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44화. 루미 공략 (44/648)



〈 44화 〉44화. 루미 공략


루시의 얼굴이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붉어졌다.


"너, 너… 다 봤지…? 그, 그럼 설마…?"

"잠시만. 기다려봐 루시. 기다려! 일어나지 마! 너 환자야 지금!"


"확실하게 말해. 나한테 이상한 짓 했어 안 했어. 나, 나 진짜 못 참을 것 같거든?"

루시의 몸에서 마력이 풀풀 날린다.

이건 진짜 위험하다. 나는 빨리 말을 이었다.


"루시. 진정하고 일단  말을 들어봐."

"근데 배가… 아니 정확히는 배 밑에 그곳이…."


루시는 얼굴을 붉히면서 나를 바라봤다. 제발 제대로 된 해명을 해달라는 듯이.

"너한테 걸린 발정 마법은 내가 역산했어. 여자의 몸은 잘 모르겠지만,  느낌은 발정의 부작용일 가능성이 커."

"여, 역산? 거짓말! 네가 어떻게 역산을 해? 그거 엄청 고급 과정이잖아!"

"증명할게. 다음  마법 분석학에서 결계해제 배우는 거 기억해? 그때 보여줄게. 그럼 믿을 수 있지?"

"…응. 대신 못 하면… 아니, 제발 해줘… 차라리 그게 나아."

"거기에 임솔 교수님도 계셨잖아. 진짜 아무 일 없었다니까? 정 걱정되면 물어봐도 돼."

"응… 알았어. 믿을게."

루시는 임솔 교수님 얘기를 꺼내자 그제야 진정한 듯했다.


자기 처녀막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안도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음… 흥분하는 내가 쓰레긴가?

혹시 들키면 구조활동이었으니 무죄라고 강하게 주장해야겠다.

인공호흡도 성희롱이라고 고소당하는 시대에 그게 통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넘겼네.'


루시도 다시 표정이 밝아졌다.

"아, 맞다. 너 깨어났다고 의사 선생님께 연락드려야 하는데."


나는 침대 옆에 놓여있는 호출구를 눌러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들어오자마자 깨어난 루시를 보고는 의사 선생님을 데려온다며 다시 나갔다.


"마침 잘 됐네요. 곧 마기 감염 결과도 나올 겁니다. 물론 이렇게 일어난 걸 보니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요."

의사 선생님은 와서 가벼운 진찰 후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당연히 결과는 이상 무.


우리는 결과를 확인받자마자 바로 퇴원 절차를 밟았다.


"그, 음. 밥이라도 같이 먹고 갈래?"

루시는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내게 말했다.

"괜찮아? 피곤해 보이는데."


누가 봐도 루시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그런 일을 당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당연히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 그래도! 밥은 먹을 수 있어!"

"그러지 말고 가봐. 순식간에 퇴원하느라 연락하는 걸 깜박했는데, 루미가 엄청나게 걱정하고 있더라."

"아, 아앗! 맞아, 루미! 루미를 보러 가야 해! 밥은 다음에 먹자! 미안해!"

루시는 얼굴이 새하얘지더니 호다닥 여자기숙사 방향으로 달려갔다.


루미의 걱정이 나와 식사보다 훨씬 중요한 모양이다.


뭐, 설정상 그런 쌍둥이니까.


나도 내 기숙사로 향했다.

릴리아나가 집은 잘 지키고 있으려나.

얘는 예뻐서 보기도 좋고 돈도 잘 벌고 다 좋은데, 내가 섹스하는 걸 보면 발정 났다고 옆에서 지랄을 해대는 게 좀 짜증 난다.

그냥 데리고 다니지 말아버릴까. 근데 그러면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

'지옥 같은 사기 계약에 당해서 이게  꼴이냐.'

그래도 돈은  벌어준다. 최근에 [신입 아카데미 여캠의 하루 수입.jpg]라는 글을 봤는데, 릴리아나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유지비용이 한 달에 천만 원이 조금 넘는데, 벌어오는 건 하루에 백만 원 단위다.

이거 완전 돈 복사기잖아. 릴리아나가 삽으로 돈을 퍼주고 있다고.


'아, 던전 실습 훈련 일정이나 다시 확인해 보자.'

한 번 확인하긴 했지만, 혹시 변동사항이 있나 확실하게 체크를 해봐야지.

잡생각을 하다 보니 기숙사에 도착했다.

띠리링-


스마트워치를 도어락에 갖다 대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숙사는 불도 꺼진 채로 조용했다. 릴리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에서 방송 중인가? 아닌데, 분명 오는 길에는 안 켜져 있었는데."

끼익. 쾅! 다다다닷!

신발을 벗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가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현관까지 릴리아나가 뛰어왔다.


"하아, 하아, 하아… 어서 와."

흐트러진 츄리닝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얘 어디 아픈가?


"엉. 그래."


"버, 벌써 나았구나! 회복이 빠르네!"


