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85화. 식사약속 (85/648)



〈 85화 〉85화. 식사약속

릴리아나는 지옥의 생태를 정리해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10년 뒤에 지옥에서 뭘 할지 고민하는 건가?

알아서 하겠지. 뭐.


나는 천천히 밀린 메시지를 확인했다.

처음 듣는 길드부터 나도 들어본 대형길드들까지 다양하게 컨택을 보내왔다.

그 와중에서도 눈에 띄는 메시지가 있었다.

[예지요미 : 호연 생도. 제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알아보고 연락했던 거 알죠? 연락하라는 번호로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길래 여기로 다시 보내봐요]

"엥?"

메시지가 왔었다고?

나는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아... 무음으로 해놔서 못 봤네."

하도 재난 문자니 스팸 문자니 이상한 게 날아와서 저장이  된 번호에게 오는 메시지는 알람을 꺼놨는데, 그래서 확인을 못 했다.

[안녕하세요. 이호연 생도^^ 철혈 길드의 민예지입니다. 편하실 때 답장 주세요.]

 메시지가 연락처를 알려준 저번 주 당일에 왔고, 내가 이틀이나 답장이 없자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이호연 생도, 바쁘신가요? 에브리데이에 접속 중은 뜨는데 답장이 없네요.]

이게 금요일에  메시지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까지 내가 읽지않자, 어제 하나  왔다.


[마지막 연락입니다. 오늘 안으로 답장을 주지 않으면 저희와 일할 생각이 없다고 판단할게요. 이 번호로 답장 주거나 철혈 길드의 민예지에게 연락해주세요.]


그리고, 방금도 메시지가 도착했다.


[민예지입니다. 어제 보냈던 메시지는 잊어주세요. 제발 전화라도 한 통 해주시면  될까요? 이호연 생도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저예요. 조건만 보고 다른 길드에 넘어가기보단 진짜 실력을 알아봐 주고 키워줄 수 있는 철혈 길드로...."


장문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가장 먼저 널 알아봐 준 우리 길드로 와라. 라는 뜻이다.


길드에 들어갈 마음이 없긴 한데... 그래도 예의상 연락해야겠지.

[안녕하세요. 민예지 씨. 문자를 무음으로 바꿔놓아서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당장은 어느 길드든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예의상 답장을 드려야 할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메시지를 전송하자마자, 답장이 도착했다.


[그렇다면, 사업은 어떤가요?]

사업은 또 뭐야?

민예지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철혈 길드는 들어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길드다.


그런 곳 소속이니 잘나가는 사람이겠지만... 철혈 길드든 뭐든, 당장은 못 들어간다.


어쨌든 내 제1의 목표는 아카데미에서 히로인들을 꼬시기인데... 길드랑 계약을 맺었다가 무슨 파문이 생길 줄 알고 그래.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에 쓸 시간도 아깝고, 여러가지 제한사항이 있다.

[사업은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후로 답장은 오지 않았다.


김새네.


민예지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스마트워치를 껐다.

띠링-

"아이씨, 방금 껐는데 누구야."

보낸 이는 수린 누나.

나는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다급히 메시지를 실행했다.

- 수린 누나 : 호연아,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될까? 할 얘기가 있는데.

- 나 : 당연하죠! 지금 바로 나갈까요??

- 수린 누나 : 아니 ㅎㅎ. 나도 준비해야 해서 준비하면 연락할게.


 : 네, 알겠습니다!


문수린이  시간에 연락한 이유는 뻔하다.

이사장이 분명 '다음에 수린이를 보내마.' 라고 했으니, 백아영을 아카데미로 부른 보상을 주려고 하는 거겠지.

나는 벗어놓은 생도복을 다시 챙기고 세면대 앞에 가서 얼굴 상태를 확인했다.


'나쁘지 않네.'

물론 내 얼굴은 항상 나쁘지 않다.


대충 머리만 쓱쓱 만져주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안그래도 문수린하고 식사 약속이 미뤄지고 미뤄졌는데, 계기가 생겨서 다행이다.

준비를 마치고 소파에서 쉬다 보니 메시지가 도착했다.

- 수린 누나 : 준비  했어?


