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9화 〉89화. 실기 시험 (89/648)



〈 89화 〉89화. 실기 시험

빠빠 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바빠빠 빠빠빠 빠빠바바 빠빠빠-


"아악…."

이건 무슨 개 같은 알람 소리야.


에브리데이에서 아침에 무조건 일어나는 알람 모음을 다운받았는데, 매일 아침을 짜증 나게 시작하게 만든다.

아닌가,  일어나지는  보니 효과가 좋긴 하네.

릴리아나는 오늘도  옆에서 자고 있었고, 펠라는 역시 본토펠라가 좋았다.


서큐버스의  놀림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없었다.


오늘은 목요일이다.

오전에는 조별 보스 몬스터 사냥 시험이다. 남다은과 루미, 이병훈이라는 남자를 포함한 침묵의 조별 과제가 다시 시작된다.

마음에  들지만 어쩔  없지. 나도 꽤 힘을 공개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캐리할 기회가 있을 거다.

오후에 있을 실전 괴수 훈련도 마찬가지다. 저번에는 약할 때 훈련을 해서 간신히 A클래스 평균만큼 잡았지만, 이번에는 그때보다 강해졌으니 더 높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진짜 이호연의 날이네."


남들에게 제대로 힘을 공개하는 날이다.


*


"오전에 진행되는 조별 보스몬스터 사냥 시험은 저번 첫 번째 던전 실습 훈련 때 사용했던 시험장에서 치뤄진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다른 조를 구경할 수 있을 거다."

아침 조례에서 김진혁 교수는 오늘 진행되는 시험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

"오후의 실전 괴수 훈련 역시 너희들의 수준 측정 결과대로 진행된다. 이건 실습 대련장에서 실시한다."

대충 다 아는 정보였으니 나는 딴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이미 끝난 필기시험을 붙잡고 후회할 시간에 컨디션 관리를 해서 실기 시험이나  보도록 해라. 이상."

전달 사항을 모두 전달한 김진혁은 강의실을 빠져나갔고, 생도들은 하나 둘 씩 모여서 자기들 조를 찾아갔다.

"루시, 힘내. 나랑 루미는 갈게."

"응. 너네도 화이팅. 어차피 거기가 1등이겠지만, 우리도 힘낼 거니까."


"너희 조도 합이 좋던데? 우리 조는 남다은 원맨팀이잖아."


"그렇긴 하지. 어쨌든 힘내!"

루시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자기 조를 찾아갔다.

"우리 조는… 어딨지?"


"글쎄요… 항상 제대로 모이질 않네요… 응? 저기 이병훈 씨가 오는데요?"

"엥? 그렇네."


평소에 제대로 모이지도 않던 조가 3명이나 모이다니, 역시 중간고사가 중요하긴 한가보다.

"안녕하세요. 호연 씨. 좋은 아침입니다."

"… 뭐라고?"

엑스트라 남자 1로 대하던 이병훈이,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제가 같은 조인데도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서요. 저는 유서 깊은 투사 길드의 장남 이병훈이라고 합니다."


"…."


이 패턴. 남다은에게 처음 다가갔을 때랑 똑같다.


얘는 내가 유명해지니까 이제 와서 인사를 하는 거야?

참 대단한 놈이긴 하네. 한결 같은게 나름 웃기기도 하고.

같은 조라서 때릴 수는 없으니 귀엽게 넘어가자.


"그래.  부탁해. 나는 이호연이야."

"옙. 혹시 연락처를 받을 수 있을까요."

"싫어."


"… 넵."


"농담이고, 이번에 보스몬스터 사냥을 캐리하면 줄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가 아무리 잘해봐라. 나랑 남다은 보다 잘 할 수 있나.


*


우리 셋은 보스몬스터 사냥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당연히 생도들이 엄청나게 모여있어서 시끄러웠다.

