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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91화. 실전 괴수 훈련 (91/648)



〈 91화 〉91화. 실전 괴수 훈련

"아영 씨. 이제 갈게요."


다행히 백아영은 내 사정을 이해하는지, 섹스를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오지 않았다.

청소펠라만 끝내고 점심을 간단하게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응… 호, 혹시라도 성욕이 갑자기 끓어오르면 찾아와도 돼…."


"네. 고맙습니다. 덕분에 개운해졌네요."


"으, 으응."

이제 연기할 마음도 없는지, 저렇게 대놓고 말해온다.


근데도 섹스에 들어가면 협박을 요구하니,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네.


양호실을 나와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12시 50분이었다.


1시까지 시험장에 가야 하니 딱 10분 남았다.


걸어가도 늦을 시간은 아니라서 소화도 시킬  천천히 걸었다.

"아, 맞다. 수린 누나한테 연락은 해야지."

점심도 먹었으니 할 일은 해야한다.


 : 수린 누나,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양호실에 꾀병 환자들이 많다고 해서요. 확실하게 처벌하는 방안이 필요해요.


답장은 바로 도착했다.

- 수린 누나 : 알겠어. 내가 이사장님께 건의해볼게.


- 나 : 넵. 감사합니다. 고생하세요!


문수린은 많이 바쁜 모양인지 거기서 답장이 끊겼다.


하는 일이 워낙 많을 테니, 이해하자.

물론 그 힘든 일에 한 숟가락 보탠 거나 다름없지만, 백아영이 구경거리가 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문수린하고는 나중에 또 밥 먹으러 가야지. 그 한식당 되게 맛있던데. 쯥.

시험장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커다란 대련장이 여러 개 준비되어 있었고, A클래스는 저쪽 구석에 모여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 무리에 합류했다.

"저번에 해본 훈련이니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차례대로 측정 마법진에 올라가 전투력 측정을 받고, 대련장으로 들어가라. 이상."


김진혁 교수는 시험을 안내해주고 다른 대련장으로 들어갔다.


다른 클래스의 심판도 겸하는 모양이다.


같은 클래스 교수가 심판을 봤다가 약간이라도 부정이 있을 수 있으니 다른 클래스의 교수가 심판을 본다.

어차피 마나의 맹세 해서 괜찮은 거 아닌가 싶지만, 확실한 게 좋으니까 뭐.


A클래스는 측정 마법진 앞에 한 줄로 서서 전투력 측정을 대기했다.

1학년 전체가 시험장에 있다 보니 측정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루시와 루미를 찾아 그 뒤에 딱 붙었다.

"호연 씨… 점심은 뭐 드셨어요?"


"응? 그냥 뭐, 대충 학생 식당가서 먹었어."


"우리도 학생 식당에서 먹었는데, 안 보이던데?"

"… 어, 혼자 먹느라 구석에 숨어서 먹었거든."

어차피 학생 식당 갈 거면 나도 좀 데려가지.


물론 백아영과 시간을 보낸  후회하진 않는다. 기분 좋았으니까.

우리 앞에 서있던 생도들이 하나  측정 마법진에 올라갔다.

"이번엔 몇 점이나 나오려나. 8단계 뚫을 수 있을까?"


"저번에 7단계였으니까… 이번에는 8단계가 나올지도 몰라 루시."

"나도 그렇게 생각해. 루시  엄청나게 세졌잖아."

"그런가? 헤헷."


루시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파란  머리를 배배 꼬았다.


게임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들은,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비약적으로 강해진다.


루시도 마찬가지다. 아마 8단계는 쉽게 뚫을 수 있을 거다.


나는 저번에 5단계 판정을 받고, 7단계까지 클리어했다.

지금은 그때랑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으니, 몇 단계까지 갈  있으려나.


"나 먼저 간다!"

루시는 호다닥 측정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곧 루시의 머리 위에 8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이예! 8단계!"


"축하해 루시…!"

루시는 신나서 측정 마법진 위에서 방방 뛰었고, 루미는 축하해주고 싶지만 차마 큰 소리로 소리치지 못해서 들릴 듯 말듯 속삭이고 있었다.

"크흡."


"왜,  웃으세요…!"

"그냥 축하해주면 되지, 왜 속삭이고 있어."

"으으으…."


부끄러워 하는 루미를 놀려주며 나도 측정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이름을 말해주세요… 아, 이호연 생도네요.  위에 손을 올려주세요."

"넵."

처음 보는 교수인데도 나를 알아봐 주니 기분이 오묘했다.

마법진 중앙에 있는 푸른색 마법구에 손을 올렸다.