- 나 : 네! 지금 나갈까요?

- 수린 누나 : 응, 근데 사람 많은 곳은  그래서... 내가 주소 찍어줄 테니까 거기로 와줘.

- 나 : 알겠습니다.

문수린은  아카데미 밖의 상가의 한 지점을 찍어왔다.


"나 나갔다 올게."

"알았어~."


나는 릴리아나에게 인사를 하고 기숙사 밖으로 나섰다.



*



바깥 공기는 꽤 차가웠다.


낮에는 따뜻했는데도 밤에 꽃샘추위가 찾아와서 옷을 정하기 힘들었다.

"좀  따뜻하게 입고 올 걸 그랬네."

맨투맨 하나만 덜렁 입고 나와서 후회하고 있었는데, 하필 아카데미와 꽤 떨어져 있어서 좀 많이 걸어야 했다.

"도대체 어디길래 이렇게 멀어...."

스마트 워치로 지도를 보며 식당을 찾아갔다.

상가에서도 길거리 끝에 있는 건물이었다.


간판이 걸려있지 않아서 여기가 맞나 싶었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영업을 하는 식당이었다.


"저... 안녕하세요."


가까이 있는 종업원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어서오세요. 예약하신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혹시, 문수린이라고 왔나요?"


"아, 문수린님 일행이셨군요. 2층 205호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한복을 입은 종업원이 앞장서서 2층으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 보니 모든 자리가 룸이었다.


밖에서는 안에 누가 있는지 볼  없었다. 이래서 여기로 오자고 했구나.

"좋은 시간 보내시길."


"감사합니다."


똑 똑.

"저 왔어요. 누나."

혹시 몰라서 문수린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들어와."


나는 문을 재빨리 열고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뿜는 방에 문수린이 앉아있었다.


"일찍 왔네? 연락하자마자 출발했어?"

"넵. 수린 누나랑 식사인데 늦을 수 없죠. 미리 준비하고 대기하고 있었어요... 어?"


사복 차림의 문수린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백금발의 생머리와 단정한 이목구비, 새하얀 피부.


아름답게 솟아있는 가슴과  빠진 골반라인, 탱탱한 허벅지까지 온몸으로 예쁨을 뿌리고 있는 그녀는... 안경을 벗고 있었다.

촌스러운 뿔테안경으로 숨기고 있던 미모가 드러났고,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또렷한 눈망울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 앙증맞은 입술은 살짝 미소를 짓는다.


"역시 이상한가...? 이미지를 바꿔보려고 렌즈를 꼈거든."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63]
[ 성욕 : 25 ]
[ 식욕 : 50 ]
- [ 피로도 : 73 ]

현재 상태 : 역시 너무 오버했나 봐.... 안경도 가지고 올걸.


"아뇨, 아뇨. 진짜 이뻐요. 수린 누나. 대박사건."


"크흡. 왜 오버하고 그래. 빨리 앉아."

"네, 넷."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게 무슨 주책이람. 주변에 예쁜 사람을 많이 봐왔지만 문수린은 다른 매력이 있었다.


부회장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저런 얼굴을 보고 고백 안 하고 배겨?


"음식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로 시켰는데... 못 먹는 거 없지?"

"당연하죠...  잘 먹어요."


수린 누나랑 먹는 밥이라면 누룽지만 있어도 자린고비처럼 얼굴을 보며 먹을  있다.

"누나랑 먹는 밥이면 누룽지만 있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이런, 실수로 말해버렸다.


"그래? 고마워. 일단 고맙다는 인사를 할아버지 대신 전할게. 덕분에 성녀님이 아카데미로 오면서 얻은 게 많거든. 그래서 너한테도...."

"수린 누나."


밥이 나오기도 전에 일 얘기부터 꺼내는 문수린의 말을 끊었다.


"응?"

"우리 전에 밥 같이 먹기로 했잖아요. 일 얘기는 밥 먹고 나서 해요."


"... 그럴까?"

저 예쁜 얼굴이 피로로 가득  모습을 나는 더이상 볼  없었다.

문수린은 내 얘기에 약간이지만 감동받은 듯했다.

