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62화. 뒤처리
콰과광!
한 여생도가 구조대 맨 앞에서 구조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커다란 바위들이 하나씩 옆으로 날아간다.
"학생회장.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 나머진 우리에게 맡겨도 되잖아."
"아니요. 아직…! 안에 사람이 많이 남았어요."
문수린은 송글송글 땀을 흘리면서 마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염동력.
그녀의 고유 권능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타고난 마력의 속성.
문수린은 마력의 조작과 형상화 그리고 실체화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염동력이라는 마법.
하지만 그녀의 재능은 그 이론을 깨부쉈다.
솨악-
문수린의 손을 따라 흙들이 파내지며 길을 만든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길을 따라선 절대 다른 사람들을 구조할 수 없었다.
각각의 통로가 서로 이어지지 않고 독립되어있었다.
그렇기에 던전의 벽을 뚫어야 했다.
"미쳤네. 저게 생도 맞아?"
"그러게요. 근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아까부터 쉬지도 않고 혼자 길을 파고 있는데."
"안에 남자친구라도 갇혔나 보지."
정작 같이온 헌터들은 할 일이 없었다. 그들은 전투요원이지 벽을 뚫는 속도는 문수린이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문수린은 몇 시간 동안 혼자서 길을 뚫고 있었다.
이미 몇십 명의 생도를 구조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잠시만요. 이 뒤에 한 명, 아니 두 명 더 있어요."
문수린의 뒤에서 마나 탐지기를 가동하며 따라오던 전문가가 얘기했다.
"여기가 확실해요?"
"네, 마력이 느껴져요. 한 사람의 마력은 매우 빈약해요.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라요! 당장 뚫어야 해요."
문수린은 이를 악물고 마나를 더욱 끌어올리며 흙을 뒤로 날려 보냈다.
걸리는 돌이나 바위들도 순식간에 치워나갔다.
"거의 다 뚫렸어요!"
"마력 반응이 생기고 있어요! 혹시 전투 중인가?!"
투두둑.
벽이 뚫리면서 반대편에서 빛이 새 나오기 시작했다.
문수린은 다시 마력을 끌어올리며 벽을 파헤쳤다.
벌써 10번이 넘는 구조였다. 그중에 이호연은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문수린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생도와 힐러팀들을 구했다.
하지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과 사람의 신체 조각들을 지나치며 점점 불안감이 올라왔다.
학생회장으로서 볼 업무에다가 이사장 손녀로서 아카데미의 관리까지 맡아야 했으며, 3학년 우수생도로서 받는 기대와 견제, 게다가 개인적인 시간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파파라치들까지.
문수린은 기댈 곳 하나 없이 사막 한가운데에 꼿꼿이 서 있었다.
그 힘든 상황에서 이제서야 마음의 오아시스를 찾았다. 문수린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콰앙!
문수린은 마력을 모아 벽을 한 번에 뚫어버렸다.
이번에도 허탕이면 바로 다음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떨어진 바위 파편들을 치워내고 마력으로 흙먼지를 거두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엥? 수린 누나?"
그리고, 듣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목소리가 문수린의 귀에 들려왔다.
"호, 호연아! 괜찮아?!"
와락-
"수, 수린 누나? 왜 그러세요. 아니, 애초에 왜 여기 있으세요?"
"호연아… 다행이야. 살아서 다행이야."
순식간에 문수린의 긴장감이 풀렸다.
이 따뜻함. 이 편안함이 그리웠다.
내 마음의 안식처. 유일하게 얼굴만 봐도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이 사람은… 절대 놓칠 수 없어.'
문수린의 마음속에서 이호연의 존재가 점점 커져갔다.
"학생회장! 여기 뭔가 이상해!"
"마, 말도 안 돼! 이거 혹시!"
문수린의 뒤를 따라온 구조대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 씨, 아직 부족한데.'
하지만 문수린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구조대원들의 시선이 한 장소에 꽂혀있었다.
그곳엔… 오우거 두 마리가 있었다.
오우거는 적어도 B급 헌터 둘 셋이 모여서 레이드를 하는 몬스터다.
지능이 없는 몬스터 중에선 가히 최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기엔 배에 구멍이 난 오우거와 머리가 반이 날아간 오우거 두 마리가 나란히 쓰러져있었다.
문수린은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백아영과 이호연. 보이는 사람은 둘뿐이었다. 백아영은 엄청난 힐러지만 전투능력은 전무하다고 알려져 있다.
전투 요원은 이호연 뿐이었다.
이호연의 찢어지고 흐트러진 옷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격렬한 전투 중 꽤 큰 상처를 입은 것 같다.
"호, 호연이 너…!"
이호연은 고개를 돌려 백아영의 안위를 살폈다.
