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43화. 루시 공략 루트 (6)
펠릭스의 습격이 끝난 후, 나는 정밀검사를 받았다.
몸 구석구석 이상이 없나 확인한 후, 일단 푹 쉬라고 해서 편하게 휴식을 취했다.
내 옆에 침대에는 루시가 누워있었다.
남녀가 같은 병실을 써도 되나 싶기는 한데, 별말 없는 걸 보니 괜찮은 것 같다.
'아, 생각해보니 이거 야겜이구나.'
대충 이런 설정이겠지 뭐.
나는 그 생각을 끝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정신적인 피로가 몰려오면서, 내 시야는 바로 암전했다.
나는 하루의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그래서 노인네들하고 얼마나 오래 얘기 했는지 알아? 진짜 귀찮아 죽겠어."
그리고는, 아침부터 찾아온 임솔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고생하셨어요. 감사해요. 그래도."
"짜증나. 마법 연구할 시간도 없는데."
임솔은 나한테 귀찮은 일을 맡겼다며 툴툴댔다.
"그리고, 이 사건은 너랑 루시 둘이서 마인을 잡은 거로 처리하기로 했어. 아무래도 아카데미 내에서 납치를 당했다는 건 너무 중대한 사건이라서, 너희가 숨은 마인을 찾아낸 사건으로 묻으려는 것 같아."
"…참 대단한 곳이네요. 여기도."
저번에도 나한테 수업 시간에 사고가 났던 걸 묻었는데, 이번에도 묻는단다.
뭐 이딴 곳이 다 있지?
그 때는 사고로 임솔하고 가까워졌으니 괜찮지만, 이거 까지 묻어버리는 건 게임에서 현실고증을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시팔.
"… 저번에는 미안했어. 그래도 이번엔 내가 건의했더니 포상인지 뭔지 준다고 하던데? 자세한 건 나중에 전달해준대. 이번에도 입 싹 닦고 넘기면 내가 다 뒤집어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임솔 교수님… 아니 임솔 눈나…!"
임솔 눈나! 오늘부터 눈나라고 불러도 될까요…!
"스읍. 기어오르지 말고. 나도 미안한 게 있어서 해주는 거니까 고마워 안 해도 돼."
평소에 마법말고 관심도 없는 척하던 사람이 창피한 듯 멋쩍게 웃는 모습을 보니 그 갭에서 나오는 매력이 장난 아니었다.
"제가 퇴원하면 꼭 좋은 마법 연구 들고 찾아갈게요."
그 얼굴이 너무 예뻐서, 하마터면 '그러니까 지금 선불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할 뻔했다. 다행히 참았지만.
"응. 아, 맞아. 그러고 보니 네가 보여줬던 마법진 구현법, 나도 연구를 많이 해봤거든? 아직 부족한 점은 많지만…."
임솔은 신나서 마법 얘기를 하다가 돌아갔다.
'저 사람도 참 귀여워.'
덤덤하던 사람이 마법 얘기만 하면 흥분하는 게, 딱 가지고 놀기에 재밌는 스타일이다.
"이제 뭐 하지."
옆에 루시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몸의 건강 상태는 아무 이상 없다고 하지만, 혹시 마기에 감염된 것은 아닌가 해서 정밀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오늘 오후에 나온다고 한다.
당연히 나도 같이 받았으니 오늘 오후까지는 여기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한다.
에브리데이라도 구경할까 생각하던 찰나에, 눈앞에 수많은 시스템 창들이 나타났다.
『히로인과의 성적인 스킨십이 확인되었습니다. 히로인 공략 시스템의 보상이 지급됩니다!』
『히로인 상태창 업그레이드!』
『히로인과 커다란 접점이 생겼습니다! 스페셜 퀘스트가 추가됩니다!』
"뭐야."
처음 루미와 스킨십이 있었을 때 나타났던 알림들이다.
이번엔 섹스까지 가서 그런지 엄청나게 쏟아졌다.
히로인 상태창이 업그레이드 됐다고 하니 옆에 누워있는 루시에게 실험해봤다.
★ 히로인 상태창
[루시]
- [ 호감도 : 75 ]
- [ 성욕 : 47 ]
- [ 식욕 : 60 ]
- [ 피로도 : 65 ]
현재 상태 : Zzz…
* 이제부터 관계 중에는 히로인의 성감대를 표시합니다.
"오?"
처음 보는 부분이 두 개나 생겼다. 어디에 쓰이는 용도인지도 머릿속에 자동으로 각인됐다.
현재 상태는 히로인의 현재 상태를 말해주는 기능이다.
속마음이 나올 수도 있고, 지금처럼 자고 있음을 나타낼 수도 있다.
성감대는 말 그대로 성감대를 알려준다.
"나쁘지 않네."
나쁘진 않다. 딱 그 정도 느낌?
아직 스페셜 퀘스트 라는 게 남아있으니 그걸 확인해봐야겠다.
