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57화. 던전 실습 훈련
목요일 첫 수업은 기다리던 던전 실습이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모토는 언제나 실전 같은 훈련이다.
안전이 보장된 훈련만 하다 보면, 실전에서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상이 아닌 실제 장소에서 실습을 많이 진행했는데, 던전 실습 훈련도 그 중 하나였다.
저번에 처음 실습은 맛보기였으니, 이번 실습부터 진짜 던전 실습 훈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도 형태는 동굴형 던전이었다.
물론 저번과는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
통로도 더 작고 구불구불하며, 길도 어렵고, 나오는 몬스터들의 수도 많고 각각의 개체들도 까다로울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조는 서로 전략을 짜며 사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우리 조만 빼고.
"…."
"…."
"…."
'시발.'
익숙한 침묵이다.
같은 조 남자인 이병훈. 이 새끼는 오랜만에 봐도 반갑지가 않네.
남다은은 조용히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고 있었고, 루미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랑 루미는 눈을 마주치면서 눈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제 뭐 하면 될까요?'
'그냥 대기하고 있자. 어차피 전략도 못 짤 것 같은데.'
'알겠어요.'
루미와 눈으로 전략을 짠 나는,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우리는 집합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기다리다 보면 교수가 와서 던전 실습 훈련의 위험성에 대해 열심히 말하고, 생도들은 열심히 딴청 피우겠지.
오늘은 진짜 사고가 터지니까 나는 잘 들어야겠다.
스윽.
갑자기 남다은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 장소 밖으로 나갔다.
"잠시 화장실 다녀올게."
"네."
나는 화장실을 핑계로 슬쩍 그 뒤를 따라갔다.
남다은은 이번에도 저번에 통화하던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또 여동생하고 통화하나 보네.
동생 사랑이 참 지극하다.
저번에는 운 좋게 통화 내용도 살짝 들었지만, 그 때와 달리 오늘은 아직 통화를 시작하지 않았다. 신경론에 의하면 아직 통화에 신경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니, 지금 더 다가가면 걸릴지도 모른다.
나는 더 따라가지 않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
아카데미의 구석진 곳에서, 한 소녀가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 언니! 오늘은 뭐 하는 날이야?!
"오늘은 던전에 들어가. 이번에는 저번보다 위험한 던전이라고 하더라."
- 헉! 언니 괜찮은 거 맞지???
"당연하지. 언니 엄청 센 거 알잖아."
남다은은 미소를 지으며 근육을 강조하는 포즈를 지었다.
- 맞아! 민규 아저씨도 언니가 아카데미에서 제일 세다고 했어! 역시 대단해!
민규 아저씨.
그 이름을 듣는 남다은의 심정은 참담해졌다.
동생과 자신을 어릴 적부터 돌봐주던 바이어 길드의 대표인 민규 아저씨.
남다은은 엄청나게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친절한 길드 사람들과 재밌는 학교생활. 그리고 병약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동생.
동생의 병원비는 학생이 부담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뜻 부담해주겠다고 한 민규 아저씨와 길드원분들에게 항상 감사함을 느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꼭 빚을 갚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그런 기특한 남다은도 자신이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노예계약서를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과 동생을 키워왔던 양육비와 동생의 병원비. 그 합이 약 20억. 그리고 20년간 꾸준히 남다은도 모르게 이자가 붙으면서, 총 상환금액이 500억까지 불어났다.
그녀는 당연히 그 부당계약에 항의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남다은의 동생은 민규 아저씨가 운영하는 길드 소속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고, 동생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동생을 빼 오려고 수속을 밟을 수도 없었고, 경찰에 신고하자니 역시 동생이 걸렸다.
이 쓰레기들은 처음부터 남다은의 몸이 목적이었다.
주축은 믿었던 민규 아저씨.
항상 남다은 자매를 챙겨주던 사람이기에 충격은 더 컸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일까, 몸을 요구받던 남다은은, 적성검사에서 능력자의 재능이 발견되었다.
고등학교 입학시 능력자의 재능이 발견된 사람은 의무적으로 능력자 교육을 받아야 했다.
바이어 길드에선 계약이 잠시 미뤄졌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남다은을 훈련소로 보냈지만, 남다은의 재능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훈련소에서부터 기수 1위를 달성하며 눈에 띄고, 빅토리아 아카데미에 추천 입학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미모와 실력 때문에 유명해지기까지 했다.
일이 꼬여버리자 바이어 길드에선 노선을 바꿨다.
미래 S급 헌터의 동생을 인질로 잡아 버린 것이다.
바이어 길드에서 원하는 조건은 두 개였다.
첫 번째는, 바이어 길드와 계약한 유망주 남다은이 모든 실기 시험에서 1위를 차지하며 바이어 길드의 위상을 드높이면서 졸업할 것.
두 번째는, 졸업 후에 바이어 길드와 종신 계약을 맺을 것.
그게 빚의 변제 조건이었다.