다른 여자 헌터들이 백아영을 케어주는 광경을 보고 나서 안심한 듯했다.
'역시 성격까지 좋아.'
하지만 성격은 둘째치고, 지금 당장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너… 오우거 두 마리를 혼자 처리한 거야?"
*
"어…."
또 이상한 상황이 됐다.
섹스는 다른 곳에서 할 걸 시발.
"아영 씨, 호연 생도 말고 다른 일행은 없었나요?"
저쪽에서는 백아영에게 겉옷을 덮어주면서 케어해주고 있었다.
"네, 네에. 저희 둘 뿐이었어요. 아, 그 저쪽 통로로 좀 가다 보면 시체가 하나 있어요. 저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오우거에게 먹히던 상황이라… 신원 확인은 못했어요."
"그, 그럼 오우거가 한 마리 더 있었다는 말입니까?"
"어… 그렇죠?"
"그렇다면 설마… 이호연 생도 혼자서 오우거 세 마리를 잡았단 말입니까?"
"어? 그, 맞긴 하죠?"
백아영은 대화를 이어갈수록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생도, 그것도 1학년이 오우거 세 마리를 혼자서 처리했다고?!"
"이건 특종감이네. 역대급 유망주야…!"
"자, 잠시만… 그게 맞긴 한데 그…."
내가 분명 힘을 숨겨달라고 부탁했던 거 같은데, 그새 다 말해버리네.
문수린을 등지며 백아영에게 답답한 눈빛을 보내자, 백아영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헤헷. 거리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 미. 안. 해.
그리곤 입 모양으로 내게 사과했다.
"일단, 저는 여기까지 하고 성녀님과 호연이를 데리고 나갈게요. 슬슬 마력이 부족해서 돌아가야 할 타이밍이거든요."
"네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진행하겠습니다."
문수린도 우리와 같이 나가려는 생각인가 보다.
근데 정말 문수린은 왜 구조대에 온 거지? 학생회장으로서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을 타이밍일텐데?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60]
- [ 성욕 : 3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59 ]
현재 상태 : 이제 가서 어떻게 수습하지… 아, 모르겠다. 호연이 구했으면 됐어.
대체 문수린 공략은 아직 진행도 안 했는데 왜 저렇게 날 좋아하는 거야?
말해주지 않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앞장서는 문수린을 따라 던전의 벽을 통과했다.
하나가 아니라 십수 개나 되는 벽에 구멍이 나 있었다.
이런 식이니까 못 찾았지. 벽을 몇 개를 넘어온 거야 대체.
"이거 다 학생회장이 한 거에요?"
"별 거 아닌 재주 중에 한가지입니다. 성녀님."
"아니, 그렇게 고상하게 안 불러줘도 되는데요…."
백아영과 문수린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더럽게 힘들어서 빨리 기숙사에 가고 싶었다.
곧 밖으로 나가는 포탈이 보였다.
'드디어 이 질리는 던전에서 나가겠네.'
우리는 자연스럽게 포탈에 몸을 맡겼다.
잠시 어지러운 느낌 후에, 눈을 떠보니 대기실은 아수라장이었다.
긴급치료를 받는 생도들부터 얼굴까지 천에 덮여있는 생도들, 그리고 그 옆에서 울고 있는 생도들과 어른들….
씁쓸한 광경이었다.
"다, 당장 구하러 가야 해요. 저도 도와야 해요."
"아니, 아영 씨도 지금 상태가 정상이 아니에요. 치료를 받으셔야 할 판에 무슨 소리예요 진짜."
"그, 그렇지만…."
백아영은 변태지만 남을 구하는 행동에 있어서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저벅저벅.
그때,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의 교수가 다가왔다.
"예, 아직 실종 상태인 인원이 6명 더 있습니다. 현재 구조작업이 진행중이며…."
담임 교수인 김진혁이었다. 스마트 워치로 통화를 하면서 오다가, 우리를 보고 잠시 멈춰 섰다.
"다시, 현재 2명 추가로 구조 확인되었습니다. 남은 인원 4명입니다. 예.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통화를 마무리한 김진혁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성녀님, 그리고 이호연 생도.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일단, 성녀님은 저쪽 치료소에 들르시고, 이호연 너는 따라와라."
김진혁은 그 말만을 남기고 다시 뒤돌아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
나는 김진혁을 따라 A클래스로 돌아왔다.
생도들 몇몇과 의료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 생도들은 여기서 메디컬 체크를 하는 모양이다.
"어, 이호연 생도는 하나도 이상 없네요. 옷이 찢어져 있긴 한데… 아, 성녀님하고 같이 들어갔다고 하던데 이미 치료를 받았구나~."
