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76화. 마법 분석학 (2)
"이호연 생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마법진 추적은 가능하죠? 엘리스 양은 역산이 가능하니까, 이호연 생도도 배우는 느낌으로 해보죠!"
교수는 날 독려하며 미소를 보냈다. 이미 내가 지는 건 기정사실이네.
사실 저렇게 생각하는 게 맞긴 하지.
애초에 생도 중에서 역산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건 엘리스뿐이다.
현역 마법사들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어렵고 재능의 영역인 마법이다.
마법진 추적은, 역산과 비슷하지만 하위호환인 마법이다.
마법진을 추적하는 마법으로, 역산과 비슷한 느낌을 내지만 속도 면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역산을 교육하기 위해 거쳐 가는 다리라고 생각하면 편한 마법이다.
물론, 나는 역산은 할 줄 알아도 마법진 추적은 할 줄 모른다.
"음, 마법진 추적을 잘하진 못하지만, 교수님이 원하시는 시연에 문제는 없습니다."
"좋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
엘리스는 내 앞에 서서 이해가 안 된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다.
하긴, 나라도 이해가 안 될 거 같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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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가 전송되었습니다.』
[엘리스의 질투심 유발?!]
엘리스는 자신보다 뛰어난 또래를 보면 질투심이 일어납니다!
그녀의 질투심을 유발해서 관심을 끌어볼까요?
엘리스보다 먼저 마법진을 발현하세요!
- 보상 : 근력 능력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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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랜만에 퀘스트가 떴다.
근데 왜 보상이 근력이지? 나 마법사인데?
물론 요즘 릴리아나가 말했던 마투술사인지 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긴 하다.
어쨌든, 퀘스트가 떴다는 건 드디어 내가 제대로 된 원작 루트를 밟고 있다는 뜻이다.
하긴 릴리아나 조교나 보육원에서 강간 섹스가 원작에 나오진 않으니까 당연한가?
"마법은, 제일 기본적인 마법으로 할까요. 포스 마법으로."
포스 마법.
가장 기본적인 마법이다. 마력을 유형화해서 물리력을 갖추어 쏘아내는 마법.
마법진을 생략해도 전혀 무리 없는 마법이기도 하고, 사실 큰 효용성이 없어서 잘 사용되지 않는 마법이다.
근데, 어마어마한 문제가 있었다.
"그럼, 준비됐어요?"
"교수님. 죄송한데… 제가 포스 마법 마법진을 몰라서요."
"…? 포스 마법을요? 아, 이호연 생도 마법사로 전향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었지. 너무 잘해서 항상 까먹는다니까."
교수는 호호 웃더니 교과서를 앞쪽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엄… 다른 마법이 뭐가 있으려나."
"그냥 포스 마법 마법진만 알려주시면 돼요."
"응? 아니아니. 그러면 안 되지. 아직 눈에 익지 않은 마법진으로 대결하는 건 공정성에 어긋나잖아."
"괜찮아요. 어차피 배우는 입장이고, 제일 쉬운 마법으로 해야 다른 생도들이 보고 배우기 쉽지 않을까요?"
"그런가?"
"옙. 교수님."
아까는 어차피 질 것 처럼 얘기해놓고, 공정성 드립은 왜 치는거야.
이래서 나이 많은 교수들은 상대하기가 힘들다. 그냥 대충 좀 넘어가지.
"그럼, 자. 따라 해보세요. 이런 식이랍니다."
동그란 원에 육각성이 들어가는, 정말 기본적인 마법진이다.
나는 당연히 한 번에 따라 했다. 애초에 이 정도로 쉬우면 공정성이고 나발이고 없을 것 같은데.
"다 외웠습니다."
"그럼, 이 불꽃이 사라지면 시작하는 걸로."
교수는 손에서 작은 불꽃 하나를 피워올렸다.
화르륵-
불꽃은 공중에서 조금씩 크기를 줄여가고 있었다.
내 앞에 선 엘리스는 별로 긴장하지 않고 마력을 몸에 끌어올렸다.
나는 이번 역산 대결을 완벽하게 이길 생각이다.
퀘스트에선 엘리스보다 먼저 마법진을 발현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 언제 질투하고 언제 기억에 남겠어.
지금 공략해야 할 여자가 몇 명인데.
질투하고도 모자라서 하루종일 내 생각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엘리스에게는 오늘,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할 예정이다.
아마 처음 겪는 아픈 경험이라 많이 매운맛이겠지만, 잘 견뎌주겠지.
"그렇게 책을 기부하고 싶다면, 받아줄게."
"미리 사과할게. 너무 화내지 말아 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음을 지었다.