나는 계속 말을 걸어오는 이병훈이 귀찮아 화장실을 갔다 온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옆에서 너무 재잘대서 귀가 아플 지경이다. 이래서 남다은도 매일 늦게 합류하는 건가?

일단은 답답한 시험장 건물을 나왔다.

화장실에 가고 싶지는 않았고, 그냥 바람이나 쐴  나왔다.

가까운 곳에 산책로가 있어서 그쪽으로 길을 잡고 걸었다.

"응, 아니야. 내가 더 사랑하지."


그 때, 시험장 건물 뒤편 비상계단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룬의 결계를 이용해 소리를 죽이고 그쪽을 바라봤다.

남다은이었다.

'쟤는 항상 여동생하고 통화하고 있네.'

이번 중간고사도 남다은에게 꽤 중요할 것이다.


원작 게임에선, 주인공이 강해지는 1학년 2학기나 2학년 1학기에 남다은에게서 1등 자리를 뺏는다.

1학년 말에 1등을 하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주인공이 혼자 길드를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남다은 루트는 타지 못하게 된다.

순결을 지키기 위해 길드원들을 학살하고, 여동생을 죽인 뒤 자기도 자결하는 엔딩은... 좀 무서웠다.

2학년 1학기에 1등을 뺏게 되면 그때는 주인공의 기반이 잘 잡혀있으니 길드와 싸우면서 남다은을 구해낼 수 있다.

 목표는, 1학년 말까지 기반을 잡아놓고 남다은을 구하는 것이다.

2학년까지 시간을 끌 필요도 없으니, 빨리 끝내야지.

"나 이제 가봐야 해. 응."

남다은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자연스럽게 룬의 결계를 해제하고 정문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통화를 마치고 정문으로 오는 남다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 응."


남다은은  눈을 슬쩍 바라보고는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뜨기 위해 정문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같이 들어가자. 같은 조인데."

"…."


남다은은 대답 없이 시험장으로 도망쳤다.

까칠하긴.

다음 시험이면 공략해야 하는데, 공략 물꼬를 어떻게 터야 할 지 모르겠네.

나도 우리 조가 모인 곳으로 이동했다.


"오셨어요…!"

루미는 불편한 분위기가 너무 싫었는지, 나를 보며 반겨줬다.


"응응, 미안. 곧 시작하나 보네?"

"네. 그런 모양이에요."


생도들의 웅성거림이 심해지고, 교수들이 한 명씩 자리를 잡는 걸 보니 시험의 시작이 가까워졌다.

[아. 아. 알립니다.  조의 대표는 나와서 순서 번호표를 뽑아가기 바랍니다. 재전파. 각 조의 대표는 나와서 순서 번호표를 뽑아가기 바랍니다.]


"…."

"…."

"…."

"제, 제가 갈까요…?!"


"내가 갈게…."

루미를 보내기엔  연약한 사자들 사이에서 제대로 번호표를 뽑을지 걱정이다.

이병훈,  새끼는 아까 친한  하더니  또 조용해진 거야.


나는 시험장 앞에 준비된 통에서 번호를 뽑았다.


"3번이네요. 여기 이름하고 조원들 이름 써주세요."


"네."

 번째. 사실 어차피 1등이라 별 의미 없는 숫자다.


우리 조가 초반부에 하면 다른 조들 사기가 떨어질 텐데.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번호표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얘들아. 세 번째다. 빨리하고 끝내버리자."


"네, 넵!"


"초반에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역시 운이 따르십니다."

"…."

이병훈이 리액션이 많아졌다. 말 대신 실력으로 보여주면 좋겠다.

[모든 조가 번호표를 뽑았습니다. 1조부터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2조는 시험 대기를 위해 시험장 앞쪽으로 위치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작한다!"


"와, 긴장돼. 우리 11조잖아. 조금만 있으면 우리야!"


"우리는 2조야… 다음에 바로 투입인데  명이  왔어. 어떡해!"

