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87화. 임솔의 연구실 (87/648)



〈 87화 〉87화. 임솔의 연구실



'쉽네.'


필기시험은 사실 손이 아플 뿐이지 문제가 되진 않았다.


오전의 마법사용 필기시험은 가볍게 만점.

채점해보진 않았지만 전공 서적과 논문이 틀린 게 아니라면 내 점수도 만점이다.


"야, 답 맞춰보자."

"답 맞춰보자는 애들 특. 시험 못 봄."


"응 너보다 잘 봤어~."


"이번 시험 진짜 어려웠다."

"인정. 다들 점수 작살날 듯."

시험이 끝나고 강의실은 생도들의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찼다.


"아악! 이거 분명 교수님이 집어준 건데 틀렸어…."


"괜찮아 루시…. 다음에 맞으면 되지."


쌍둥이들도 마찬가지로 시험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얘들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배고파."

나는 당연히 그쪽에 관심이 없었다.


"이호연, 너 시험 엄청나게 잘 본 거 아니야? 너무 여유로운데."


"뭐, 그냥저냥."


성적표가 나오면  알게 될 텐데 굳이 자랑할 필요가 있나.

우리는 학생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음~ 맛있어. 학식 스테이크 진짜 맛있는데 왜 사람들은 안 먹지?"


"그러게. 나도 스테이크가 제일 맛있더라."

나와 루시는 열심히 스테이크를 썰었고, 루미는 몸을 움츠린  오므라이스를 퍼먹었다.

"마, 맞아요…."

"루미, 왜 그리 힘이 없어?"


"그, 그게… 사람들이 너무 쳐다봐서…."


"… 그렇긴 하네."

'아아, 이게 유명세라는 건가.'

학생 식당에서  먹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를 보고 있는 거겠지.

최근에 너무 유명해지긴 했다.

덕분에 시비를 걸어오던 놈들이 줄어서 편하긴 한데… 대신 쳐다보는 사람이 많아져서 불편한 점도 있네.


"신경 쓰지 마. 그냥 궁금해서 보는 거야."


"네, 네. 알겠어요…."

찰칵!


심지어 어디선가 카메라 촬영 소리도 들렸다.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봐도 사람이 워낙 많으니 누군지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와, 이거 사람 미치네.'


이게 문수린이 평소에 느끼는 기분인가?


약간 공감이 되는  같기도 하고… 근데 그 사람은 더 심할 거 아니야.

"으으, 무서워."

"뭐가 무서워?"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학생 식당에서 빠르게 나오기 위해 식사를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었다.




*



오후 필기시험도 쏜살같이 지나갔다.

문제들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서 생도들이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았다.


띠링-

필기시험이 끝난 후에 강의실을 떠나려는데, 강의실에 있는 생도 중 반의 스마트워치가 신호를 울렸다.


[빅토리아 아카데미 1대1 결투 예선 A조 3팀 이호연. 4시 30분까지 A 대련장으로 위치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선전 안내 문자구나."


"나도 왔어 B 대련장이래."


"저는 안 왔어요…."

"어쩐지 필기시험이  일찍 끝나더라. 그럼 나는 대련장 가야 해서, 내일 보자."

"빠이빠이! 루미! 같이 B 대련장 가줘!"


"으응. 알았어."

나는 쌍둥이에게 인사를 하며 A 대련장으로 달려갔다.


A 대련장은 이미 기다리는 인파가 꽤 많았다.


A클래스뿐만 아니라 다른 클래스에서도 모여있는  보니, 1학년 전체에서 랜덤으로 뽑는 토너먼트인 모양이다.

"다음! 2팀 올라와라!"

대련장 위에서 교수 한 명이 생도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교수의 지시에 남자 둘이 대련장 위에 올라간다.

자신의 결투 상대도 대련장 위에 올라와야 알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거 진짜 운이네. 예선에서부터 강한 애들끼리 붙어버리면 걔는 어떻게 되는 거지?

"준비, 시작!"

두 남자의 결투는 관심이 없었기에, 스마트 워치를 보면서 다음 내 결투를 기다렸다.