재능은 있지만 아무 인맥도 없고 도움을 청했다가 동생이 해코지를 당할까 봐 두려웠던 남다은은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싸가지 없게 행동하며 남다은 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깎는 행동이, 남다은의 유일한 반항이었다.
- 언니?
"으응, 민규 아저씨 말이지. 맞아. 언니는 엄청나게 강하니까 걱정하지 마."
- 응응! 사랑해 언니! 다음엔 언제 볼 수 있어? 민규 아저씨가 언니 아카데미 수업이 너무 바빠서 못 온다고 하던데.
"… 한 달 뒤에 갈게. 미안해. 수업이 많아서…."
이것도 동생과 접촉을 최대한 줄이려는 수작질이었다.
하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저 순진한 동생의 얼굴에 우울함이 깃들게 하긴 싫었다.
"언니 이제 진짜 가야 해. 다음에 또 전화할게."
- 힝. 알겠어. 내일 또 전화해줘. 여기 할 거 없어서 너무 심심해.
"… 응. 꼭 전화할게."
하루에 동생과 전화할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다.
남다은은 이를 악물고 홀로그램 전화를 끊었다.
"하아…."
쾅!
남다은의 주먹이 복도의 벽에 박혔다.
"구해줄게. 꼭. 구해줄게…."
구해준다는 말을 조용히 되뇌는 남다은이지만, 그녀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자리에 돌아오니 대기 장소 중앙에 교수가 서 있었다.
"자, 다들 자리에 모여라."
나는 재빨리 우리 조로 복귀했다.
"오늘은 저번 훈련과 달리, 전 인원이 한 번에 진입한다. 제1 목표는 탈출이지만, 몬스터를 가장 많이 잡거나 유물을 가장 많이 발견한 조에 추가점수를 부여하겠다."
교수의 추가점수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단독행동을 하는 조들이 많아졌고, 테러에 피해를 본 생도들도 늘어났다.
이번 던전 실습에서는 단독행동을 하면 절대 안 됐다.
"오늘 진입할 던전은 꽤 강한 몬스터들도 존재한다. 던전에선 1초도 방심해선 안 된다. 하지만 훈련인 만큼, 너희들의 뒤를 힐러팀들이 백업할 거다. 생명에 지장은 없겠지만, 치료를 많이 받으면 감점이다."
교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에 남다은이 우리 조에 복귀했다.
"자, 이제 돌입할 준비 해라. 진입은 20조부터 역순으로 진행한다."
우리는 13조였으니, 슬슬 준비해야 했다.
"얘들아, 준비하자."
조장인 내 말에 다들 일어나서 준비를 시작할 줄 알았는데…
나 빼고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사실 별로 준비할 게 없긴 하지. 음.
"다음! 13조 들어가라!"
"넵!"
명예 조장인 내가 맨 앞에서 조를 이끌어갔다.
포탈을 타고 들어가자, 이미 들어온 여러 조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 던전은 한 번에 출발하기 때문에, 다들 대기중이었다.
"호연 씨. 이번에도 남다은 양을 따라가실 건가요…?"
"으음, 글쎄."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백아영한테 붙어야 해서, 공략을 어떻게 하든 관심이 없다.
그래도 루미는 최대한 남다은과 붙여놔야 한다.
그래야 폭주하는 던전에서도 안전할 테니까.
본성이 나쁜 애는 아니라서 루미랑 같이 던전에 고립되면 버리고 가진 않을 거다.
"일단 남다은이랑 최대한 붙어있어. 이건 빠른 탈출보단 보물이랑 몬스터를 많이 잡고 탈출하는 게 중요하니까, 남다은도 저번처럼 달려가진 않을 거야."
"넷. 알겠어요!"
환한 미소를 보내며 대답하는 루미를 보니, 약간이지만 양심이 아파진다.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단다.'
애초에 앞으로 꼬셔야 될 여자가 몇 명인데, 겨우 이런 거로 미안해하는 것도 웃긴가?
나는 미리 던전에 들어와서 대기하고 있는 힐러팀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여기 성녀님 있나요?"
"어머, 귀여운 애네. 미안하지만 성녀님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란다. 다음에 와줘."
가장 가까이 있는 얼빵해보이는 힐러에게 백아영에 대해 물었는데, 축객령을 들었다.
"잠시만, 내가 아는 애야."
"아, 선배님. 그래요?"
다행히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백아영이 내 목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아영 씨."
"응, 반가워. 항상 느끼지만 호연이는 보육원에서 볼 때랑 여기서 볼 때랑 느낌이 달라서 신기해."
"아영 씨도 일 할 때 프로같아서 멋있어요."
"고마워. 흐흣."
"그러고보니 아영 씨는 어디 통로 담당이세요?"
내 칭찬에 실실 웃고있는 백아영에게 내가 원하던 질문을 던졌다.
"으응? 나는 제일 큰 통로를 맡을 거야. 저 곳은 진입하는 팀이 두 개 이상일 수도 있으니까."
