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59화. 던전 실습 훈련 (3)
크르르…
오우거는 날 관찰하듯 천천히 고개를 움직였다.
그에 맞춰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전투 감각의 전조다.
이제는 전투 감각의 느낌도 익숙해졌다.
두근.
앞에 보이는 오우거는 본능에 몸을 맡기고 살아간다.
본능적인 파괴와 약탈, 손에 잡힌 것은 먹이고, 움직이는 것은 부순다.
이 멍청한 몬스터는 아는 것도 없으면서 쓸데없는 호기심이 왕성하다.
그렇기에 처음 보는 무언가는 항상 관찰한다.
공격이 오면 그때서야 반격해도 늦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아직 오우거가 날 관찰하고 있을 때 한 방 먹여야 한다.
오우거에게 들키지 않도록, 몸속에서 마나를 천천히 응축시켰다.
몸 외부에서 마나가 움직이는 순간 오우거가 달려들 것이다.
그러니까, 순식간에 마법진을 발현해서 오우거가 인지하지 못 했을 때 피해를 줘야 한다.
그건 내 특기였으니, 자신있었다.
앞으로 삼 초.
아직도 오우거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뒤에 백아영한테도 눈길을 주고 있었다.
'됐다!'
촤르르르륵!
순식간에 완성된 마법진들이 마법을 뿜어낸다.
한 손으로 오우거의 눈을 노려 화염구를 발사했다.
바람의 칼날들은 오우거의 배를 향해 날아가서 피부를 난도질했다.
쾅! 쾅! 푸슈우우-
화염구의 연기가 오우거를 감싸고, 잠시 후 양팔로 얼굴을 막고 있는 오우거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 완전 미친 새끼네 이거."
놀랍게도 놈의 얼굴을 막고 있던 팔은 찰과상 하나 없이 깨끗했다.
수십 개의 칼날이 난도질한 배때지에만 작은 생채기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오우거는 크르릉 하면서 불쾌함을 내뱉었다.
쿠어어어!
오우거가 발을 구르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이제 완전히 나를 적으로 인식해버렸다.
쿠어어!
눈이 시뻘개진 오우거는 내게 달려오며 주먹을 휘둘렀다.
침을 질질 흘리는 꼴에 더럽게 가까이 가기 싫었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백아영이 오들오들 떨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나 회로의 마나를 빠르게 회전시킨다.
나는 '가속'을 사용하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백아영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면 차라리 앞에서 싸우는 게 나았다.
쿵! 쾅!
오우거의 주먹을 피하면서 백아영과 전장이 멀어지도록 이동했다.
쿠어어!
부웅-!
내 눈앞을 지나간 오우거의 주먹에 내 머리칼이 휘날렸다.
저거 제대로 맞으면 무조건 늑골 나간다.
나는 천천히 오우거를 백아영에게서 멀리로 유도하면서 다시 마나를 모았다.
'어쩌지?'
피부가 너무 단단해서 내 마법으로 피해를 주기가 힘들다.
고위 마법을 준비하기엔 시간도 없고 마력도 부족했다.
그렇다면, 적은 마력으로 높은 파괴력이 필요했다.
두근.
심장이 빠르게 가속한다.
몸은 오우거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공격을 피하면서도, 머리는 차갑게 식은 상태로 대책을 생각했다.
적은 마력으로 높은 파괴력을 내려면, 근거리에서 공격해야 한다.
그래야 날아가면서 발생하는 힘의 낭비가 사라진다.
거기에 '가속'으로 공격의 속도까지 높여서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야 한다
가닥은 잡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가지.
마력으로 강화한 주먹을 오우거의 배에 꽂는다.
또는 오우거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마법을 만들어서 배에 꽂는다.
다행히도 오우거가 화염구를 맞고 그을음 하나 없었던 것과 달리, 바람 칼날에는 약간이지만 생채기가 생겼다.
돌파구는 그쪽이었다.
크어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오우거의 주먹을 고개를 숙이면서 피했다.
그와 동시에 손에 마력을 응축했다.
코튼 가드를 만들 때와 같은 나선 형태로 마력을 뽑아냈다.
단단한 방어를 추구하는 나선 형태는, 역으로 가장 단단한 공격 수단이 될 수 있다.
단단한 마력에 날카로움이라는 의지를 담는다.
마력이 날카롭게 벼려졌지만, 이래선 바람 칼날과 다를 게 없다.
나선으로 꼬인 마력을 구형으로 회전시키면서 응축한다.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나선의 구는 조금씩이지만 오우거의 피부를 갉아먹을 것이다.
쿠웅!
오우거의 팔이 다시 한번 내 옆을 내려친다.
'다음 공격에 뚫는다.'
일부러 거리를 가까이 유지하며 커다란 동작을 유도했다.
멍청한 오우거는 내 의도에 당해서 양손을 바닥에 내려찍었다.
쿵!
'가속'
손에서 돌고 있는 나선의 구를, 바닥에 찍힌 손을 들려고 하는 오우거의 옆구리에 박아넣었다.
"쿠어어어억-!"
까드드드득ㅡ!