진짜 화내지만 말아줬으면 좋겠다. 질투만 하는 정도로 조절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곧 불꽃이 사라진다.
나는 온몸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개안'
순간적으로 시야가 넓어지고, 엘리스의 손에 모이고 있는 마력을 관측할 수 있었다.
나도 마법진을 준비했다.
빠르게 방출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방출해낼 수 있지만, 그렇게 승리해서는 의미가 없다.
사르륵-
시작 신호인 불꽃이 사라지고, 엘리스는 곧바로 마법진 구축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내 마법을 방해하기보단 먼저 마법진을 만들겠다는 전략 같다.
사실 마력 운용에 자신이 있다면 저게 제일 무난한 전략이겠지.
하지만 나는 끌어올린 마력으로 마법진을 구축하지 않았다.
그저 엘리스의 마력을 읽었다.
마법진 사이의 틈, 마력의 강도, 엘리스의 호흡.
1초도 안 되는 틈 사이에서 보이는 모든 요소들을 분석했다.
이렇게나 보여주는 요소들이 많으면, 역산도 쉬울 수밖에 없다.
손을 살짝 저어서 엘리스의 마력을 흐트러트렸다.
"…?!"
거의 완성되기 직전인 마법진이 흐트러졌다.
엘리스는 그제서야 날 바라봤다.
나는 천천히 마법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땅에 떨어진 나무늘보가 기어가듯이, 단단한 마법진을 천천히 그려냈다.
엘리스는 표정을 찌푸리곤 내 마력에 간섭을 시작했다.
이게 싸움이라면 수준 차이가 나더라도 무슨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순수한 역산의 대결은, 실력 차이를 절대 좁힐 수 없다.
게다가 엘리스는 계산과 해석을 진행해야 하지만, 나는 그냥 '이해'한다.
그 차이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
엘리스가 아무리 마력을 간섭하려고 해도 내 마법진은 그려졌다.
자기가 마법진을 그리려고 하면, 칼같이 마력을 간섭해 마법진을 파훼시켰다.
"하…."
결국, 엘리스는 손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내게 패배했다.
그녀는 허망한 얼굴로 내 손에 완성돼있는 마법진을 바라봤다.
"오, 오오…! 이호연 생도! 역산할 줄 알잖아요! 왜 미리 말하지 않았나요!"
"방금 운 좋게 익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 아니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1학년 마법사중에 인재가 또 나왔네요. 대박이야 대박!"
교수는 내 개소리보다는 빅토리아 아카데미에 생긴 호재를 더 기뻐하는 모양이다.
난 교수를 신경 쓰지 않고 엘리스를 바라봤다.
엘리스는 왜 자신이 진 것인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엘리스."
엘리스는 주먹을 꽉 쥐고 나를 바라봤다. 째려보는 눈이 무서웠다.
"너, 그 눈은 대체 뭐야."
자신의 패배 이유가 내 '개안'이라고 결론지은 듯했다.
사실 거의 맞긴 한데, 없어도 이기긴 했을 거다.
마음만 먹으면 마법진을 일 초 만에 완성하면 이길 수 있다. 의미가 없을 뿐이지.
"당연히 비밀이지. 아, 이거 뒤끝 없는 거 맞지?"
"… 하아. 마음대로 해. 그래서 뭘 의뢰하고 싶은데. 하나 정도는 내 재량으로 해 줄 수 있어."
엘리스의 아버지는 프랑스 '아이리스'의 길드장이다.
프랑스의 대표 길드인 아이리스 길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보 길드라고 이름을 날리고 있다.
아이리스 길드는 어떤 정보도 돈만 주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위협도 많이 받고 있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무력을 갖추고 있기에 꿋꿋이 길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리스 길드에 의뢰할 정도의 돈은 나도 있어. 그럴 거면 너한테 내기도 안 걸었지."
"설마…."
"응. 네가 생각하는 거 맞을 거야. 이건 나중에 얘기하자. 설마 내기에서 져놓고 나 몰라라 할 건 아니지?"
"… 그래. 걱정 마. 무조건 해줄 테니까."
아이리스 길드에 의뢰하는 게 아닌, 길드장에게 직접 의뢰하는 루트.
이건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엄청난 인맥과 운이 따라줘야 하는데, 엘리스가 부탁하면 허락해 줄거다.
아이리스 길드장은 엄청난 딸바보니까.
근데, 대답하는 게 약간 화난 것 같은데. 아니겠지?
"엘리스. 화 안 났지? 단순한 내기였잖아."
"전혀. 화 안 났거든?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줄래?"
…화 난 거 같은데.
[퀘스트 완료!]
뭐, 퀘스트는 완료됐으니 괜찮겠지.
