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54화. 표창 수여식 (3)
저벅저벅.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비서가 학장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게임에서도 자주 보이던 학장의 여비서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수상자분들은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5명의 생도들은 학장실로 차례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건, 고급스러운 카펫에 나란히 모여있는 가죽 소파 그리고 두 줄의 소파 사이에 놓여있는 원목 테이블이었다.
거기에 거대하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밑을 비추며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운치를 더했다.
처음부터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당한 나는 상석에 앉아있는 인물을 뒤늦게 눈치챘다.
처음부터 의자에 앉아있던 학장은 학장실에 들어온 면면들과 한 번씩 눈을 마주치곤,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이야,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인재들이 여기 다 모였구만! 하하!"
짝 짝 짝
학장은 정숙한 분위기에서 혼자 열심히 손뼉을 치다가, 여비서가 툭툭 몸을 건들자 그제야 멈추고 말을 이었다.
"어, 미안하네. 내가 분위기를 잘 타서. 오늘 상 받을 사람들 얼굴 좀 미리 보려고 불렀어. 시상을 내가 직접 하게 되었거든."
여비서가 우리에게 종이 한 장씩을 나눠줬다.
나와 루시는 두 장씩이었다.
종이에는 우리가 받을 상과, 무대 위에서 대략적인 동선 등이 그려져 있었다.
"표창 수여식은 10시에 진행할 예정이네. 지금쯤 리허설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강당으로 가서 가벼운 리허설을 진행하도록 하지. 아, 거기 둘은 잠깐 남게."
학장이 나와 루시에게 눈짓하고, 뒤에 서 있던 여비서가 학장실 밖으로 나갔다.
"따라오시죠."
엘리스와 문수린, 그리고 2학년 남생도는 여비서의 뒤를 따라갔고, 나와 루시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 이호연. 지금 무슨 상황이야? 왜 우리만 남은 거야?"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
얘는 아직 감이 안 오나? 이 정도면 충분히 알 수 있잖아. 표창 수여식에 우리 둘만 따로 받는 상인데. 당연히 펠릭스를 퇴치한 상이지.
이 정도면 눈치가 느린 수준이 아니다.
어쩌면 펠릭스에 관한 일은 억지로 기억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최대한 그 쪽으로 생각을 뻗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진짜 그런 거면 내가 좀 많이 미안해지는데.
생도들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후, 학장은 입을 열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겠지만, 자네들에겐 마인 펠릭스를 색출하고 제압한 사건에 대해서 포상을 내릴 예정이야."
루시의 얼굴이 갑자기 파래졌다.
"네, 네? 자, 잠시!"
탁.
말을 꺼내려던 루시의 손을 꽉 잡았다.
놀란 듯 돌아보는 루시의 눈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일단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루시는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결국 입을 닫았다.
"으음, 물론 긴장될 만 하지. 너희들은 우수 생도들과 다르게 헌터들과 같이 수상하게 될 거야."
어쩐지, 받은 프린트 동선에 우수 생도들이 없더라니, 우리랑 따로 받는 모양이다. 긴장하지 말라고 하는 말 치곤 더 긴장되게 하는 말이다.
실제로 루시의 떨림이 더 심해졌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상이 너무 크다. 물론 생도가 아카데미에 숨어 들은 마인을 잡은 사건은 엄청난 일이 맞고, 크게 포상해야 하는 게 맞지만, 빅토리아 아카데미 입장에선 이렇게 크게 키우고 싶은 일이 아닐 것이다.
저번에 내 사고를 덮은 일도 그렇고, 원래 그런 이기적인 놈들이 대부분인 곳이다.
하지만 평소답지않게 상이 왜 이리 크냐고 물어볼 수도 없으니,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무슨 보상을 줄까 고민하고 있거든. 거의 정해지긴 했는데, 일부 반대가 있어서 말이야."
우리는 동선 체크용 프린트 말고도 비밀 서약 서류도 받았다.
도대체 얼마나 큰 보상을 주길래 비밀 서약 서류까지 쓰는 거지?
그런 내 표정이 긴장한 걸로 보였는지, 학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둘 다 긴장하지 말고. 너희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당당해져라. 이번 수여식만 끝나면 너희들에게 대한 모함도 모두 사라질 거다."
"…예. 감사합니다."
우리는, 할 말은 다 했으니 리허설에 참여하라는 학장의 말을 듣고 학장실에서 나왔다.
"나, 난 이거 못 받아."
학장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후, 갑자기 루시가 날 붙잡고 말했다.
"루시."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멍청하게 마인한테 잡혀있다가, 네가 구하러 오자마자 정신을 잃고, 정신을 차려보니 병실이었어. 근데 왜 내가 상을 받아? 난 못 받아."
루시의 눈이 떨리고 있다. 생각보다 거부반응이 심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사실 마인은 저 혼자 잡았습니다~ 할 수도 없고, 표창 수여식을 취소할 수도 없다.
★ 히로인 상태창
[루시]
- [ 호감도 : 93 ]
- [ 성욕 : 4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35 ]
현재 상태 : 그렇게 큰 실례를 했는데 상을 받을 수 없어.
