 사는 거라고 하기엔 양이 적고, 개인 연구용이라고 생각하기엔 양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가격이 얼마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꾸준히 매입하더군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

가볍게 맡긴 조사가 이렇게 복잡해지다니, 파면  될 것을 파낸 건 아닌지 후회했다.

홀짝.


손에 들린 와인을 맛보면서 세바스 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건  추측입니다만…. 아가씨도 아시다시피, 마석은 아티팩트 제작이나 연구뿐만 아니라 마력 장애를 치료하는 용도로도 쓰입니다."

"잠시만, 그럼 설마…."


세바스 찬의 말을 듣고, 엘리스의 머릿속에 한가지 병명이 스쳐 지나갔다.

"꾸준히 마석을 매입하고 있고, 마법 실력에 비해 마나 량이 극도로 부족하며, 치료를 위해 성녀님을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거로 보아…."

"선천적 마력 장애…."

엘리스가 겪고 있는 병이다.


선천적으로 몸에 담을 수 있는 마나가 적어서 마나를 사용하기 위해선 마석으로 충당해야한다.


"맞습니다. 이호연 생도는 엘리스 아가씨와 같은 희소병을 타고난 것으로 추측됩니다."

"정말, 상상도 못했어. 대단하네. 세바스 찬."


 거 아닌 것 같은 정보 하나하나를 취합해 저런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

역시 정보 길드의 간부다운 실력이었다.

세바스 찬의 발톱은 세월이 지나도 전혀 녹슬지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음…."

세바스 찬은 이호연의 여자관계에 대한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걸로 끝내기엔 아쉬웠다.

 십년간 쌓아온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무언가 더 있을 거 같았다. 이호연에겐 커다란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또 뭔가 있어?"


엘리스는 세바스 찬의 다음 말이 기대되었다.

라이벌의 약점을 하나 안 것도 대단한데, 다른 정보가 또 있다니?


"아닙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라서. 이번 주말까지 확실하게 조사하고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알았어. 힘내."


"예. 이번에는 절대 들키지 않도록 할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그래."

엘리스는, 이호연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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