간호사는 아하~ 아하~ 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더니, 혹시 모르니 꾸준한 상태 체크를 위해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아무 의심 없이 알려주려다가 간호사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는 걸 보고, 김진혁 교수에게 연락하면 된다고 했더니 쳇. 하고 혀를 찼다.
우리 아카데미는 의료진들도 썩어빠졌구나. 생도 번호나 따려고 하고.
메디컬 체크가 끝났으면 기숙사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여기서 대기하는 생도들은 아직 안 나온 생도들을 기다리는 팀이었다.
"혹시 루미랑 남다은은 구조됐나요? 저랑 같은 조여서요."
"네에, 루미 생도랑 남다은 생도는 제일 먼저 구조됐어요. 남다은 생도는 바로 돌아갔고, 루미 생도는 여기서 기다리다가 루시 생도랑 같이 기숙사로 돌아갔어요."
"아하, 감사합니다!"
다행이다.
혹시 남다은이 루미를 버리고 가진 않았나 걱정했는데, 역시 괜한 걱정이었다.
엘리스도 훈련에 참여하긴 했지만, 워낙 강하니 구조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저도 가볼게요. 고생하세요."
"네."
대충 인사를 마치고 A클래스를 나왔다.
피곤하네. 빨리 기숙사에 가서 쉬고 싶다.
가는 길에 문수린에게 감사 메시지를 남겼다.
루시와 루미에게도 문자를 보내려 했는데 이미 괜찮냐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훈련중에는 스마트 워치로 연락망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서 이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를 생각해준 행동에 고마움을 느끼며 정성스럽게 답변해주고 기숙사로 들어왔다.
릴리아나는 방에서 방송중이었고, 나는 생도복을 벗고 거실에 있는 내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오, 존나 피곤해…."
몇 시간 내내 던전을 돌아다니는 일은 나에게도 꽤 큰 부담이었다.
이대로 눈을 감을까 고민하던 때에, 내 눈앞에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스페셜퀘스트 완료!』
"아, 맞다. 이거 있지."
『내기의 신과 면담을 원하시나요? YES / NO』
원하지. 당연히 원하긴 하는데… 지금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 이런 신과의 대화는 원래 몇 시간이고 대화를 해도 끝나고 나면 시간이 하나도 안 지나있는게 국룰이지만, 혹시 모른다.
내 몸의 안전도 고려해야 하고, 내일 수업도 고려하면 주말에 하는 게 좋은데….
"혹시 며칠만 뒤로 미루면 안 될까요? 토요일에 하고 싶은데."
『알겠습니다!』
다행히 내기의 신은 착한 사람인가보다. 안 될 줄 알고 한 번 찔러봤는데 통했다.
"아, 근데 잠 다 깼네."
딱 자기 좋은 타이밍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샤워나 하고 씻어야지.
아까 내팽개쳐놨던 생도복을 챙겨서 욕실로 향했다.
속옷까지 벗은 후에, 생도복과 속옷을 가지런히 쌓아놓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생도복이랑 속옷까지 피가 스며들긴 했지만, 세탁기에 돌린 다음에 마법의 옷걸이에 걸어놓으면 알아서 깨끗해진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기술력은 세계 제일!
클린 마법으로 한 번 몸을 깨끗이하긴 했지만, 아직도 몸이 찝찝했다.
진짜 더러운 게 묻어있거나 그런건 아닌데, 뭐랄까 정신적인 문제였다.
직접 물로 씻어야 개운해지는 느낌이 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생도복을 들고 세탁기에 집어넣…
"잠시만. 진짜 없어. 착각이 아닌데 이거?"
귀신인가? 이번엔 확실하게 체크했다. 내 속옷이 또 없어졌다. 이 기숙사에 귀신이 살고 있어!
는 개뿔.
난 쿵쿵 걸어가 릴리아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이 변태 서큐버스년이 이젠 도벽이 생겼네.
쾅! 쾅!
문을 부술기세로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
"야! 릴리아나! 문 열어!"
"왜, 왜 그래?!"
우당탕! 하는 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 나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문. 열. 어."
덜컹.
릴리아나는 내 마력을 담은 목소리를 거역하지 못하고 문을 열어줬다.
"드, 들어오지 마! 잠시만 기다려봐!"
"비켜."
온 몸을 던져 내 전진을 막으려는 릴리아나를 밀치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는 내 속옷 2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하나는 무슨 짓을 했는지 동글동글 말려서 흠뻑 젖어있었다.
하나는 아직 건들지 않았는지 깨끗했다. 이게 방금 내가 벗은 속옷이다.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면서 릴리아나를 쳐다봤다.
"미, 미안…."
릴리아나는 온몸이 빨개진 상태로 고개를 푹 숙였다.
변태 노처녀 서큐버스의 다리 사이에선 뚝 뚝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