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64화. 정기 회의
"아… 머리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물체가 내 옆구리에 붙어 있었다.
옆을 보니 알몸의 릴리아나가 색색거리며 자고 있었다.
'음, 예쁘네.'
드디어 관상용을 넘어 실사용 서큐버스가 되었다!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가니 혀로 핥아오는 게 드디어 서큐버스의 본성을 찾은 것 같다.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였다.
어제 새벽까지 릴리아나와 놀아주다 보니 늦게 일어났다.
"어? 뭐야 이거."
스마트 워치에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있었다. 오늘 아침에 온 메시지였다.
수린 누나 : 호연아. 쉬는 도중에 미안해. 이 메시지 보면 나한테 연락해줘.
엥? 문수린? 갑자기 뭐지?
급한 일인가 싶어서 바로 메시지를 남겼다.
나 : 무슨 일이세요. 수린 누나?
띠링-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답장이 바로 왔다.
수린 누나 : 정말 미안한데… 그, 오후 1시 정도에 학생회실로 와줄 수 있어? 학생회 정기 회의가 있거든….
나 : 네? 오늘요?
어제 바로 던전 실습 훈련이 있었고, 사망자까지 발생한 테러가 있었는데 당사자인 나를 부른다고?
수린 누나 : 응, 힘들면 거절해도 상관없어. 엘리스 양은 참석 가능하다고 하더라.
나 : 저도 참석할게요. 딱히 엄청 피곤하지도 않고.
수린 누나 : 고마워. 이따 보자.
"흐음… 뭔가 걸린단 밀이야."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오늘은 임시 휴교 일이었다. 어제 1학년 던전 실습 훈련에서 테러가 일어났고, 희생자도 있었다.
물론, 2.3학년들은 던전 실습 훈련이 없었을 테니 피로감이 없겠지만, 학생회 1학년들은 피로감이 엄청날 것이다.
나와 엘리스 단 두 명이긴 한데….
"두 명 다 피곤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나는 테러 때 느꼈던 피로보다 어제 두 번이나 섹스를 한 피로가 더 심했다.
엘리스야 뭐 걱정할 필요도 없고.
"으웅…."
릴리아나가 내 혼잣말을 듣고 몸을 뒤척거렸다.
"하아암… 주인님?"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릴리아나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내게 안겨 왔다.
눈을 뜨기 힘든지 으으음. 하면서 내게 머리를 비벼왔다.
"잘 잤어?"
"네에에…엣!"
릴리아나의 볼을 이리저리 늘리면서 가지고 놀자, 그제야 잠이 깬 듯 내게서 팍하고 멀어졌다.
"이, 이… 미친놈이 개수작을!"
"네가 달라 붙어와 놓고 뭔 소리야."
"으, 으악!"
릴리아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어제 일이 생각이라도 난 건가. 뭐, 나갔다 오면 괜찮아지겠지.
메시지 함을 더 확인했다.
임솔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임솔 교수 : 올~ 오우거 잡았다며? 잘 살아있지? 정신 차리면 내 연구실로 와~.
"미쳤나. 진짜."
나중에 어째서 내 주변 여자들은 다 미친 년인지에 대한 고찰을 해봐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제자가 던전에 갇혔다는데, 걱정 한마디는 해 줄만 하잖아.
근데, 임솔이 내가 오우거 잡은 걸 어떻게 알고 있지?
설마.
나는 약간의 불안감과 함께 에브리데이를 실행했다.
추천을 많이 받은 상위 글에 내 이름이 몇 개나 보였다.
가장 위에 있는 글에 들어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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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누나 SNS 갱신! 1학년 이호연 언급!]
- 오늘은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던전 실습 훈련 테러로 인해 발생한 위기상황에 파견을 다녀왔습니다. 테러는 마인 집단인 '판데믹'에서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일로 인해 생겼던 피해자들을 기리면서, 오늘도 마인 척살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영웅은 등장하는 법인 걸까요. 제가 엄청난 소식을 들었습니다.
던전 실습 훈련 지원에 나섰다가 테러에 휘말린 성녀 백아영 헌터를 구해준 생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테러에 휘말린 성녀님은, 오우거 세 마리와 마주쳤다고 합니다.
그때 같이 있던 전투 요원이라고는 1학년 생도 단 한 명. 성녀님도 포기하려 했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 생도는 각성하면서 오우거 세 마리를 단신으로 처리했다고 해요.
온몸에 장기가 부서지면서도 성녀님을 구해주신 익명의 생도님.
여기서 이름을 밝히진 않겠지만 곧 유명해질 테니, 그 때 저도 스리슬쩍 언급해주시면 좋겠네요. 호호.
#하영이의 협회 소식 #빅토리아 아카데미 #테러 #추모 #성녀 #백아영 #미래의 S급 헌터 #영웅 #A클래스
위에 쓰여 있듯이 백아영하고 같이 던전에 들어갔던 생도가 오우거 세 마리를 처리했다고 하는데, 백아영하고 이호연이 같이 구조된 걸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님.