"아하,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응응, 너도 훈련 열심히 해!"
백아영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현 시간부로 모든 조가 진입했다! 이제부터 조끼리 탐사를 시작해라! 혹시라도 생도끼리 마찰이 있는 경우에는, 사유 불문하고 즉시 실격이니 절대 그런 일 없도록 하고!"
때마침 모든 조가 들어온 모양이다.
드디어 시작이네.
던전 폭주는 훈련이 시작하고 약 30분 후에 발생한다.
던전 형태는 저번 실습과 똑같은 동굴형이었다. 다행히 저번에 길 찾기 능력을 입증한 만큼, 내 지시를 따라줄 거라는 기대가 들었다.
"야, 저기 젤 좁은 데로 가보자. 저런 곳이 원래 보물이 숨겨져있는 법이거든."
"우리는 어디가 좋을 지 정하고 출발할까?"
다른 조들은 어느 길이 좋을지 토의하고 있었다.
"얘들아. 이번 시험은 빠르게 나간다고 1등이 아니야. 최대한 보물을 많이 찾고 몬스터를 잡아야 해. 일단 가장 넓은 통로로 가자."
나는 지체없이 가장 넓은 통로로 우리 조를 유도했다.
이유는 당연히 백아영이 담당하는 통로기 때문이다.
'개안'
의심하지 않도록 개안까지 키고, 앞장서서 걸어가며 탐색을 했다.
크르릉-
얼마 가지 않아 몬스터들과 마주쳤다.
인간형 초록 몸뚱아리를 가진 엘프의 주적. 오크였다.
"아니, 오크가 크르릉 하고 우는 게 어딨어."
"왜 그러세요?"
"오크는 취이익이잖아!"
"…네?"
루미는 내 개소리가 무슨 뜻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개소리는 개소리로 넘기면 될 텐데, 내가 한 개소리라 받아주려고 노력하는 건가?
크르릉-
오크 두 마리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우리 조는 이미 남다은의 사냥에 길들여졌다.
세 명이 멀뚱멀뚱 남다은만 쳐다보고 있는데, 남다은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검을 들지 않았다.
이윽고 제일 앞에 있던 내 전방 3 미터까지 오크가 다가왔다.
"남다은? 야, 뭐해?"
"호, 호연 씨. 그냥 죽이세요!"
"어? 아, 맞네. 내가 죽여도 되는 거 아니야?"
루미가 남다은에게 길들여진 내 사냥본능을 일깨웠다. 역시 똑똑한 루미.
크르르-
입에서 튀어나온 송곳니 밑으로 침이 질질 흐른다.
빠르게 마법진을 발현했다. 더러운 오크 새끼의 몸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취이이익-!
그제서야 오크는 제대로 된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역시 가전제품이든 오크든 처맞아야 정신을 차려."
"… 네?"
"아무것도 아니야."
취익-! 취익-!
불타는 오크는 몸을 버둥거리면서 뒤에 서 있는 오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크르르!
오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달려왔고, 난 열려있는 오크의 입에 화염구를 던졌다.
취익-! 취익-!
오크 울음소리를 내며 불타고 있는 오크 두 마리는 최후의 저항으로 내게 달려들었지만, 콰과광! 바닥에서 솟구친 불기둥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래도 좋은 걸 배웠네. 오크는 맞아야 울음소리를 내는구나."
"어, 맞아요!"
루미도 이제 포기하고 받아주기 시작했다.
꾸르르륵-
드드드드-
"뭐, 뭐야 이거!"
갑자기 던전의 땅이 울리기 시작했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병훈이 놀라서 소리쳤다.
'왔다.'
던전 폭주의 징조.
땅의 울림이 시작된 후 1분 안에 던전이 폭주하고, 급격히 늘어나는 마나량 때문에 사람들은 한 명씩 강제로 전이 당하며 흩어지게 된다.
그때 서로 몸이 이어진 상태라면, 같이 이동할 수 있다.
"루미! 남다은 왼쪽 팔 잡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내가 헌터님들한테 보고하고 올게!"
"네, 네! 기다릴게요!"
"야, 야! 나도 같이 가!"
이병훈이 당황한듯 외쳤다. 넌 오든지 말든지 새끼야.
다행히 남다은은 루미가 왼쪽 팔을 잡는 걸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그걸 확인한 나는 저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백아영에게 달려갔다.
"아영 씨! 던전이 이상해요!"
"응, 나도 알아. 이건… 던전 폭주의 전조 일지도 몰라. 일단은 철수해서, 대책을 마련한 뒤에 다시 투입하는 게…."
쿠르르르릉!
던전이 엄청나게 흔들리며 공기의 마나 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어색하지 않게 손을 잡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그냥 빠르게 백아영의 손을 잡았다.
"호, 호연아?!"
백아영이 당황하며 손을 빼려고 했지만, 다행히 타이밍 맞게 몸이 전이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시야는 암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