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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화 〉35화. 계약 (5) (35/648)



〈 35화 〉35화. 계약 (5)

"…그래서, 보통 서큐버스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 미리 결혼을 하고 성인식을 하는 게 정상이라는 거지?"

"그렇지.  이해했네."

"근데 너는 35살에 성인식을 했는데 15년 동안 집에 빌 붙어서 놀기만 했고?"

"……응."

냠냠.

릴리아나는 치킨을 입에 넣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왜? 그냥 노는게 좋아서 그런거야? 서큐버스면 결혼이나 성욕에 대한 욕구가 있지 않아?"

"처음엔 그랬는데, 게임을 하다보니 없어졌어…."

"그런 욕구가 있을 때는 왜 결혼 안했는데?"

"그, 결혼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이유?"

"이, 이런  서큐버스 입으로 말하게 시키는 거야? 이 나쁜 새끼…."

"…?"

릴리아나가 나를 표독스럽게 노려본다.

아니, 뭐길래 저러는 거야.

엄청난 비밀이라도 숨기고 있는 건가?

혹시 씨발 남자는 아니겠지?

"이상하게 생겼잖아…."

"응?"

이상하게 생겼다고?

나는 다시 릴리아나의 얼굴을 관찰했다.

아닌  같은데.  정도면 충분히 이쁘다.

"아니! 얼굴이겠냐고 멍청한 새끼야! 꼬리말이야!

"꼬리?"

저  모양이 하트인 꼬리말인가? 사실 아까부터 나풀대는 게 귀엽던데.

"하아, 인간은 하나도 모르는구나. 나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서큐버스들에 비해 꼬리가 매우 짧았어."

"짧은 게 뭐가 문제야?"

릴리아나의 꼬리는  적당한 길이였다. 오히려 긴 것 같은데, 저게 그렇게 짧은건가?

"…서큐버스는 온몸으로 수컷을 만족시키고 정을 뽑아내야 해. 그게 서큐버스란 종의 존재 의의야."

릴리아나는 자기 입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지옥에선 섹스 문화가 굉장히 발달했어. 문화생활을 즐길 줄 모르는 멍청하고 싸움 좋아하는 종족들이 지옥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런 종족의 수컷들은 대부분 섹스에 미쳐있거든."

"그래서 꼬리는  나오는 거야."

"꼬리도 서큐버스의 중요한 부분이야. 자기 종족을 내버려 두고 서큐버스와 결혼하려는 변태들은 진짜 성욕에 미친 놈들이니까. 서큐버스의 꼬리 플레이도 중요하게 생각해."

"꼬리 플레이? 상상이 안 되는데."

물건을 꼬리로 감싸서 흔들어 주는 건가? 왜 손을 놔두고 꼬리로 해?

"아니, 엉덩이에 꼬리를 넣어서 전립선…."

"으악, 씨발! 닥쳐!"

"왜,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전립선도 수컷에게 중요한 성감대…."

"미친 똥꼬충 새끼들!"

전립선이 좋은 성감대다 뭐다 해도, 나는 남자의 그쪽 구멍에 뭔가 들어가는  상상할  없었다.

겉에만 핥아주는 거라면 몰라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웃이다.

이 개 같은 똥꼬충 마족 새끼들의 더러운 진실을 알아버렸다.

앞으로 마주치면  죽여버려야지.

"어쨌든, 그래서 서큐버스를 원하는 고위 마족들에게 다 거절당하다 보니… 시발 같은 오크나 고블린 족장같은 새끼들한테 맞선이 들어오는 거야. 엄마는 그거라도 좋으니까 시집가라고 하고…"

참, 비현실적인데 현실적인 고민이네.

"그게 싫어서 50년이나 노처녀였구나?"

"…서큐버스 평균 수명이 1000살인데 내가 50살이니까, 인간으로 치면 5살이야."

"내가 인간으로 치면 25살 엘프를 보고 나서 그런 말은  믿기로 했어."

"뭔 개소리야?"

"그런 게 있어."

릴리아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기 앞 접시에 있던 치킨을 다 먹었다. 밥도 한 공기 가져다줬더니 거의 눈물을 흘리면서 먹더라.

"그렇게 맛있냐?"

"맛있어! 식사는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즐거운데!"

릴리아나는 아까 문신 돼지한테 머리채를 잡히고 울먹일 때보다 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년은 진짜 조울증인가.

"지옥에선 보통 뭘 먹었어?"

"음, 지옥 지네 피망 볶음이나, 썩은 사과 주스 같은 거? 아, 가끔 헬하운드 고기를 먹기도 하는데, 이 치킨에 비하면 그냥 쓰레기야."