"원래 별로 다치지도 않았잖아. 나 잠시 컴퓨터 좀 쓸게. 수강 신청 확인할  있어서."

"아, 안돼!"


릴리아나가 다급하게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어쩐지 얼굴이  빨개진 것 같다.

"…?  안 되는데?"

"그, 그. 승급전 하다가 너한테 인사해주러 온 거야! 나 승급전만 하고 써!"

릴리아나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

꺄아악, 미쳤어. 미쳤어! 우당탕탕!


대체 뭐 하는 애지?







*



"진짜 안 따라갈 거야?"

"…응. 오늘은 그닥."

"그래.  쉬어라."


릴리아나도 상태가 안 좋은지 수업에 안 따라오고 집에서 쉬겠다고 했다.


그런 일을 당한다면 일반적으로 저러는게 정상인가?

하긴,  이상 없는 내가 이상한 놈이겠지.

평일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


빅토리아 아카데미를 습격한 마인 펠릭스가 생도에게 제압당한 지 이틀 만에, 나는 아카데미에 갔다.


"어? 저기 지나가는  걔 아니야? 뉴스 나왔던?"


"너, 이호연 맞지? 같은 아카데미 생도인 게 진짜 영광이야!"

"저기, 혹시 사인 가능할까…?"

상상외로 펠릭스를 잡은 여파가 컸다.

처음 보는 동기들부터, 파란색 브로치를 달고 있는 2학년과 검은색 브로치를 달고 있는 3학년들.


선배까지 나한테 아는 척을 했다.

굉장히 부담스럽다. 아싸인 나는 닌자처럼 빠르게 발을 놀리면서 1학년 동으로 향했다.

하지만 거기서도 별다를 건 없었다.


A클래스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A클래스 전원에게 둘러싸여 있는 루시와 그 옆에서 어쩔 줄 모르는 루미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교실에 들어오자, 한 무리의 여자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호연아! 괜찮아? 루시랑 같이 마인을 잡았다는  진짜야?"


"야! 진짜니까 뉴스에 나왔겠지! 이상한  묻지 마!"


"그럼 마인 잡을  얘기 좀 해주면 안 돼? 루시는 절대 안 된다고 해서…."


루시는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을 테니 당연하지.

루시가 말을 못 했는데 내가 다 설명하는 것도 꼴이 이상하니, 나도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수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유출금지 명을 받았거든. 이렇게 계속 물어보면, 너희들 큰 일 날 수도 있다?"


"어, 아니 그, 고의가 아니었어. 미안!"

나한테 사건을 묻던 여자 생도는 화들짝 놀라면서 구석으로 도망갔다.


다른 생도들도 내 말을 듣고는 좀 진정했는지, 천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주변이 조용해진 루시와 루미를 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얘들아 좋은 아침.  여기 앉아도 되지?"

"응, 당연하지."


"안녕하세요. 호연 씨."


가방을 루시의 뒷자리에 내려놓았다.

원래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아, 첫 수업부터 이론 수업은 너무 싫어!"


"그래도 퇴원하자마자 실전보다는 낫잖아. 루시."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기본적으로  분야에서 꽤 명망 높은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에 각자 스케줄에 맞춰 주마다 수업이 유동적으로 바뀐다.

오늘은 강효린 박사의 현대 헌터학이다.

"이럴 때야말로 몸을 움직여줘야 빨리 낫는 법이야. 아직도 언니를 잘 모르는구나."

어제 루시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보였는데, 오늘 보니 나름대로 회복을 한 것 같다.


원래 스토리대로 성격도 약간 죽었으면 좋겠는데.


드르륵-


"안녕하세요. 여러분~."


깔끔한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온 강효린 박사.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오늘은~! 저번에 봤던 시험을 드디어 채점해왔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늦었네요. 정말 미안해요. 대신 문제의 해설을 확실하게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강효린이 삑삑 하면서 스위치를 누르자, 강의실 앞의 홀로그램 장치에서 주르륵 생도들의 성적이 공개됐다.

하위권 학생들에겐 정말 치욕스러운 상황이지만, 나야 상위권이니까 알 바 아니지.

1등 이호연.

2등 엘리스.





"어?"


맨 앞에 있던 생도가 가장 먼저 의문을 표했다.

무조건 1등에 있어야 하는 이름이 2등에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이호연? 너 왜 1등이야?"


"우, 우와. 호연 씨! 1등이라니 대단해요!"

내 앞에 앉아있던 둘에게도 반응이 왔다.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고 있던 엘리스가 고개를 들고 성적을 바라봤다.


"…!?"

엘리스는 어…? 하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성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곤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게,  열 받은 것 같다.

어쩌지. 손을 흔들까? 안   같은데.

나는 그냥 2초 정도 눈을 마주치다가 무서워서 눈을 돌렸다.

"이야, 1등인 이호연 생도의 답안지를 채점하는데, 너무 놀라서  번을 다시 했다니까요? 평균 40점을 예상하고  문제들을 다 맞다니, 교수인 나보다  아는 것 같더라니깐?"