"승자! 전영주!"

 번의 공방 끝에 곧 승자가 가려졌다.

짝  짝

주변에서 다 손뼉을 치길래 나도   쳐줬다.

"다음! 3조 올라와라!"


재빨리 대련장에 올라왔다.


어디보자….

대련장에 올라오는  상대는, 어디선가 본 기억은 있지만, 누군지 모르는 엑스트라였다.


긴장할 필요는 없겠다.


"저, 저기, 호연아."'

"응?"


내 상대인 남자는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저번에는 미안했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얘는 뭔데 이러는 거지?

나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봤다.

이 얼굴을 어디서 본 걸까.  기억은 나는데, A클래스인가?

"아…."


기억났다.

도진혁 뒤에 숨어있던 엑스트라구나.


대충 도진혁이 학기 초에 시비를 걸 때 그 뒤에서 킬킬대던 놈이다


"괜찮아. 신경 안 쓰거든."


"그, 그래? 고마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놈을 바라보며 몸에 마력을 일으켰다.

"빨리 끝내줄게. 걱정 마."

"어, 어?"

가만히 있었으면 몰랐을 텐데, 알아서 자기 무덤을 파는 것도 재능이다.




*





대련을 순식간에 끝내고 임솔 교수를 만나러 왔다.

용무는 안부 묻기 겸 백아영 소개하기.


 그거 말고도 논문 도와주기도 있고, 한다면 할 일이야 많다.

꽤 오랜만에 찾아오는 것 같아서 괜히 긴장됐다.


★ 히로인 상태창


[임솔]


- [ 호감도 : 50 ]
- [ 성욕 : 25 ]
- [ 식욕 : 30 ]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시험 채점 끝내고, 논문 작성하다 보면, 시간이 남으려나.

'와, 분발해야겠네.'


임솔의 상태창을 확인한 나는 더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50이란 호감도가 낮은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스킨십이 오갔던 만큼 꽤 높을  알았는데, 그 정도의 스킨십을 하고도 50이라니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채점하는 게 조금 남아서, 거기 앉아서 기다릴래? 과자나 커피는 마음대로 먹어도 돼."


"넵."

나는 연구실의 소파에 앉아 초코과자를 하나씩 까면서 입에 넣었다.


열심히 시험문제인지 뭔지를 채점하고 있는 임솔을 보고 있자니, 당연한 의문이 떠올랐다.


"제가 찾아오긴 했지만, 시험 기간에 이렇게 교수랑 만나도 돼요?"


보통은 교수와 접촉을 최소화하거나 이런 교수실은 출입금지가 되지 않나?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약간 겁난다.

"상관없어. 우리는 마나의 맹세로 시험을 유출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거든."


"마, 마나의 맹세…."


여기에도 마나의 맹세가 있었다니!

"왜 그렇게 놀라? 마나의 맹세 처음 들어봐?"

"… 아니요.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해서요."

마나가 있는 세계관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마나의 맹세의 존재를 알아버렸으니, 절대 걸리지 않게 노력해야지.


"할  없으면 내 일이라도 도와"


임솔은 높이 쌓여있는 서류 중에 20장 정도를 마법으로 내게 날렸다.

학생들의 시험 답안지였다.

"…교수님, 아무리 그래도 채점을 생도한테 시키면 안 되죠."


"괜찮아. 너만 안 말하고 다니면 돼."


"…."

어차피 이게  끝나야 임솔과 말 할 수 있으니까 뭐.


긍정적으로 생각한 나는 시험문제 채점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





아이리스 길드의 간부. 세바스 찬.

그는 오늘도 이호연의 뒤를 밟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 있는 건 확실한데, 임솔 교수의 연구실로 들어가 버려서 어떻게 안을 확인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세바스 찬은 누군가를 감지했다.

건물 반대편에 누군가 은신해있었다.

'수준이… 나와 비슷해.'

어제까지만 해도 저런 남자가 이호연 주변을 돌아다니지 않았다.

'역시 들켰어.'