우웅-


마도구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내 몸을 몇 차례 훑은 후에 마도구로 돌아갔다.


[전투력 측정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저번 측정 때는 5단계가 나왔는데, 이번엔 몇 단계가 나오려나.

 내 머리 위에 8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A클래스 이호연. 8점. 오, 저번보다 3단계나 올랐네요? 역시 유망주다워."


"그러게요. 감사합니다."

저번에는 네가 A클래스 맞냐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엔 칭찬을 듣고 있으니 기분이 좋네.


"와, 이호연 저번 측정 때보다 3단계가 올랐대. 미친 거 아니냐."

"성장세가 진짜 빠르긴 한데… 8단계면 애매하지않아? 나도 8단계야."

"남다은이 10단계니까 이호연도 그 정도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2단계 차이면 하늘과 땅 차이인데…."


이미 측정을 끝낸 다른 생도들이 내 점수 측정에 관심을 가졌다.


8점이면 평균보다 조금 높은 수치다.

하지만 이미 내게 걸린 기대는 8점 이상이 돼버렸다.

오우거를 잡은 것도 그렇고, 전에 공개된 마법 영상도 그렇고 이미 생도의 수준을 벗어났다는 기대감이 있으니까.

그런데 왜 8단계가 나왔냐 하면, 측정 마법진에서 특전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투 감각]과 [마나 감응]은 전투력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걸 빼고 측정하니 낮게 나올 수 밖에.

저번에는 5단계인 상태에서 7단계까지 클리어했다.


이번에는 8단계가 나왔으니, 10단계도 노려볼만하겠지



*




'불꽃 사슬'

촤르륵-!

끄르르르!

순식간에 바닥에서 튀어나온 십수 개의 불꽃 사슬이 마지막 달빛나방들을 모두 묶었다.

"아오,  개 같은 나방 새끼들."



사람 손바닥만 한 나방들이 덮쳐오는 건 너무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처음에 수십 마리나 있던 나방들을 이제야 다 묶었다.


머리 위를 날아다니면서 마비 가루인지 뭔지도 뿌려대는데,  주변을 룬의 결계로 둘러싸서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나는 나방을 잡고있는 불꽃 사슬에 마력을 담아 화력을 높였다.


타오르는 불꽃에 나방들이 재로 변하고, 내 결계를 둘러싸던 마비 가루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결계를 해제했다.


"후우…."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대련장을 둘러싸던 마나막이 해제되고, 바깥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호연 나이스!!!! 힘내!!!"

"호연 씨… 힘내세요…!"


제일 앞에 있던 루시와 루미에게 미소를 보내줬다.

루시는 8단계까지 공략했고, 루미는 7단계였다.

참고로 방금 나방들이 9단계였다.

실전 괴수 훈련은, 참관 교수의 허락하에 전투력 수준보다 최대 2단계 높은 난이도까지 도전할 수 있었다.

"교수님. 10단계 도전하겠습니다."


"이호연 생도 10단계 도전. 승인하겠습니다."

"쉬는 시간 없이 바로 갈게요."

이름만 들으면 허접해 보이는 달빛 나방이지만,  심장은 [전투 감각]으로 인해 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약간만 들이마셔도 몸이 마비되기 시작하는 마비 가루와, 단단한 몸을 믿고 빠른 속도로 부딪혀오는 나방의 조합이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의 전투 감각을 유지한 채로 싸우고 싶었다.


[적합한 상대를 소환합니다. 10단계. 하멜 던전의 악몽이 등장합니다.]


대련장 맞은 편에서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꾸르르륵

괴상한 소리가 들려오며 응어리진 어둠이 대련장의 반대편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운도 지지리도 없네. 하필 악몽이야."


"악몽이 뭐야? 난 처음 들어봐."


"하멜 던전의 악몽 몰라? 하멜 던전 공략대 절반이 저 악몽 하나 때문에 정신이 나가서 뇌사상태라잖아."


"애초에 저딴  왜 교육과정에 넣어놨는지 모르겠어."

대련장 밖에서 저 생물체를 아는 듯한 생도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도 논문에서 읽어본 기억이 있다.

하멜 던전을 공략했던 공략대의 절반이 보스몬스터인 악몽 하나 때문에 서로 칼부림이 일어난 사건이다.

던전 공략 내내 사상자 하나 없고 화목하게 진행되던 공략대였지만, 보스몬스터의 정신 공격 하나에 산산조각난 사례로 논문에 실려있었다.


특징을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무력은 하찮지만, 능력치를 정신 공격에 몰빵한 놈이다.