강효린 박사는 굉장히 부담되는 말들을 쏟아냈다.

칭찬은 좋은데, 그런 말을 하면 엘리스가 질투하는데.


"자, 그럼 해설을 해볼까요? 만점 기념으로 이호연 생도의 답안지로 해설을 해봅시다!"


아, 창피해. 이건 진짜 공개수치플이잖아.

뭔가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라 고개를 푹 숙이고 수업을 들었다.


릴리아나가 있었으면  엄청나게 놀렸을 것 같은데, 없어서 다행이다.





*





수업이 끝난 후, 책을 챙기고 있는데 루시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오늘?"

"응!"

확실히, 어제보다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어제는 서 있기도 힘들어 보였는데. 루미와 하룻밤 지낸 거로 힐링이 된 건가?

"나야 뭐, 언제든지 오케이지. 루미도 같이 갈 거지?"


"…어? 아, 응! 당연하지! 나랑 루미는 일심동체야!"


… 방금 잠깐 고민한 것 같은데. 아니겠지?

"가자 루미!"

"어, 응. 같이 가자."


우리는 빅토리아 아카데미 상가에서 식사를 마치고, 각자 기숙사로 돌아갔다.

릴리아나 덕에 재정 걱정은 없으니 꽤 괜찮은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와 루미는 두 시간 뒤에 훈련장에서 다시 만났다.


"괜찮으세요…? 퇴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괜찮아. 별로 다치지도 않았어."

"그래도…."

"스읍. 조용하고 빨리하자."



루미에게 오늘 배리어를 알려주기로 했다.

처음엔 분명 내가 배우기로 한 건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일단, 기본은 알잖아. 마력을 엮어서 단단하게 만들어야 해."


"네엡. 알고 있어요."


"그리고 단단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도 중요해. 이건 네가 나보다 잘하겠지만."


"어…  모르겠어요. 신경론 같은 건가요?"

"신경론…? 그건 뭔지 모르겠는데, 마력에 단단함이라는 속성을 담으려는 의지 말이야. 네 특기는  쪽 같으니까 거길 더 강화하는 게 좋을 것 같아."

"…? 속성? 의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요."


"…?"


아니, 난 분명 루미의 배리어에서 마력의 의지를 배웠는데, 왜 정작 루미가 모르는 거지?

"마력에 의지를 담는 거, 몰라?"

"네에, 몰라요… 마력의 속성은 들어봤는데, 단단함이라는 속성은 못 들어봤고, 의지도 처음 들어봐요… 도움이 안 돼서 죄송해요…."

"아니, 아니, 괜찮아."

루미는 이래 보여도 1학년 A클래스의 유망주다. 그런 루미가 모른다면, 다른 이들도 모른다고 보는  맞다.


'하긴, 게임에서도 의지 같은 설정은 나온 적이 없어.'


나는 마법에 대한 설정은 두루뭉술하게 넘기느라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 세계의 사람들은 마력에 의지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지도 모른다.


만약 느낌을 알더라도, 루미가 모르는  보면 확실하게 체계가 정립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찾았다. 새로운 연구 거리.'


임솔에게 가져다주면 좋을 연구 거리를 찾았다.

"일단은, 방금 들은 얘기는 잊어줘. 내가 혼자 생각하던 거라서. 나중에 설명해줄게."


"아, 네. 알겠어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시간 정도밖에 못하긴 했는데, 시간은 또 있으니까."

"좋아요. 근데, 그, 호, 호연 씨…?"


"응? 왜 그래?"


왜 눈을 꼬옥 감고 부들부들 떨고 있지? 설마 고백이라도 하려는 건가?

잠시만, 진정해. 지금 하면 큰일난다?

"호, 혹시. 내일 시간 있으세요? 주말에 그  갔던 떡볶이집 가실래요? 수, 술도 한잔하고…."

 히로인 상태창


[루미]


- [ 호감도 : 65 ]
- [ 성욕 : 78 ]
- [ 식욕 : 25 ]
- [ 피로도 : 45 ]

현재 상태 : 남자한테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다니, 미쳤어!



"…."


루미가 이런 제안을 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낀 나는 히로인 상태창을 켜봤다.

이상하다. 분명 이상해. 성욕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저 말을 하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루미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졌다.
근데 저 표정. 저건 분명히…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인 것 같은데….

원작 게임에서 관계중일때 루미가 한 번 더 해달라고 애타게 요청하는, 그 표정이 오버랩된다.


'얘, 기억 하는  같은데.'

루미는 그 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안 그러면  비정상적인 성욕을 설명할 수가 없잖아.


'이 변태같은 게,  기억하면서 이러는 거 봐라?'

이건 합법적으로 '날 먹어주세요.' 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내가 데이트를 신청하려고 했는데, 저쪽에서 먼저 와주면 나야 좋지.

"그래, 주말에 만나자."


나는 음침한 계획을 세우며, 긍정의 대답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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