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70화. 백아영과 봉사활동! (2)
햇빛 보육원은 던전이나 게이트에 의해 고아가 된 아이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도 이 곳은 항상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원장의 능력이 좋은 탓인지, 아이들이 강한 덕인지, 하여튼 좋은 일이었다.
보육 선생님들도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일하다보니 아이들과의 유대감이 높았다.
그건 봉사를 오는 나도 마찬가지다.
"오빠아! 나도 들어줘! 비행기!"
"알았어. 간다…! 이얍!"
"하하핫! 더 높이!"
와, 더럽게 힘드네.
보육원의 여자아이들이 주르륵 줄을 서서 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 번 태워준 여자아이는 줄 바로 뒤에 가서 서는 바람에 끝이 없었다.
"누나, 저, 저도 비해, 비행기…."
"이리 와."
"네, 네엣. 갈게요…."
엘리스의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아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눈을 꼬옥 감고 엘리스의 손에 들려 하늘을 나는 모습이 열 받았다.
아니, 저 새끼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벌써부터 여자를 밝히네….
진짜 엄청 부럽다.
나도 엘리스한테 비행기 타고 싶어.
"오케이! 비행기 태워주는 씬 좋네요!"
마침 우리를 찍고 있던 사진 기사님도 오케이 사인을 보냈으니, 비행기는 그만두기로 했다.
"자자, 얘들아. 비행기 한 번씩 탔으니까 이제는 다른 거하고 놀자. 형아가 8단 저글링 보여줄게."
"8단 저글링이라고…?"
옆에서 듣던 엘리스도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최근에 마력 능력치가 오르고 운용 능력이 늘어나면서 이제 화염구 저글링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자아 갑니다.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에요~."
화르륵-!
"오…."
화염구들이 내 손 위를 춤추며 날아다니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오빠 멋있어!"
"형아! 나도 알려줘!"
아이들의 동경하는 눈빛이 내게 쏟아진다.
옆에서 엘리스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이 정도의 재능을 저글링에 낭비하고 있다니…."
저글링이 얼마나 중요한데!
아이들하고 친해지려는 내 노력의 결과물이다. 오자마자 호감 누나가 돼버린 엘리스는 모르겠지만.
"자자, 얘들아. 이쪽으로 와요."
내 저글링에 다들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백아영이 음료수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우와! 뽀까리!"
"저기 잘생긴 형아가 사 온 거니까 꼭 고맙다고 해야 해?"
"네! 고마워요. 잘생긴 형아!"
"고마워 오빠!"
"응. 맛있게 먹어."
릴리아나가 열심히 돈을 벌고 있어서 통장에 여유가 많다.
그래서 올 때마다 먹을 걸 사 오는데, 덕분에 보육원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
"역시, 호연 씨는 사람이 한결같아. 올 때마다 아이들 먹을 걸 잊지 않고 사 오네."
"그럼그럼. 게다가 우리 거까지 챙겨오잖아. 됨됨이가 좋아."
"그쵸그쵸. 나는 언젠가 유명해질 줄 알았다니까?"
어느새 내 옆에 선 보육 선생님들이 내 칭찬을 해왔다.
다들 나이가 조금 있으시다보니 수다가 많으시다.
이게 뭐라고. 겨우 몇만 원으로 이렇게 생색낼 수 있는 일도 드문데, 안 하는 게 병신이지.
"에이, 뭘 또 그러세요. 그냥 기본적인 예의잖아요."
"세상에 기본적인 예의도 못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보육 선생님들하고 만담을 하고 있는 동안, 백아영은 엘리스와 말하고 있었다.
"엘리스 양. 고생했어요. 힘들어 보이는데 가서 좀 쉬어요. 제가 교대할게요."
"사양하지 않을게요. 감사합니다. 성녀님."
"아이들과 노는 거 처음이죠? 엄청 분주해 보이던데."
"…네. 사실 좀 피곤하네요."
미녀들의 수다는 언제나 좋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니까.
엘리스는 잠시 쉬겠다며 타고 온 리무진으로 들어갔다.
왜 볼 때마다 차가 바뀌지? 돈이 그렇게 많나.
"자, 누나랑 뭐 할까요?"
백아영은 방금 교대해서 힘이 넘쳤다.
'나도 교대해주세요….'
원장님께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원장님은 푸근한 얼굴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볼 뿐이었다.
하긴, 홍보부 활동인데 한 명은 있어야지.
엘리스가 없으니 나라도 열심히 해야한다.
"누나! 우리 소꿉놀이 해요! 소꿉놀이!"
"소꿉놀이? 그럴까?"
백아영은 익숙하게 아이들과 섞여 들어갔다.