[사진]
심지어 둘이 같이 던전에서 구조되는 증거 사진도 찍혀있음. 아마 성녀님 도촬하다가 찍힌 거 같아.
잘 보면 이호연 생도 복에 피가 엄청나게 묻어있지.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는 거야. 하영 누나가 말하던 사실과 일치함.
일단 하영 누나가 말하는 생도는 99% 이호연인데, 솔직히 나도 팩트체크가 안 된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스타 만들기인지, 진짜 실력인지.
진짜 오우거를 혼자서 잡았다면 당연히 실력이겠지만… 한 마리도 아니고 세마리? 이건 말이 안 되잖아.
근데 또 하영 누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ㅇㅇ;
나도 진짜 모르겠다. 중립기어 박을랜다.
추천 : 780 비추천 :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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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건 진짜다. 역대급 유망주 등장이다.]
[하영 누나 실망이네 ㅋㅋ. 깨끗한 척 신뢰있는 척하더니 결국 돈 받아먹고 이런 거 쓰고 자빠졌네.]
[ㄴ 아니 그럴 거면 진작 더 큰 거 받아먹었겠지 ㅄ아. 생도 하나 띄우는 거로 돈을 얼마나 받겠냐?]
[이제까지는 신뢰도 올린 거지. ㅇㅇ 이제부터 돈 받으면서 SNS 활동 할 듯. 팔로우 끊는다.]
[좀 믿어라. 개새기들아. 증거가 몇개가 나왔는데 아직도 안 믿어 ㅋㅋ 난 호연코인 탑승한다.]
[내가 현역 1티어 길드원들한테 물어봤는데 생도가 오우거 잡는 건 진짜 개소리래. 근데 또 하영 누나는 절대 거짓말할 사람 아니라고 하는데?]
[ㅇㅇ 나도 물어봤는데 하영 누나가 착각한 거 같대. 일단 돈 받고 이런 거 쓸 사람은 절대 아니래.]
[그렇다고 1학년이 각성하는 게 말이 되냐?]
[오우거 세 마리 잡으려면 각성을 세 번은 해야 되는 거 아님?]
[다시 한번 말하는데, 난 이 새끼 얼굴 보면 짜증 나서 비추천함]
"하영 누나가 누구야?"
잘 생각해보니, 구조대에서 툴툴대던 여자 한 명이 있긴 했다.
꽤 이쁘게 생기긴 했던데. SNS 스타였구나.
"아니, 근데 시발 날조를 얼마나 해놓은 거야."
오우거 세 마리를 동시에 만나지도 않았고, 각성은 하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저딴 말을 듣고…
"백아영이겠구나."
하긴 생도가 갑자기 오우거를 때려잡았으니, 각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근데 좀 적당히 올려 쳐야지. 안 그래도 귀찮은데.
일단 학생회에 먼저 가고, 그다음에 임솔 교수를 만나러 가야겠다.
"릴리아나! 나 나간다?!"
"나가던가! 어디 가서 죽지 말고!"
저건 무슨 인사법이야?
나는 대충 씻은 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기숙사를 나섰다.
학생회는 동아리 건물에 있으니, 얼마 가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
빅토리아 아카데미 학생회 회의실에선, 휴교 날인데도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잖아요. 학생 회장님!"
서기로 보이는 여학생이 상석에 앉은 문수린에게 어이가 없는 듯 얘기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이, 그깟 던전 폭주가 뭐라고… 1학년 주제에 정기회의를 거르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학생회장을 중심으로 왼쪽에 앉은 여학생들과 오른쪽에 앉은 남학생들이 대립하고 있었다.
"애초에 홍보부는 학생회 소속이긴 하지만 독립적인 기관으로 운영하기로 했잖아요. 이건 이미 끝난 사항으로 알고 있는데요."
"솔직히, 그게 말이 됩니까? 그것도 부회장님이 없을 때 학생회장이 단독으로 밀어붙인 일이잖아요. 저희는 동의 못 하겠습니다."
"그만. 부회장. 당신도 같은 생각인가요?"
문수린은 오가는 고성을 잠재우고, 부회장에게 직접 물었다.
"그런 건 아닌데… 다른 학생회 인원들이 불만이 이렇게나 많으면 수용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
"…하."
누가 봐도 부회장의 수작질이었지만, 저렇게 나오니 더 짜증났다..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왜 저러는 건데.'
어제 일을 내팽개치고 이호연을 구하러 가는 바람에, 뒷수습하느라 밤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 상태로 정기회의를 하러 나왔는데, 부회장 패거리에서 홍보부 인원들은 왜 회의에 참석을 안 하냐고 물고 늘어진 것이다.
"애초에, 테러라고요. 테러! 그런데 휘말린 신입생들을 선배가 되어서 괴롭히는 거, 창피하지도 않아요?"
"죽거나 다친 것도 아니고, 홍보부 1학년 둘 다 매우 정상으로 귀가했다는데, 회의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라도 있습니까? 저는 그게 더 궁금한데요."