릴리아나는  먹은 치킨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됐고,  다 먹었으면 이리 와서 앉아봐."

나는 침대에 앉아서 내 옆자리를 툭툭 쳤다.

"나, 나는 그런 거 한 번도   적이 없…."

"아니, 그럴 생각 없으니까 일단 와서 앉아봐."

릴리아나는 몸을 쭈뼛대면서 내 옆에 앉았다.

"꼬리가 짧아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잘 부탁…."

나는 릴리아나의 말을 무시하고 노트와 펜을 꺼냈다.

"일단 네가 잘하는 것 좀 얘기해봐."

"…?"

"돈 벌 만한 소재가 있으면  좋고."

릴리아나 몸값 뜯어내기가 시작됐다.







*







"너도 나랑 계약한 소환수니까 조금은 느낄지 모르겠는데, 너의 존재를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해."

"돈이 필요하다고…?"

"응, 정확히는 마나석이란 게 필요한데 너를 유지하는데  달에 천만 원 정도가… 음, 쉽게 말해서 아까 먹은 치킨 1,000마리 살 돈이 필요해."

"허, 헉. 치킨 1,000마리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릴리아나는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을 접으면서 돈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얼만지 감이 오긴 하냐?

"그래서 말인데, 네가 잘하는 것  말해봐. 돈이 되는 거면 좋고."

"그, 드라마 보기 같은 건…?"

"그게 돈이 되겠냐? 아니, 너 마법 잘 하더만. 나한테 마법이나  알려줘 봐."

"어, 응. 알았어."

"오케이. 하나 접수."

노트에 [릴리아나의 마법 교실]이라고 메모했다.

매혹 마법 같은 건 확실히 배우면 쓸모가 있을 거다.

"어… 밥도 잘 먹는데."

"아니, 서큐버스인데 섹스를 잘한다고 왜 말을  해! 나한테 섹스의 기술 전수해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서큐버스란 년이 잘하는 게 드라마 보기랑 밥 먹기? 진짜 미쳐버린 건가.

"나, 나도 해본 적이 없어서 그건 좀…."

"어휴. 그럼 다른 거라도 말해봐."

"으음, 게임도 잘하긴 해."

"게임 잘해서 뭐 할 건데 임마. 다음."

"그, 같이 게임 하는 사람들한테 목소리가 좋다고도 많이 들었어…."

"목소리 뭐야…."

확실히 목소리가 좋긴 한데. 애가 입이 너무 걸걸해서, 약간 묻히는 감이 있다.

얼굴도 이쁘고 목소리도 좋은데 심심할 때마다 쌍욕이 나오니까….

어?

잠시만, 이거 완전 돈 냄새가 나는 캐릭터잖아.

"너 혹시 방송해 볼래?"

"방송? TV에 나가는 거야? 그런 건 좀 부담되는데…. 어릴 때 뉴스 인터뷰를 했다가 얼굴은 이쁜데 꼬리가 짧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어서…."

"아니, 너는 그냥 혼잣말하면서 게임만 하면 돼."

릴리아나가 딱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아닌가?

이쁘고 목소리 좋고 게임도 괜찮게 하면서 욕까지 해주면 좋아 미칠 것 같은데.

게다가 처녀잖아.

대충 욕하다가 야한 얘기 나오면 부끄러운 척  하라고 하면 이거 완전 대박인데.

게다가 엄청난 어그로를 끌 방법도 생각났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모든 생도에게 똑같은 방을 제공한다.

즉, 방만 봐서는 방의 주인이 누군지 구분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에 다니는 의문의 코스프레녀…?"

낮에는 빅토리아 아카데미 생도인 내가 밤에는 야한 서큐버스 코스프레?

혹시 조사한다고 해도, 여 기숙사를 조사하지 남 기숙사를 조사하진 않을 테니, 걸릴 일도 없다.

일단 며칠 방송을 시키면 알아서 반응이 올 것이다.

반응이 안 나오면 내가 익명으로 퍼트리면 된다.

"흐흐…."

"뭐야. 그 변태 같은 눈초리는, 기분 존나 나빠"

매도서큐버스 방송 시작이다.





*







"그럼, 일단 마법을 좀 배워야겠어."

"응,  그 정도야 할 수 있지."

"서큐버스니까 이성을 매혹시키는 마법이나 흥분시키는 마법 같은 거 할 줄 알지?"

"나를 뭐로 보는 거야? 당연하지."

드디어 나한테 도움이 되는구나. 역시 서큐버스인데 이런 건 당연히 할 줄 알아야지.

"여자가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것도 있어?"