생도들의 잡담이 많아지고, 우리 조는 긴장을 풀며 영상을 바라봤다.

1조가 상대하는 몬스터는 사이클롭스.

오우거와 비교해보면 조금 더 강하거나 비슷한 정도다.

"와, 사이클롭스?! 1조 저거 이길 수 있어?"


"글쎄. 조합이 좋긴 한데 이길 수 있으려나."


몬스터는 조마다 다르게 편성된다. 처음 조를 짤 때 평균치가 비슷하게 조를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치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보통 중간고사 즈음 되면 조의 밸런스가 무너진다.


그렇기에 몬스터의 수준이 다른 것이다.


"으악!"

1조는, 사이클롭스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지더라도 무조건 탈락은 아니다.


과정이 중요한 시험이기 때문에 사이클롭스의 패턴에 대응이 좋았던 1조는 괜찮은 평가를 받을 거다.

[다음, 2조. 입장입니다. 3조는 시험장 앞으로 와서 대기해주세요.]



벌써 다음 차례가 우리까지 다가왔다.


"이동하자."



*



[다음은 3조. 입장입니다. 4조는 시험장 앞으로 와서 대기해주세요.]

시험장 앞쪽에는 시험을 위한 포탈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포탈을 타고 이동하면 가상의 보스몬스터가 준비되어 있는 공간이 나올 겁니다. 다치거나 죽어도 가상공간이기에 실제 타격은 없어요.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고, 정신적인 피해가 남을 수도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듣고, 포탈로 몸을 던졌다.

매스꺼운 감각이 잠시 몸을 감싼다.

잠시  눈을 뜨자 동굴이었다.


"동굴 참 많이 나오네."


1조는 초원이었고 2조는 바다였는데 우리는  동굴이다.

"이리로 모여봐. 일단 몬스터를 파악하고 움직이자."

과정이 중요한 시험인만큼, 사전 준비가 중요하다.


루미와 이병훈은  말을 들어줬지만, 남다은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먼저 움직였다.

"남다은! 이번에는 내 말을 들어. 보스몬스터 사냥은  맘대로 움직였다가 다른 팀원이 다칠 수도 있어. 이건 과정이 중요한 시험이라고."

내 말을 듣지않고 걸어가려는 남다은에게 소리쳤다.


보스몬스터는 보통 몬스터와 다르다. 게다가 시험인 만큼 팀의 모든 기량을 이용하고 최대한 안전하게 클리어 해야 한다. 그게 시험이 바라는 점이니까.


"…내가 혼자 움직이는 게 가장 빨리 처리할 수 있어."

남다은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아,  미친…  일단 따라가자."

우리는 어쩔  없이 남다은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달리면서도 동굴 벽과 천장을 보면서 단서를 찾았다.


'벽에는 흔적이 없지만, 천장에 작은 발톱 자국이 보여. 동굴형 보스몬스터에, 천장에 작은 발톱 자국이면….'


달려가던 우리는 어느 공동을 마주쳤다.

나는 얻은 정보들을 취합해 반사적으로 천장을 바라봤고, 밝게 빛나는 수백 쌍의 눈과 마주쳤다.


"나이트 퀸이야! 다들 귀 마력으로 덮어!"


나는 즉시 모두에게 들리도록 소리쳤다.

내 소리를 들은 조원들은 재빨리 귀를 마력으로 덮었고, 그와 동시에 동공이 울리기 시작했다.


- 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퍼득퍼득퍼득퍼득

나이트 퀸의 전매특허인 초음파 공격.


시작하자마자 적을 와해시키며 당황에 빠진 적들을 부하 박쥐들로 처리하는 게 나이트퀸의 가장 기본적인 전투방식이었다.

다행히 첫 공격을 막으면 그렇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부하 박쥐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부하 박쥐들은 겁이 많다.

그 특성을 이용해 밝은 곳에서 천천히 하나씩 처리하면 상처 없이 공략할 수 있다.