역시 봉사를 오래 다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스킬이 장난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슬쩍 나한테 눈길을 주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응! 언니가 아빠고, 저기 오빠가 엄마야."
파란 머리카락을 가진 귀여운 여자아이가 백아영에게 매달렸다.
"그 반대지 바보야!"
"아, 그런가? 그럼 반대로!"
유독 우리에게 달라붙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 파란 머리의 여자아이와 빨간 머리의 남자아이였다.
보통 이런 특이한 머리색을 가진 사람은 능력자의 자식이다.
"알았어. 그럼 누나가 엄마, 그리고 저기 형아가 아빠 맞지?"
"형아가 아니야! 엄마는 아빠를 여보라고 불러야 해!"
"여, 여보라고…?"
백아영이 내 눈치를 살피며 날 바라봤다.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86 ]
- [ 성욕 : 72 ]
- [ 식욕 : 20 ]
- [ 피로도 : 30 ]
현재 상태 : 내, 내 처음을 강제로 가져간 사람한테 여보라고 부르다니… 나, 나쁘지 않을지도…? 혹시 여보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화를 내며 강제로 따라오라고 하면 어쩌지. 하읏….
미친 여자.
이건 그냥 성욕에 미친 여자다.
"아, 알았어. 이건… 그, 놀이니까. 그쵸… 여보?"
"응. 여보."
"하으…."
백아영은 얼굴이 빨개졌다.
남들이 보기엔 창피해서 저러는 거로 생각하겠지만, 저거 분명히 흥분해서 저러는 거다.
찰칵 찰칵!
사진기사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신나게 우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번에도 봤지만 엄청난 직업정신이네 진짜.
나는 사진기사를 신경쓰지않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로 했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밥 주세요!"
"엄마! 안아줘! 나도 안아줘!"
"아빠! 나 비행기 태워줘! 높은 비행기!"
"아빠. 저글링 보여줘!"
사실 소꿉놀이라고는 했지만, 그냥 호칭만 바뀌었을 뿐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호칭이 바뀐 것만으로 만족하는지 더욱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쓰게 웃었다.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지만 이렇게 강하게 자라줘서, 괜히 가슴이 울컥했다.
휘휘 고개를 저어서 부정적인 마음을 털어내고, 다시 아이들과 놀아주려는데 백아영이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뭐야? 애들하고 놀아줘야지. 왜 나를 보고 있어.
*
"네, 네에… 오늘 맞다고요? 감사합니다…. 아뇨. 같이 촬영을 하는 건 아닌데, 그냥 시간도 남겠다 오늘 가려고요. 네네. 걱정 마세요. 제가 잘 말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백아영은 친구인 민예지에게 학생회 홍보부 활동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햇빛보육원에 전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나갈 준비를 끝마쳤다.
"나는 봉사를 가는 거야. 다른 의미는 아무것도 없어. 응."
백아영은 자기암시를 하며 햇빛보육원으로 향했다.
원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원장실에 숨어있던 백아영은, 기다리던 목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이호연이 원장님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뭐야, 아영 씨? 왜 여기 계세요?"
일부러 이호연을 만나러 보육원에 찾아왔다는 사실을 들킬 뻔했지만, 다행히 즉흥적인 임기응변으로 무사히 넘어갔다.
방금 애드립은 백아영 자신이 생각해도 좋은 애드립이었다.
그 후에 엘리스와 이호연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걸 구경하다가, 마침 엘리스가 지쳐 보이길래 교대해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호연은 백아영이 바로 옆에 왔는데도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백아영이 계속 눈길을 보내도 무시할 뿐이었다.
'왜, 왜 무시하는 거지…?'
죽은 오우거 옆에서도 자신을 덮치던 이호연의 성욕을 백아영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만나자마자 "으하하 보지다. 보지."라고 하면서 덮쳐올 거라 생각했던 백아영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호연이 아이들과 노느라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아니야! 엄마는 아빠를 여보라고 불러야 해!"
"여, 여보라고…?"
그러다가, 소꿉놀이가 시작되면서 이호연도 백아영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아, 알았어. 이건… 그, 놀이니까. 그쵸… 여보?"
"응. 여보."
"하으…."
백아영의 속옷이 조금씩 젖어 들어갔다.
자신의 처녀를 억지로 가져간 남자에게 여보라고 부르는 일은… 의외로 흥분되는 일이었다.
소꿉놀이는 계속되었다.
아이들은 백아영을 엄마라고 부르며 품에 안겨 왔다.
백아영은 가슴 한쪽이 쓰라린 감정을 느꼈다.
'대체 이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시련을 내리신 겁니까.'