그런 게 있으면 공략할 필요 없이 바로 클리어인데.

"있긴 한데, 시전자랑 대상의 차이가 정말 심해야 해. 아마 너랑 지나가던 길고양이 정도의 차이면 성공할걸?"

"그럼 필요 없네."

히로인들과 그 정도 차이가  일은 없다.

"매혹 마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 작게는 호감을 올리는 것부터, 크게는 완전히 지배하는 것."

아까 문신 돼지한테 썼던 마법이 완전히 지배하는 마법인가?

"원래는 완전 매혹까지 사용할  있는데…, 인간 세상의 마나랑 파장이 맞질 않는지 내 마나량이 떨어졌어. 그래서 몇 초밖에 지속이 안 돼."

"…."

그런 거 아닌데. 계약 때문인데.

굳이 계약서의 존재를 말해 줄 필요는 없지.

릴리아나가 다치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조항이 있기도 하고.

게다가 원래 자신이 모르는 불안 요소가 하나쯤 있어야 이상한 짓거리를 안 한다.

"일단 가벼운 매혹 마법진부터 알려줄게."

릴리아나가 손을 펴고 마력으로 마법진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어?"

나는 눈을 찌푸리고 마법진을 바라봤다. 분명 처음 보는 마법 체계다.

인간 세상에는 저런 마법 체계가 없다.

"놀라지 마. 마족의 마법 역사는 유구한 시간 동안 발전해왔어. 몇백 년도 안되는 인간의 마법 체계와 비교가  리가 없잖아. 가끔 인간 노예 마법사들이 잡혀오면 볼 때마다 놀란다고 하더라."

확실히, 수준 높은 방식이다.

인간의 마법 체계보다 효율적이고 마나의 소비도 적다.

 더 오래 보면 확실히 감이 올 것 같은데. 나중에 알려달라고 해야지.

"그래서 나도  마법을 알려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가르쳐본 적도 없는데 마법 체계까지 다르잖아."

이윽고 릴리아나가 마법진을 완성했다.

"매혹 마법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호감도를 올리는 마법이야. 시전자가 매력적일수록 효과가 올라가기 때문에 서큐버스가 아닌 다른 종족들은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해."

나는 릴리아나의 말을 들으면서 계속 마법진을 관찰했다.

"일단 관찰해봐. 바로 결과가 나오진 않겠지만, 꾸준히 보다 보면 수가 나올지도 몰라."

마법진에서 나오는 마나파장을 [마나 감응]으로 분석하고 이해했다.

음, 조금 어렵긴 해도 시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눈앞에 실험체가 있으니  번 해볼까?

릴리아나에게 매혹 마법을 걸어봤다.

"참고로, 서큐버스인 나도 익히는데 1년 이상 걸렸으니…."

두근

"어어…?"

릴리아나의 눈이 커지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커진 심장 박동 소리가 나에게도 들린다.

"너,  어떻게 매혹 마법을 바로 쓰는 거야?"

"내가 좀 천재라서."

역시 릴리아나의 마법사로서의 수준은 나보다 월등했다.

약해진 상태로도 내 매혹 마법을 바로 눈치챘으니까.

아닌가? 갑자기 호감이 늘어나서 그런 건가?

"이,  미친놈이. 흣!"

릴리아나가 마력을 끌어올려 내 매혹 마법을 떨쳐냈다.

"씨발. 기분 존나 나빠."

매혹 마법을 사용하는 서큐버스가 저러는 건 내로남불이잖아.

"미안, 나도  번에 될 줄은 몰랐어."

"…조심해. 매혹 마법을 대놓고 사용하는 건 엄청난 실례니까."

"알았어. 조심할게. 다른 마법도 알려주라."

"후우, 그럼 호감도 이상으로 사랑을 느끼는 마법을 알려줄게. 어차피 안통하겠지만 나한테 시도하면 죽여버릴 거야."

"아, 잠시만. 반대로 이성를 싫어하게 만드는 마법은 없어?"

내 말을 들은 릴리아나가 나를 혐오스러운 물체를 보는  바라본다.

"있긴 한데. 혹시 다른 남자의 여자를 뺏으려는 거야? NTR은 안 돼.  발정 난 새끼야."

"그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진짜 어디 가서 서큐버스라고 하지 마.

NTR 싫어하는 서큐버스가 세상에 어딨어.

"뭐, 그렇다면야. 알려줄  있지."

좋네. 이러면 루시한테  미움받을  있다.

루시 공략의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나도 스윗하고 착한 남자가 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몰아붙인다.

하지만 괜찮아. 난 나쁜 남자 이호연.

악역은… 익숙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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