이호연이 내 존재를 눈치채고 보디가드를 붙였다고 보는게 맞다.

하루만에 저런 인재를 데려올 수 있다는 건 그 만큼 이호연의 중요도가 높다는 말이다.


'뒷배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엘리스 아가씨 급이다.'



여기서 자신을 드러낼 순 없었다. 아이리스 길드는 항상 조용해야 한다.


정체를 들키는 순간 아이리스의 패배다.


세바스찬은, 침을 삼키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



한국 헌터 협회 협회장의 오른팔인 정비서.


백아영과 아카데미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서 직접 발로 뛰며 알아낸 정보가 하나 있었다.


'백아영과 정말 친한 아카데미 생도가 있다.'

그는 오늘 그 생도를 조사하기 위해 빅토리아 아카데미에 잠입했다.


겨우 생도를 조사하더라도 그는 최선을 다했다.


절대 들키지 않게 움직였고 꼬리 따위 남기질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있다.'


자신과 정 반대편에서 누군가 은신하고 있었다.

 모습은 마치, 이호연을 지키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수준도 심상치 않았다.

'저 정도면, A급 헌터 중에서도 최상급이야……. 이건, 접촉하면 안 된다.'


이호연의 뒤를 누군가 봐주고 있다.

정비서가 저쪽을 눈치챘다면, 저쪽도 정비서를 눈치챘을 것이다.


정비서는 판단을 마치자마자 재빨리 뒤로 후퇴했다.

그와 동시에 반대편에서 느껴지던 인기척도 사라졌다.


저쪽도 정비서와 직접 충돌하기엔 부담이 느껴졌겠지.


"이호연… 대체 뒤에 누가 있는 거지?"


정비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보고서를 작성했다.



*


"뭐지?"

"왜 그러세요 교수님?"


일을 다 끝내고 맞은 편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임솔이 눈을 찌푸렸다.

"뭔가 밖이 소란스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사라졌어. 착각인가봐."

"…?"

뜬금없이  이러실까.


"그러고보니 시험은  봤어?"


"네."


자신있게 말  수 있었다.

내가 1등일테니까.

"호오, 이번에 마법사들 필기시험이 쉽지않았을텐데?"


"저랑 내기 하실래요? 저는 제가 다 맞았다에 걸게요."


"싫은데?"

"…."



아쉽네. 뭐든 하나 뜯어낼 수 있었는데.

"풋, 내가 내기를 좋아하질 않아서. 미안."

임솔은 웃으며 커피를 마시고는 내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 민예지라는 애랑 연락했지?"


갑자기 민예지라는 이름이 임솔한테서 왜 나오는거지. 물론 연락을 하긴 했으니 부정하지 않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저한테 길드 들어오라고 하다가 거절하니까 사업을 하자고 하던데."


"길드 영입을 거절했어? 걔 철혈길드잖아."


"뭐, 딱히 어딘가 들어가고 싶지가 않아서요. 아직 아카데미 졸업까지 시간이 많이 남기도 했고."


히로인들이 여기 많이 있는 이상, 아카데미 졸업은 무조건 해야 한다.


그 때가 되면 내 몸값이 더 오를텐데 굳이 지금 정할 필요도 없고, 다시 말하지만 여자관계가 복잡해서 길드에 들어가는 건 좀 그렇다.

"으흠. 네 의사니까 굳이 뭐라고 하진 않을게. 어쨌든, 걔가 말하는 사업을 하는건 비추천이야."


"왜 그러세요?"


다단계 사업이라도 하나?

"아니, 나도 말에 혹해서 사업 보고서를 전에 받은 적이 있는데… 하아. 됐어. 그냥 하지말라고 하면 하지 마."




★ 히로인 상태창


[임솔]


- [ 호감도 : 50 ]
- [ 성욕 : 25 ]
- [ 식욕 : 30 ]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남자 생도한테도 비키니를 입힐 수도 있어. 그 정도로 돈에 미친 년이니까….


대체 내가 비키니를 입어야 할 일이 뭐가 있는 걸까.


꿀꺽.

난 민예지라는 사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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