다행이라고 할지, 상을 받기 싫은 이유가 나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펠릭스랑 관련되는 일 자체가 싫다거나 했으면 루시의 정신 상태를 위해 표창 수여식을 포기하는 방법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최악이 아니라 다행이다.
이러면 그래도 돌파구가 생긴다.
"루시…."
"미안해. 진짜 미안한데, 이건 너무…."
"루시. 나를 위해서 해줘."
"…."
"마인을 나 혼자 잡았다고 하면 나에 대한 관심도가 너무 커져. 혹시 나를 시기한 사람들의 위협이 생길지도 몰라."
사실 히로인들을 공략하다 보면 또 어떻게 어그로가 끌릴지 몰라서, 관심도 같은 건 이미 포기했다.
솔직히 관심받는다고 위협이 생기는 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루시는 그 사실을 알리가 없었다.
"… 알았어."
"고마워. 날 생각해줘서."
"아니야. 상 받는 것도 나한테 좋은 일인데 뭐. 나중에 커리어에 한 줄 추가되면 좋잖아!"
루시는 내 설득에 넘어갔다.
상을 받는 일이 날 도와주는 일이란 걸 알고 나서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았다.
*
"다음은, 게이트 제압에서 희생된 헌터들을 기리기 위한 묵념이 있겠습니다."
비장한 배경음이 나오며 관객들이 묵념을 시작했다.
"와, 떨린다 떨려."
"긴장하지 마. 별 거 아닐 거야."
나와 루시는 시상을 대기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별 거 아니긴! 다다음 차례가 벌써 우리 아니야? 으으.."
"뭐, 그렇지."
다음에 게이트 진압에 공을 세운 헌터들에게 주어지는 표창장이 끝나면 바로 우리 차례다.
근데 그 사람들은 왜 안 오지? 슬슬 차례일 텐데.
"아영아, 잠시만. 그냥 동료끼리 식사잖아. 왜 그렇게 까칠해."
"죄송해요. 제가 요즘 바빠서요."
"아영아, 기다려봐!"
그때 대기석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이름과 목소리였다.
이윽고 검은색 생머리에 새하얀 피부의 여성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하아, 정말. 어? 호연이?"
"아영 씨. 안녕하세요."
"아, 맞다! 오늘 표창 수여식에 마인 퇴치한 생도들 부른다고 했었지! 왜 내가 그걸 기억 못 했지?!"
이 망할 아카데미는 나랑 루시한테만 정보를 안 준 모양이다.
일 정말 개같이 하네.
"아영아! 음?"
뒤늦게 들어온 남자는 나와 백아영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눈을 찌푸리더니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나를 위아래로 훑은 남자는 약간 안심했는지 웃음을 보였다.
"아~ 그 마인 잡았다는 스타들… 아니, 생도들이구나?"
"…."
초면인데도 이렇게 재수 없을 수가 있나? 상대가 생도인 걸 알자마자 아주 개 무시를 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새끼다.
"나는 아영이랑 같이 상을 받는 강예찬이라고 해. A급 헌터고, 협회에서 일하고 있어."
"예. 반갑습니다. 아영 씨, 오늘 상 받으신다고 얘기 안 하셨잖아요."
나는 강예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게, 비밀로 하라고 했거든. 밖에 사람들도 내가 받는 거 모를걸?"
"협회 사람들도 다 오지 않았어요? 아영 씨랑 저분 만 없으면 티 날 거 같은데."
"어? 그런가?"
그런 거 같기도? 라고 중얼거리던 백아영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온다.
의외로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강간을 좋아하는 것만 빼면.
"하하, 아영이랑 아는 사이인가 보네? 어디서 알게 된…."
"다음 분들 준비해주세요!"
"앗, 가봐야겠다. 이따 봐!"
"네. 고생하세요!"
백아영과 강예찬은 안내자를 따라서 무대로 올라갔다.
아까 리허설 때 안 보이던데, 잘하겠지?
"루시, 우리도 준비하자. 이제 곧이야."
"응. 근데… 성녀님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루시가 이번 표창 수여식으로 내 여자 관계를 알아가는 것 같아서 약간 두렵다.
"주말에 봉사하다가 만났어. 나중에 얘기해줄게."
"봉사…? 너 진짜 열심히 사는구나…."
"그냥 취미야 취미."
모든 일이 다 여자를 꼬시기 위한 일인데, 루시는 나를 무슨 대단한 사람 보듯이 바라봤다.
이건 좋은 착각이니까 내버려 둬야겠다.
"다음 생도분 들! 들어오세요!"
"가자."
"…으, 응응!"
심하게 긴장한 것 같은데. 괜찮겠지?
"읏!"
루시가 너무 긴장한 것 같아서 손으로 어깨를 한 번 주물러줬다.
"긴장 풀어. 금방 끝나."
"으… 응."
- 다음은, 마인 퇴치 생도들에게 표창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처음엔 밝은 빛이 우리를 반겼고, 그다음엔 엄청난 인파가 보였다.