"하아… 말이 안 통하네."
"됐어요. 둘 다 참석한다는 답변이 왔으니, 그만하죠."
사태를 보다 못한 문수린은 대화를 중단시켰다.
문수린을 중심으로 한 회장파와, 부회장 신동민을 주축으로 한 부회장파는 학생회에서도 앙숙이었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얼마 전에 문수린에게 고백한 신동민을 거절한 뒤로 이런 다툼이 더 잦아졌다.
문수린에게 이런 다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힘들어서 쉬어야 할 이호연이 휴일에 불려 나오는 상황 자체가 짜증 났다.
파파라치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활동하는 SNS 계정은 수없이 해킹 시도를 당해서 지워버렸다.
모든 일 하나하나가 다 스트레스였다.
"그러면 신입생들이 오면 회의를 시작하죠."
부회장 신동민은 문수린의 마음도 모르고 실실대면서 앉아있었다.
*
"엘리스잖아?"
기숙사에서 동아리 건물에 가는 길에 엘리스를 찾아냈다.
엘리스는 나와 맞은편에서 스마트워치를 유심히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호다닥 엘리스에게 달려갔다.
"엘리스? 어디 가는 길이야?"
"아악! 깜짝이야!"
"어, 미안…."
엘리스는 엄청 놀란 듯 한 손으로 심장을 부여잡고 날 원망스럽게 노려봤다.
그렇게 노려봐도… 난 인사만 했을 뿐인데.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 호감도 : 26 ]
- [ 성욕 : 2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30 ]
현재 상태 : 분명히 이쪽인데, 왜 분수가 안 나오는 거지?
엘리스의 스마트워치에선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지도가 빛나고 있었다.
"혹시 너도 학생회 가는 길이야?"
엘리스도 정기 회의에 참석한다고 했으니 아마 맞을 거다.
"어떻게… 아, 너도 학생회지."
"너랑 같은 홍보부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
"그건 그렇다 치고. 맞아. 학생회에 가고 있었는데, 너도야?"
"응. 정기회의라고 해서. 어차피 같은 길이니까 같이 가자."
"따라오는 건 막지 않을게."
엘리스는 그 말을 남기고 내가 왔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 저기, 어디가?"
"학생회에 가고 있잖아."
엘리스는 '몰라서 물어?'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너 거기 가만히 있어 봐."
난 엘리스의 스마트 워치에서 빛나는 지도를 훔쳐봤다.
"야, 이거 방향이 반대잖아. 분수는 네가 걸어온 방향 쪽에 있어."
"…?"
엘리스는 잠시 지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 길치 속성이 있었나? 전에도 한번 이랬던 것 같은데.
"따라와. 시간 없으니까 내가 안내해줄게."
"안내해주는 게 아니라, 네가 가는 길이랑 내가 가는 길이 같은 거야."
"알았어. 알았어. 가자."
엘리스가 걸어온 방향으로 3분 정도 걸어가자, 동아리 건물이 보였다.
도대체 이걸 왜 지나쳐 온 거지? 이렇게 크게 [동아리]라고 쓰여 있는데.
슬쩍 엘리스를 보니 마술이라도 본 눈으로 지도와 건물을 번갈아 보며 보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자."
"응. 알았어."
나와 엘리스는 동아리 건물에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17층으로 가줘."
[네. 알겠습니다]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너, 지금 우리가 왜 정기 회의에 불려온 건지 알아?"
조용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엘리스가 내게 말을 걸었다.
"…? 정기 회의니까 불렸겠지."
"바보야? 지금까지 홍보부가 정기 회의에 참여한 적은 없었어. 애초에 학생회 소속이지만 독립적인 기관이라고 했었잖아."
그런 적이 있었나? 난 못 들은 것 같은데.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나한테 얘기 안 해준 거 아니야?
"심지어 어제 테러 때문에 학교도 휴교한 상태에서, 1학년 두 명이 소속돼있는 홍보부를 갑자기 정기 회의에 불렀어.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아마 부회장 쪽일 거야. 너도 정신 바짝 차려."
"어, 응. 고맙다."
뭐야, 길 찾아줬다고 이러는 건가? 갑자기 챙겨주니까 어색하네.
띵동- 17층입니다.
차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학생회 층에 도착했다.
학생회실과 회장실, 휴게실 등이 보이고, 안쪽에 있는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우리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똑 똑 똑.
"들어와."
문수린의 목소리였다.
슬쩍 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여기는 여자 남자가 나뉘어서 앉는 게 관행인지, 왼쪽 자리에는 여자만 앉아있었고, 오른쪽 자리에는 남자만 앉아있었다.
엘리스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더니 왼쪽으로 가서 앉았다.
나는 오른쪽에 가서 앉을까?
몸을 움직이려던 그때, 오른 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아이씨, 무슨 1학년 새끼들이 회의에 제일 늦어. 하여튼 요즘 새끼들은…."
"…?"
뭐야 저 땅딸보 새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