'스페셜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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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퀘스트』
히로인 공략의 신호탄을 쏜 당신에게 드리는 기회.
히로인 3명의 처녀를 따먹으세요.
상상하지 못한 보상이 기다릴지도…?
제한 기간 : 10일
진행 상태 : 처녀 1/3
- 보상 : 내기의 신과 면담 기회 한 번. 엄청난 보상 (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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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상상하지 못한 퀘스트가 나왔다.
내기의 신이라면 날 이 세계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그런 사람과 면담 기회라면… 놓칠 수 없다.
'근데 제한 시간이 10일?'
너무 빡센데. 펠릭스의 습격이 수요일이었다.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다음 주말까지…?
천천히 다음 주의 시간 계획을 생각해봤다.
마법 분석학, 마법사 특화 수업, 이론 수업. 그리고… 던전 실습 훈련.
분명 원작대로라면 다음 수업 때 테러 때문에 던전이 폭주한다.
"백아영을 이때 노린다고 하면, 한 명이 더 필요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루미밖에 없다.
엘리스와 남다은, 문수린은 노력으로 공략 할 수 있는 히로인들이 아니다.
각자 큰 사건 하나씩을 가지고 있고, 그 사건을 해결해주면서 공략해야 한다.
물론 문수린은 마음먹으면 자빠뜨릴 수 있겠지만, 스토커 사건을 해결하면서 나에게 의존하게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루미는 게임에서도 순애 루트.
친구 없는 루미를 챙겨주며 루시와 함께 학교생활을 즐기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루트인데…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지금 나는 순애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주말에 루미를 따먹…
똑 똑 똑
"네, 들어오세요."
노크 소리가 내 생각을 멈췄다.
"실례합니다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루미였다.
"호연씨! 루, 루시! 괜찮으세요? 마, 마인한테 습격당했다고 들었어요!"
루미는 어깨를 움츠리며 들어와서 내 얼굴과 누워있는 루시를 보더니 입을 파들파들 떨면서 다가왔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루시를 보고 울망울망한 눈망울에서 눈물이 고이기 직전이었다.
"진정해. 검사했는데 아무 이상도 없었어. 루시도 곧 일어날 거야"
"다, 다행이에요. 후우."
루미는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 루시랑 같이 마인을 처리했다고… 역시 둘은 대단해요!"
"고마워."
"근데 펠릭스가 마인일 줄이야… 혹시 호연 씨는 미리 알고 계셨나요…?"
"그럴 리가. 내가 감이 좋거든. 뭔가 생리적인 거부감이 들더라고. 마인일줄은 몰랐지만."
"아하…."
루미는 그 후로 한 시간 정도 나와 떠들었다.
"루시는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이네요…."
"괜찮아. 루시가 정신을 차리면 제일 먼저 연락해줄게."
"헤헤… 고마워요. 앗, 제가 환자를 붙잡고 너무 오래 있었네요. 이만 가볼 테니 푹 쉬세요."
"환자는 아닌데… 응. 아카데미에서 보자."
"네엡."
루미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루시를 한번 바라보고 병실을 나갔다.
후우.
너무 오래 떠들었더니 힘드네.
띠링-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 했다.
문수린 : 호연아! 괜찮아?! 소식을 이제 들어써. 지굼 최대한 빨리 병실로 가고 있으닉까 기다려!
나 : 누나, 저는 괜찮으니까 천천히 오세요.
엉망인 문자만 봐도 당황이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다.
콰앙!
문수린이 병실 문을 박차고 등장했다.
"호연아! 괜찮아?!"
눈나. 문자 보내고 1분 후에 도착할 거면 문자를 왜 보낸 건데요.
얼마나 뛰어온 건지 예쁜 얼굴이 땀투성이다.
"누나. 저 괜찮아요."
"저, 정말? 내상을 입었다거나 크게 다치거나 하지 않았어?"
"네. 검사도 문제없었고, 혹시 몰라서 마기 오염 검사 때문에 있는 거예요. 근데 아시잖아요. 마기 오염은 거의 안 걸린다는 거."
"아, 아…다행이야."
훌쩍.
문수린의 눈이 살짝 붉어졌다.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이 정도로 나를 생각한다고? 감동인데.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48 ]
- [ 성욕 : 2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65 ]
현재 상태 : 정말 다행이야. 소중한 후배님이 다치지 않았어.
'문수린은 어떻게 된 게 가만히 있어도 호감도가 알아서 오르네.'
별 작업도 안했는데 벌써 48까지 도달했다. 역시 가장 쉬운 히로인답다.
아무래도 문수린 이벤트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여러 압박이 동시에 다가오면서 나를 도피처 느낌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딱 좋네.
'평소에는 스토커랑 파파라치, 그리고 많은 격무에 시달리다가 나랑 연락할 때만은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거야….'