"이호연 생도. 하멜 던전의 악몽은 시험이 끝나고도 정신적인 피해가 남을 수 있습니다. 도전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참관 교수가 직접 경고를 할 정도면, 확실히 위험한가 보네.

"바꿀 기회는  주나요?"

"네."

"… 도전합니다."

정신적 피해가 무서우면 애초에 저걸 넣어놓지 말던가… 하여튼 이해가 안 되는 곳이다.


뭐, 어차피 도전할 생각이었다.

두근 두근.

끓어오르는 [전투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괴생명체 따위는 쉽게 이길  있다고.

[시험을 시작합니다.]

대련장이 마나로 감싸지고 바깥과 소통이 끊기자마자, 반대 편을 가득 채우던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감싸왔고, 원초적인 공포가 밀려왔다.

- 끼끾끼끼끾끼끼끾끼끼끼끼끼끼끾끽끼끼끼끼끼끾!

- 쿠헤헤헤? 쿠헤헤헤?


- 끄르르르-? 끄르르르륵-!


- 살려줘! 살려줘! 거기 너 나를 살리라고!


듣기만 해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기괴한 소리들과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그리고  앞에는, 웬 허수아비가 하나  있었다.

몸은 얇았지만, 손과 발이 새의 발톱처럼 생겼고, 얼굴을 감싸고 있는 천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손에 녹슨 낫을 들고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 해괴망측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법을 사용했다.

'염화.'


크에에엑-!


허수아비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재로 변했다.

"확실히 기분 나빠."


'악몽'은, 정말 여러 가지 악몽을 보여준다.


그것은 힘든 과거일 수도, 친한 사람의 죽음일 수도, 연인의 배신일 수도 있다.


저 허수아비가 끝은 아닐 거다.


확실히 기괴한 생김새에 짜증이 올라왔으니 전투 시작부터 마음에  들긴 하네.


"…후우."


심호흡을 하며 찾아올 정신 공격을 대비했다.

정신 공격도 결국에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공격이다.


[마나 감응]으로 대처할 수 있을거다.


막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룬의 결계도 일단은 준비해놔야겠다.


결계를 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때, 갑자기 내 전투 감각이 사라졌다.


두근.

"…!"

설마  감각까지 속이는 건가?


이 악몽이라는 몬스터가 얼마나 강하길래…!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어?"


내 멍청한 소리와 함께, 주변을 감싸던 어둠이 사라지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했다.

"이, 이호연 생도. 10단계 통과입니다."


대련장 위에서 멈춰있는 초시계는 9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9, 9초?! 미친 새끼 아니야 저거?"

"신기록이야. 10단계 9초면 아카데미 신기록이야!"

"영상 찍었어? 야! 오늘도 에브리데이 추천 글 가보자!"


"도대체 정신력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악몽을…."


생도와 교수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흥분해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한 교수의 말을 듣고 지금 상황을 눈치챘다.

'[뚜렷한 정신력]…!'


이거 밖에 없다.


내가 이 세계로 오면서 받았던 특전인 [뚜렷한 정신력].

[뚜렷한 정신력]에는… 정신 공격 면역이 붙어있었다.




*


촤악!


남다은은 10단계인 사이클롭스를 혼자서 베어냈다.

배에 새겨진 수많은 자상을 이기지못한 사이클롭스는 결국 하나 밖에 없는 눈을 감았다.

쿠웅!


사이클롭스가 쓰러지며 바닥을 울렸다.


남다은은 덤덤히 검을 수습했다.

"남다은 생도. 축하해요. 10단계 통과입니다."


"… 감사합니다."

남다은은 교수의 말을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짧은 감사를 전하며 대련장을 내려왔다.

기록은 30초.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처리했으니, 의심당할 일은 없을 거다.

'실전 괴수 훈련도 1등 확정이야.'


이제 1대1 결투만 끝내면 된다.

시험이 끝나면 조금은 부담감이 사라지겠지.

그렇게 대련장을 떠나려던 남다은은, 생도들의 말소리를 듣고 멈춰 섰다.

"야, 대박! 저기 이호연 10단계 9초 컷이래!"

"뭐? 같이 보러 가자!"


'9초…?'


10단계는 애초에 깨라고 만들어놓은 단계가 아니다.


보스 몬스터 사냥에서 나왔던 사이클롭스가 10단계에서 나오는 것만 봐도  수 있다.

애초에 생도 한 명이 감당할 수 없는 난이도다.

그런데, 9초라니?

'직접 보기 전까지 믿을 수 없어.'

남다은은 빠르게 이호연의 대련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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