도대체 우리가 왜 여기서 상을 받아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의 인파였다.
그 사이로 슬쩍 보인 얼굴들은 아카데미 생도 전원에, 협회 고위 간부들, 거대 길드 간부들 등 웬만한 곳에서는 다 사람을 보냈다.
천천히 걸어가서 학장 앞에 섰다.
"위 생도들은, 아카데미에 숨어 들은 마인을 퇴치하여 사회의 모범이 되었으며, 책임감 있는 모습과 정의로운…… 이에 표창함. 생도 이 호 연."
"감사합니다."
최대한 예의 바르고 격조 있게 학장이 건네주는 표창장을 받아서 왼쪽 팔에 꼈다.
"루시.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큭."
객석 어디선가에서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루시는 표창장을 받으면서 얼굴로 모자라 귀까지 빨개졌다.
사람이 많은 곳이 그렇게 긴장되나?
"이걸로 표창 수여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학장의 선언과 박수로 표창 수여식은 끝났다.
나에겐 겨우 1분 정도였지만, 저기 앉아있는 아카데미 생도들에겐 얼마나 지루한 시간이었을까. 애도를 표한다.
짝짝짝
생도들의 기쁜 박수 소리가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우레같은 박수가 멎었을 때쯤, 학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학장으로서, 두 생도의 기개에 탄복을 금치 못했습니다."
갑자기? 끝 아니었어?
"안전하게 후생을 양성해야 할 아카데미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남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수습을 학생에게 맡긴 죄도 알고 있습니다."
학장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와 루시가 당황하고, 앉아있는 사람들도 갑자기 왜 저러나 싶은 표정이다.
"하지만 그 전에 두 학생에게 보상을 주고자 합니다."
학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의 보물창고를 개방하겠습니다. 두 학생에게 보물을 하나씩 기증하겠습니다."
웅성웅성.
객석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의 보물창고. 솔직히 나도 설정으로만 들었지, 가 본 적이 없다.
듣기로는 시대를 걸쳐 모아온 온갖 아티팩트나 귀중품들이 쌓여있다고 하는데… 소문은 소문일 뿐이니까.
"빅토리아 아카데미는 항상 생도의 편에서 진실을 수호합니다. 마인을 퇴치한 영웅들에게 안 좋은 소문이 붙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선 스타 만들기 같은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어쩐지, 표창 수여식이 끝나면 헛소문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하더니, 이래서였구나.
하긴 학장이 직접 얘기한다면, 그런 소문들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믿기 싫은 놈들은 끝까지 안 믿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내가 마인을 죽이는 걸 앞에서 보고도 사기라고 할 사람들이다.
학장의 연설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학장실로 다시 불려갔다.
"자, 수고했네. 루시양은 긴장을 많이 하더군."
"죄, 죄송합니다."
"크하핫, 괜찮아. 괜찮아. 나도 그 나이 땐 그랬어."
학장은 표창수여식이 끝나자 좀 편한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아까부터 가졌던 의문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학장님,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당연하지. 뭐든 편하게 물어봐."
"어째서, 이렇게까지 챙겨주시는 겁니까? 아카데미 입장에서 전혀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가슴에 품고 있던 의문. 학장은 내 질문을 받고 눈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한숨을 내뱉었다.
"제자한테 말도 안 할 거면서 그딴 협박은 왜 하는 거야…."
"네?"
"임솔교수가 자네를 그렇게 챙기더구나. 솔이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거든."
말을 하는 학장은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아…."
드디어 이 커다란 상과 표창 수여식의 비밀을 알아냈다.
*
"자, 이곳이 아카데미의 보물창고라네."
학장은 학장실의 책장 옆에 서서는 마법진을 그렸다.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책장이 넘어가면서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타났다.
"위치가 이러다 보니 비밀서약서류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어. 이해해주게."
하긴, 이런 곳에 숨어있을 은 상상도 못 했다.
"어, 그럼 호연 군부터 골라봐."
나는 천천히 창고로 들어갔다.
안에는 여러 가지 무구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천년검]
[빙하수도]
[전쟁의 불꽃]
.
.
.
"무기는 필요 없는데…."
항상 생각대로 안 되긴 하지만, 내 목표는 안전한 곳에서 싸우기다.
무기가 있는 곳 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여러 가지 아티팩트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법서들도 있었다.
"오… 이건 무조건이다. 여기 보물이 숨어있어."
보물창고 국룰.
원래 쓰레기같아서 아무도 안 건드는게 제일 좋은 거다.
게다가 이건 보물도 아니고 쓰레기니까 하나 더 가져오라고 하면 금상첨화다.
"그나저나 교수님, 내조 뭐야."
임솔이 뒤에서 나를 그렇게 챙겨줬는데 나는 성욕이나 채우려고 하고, 괜히 미안해진다.
'다음 한번은 섹스 없이 좋은 정보를 가져다줘야겠다.' 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아티팩트들을 이 잡듯이 뒤지다보니, 구석에서 굴러다니던 마법서 하나가 보였다.
"찾았다. 숨은 보석."
내가 찾던 보석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