"당연하죠. 제가 오늘 대련하다가 양호실에 갔다 왔는데요. 김진혁 교수가...."

"큭. 그 교수님은 아직도 그러시는구나?"


"그러니까요. 게다가 현대 헌터 학 교수님이 강효린 박사로 바뀌었잖아요...."

나는 최대한 일과 관련 없는 일상적인 얘기들을 꺼내며 대화를 이어갔다.

문수린의 입에서는 식사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


"와... 진짜 맛있네요. 여기."

한복을 입은 종업원이 왔을 때부터 대충 짐작했지만, 한식집이었다.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네. 예약하는 데 조금 힘들었거든."


"정말요? 하긴, 그만큼 맛있긴 했어요."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한식을 먹은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먹은 밥은 대체 뭐였을까 하는 회의감이  정도로 맛있었다.


"그럼, 일 얘기로 넘어갈까?"

"넵!"


나는 자세를 바르게 고쳐앉고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

"일단, 말했듯이 성녀님이 아카데미에 온  네 덕이니까.... 너한테 감사를 표하기로 했어."


"저야 다 누나를 위해 한 일인데 보상까지 주시면 감사하죠."


"후후, 말이라도 고마워. 네가 원하는 걸 알 수 없어서 우리가 정한 리스트를 가져왔는데 한번 살펴볼래?"


문수린은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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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설삼] 한 근.


[공청석유]


[백사가루] 100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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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리스트에는 이름만 들어본 영약들이 가득했다.


"이건... 제가 천천히 생각해볼게요."

"응. 그래. 혹시라도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마음 편하게 얘기해."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잠시 정적에 빠졌다.

"그, 일 얘기는 이게 끝이에요. 누나?"

"응. 그렇지? 이제 슬슬 갈까?"


"누나만 괜찮다면 좀 더 얘기해도 괜찮은데."

문수린이 안경을 벗었다.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난 건 좋지만, 사실 이건  좋은 징조다.


문수린의 탈안경은 이호연과의 호감도가 매우 높아지거나, 스토커 짓이 너무 심해지면 발생하는 이벤트인데...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63]
- [ 성욕 : 25 ]
- [ 식욕 : 50 ]
- [ 피로도 : 73 ]


현재 상태 : 역시 호연이는 참 착해.



 호감도는 아직 60 초반이었다. 호감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 정도.

그렇다면 이벤트 발생 원인은 후자였다.


"그럴까... 혹시 기억나? 내가 예전에 너무 유명해지면 힘들다고 했던 거."

"당연히 기억하죠."

예전에 문수린이 임솔 교수와 친해지는 나를 걱정해주며 했던 말이다.


"너도 유명해졌으니... 조금은 나를 공감하려나?"


"누나..."

"미안, 너무 연예인  같지? 후훗."

문수린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표정이었다.


후회나 비참함, 실망과 우울감. 부정적인 요소는  가져온 것 같았다.

"항상 제가 말하잖아요 누나."

나는 문수린과 눈을 마주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수린의 앞에  나는 가녀린 양어깨를 꽉 잡았다.


"호, 호연아? 왜 이래?"

"누나. 계속 얘기했잖아요. 제가 항상 누나 편이라니까요. 세상을 뒤집어놓을 마법사 이호연이 문수린 편이라고요. 절대 걱정하지 말고, 떳떳해지세요. 혹시라도 괴롭히는 새끼 있으면 제가  죽일 테니까."


"... 가, 가, 갑자기 이러면 다, 당황스러워...."


문수린은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얼굴이 빨개지며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75]
- [ 성욕 : 35 ]
- [ 식욕 : 50 ]
- [ 피로도 : 73 ]

현재 상태 : 호, 호연이가 나를 좋아하나? 얘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호감도 75. 이 정도면 고백하면 넘어오는 수치다.

아직 내게 고백할 정도로 호감도가 높아지진 않았지만 여기서 만족하자.

"누나. 힘들면 무조건 저한테 얘기해요. 알았죠?"


나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듯이 얘기했다.

"으응... 알았어."

문수린은 내 박력에 홀린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힘들 때 가족보다 내가 먼저 생각나게 만들어야 한다.

천천히, 나에게 의존시키는 것 부터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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