흉악한 소리와 함께 단단한 외피가 조금씩 깎여나갔다.
오우거의 옆구리가 피범범이 되고, 외피보다 연약한 내피가 나오는 순간.
오우거의 배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외피가 조금이라도 뚫리면 끝이다.
내 마력은 안쪽으로 깊이 파고들어서 회전하며 내피를 썰어댔다.
오우거의 피와 파편이 던전 바닥에 흩날렸다.
"끝났네."
쿵!
오우거는 배때지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절명했다.
──『 스파이럴 』 ──
▶ 고유 스킬
▶마력을 삼중 나선 형태로 꼬아서 단단하게 만들고, 나선으로 도는 구 형태로 압축한다.
매우 고도의 마력 제어 능력이 필요하다. 던지기보단 가까이서 박았을 때 파괴력이 크다.
───────
"스파이럴?"
내가 원하지 않는 근접용 스킬들만 생겨난다.
시발. 내 생각은 이게 아닌데 진짜.
"호연아! 너, 너! 무슨 생각으로 오우거와 싸운거야!"
백아영은 나를 걱정하는 얼굴로 내게 찾아와 따졌다.
"아영 씨를 버릴 수는 없잖아요. 차라리 같이 죽고 말지."
"… 너!"
겉으론 화내는 것 같지만, 백아영의 기분이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여기서 더 호감도를 높이면 좋겠지만, 지금 내 상태가 말이 아니다.
머리가 어지러운 게, 마나 탈진이 올지도 모른다. 빨리 몸에 마나를 채워야 한다.
"저 잠시 명상 좀 할게요. 호위 좀 해주세요."
"어, 응. 누가 오면 바로 말할게."
백아영을 인간 알람 삼아놓고 명상으로 마나를 채웠다.
마나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방금 싸움에서 거의 다 써버렸다.
그래도 나는 명상의 효율이 높으니, 금방 끝날 것이다.
"후우…."
눈을 감고 천천히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학생 회장님, 잠시만요. 다 이해하겠는데, 일단 진정하시고!"
"비켜요. 당장 이 인간을 봐야 하니까."
"저기! 아이고!"
문수린은 이사장실을 지키는 비서를 밀어버리고 이사장실로 들어갔다.
"수린아, 웬일이냐."
상석에서 소파에 몸을 맡기고 있는 한 백발의 남성이 보였다.
그는 문수린을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한가하게 커피나 마실 때에요? 던전에 생도들이 갇혔는데?"
하지만 문수린은 그런 남성의 시선에 관심도 없는 듯 불만을 쏟아냈다.
당장 던전 폭주 때문에 사람들이 갇혀있는 데, 여기서 여유롭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수린아. 내가 방금까지 구조대 소집에 물자 지원에 마법사들 배정까지 마친 걸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그리고 커피는 먹지도 않았다만."
"다 알아요. 근데 쉴 시간이 있어요? 생도들이 갇혔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너도 알지 않느냐."
"아니요. 직접 몸으로라도 나가세요."
"…수린아!"
그의 몸에 대해서 말하는 건 금기였다.
하지만 문수린은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호연. 그가 던전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슴이 멍해졌다.
그제서야 자신이 이호연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마음을 자각함과 동시에, 오늘 일을 모두 내팽개치고 이사장실로 달려왔다.
이사장도 제대로 돌아간 문수린의 눈을 보고, 일단은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문가들은 모두 불렀고, 현역 헌터들도 다수 투입해서 수색할 예정이야. 걱정 말고 기다려라."
"아니요. 이사장님이 안 간다면 제가 직접 갑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1학년 생도 중에 좋아하는 남자라도 있는 거냐?"
"그, 그건 아니지만! 새, 생도들은 모두 저희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일원 아닙니까!"
"…."
이사장의 얼굴이 급격히 굳기 시작했다.
고개를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돌리고 슬쩍슬쩍 눈을 마주쳤다가 도망쳤다 하는 리액션.
그는 이런 반응을 보내는 손녀를 자주 봐왔다.
대화의 주제를 돌리고 싶을 때 내는 반응이다.
"어, 어쨌든! 저라도 직접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그리고 사건이 끝날 때 까지 일은 파업하겠어요."
"수, 수린아! 네가 없으면 아카데미가 안 돌아가!"
"그건 제 알 바 아니에요. 당장 중요한 건 던전 폭주에요. 수색 규모를 최대로 늘리고 헌터들도 추가 모집해야겠어요."
"그, 그건 다 아카데미 예산이 아니냐!"
"제가 벌어다 준 돈이 이것보다는 훨씬 많을 텐데요."
문수린은 이사장을 째려보며 차갑게 말을 내뱉고 이사장실을 나갔다.
이사장은 답답함을 느꼈다. 도대체 그 남자가 누구길래 내 손녀를 이렇게까지 만드는 거지?
오랜 삶의 경험상, 이런 놈은 쉽게 죽지 않는다.
어떤 고얀 놈인지 던전에서 탈출하면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는 이사장이었다.
*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감사해요."
"으응, 아니야. 네 덕에 나도 잘 살고 있는 걸 뭐."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던전을 탐사했다.