부모가 없다고 인생을 살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남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걸 못 누리는 아이들을 보고있으면 백아영의 가슴이 아파왔다.
어떻게든 이런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은 백아영의 천성이 울려왔다.
그리고, 시선 외곽에 이호연의 얼굴이 비쳤다.
그는 여러 감정이 혼합된 표정으로 아이들을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윽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호연의 눈은… 이미 지난 오래 전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엄마, 왜 그래?"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백아영은 아이를 꼭 안아주며 생각했다.
'이호연도, 내가 도와줘야 해.'
저 아이도 분명 힘든 삶을 살아왔을 거다. 첫 만남 때 보여줬던 그 모습은 아직도 백아영의 눈에 선했다.
'그래, 분명 저 아이도 삐뚤어진 거야. 그러니까 그런 본능적인 사람이 된 거야. 내가 이끌어줘야 해. 그 본능을 남한테 쏟아붓게 하면 안 돼…."
백아영은 혼자 굉장한 생각을 이어가며 이호연에 대한 망상을 부풀렸다.
이미 백아영의 마음속에선 이호연을 도와주기 위한 계획들이 차곡차곡 세워지고 있었다.
"자자, 얘들아. 간식 먹고 다시 놀아요~."
그때 원장님이 와서 간식시간임을 알렸다.
"간식!"
우다다다-!
아이들은 간식을 먹으러 갔고, 이후에는 낮잠이나 실내활동을 할 예정이다.
원장님과 보육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들어갔으니, 마당에는 백아영과 이호연만 남아있었다.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백아영은 먼저 말을 걸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침묵을 깨고 이호연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영 씨. 그래서 왜 찾아왔어요."
"차, 찾아오다니? 나는 그냥 평소처럼 봉사를 하러…."
"제가 바보인 줄 알아요? 저 보러 온 거잖아요."
'어, 어떻게 알았지?'
백아영은 당황했지만, 티나지 않도록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너, 너한테 할 말이 있어. 건물 뒤로 따라와."
*
백아영의 눈동자가 주인 잃은 강아지 꼬리처럼 흔들렸다.
그런데도 입과 코는 가만히 있는게 약간 어색한 얼굴이었다.
저걸 포커페이스라고 생각하는 건가?
"너, 너한테 할 말이 있어. 건물 뒤로 따라와."
백아영은 그 말을 남기고 건물 뒤로 향했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따라오라니까 따라가 볼까.
설마 대놓고 강간해달라고 하진 않을 거 아니야.
… 설마 그러진 않겠지?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86 ]
- [ 성욕 : 72 ]
- [ 식욕 : 20 ]
- [ 피로도 : 30 ]
현재 상태 : 내가 제대로 이끌어줘야 해. 남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내가 책임져야 해.
"…?"
뭐라는 거야.
현재 상태로는 백아영의 마음을 짐작 할 수 없었으니, 일단 백아영의 뒤를 따라갔다.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꼭 나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너… 무슨 속셈이야."
이윽고 사방이 가려진 건물 뒷편에 도착한 후에 백아영은 입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사진을 그렇게 찍었으면서 아무 연락도 없고, 협박도 하지 않고, 덮치지도 않는다니…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
"어…."
이게 무슨 뜻일까. 천천히 고민해봤다.
강간범한테 왜 연락도 없고 협박도 안하고 덮치지도 않냐고 물어보는 건….
"그러니까, 빨리 협박하고 덮쳐달라는 거죠?"
말을 어렵게 돌려 하는 재주가 있네.
"아니야!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솔직히 얘기해!"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86 ]
- [ 성욕 : 78 ]
- [ 식욕 : 20 ]
- [ 피로도 : 30 ]
현재 상태 : 이래도 안 덮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제발 사진을 지워달라고 절규하면서 옷부터 벗어야 하나….
나를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백아영의 눈에서 뜨거운 열기가 새어 나왔다.
백아영은 굉장히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러다가 사회적으로 같이 매장 당하면 어쩌려고, 도대체 얼마나 급한거야.
"맞아요. 실은 오늘 덮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죠…."
어쩔 수 없이 백아영에게 맞춰줬다.
사실 오늘은 사람이 많기도 하고 위험해서 자제하려고 했는데, 저렇게까지 나오면 나도 노력해야지.
마침 섹스하면 호감도가 얼마나 오르는 지도 체크해볼 수 있고 좋겠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 짐승…!"
백아영은 그제서야 안심한 듯 표정을 풀었다. 표독스럽게 노려보던 눈이 다시 순하게 변했다.
'진짜 연기 더럽게 못하네.'
나는 조용히 뒷 말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