그 상태의 문수린이 버티고 버티다가 부러지기 직전에 구해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후우, 다행이다. 근데…."
문수린의 눈이 옆에 누워있는 루시에게 향했다.
"크흠. 그, 여자랑 남자 둘이 같은 병실을 쓰는 게 좀 불편하지 않아?"
"괜찮아요. 어차피 하루종일 누워있기만 하는데요. 혼자 있으면 적적하기도 하고."
"으음. 알았어. 저 친구도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곧 깨어난대요."
"다행이다. 할 일이 많아서 가봐야 해. 잠깐 얼굴만 보러 온 거거든."
"네. 일 열심히 해요. 수린 누나."
"… 응! 힘낼게!"
문수린은 할 일이 더 늘었다고 중얼거리면서 병실을 나갔다.
'무슨 할 일이 늘었다는 거지?'
잘 모르겠네.
나는 문수린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후, 하얀 병실의 타일을 보면서 생각했다.
'근데 진짜 어떻게 수습하냐 이거?'
히로인들과 점점 가까워지는 건 좋은데, 슬슬 감당이 안 된다.
어떻게 하렘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나 같은 아싸찐따한테는 너무 어려운 과제다.
"하아, 하다 보면 되겠지 뭐."
그래도 살아간다.
어차피 내 사전에 포기라는 감정은 이미 사라졌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게 만드는 [뚜렷한 정신력] 때문이다. 의지박약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
다행히 하늘에서 동아줄이 떨어졌다.
[스페셜 퀘스트]를 깨고 내기의 신을 만나는 것.
거기서 조금이라도 힌트가 나오겠지.
"으으으…."
옆에 루시에게서 신음이 들린다.
드디어 깨어나려는 건가?
"으어어어…."
무서운 꿈이라도 꾸는 건지, 루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의사 선생님을 불러야 하나.'
"으악!"
혹시 모르니 비상 연락을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루시가 소리를 지르며 눈을 떴다.
"뭐 이딴 꿈을 다 꾸냐. 아으…."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는지, 눈을 깜박깜박 거리면서 자기가 입은 환자복을 관찰하고 있다.
"괜찮아?"
"…."
"어디 아픈 덴 없지?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는 하셨는데, 혹시 모르니까."
"…."
"루시?"
"페, 펠릭스는 어떻게 됐어?"
루시는 아직 상황이 정리가 안 됐는지 혼란스러워 보였다
"아… 네가 좀 괜찮아 지면 말하려고 했는데. 펠릭스는 내가 처리했어. 근데 언론에는 우리 둘이 같이 죽였다고 발표될 거야. 괜찮지?"
"어, 어째서?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뭐, 나 혼자 처리했다고 하면 너무 관심이 쏠려서 그렇겠지. 한 번만 넘어가 주라. 미안."
루시 입장에서는 약간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루시는 펠릭스에게 강간을 당하기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그 일을 누군가 묻는다거나, 인터뷰한다거나 하는 건 엄청난 부담일 수도 있다.
저 결정을 내가 내린 것은 아니지만, 루시가 그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은 내 지분도 분명히 있다.
'잠시만, 그러고 보니 포상도 준다던데, 이거 실수한 거 아니야?'
대대적으로 상장이라도 받으면 인터뷰 요청 같은 거 엄청 들어올텐데.
하지만 루시는 신경 쓰지 않는지, 오히려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해왔다.
"미안해. 내가 진짜 미안해. 앞으론 네 말이라면 무조건 믿을게. 그리고 이 일도 꼭 보답할게."
"아니야. 내가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굳이 보답하고 싶으면 나중에 밥이나 사줘."
맨날 까불거리던 애가 갑자기 이렇게 숙이고 나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루시 성격이 좀 감화되면 좋겠네.
"응, 꼭 사줄게."
루시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고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 아! 갑자기 덥네! 그렇지 않아?"
★ 히로인 상태창
[루시]
- [ 호감도 : 92 ]
- [ 성욕 : 47 ]
- [ 식욕 : 60 ]
- [ 피로도 : 65 ]
현재 상태 : 얘가 이렇게 잘 생겼었나?
팁 : 고백하면 바로 자빠트릴 수 있습니다.
'끝났네.'
호감도가 92이면 게임에서도 고백만 남은 단계다.
여기서 조금만 밀당을 해주면 게임 끝.
일이 이렇게 계획대로 풀리니 기분이 좋다.
"그러게, 나도 좀 덥네. 그러고 보니 어디 아픈 곳은 없지?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는데."
"응, 괜찮… 어?"
루시는 배를 만지면서 끄으응 하는 신음을 냈다.
"뭔가,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잠시만. 나 그때 분명히, 마법에 걸린 것처럼 상태가 이상했는데…."
루시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너, 혹시…."
"아니, 절대. 그런 일 없었어. 진짜로."
"…그런 일이라면 내가 무슨 상태였는지 안다는 거네?"
아, 시발. 말실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