오우거를 잡고나서 내 자신감도 꽤 올랐다.
듣자하니 오우거는 현역 헌터들도 혼자 잡기 힘들어하는 몬스터라고 한다.
그런 몬스터를 나 혼자서 잡아냈으니, 자랑할만하잖아. 응?
"그래도, 오우거 이상의 몬스터는 안 나올 거에요. 애초에 오우거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고…."
코볼트같은 애들이 나오던 던전에서 오우거가나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아무래도 마인 집단 판데믹에서 무언갈 쓴 모양인데, 원작에 나왔던 기억이 없어서 답답했다.
"그렇겠지? 불행 중 다행…."
쿵. 쿵.
"아, 씨발."
나도 모르게 백아영 앞에서 욕을 해버렸다.
다행히 백아영은 못 들은 것 같다.
쿵. 쿵.
백아영도 이 불길한 발소리를 듣느라 내 혼잣말을 들을 정신이 없었다.
심지어, 이 발소리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
두 마리. 오우거 두 마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두근.
다시 전투 감각이 끓어오른다. 하지만 괜찮다.
이미 한 번 잡아본 경험이 있었기에, 솔직히 겁나지 않았다.
멍청한 오우거를 잡는 방법은 두 마리라도 다르지 않다.
'가속'으로 단순한 공격을 피하다가 배때지에 '스파이럴' 을 꽂으면 끝이다.
물론 설명과 다른 세부적인 내용이 있었지만, 큰 개요는 저거였다.
쿠어어-!
오우거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한 마리를 줄이고 싶었다.
슬슬 백아영의 체력이 위험한 수준이라, 빨리 끝내고 쉴 장소를 찾아야 한다.
'스파이럴'
손에 나선의 구를 생성시켰다.
'가속.'
그리고 몸 주변의 마나를 가속했다.
발끝에 마력을 모으며 거리가 가까워 질 때까지 그대로 대기했다.
쿠르르-!
나와 오우거가 서로 시야에 잡히기 직전, '개안'으로 강화된 안력은 오우거를 한발 앞서서 잡아챘다.
콰과광!
발밑의 바닥이 터져나갈 정도로 추진력을 받으며 오우거에게 뛰어 들었다.
크르?
오우거는 그제야 날 인지했지만, '가속'으로 빨라진 내 공격을 막을만큼 고등생명체는 아니었다.
크, 쿠에에엑-!
"뒤져. 이 새끼야."
오우거 한 마리의 배에 구멍이 생기고, 그대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쿠, 쿠에엑?!
그리고 남은 한 마리는 옆에 서있던 놈이 순두부가 되는 걸 보자마자 나를 인지하고 몽둥이를 휘둘러 왔다.
두근.
내 전투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이제 이런 단순한 공격은 적응하라고.
나는 가볍게 몽둥이를 피하면서 스파이럴을 준비했다.
이제 이걸 배떄지든 얼굴이든 꽂아 넣으면 된다.
"쿠어어!"
오우거가 몽둥이를 흔들다가 자기 분을 못 참고 주먹을 휘둘러온다.
가속된 공간에서 날아오는 오우거의 주먹을 피하며 얼굴에 스파이럴을 꼬라박기 직전, 생각했다.
'이게 마지막 기회야.'
지금 오우거는 내게 주먹을 휘두르는 중이다. 속도는 내가 훨씬 빠르다.
속도라면, 스파이럴로 머리를 박살내면서 오우거의 삶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내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겨우 몬스터나 잡자고 여기 들어온 게 아니다. 목표는 백아영이다.
이번이 아니면 더 기회가 없었다.
처음과 달리 지금은 거의 던전 마나 농도가 안정되었다. 이 정도의 마나 밀도라면 오우거 두 마리 이상으로 강한 몬스터가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오우거도 말이 안 되는 스펙인데, 그 이상이 나올 리가 없지.
나는 이미 백아영이 보는 곳에서 오우거 1마리를 순살해버렸다.
근데 오우거 1마리는 쉽게 잡았던 놈이, 다른 몬스터들한테 죽기 직전의 상처를 입는다? 그건 너무 어색한 스토리였다.
결국,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상대가 오우거 두 마리인 시점.
어차피 백아영이 있다면 죽지는 않는다.
'할만해. 아니, 해야 해.'
결국 백아영을 공략하려면 이런 상황이 있어야 했다.
나는 천천히 날아오는 오우거의 주먹을 보며, 내 스파이럴이 있는 손의 속도를 살짝 낮췄다.
내가 오우거에게 맞더라도 스파이럴이 이미 오우거를 죽일 정도의 위치가 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콰직-! 푸슈우욱-!
먼저 내가 오우거의 주먹에 맞았고, 그 직후 오우거의 머리통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오우거의 피가 허공에 흩날리며 내 몸에 파편들이 묻었다.
"쿠흡…! 끄억…."
그리고 내 입에서도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프다. 진짜 뒤질 것같이 아프다. 씨발.
늑골은 무슨, 내장이 다 찢긴 것 같다.
"호, 호연아…! 안돼!"
그래도 백아영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계획은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