히로인 공략 퀘스트는 나한테 손해를 준 적은 없었으니까.
*
"근데 진짜로 역산은 어디서 배운 거야? 엘리스를 이길 정도면 엄청난 거 아니야?"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이론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강의실에 가던 중에 루시가 말을 걸었다.
"계속 말했잖아. 그냥 독학이라니까."
"와… 이호연 미쳤넹."
"대단해요. 호연 씨…."
"부끄러우니까 그만 좀 해. 이론 수업 준비나 하자."
점심시간 내내 저러니까 진짜 부끄러웠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루시와 루미의 나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아닌가, 그냥 양옆에 쌍둥이를 끼고 다녀서 쳐다보는 건가?
우리는 강의실에 도착하고 수업 준비를 했다.
"아니이. 근데 솔직히 현대 헌터학은 너무 싫어. 들으면 이해는 되는데, 이걸 내가 왜 외워야 하냐고."
"진정해 루시. 오늘 나랑 같이 동아리방에서 공부하자."
"그럴까? 그럼 이호연 너도 와. 너 공부 잘하잖아."
"나?"
사실 뒤에 일정이 없어서 괜찮긴 한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나?
루미랑 한 번 할 기회기도 하고.
"그러지 뭐."
"나이스. 오늘 선생님 생겼다. 엄청나게 뜯어먹어야지."
"그래도 호연 씨 공부 너무 방해하면 안 돼."
"알았어. 알았어. 그리고 너도 물어볼 거잖아."
"그렇긴 한데…."
드르륵-
"안녕하세요! 강효린 교수 입니다! 오랜만이에요."
현대 헌터학의 교수인 강효린 박사다.
자주 바쁜 일이 생겼다면서 수업을 날로 먹는 아주 명교수다.
"오늘은, 시험을 대비해서 요점 정리를 해볼게요. 시간이 없어요! 쉬는 시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달릴 거니까 졸지 말고 집중합시다!"
"아, 망했다."
내 옆에서 루시의 망연자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아카데미 정문에 세워지는 세단.
엘리스는 자연스럽게 차에 몸을 실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가씨."
"응, 고마워."
운전석에 탄 중년 남자는 익숙한 듯 차를 몰기 시작했다.
엘리스는 항상 저녁을 먹으러 가는 레스토랑이 정해져 있었다.
"중간고사 준비는 잘 돼 가십니까?"
"응, 무난히…."
무난히 1등이겠지. 라는 말을 내뱉으려다가 멈칫했다.
머릿속에 한 명의 남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1등 아니면 2등 일 것 같네."
"2등이요? 아가씨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엄청난 인재가 있나 보네요."
"응. 저번에 아저씨가 말했던 홍보부 이호연."
"아하, 그 잘생긴 친구. 이야 공부도 잘하다니 대단하네요. 저번에는 오우거를 잡았니 뭐라니 하던데. 진짜인가?"
"글쎄. 진짜일지도."
엘리스는 믿지 않는 편이었지만, 오늘 이호연의 마법 수준을 보고 나니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호연 뒷조사 좀 해줘."
"오! 드디어 친구에게 관심이 생기셨나 보네요?"
"그런 건 아니야. 그리고 이호연은 아저씨가 직접 조사해줘. 부탁해."
"그렇다면, 관심이 아니라 견제인가요."
중년 남자의 분위기가 조금 변했다. 실실 웃던 아저씨는 사라지고,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었다.
"뭐, 그냥 감이긴 한데… 조금 꺼림칙해서."
"알겠습니다. 아가씨가 시키시면 저는 따를 수밖에요."
"응. 항상 고마워."
엘리스는 본래 남에게 큰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남다은도 따로 뒷조사하진 않았다. 나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호연은 왠지 마음에 걸렸다.
학생회장과 친밀한 관계였고, 성녀님과 사이에서 흐르는 이상한 기류.
게다가 1학년 쌍둥이 미녀들과의 동아리.
비정상적인 마법 실력까지.
수상한 사안이 하나만 없었어도 엘리스는 뒷조사까지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쯤되니, 엘리스는 이 중에 하나라도 걸리지 않을까? 라는 심정이었다.
걸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
"아, 맞다. 아빠한테 전화 좀 해줘. 딸이 부탁이 있다고."
"예. 알겠습니다. 이호연 생도의 조사는 언제부터 하면 될까요?"
"으음, 편할 때 해. 그렇게 급한 건 아니니까."
"그럼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응응. 마음대로 해."
엘리스는, 별 생각 없이 이호연의 뒷조사를 명했다.
그리고, 설마 자기가 생각했던 모든 곳에서 이호연이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