나는 내 몸만 한 불덩어리를 공동 한 가운데에 세웠다.

갸아아악!

구우우욱!

박쥐들은 커다란 불에 지레 겁먹고 천장에 따닥따닥 붙었다.



이제 하나씩 처리하면 끝이다.

그런데. 또 남다은이 달리기 시작했다.


"남다은!!!"


수가 수백 마리나 되다 보니 천장에 올라가지 않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박쥐들도 있었다.

남다은은 공중에 떠있는 박쥐들을 하나씩 밟으며 올라가는 기예를 선보이며 나이트 퀸에게 접근했다.

"아오. 루미! 남다은한테 쉴드 지원해주고, 이병훈 너는 루미 지켜. 나는 남다은 지원으로 올라간다."

나는 조원들의 역할을 분담하고 뛰쳐나갔다.

나이트 퀸은, 박쥐들이 많을수록 강해진다.

혹시 남다은 혼자서 처리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필히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러면 공략하는 의미가 없다. 공략의 기본은 안전이다.

공략대를 한 명이라도 희생하면서 공략을 완료하기보다, 안전하게 후퇴를 하는 게 제대로 된 공략대의 공략이다.


나는 남다은의 뒤를 따라 박쥐들을 밟으며 올라갔다.

중간중간 가속을 활용해 남다은 뒤를 따라잡은 나는…


검을 추스리는 남다은과 일격에 몸이 두 동강 난 나이트 퀸을 마주했다.

끄에에엑!

 동강 난 가상 나이트 퀸의 몸이 마나로 흩어졌다.


"…어?"

1학년 1학기의 남다은은, 내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



나이트 퀸이 소멸함과 동시에 공략이 완료되며, 자동으로 포탈 밖으로 이동했다.


밖은 남다은의 슈퍼플레이에 쥐죽은 듯 고요했다.

결과는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남다은. 너, 하아. 왜 그렇게 급한 거야. 다행히 네가 옳긴 했지만, 만약에라도 일격에 나이트 퀸을 해치우지 못했다면 엄청나게 감점을 당했을 거야. 얘기했잖아. 이건 과정이 중요한 시험이라고."

이건 우리 조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남다은을 위해서다.


원작에서라면 저렇게 해도 1등을 유지했겠지. 워낙 압도적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있다.

실기를 져주고 싶어도 이미  실력이 어느 정도는 공개되었다.

히로인들을 공략하려면 당연히 약한 것보다 강한 게 좋고, 내가 힘을 드러낸 만큼 실기시험에서도 힘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남다은이 계속 저런 행동을 한다면,  예상보다 빠르게 내가 1등을 뺏을 수도 있다.


"… 미안해. 하지만 내 순위가 너무 중요해. 난 1등을 해야만 해."

남다은은  어딘가 가려는 건지 자리를 피했다.

아니, 그렇게 하면 1등 못한다고요. 이 답답아.


얘도 이쁘면 다 되는 줄 아는 건가.

자기 딴에는 자기만 점수를 챙겨서 미안해 하는 거 같은데, 사람 말은 좀 끝까지 들어야지.


[ㅅ, 사 조… 입장하겠습니다. 5조는 입장 준비를, 아니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안내하는 교수도 우리의 공략을 보고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 그래도 나름 성공했네요?"


루미는 그냥 성공했다는 사실에 좋아하고 있었다.

"성공이 성공이 아니잖아…."


이번 시험은 무엇보다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나는 나이트 퀸의 정보를 빠르게 파악해 전멸을 막은 걸로 높은 점수를 받을  있다.

하지만 루미는 쉴드를 걸어준 것밖에 없으니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을 거고…


"역시 호연 씨는 대단하네요. 나이트 퀸을 빠르게 찾아낸  통찰력, 배우고 싶습니다. … 혹시 연락처  받을 수 있을까요."

얘는 그냥 0점일 거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