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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화 〉34화. 계약 (4) (34/648)



〈 34화 〉34화. 계약 (4)

"어?  아니라, 이리 와봐. 가까이서 보니까  쌔끈 한데?"

"코스프레라도 하는 거야? 우리가 좋은 데 아는데 같이 갈래?"

오우거 남자는 저급한 말을 내뱉으면서 릴리아나의 왼쪽 팔을 붙잡았다.

팍!

"이, 이, 씨발 새끼가. 내, 내 몸에 손을 대?"

릴리아나는 팔에서 느껴지는 더럽고 추잡한 감각에 화들짝 놀라서 손을 쳐냈다.

"아이씨, 쳤냐? 이 썅년이 여자라고 봐주니까 뒤질라고."

릴리아나의 주먹에 맞은 남자가 화를 내며 릴리아나를 때리기 위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참나. 인간 주제에 어디서…!"

릴리아나가 아는 인간은 무력이 강한 생명체가 아니었다.

릴리아나는 마력을 해방했다. 그녀가 능력이 없어서 50년간 노처녀는 아니었으니까.

최근 몇십 년간 사용하지 않은 힘이지만, 전혀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앞의 남자들을 매혹시켰다.

오우거남자의 눈이 흐려지면서 매혹에 성공하는 듯했다.

"휴, 발정 난 새끼들이 똑같지 뭐."

하지만, 잠시  릴리아나의 마나가 모두 소모되면서 남자들의 암시가 풀렸다.

"헉! 뭐지? 잠시 기억이 없는데."

"이 미친년이  짓 한 거 아니야? 이래 봬도 나도 각성자거든?"

한 남자가 손에 마력을 모으며 다가온다.

"어, 어째서…?"

털썩-


갑자기 느껴지는 탈력감과 무력감.

릴리아나는 공기 빠진 풍선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력을 끌어올리려고 해도 마력이 발현되지 않았다.

릴리아나는 계약서를 읽지 않고 뛰쳐나왔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매혹 마법은 아무리 수준이 낮더라도 기본이 중위 마법이다.

계약자인 이호연보다 약한 상태가 유지돼야 하는 릴리아나는, 중위 마법을 오래 유지할 만큼 강하지 않았다.

"매, 매혹!"

"매혹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악!"

남자의 손이 주저앉은 릴리아나의 머리를 붙잡고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야, 야. 살살 해. 상처 남으면 보기 흉하잖아."

"야 이 멍청한 새끼야. 내가 능력자라 망정이지. 이 년 능력자라니까?"

"아파…, 아프다고…! 흐흑…."

릴리아나가 신음을 낼수록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손은 더욱 거세졌다.

아, 여기가 진짜 지옥이구나.

릴리아나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릴리아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나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엄마 말 잘 들을걸, 왜 그랬을까.

공대는 나 없이 잘 돌아가고 있을까.

 계약자란  말이나 들어볼걸….

"일어나.  년아."


남자가 릴리아나의 머리를 잡은 손을 위로 끌어올렸다.

 반동으로 눈물이 릴리아나의 볼을 타고 턱선을 따라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구라도 좋으니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개새끼들이,  소환수 몸에 상처를 내?"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 세상에 처음 떨어졌을 때 들렸던미성.

고개를 슬쩍 들자, 잘생긴 계약자 놈이 서 있었다.

"그게 얼마짜리, 아니. 그, 얼마나 소중한 소환수인데!"

릴리아나는 그 잘생긴 얼굴이 너무 그리웠다는 걸 깨달았다.





*






"어디까지 도망간 거야."


릴리아나를 찾기 위해 상가로 나왔는데, 여자 한 명을 찾기에는 여기가너무 넓었다.


결국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한 명씩 물으면서 탐문 수사를 했다.


"죄송한데, 여기 혹시 서큐버스 코스프레를 한 여자가 지나가지 않았나요?"

"저도 서큐버스 코스프레 해드릴  있는데, 저라도 괜찮으시면…."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여자한테는 묻지 않기로 했다.

"저기, 혹시 이 주변에 서큐버스 코스프레를 한 여자가 지나가지 않았나요?"


"어,  봤던  같은데. 한 5분쯤 전에 괴성을 지르면서 달려가던 여자가 한 명 있었어."

오, 운이 좋군.


세 번 정도 물었는데 붕어빵 장사를 하던 아저씨의 목격담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자세히는 못 봤지만, 저기 중앙에 타워 쪽으로 달려갔어."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정도가지고. 여자친구인가? 특이한 취미네."


"…."


변명할 시간이 아까워서 상가 중앙으로 달려갔다.

"여기서 어디로  거지?"


중앙이라고 해도 통하는 길이 워낙 많으니 찾기가 힘들다.


5분쯤 전이면 그렇게 멀리 못 갔을 텐데…


혹시 모르니 마력 감지를 넓게 퍼트려봤다.

내 마나 운용이면 주변 500m 정도는 감지할  있었다.


"응?"

내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1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아까 느꼈던 릴리아나의 마력이 느껴졌다.


"뭐야. 바로 찾았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다.


재빨리 감지에서 가리키는 골목길로 향했다.


"코스프레라도 하는 거야? 우리가 좋은 데 아는데 같이 갈래?"


골목길에 들어가기 직전, 내 귀에 지방이 잔뜩 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코스프레? 릴리아나 얘기 같은데.

슬쩍 얼굴을 내밀어서 골목길을 훔쳐봤다.

"이, 이, 씨발 새끼가. 내,내 몸에 손을 대?"

팍!


릴리아나가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문신 돼지의 손을 쳐냈다.

대충 보니  문신 돼지가 릴리아나한테 작업을 걸던 모양이다.


"아이씨, 쳤냐? 이 썅년이 여자라고 봐주니까 뒤질라고."


문신 돼지는 그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주먹을 치켜들었다.


아니, 저 새끼가 내 소환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혹시라도 릴리아나가 다치면 안 되니, 뛰쳐나가려고 했다.


"참나, 인간 주제에 어디서…!"


하지만 릴리아나의 자신감 있는 말에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봤다.

릴리아나의 몸에서 마력이 방출되면서 문신 돼지의 몸이 그대로 정지했다.


'오, 서큐버스의 마법인가?'

저건 좀 도움이 될지도? 서큐버스면 매혹 마법 같은  있지 않나?


내 안에서 릴리아나의 평가점수가 1점 올랐다.


'근데 릴리아나는 나보다 약한 상태 아니야? 매혹은  수준 높은 마법일 텐데.'

그 의문이 생기자마자, 문신 돼지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뭐지? 잠시기억이 없는데."

"이 미친년이 뭔 짓 한 거 아니야? 이래 봬도 나도 각성자거든?"


뒤에 있던 문신 돼지 2가 엑스트라 다운 발언을 했다.


문신 돼지 1은 좆밥이지만 꼴에 능력자라고 마나의 움직임을 느낀 모양이다.


이런.

릴리아나의 마력이 끊기면서 매혹이 풀렸다.

당황한 표정을 보니 계약자보다 약해지는 계약이 걸린  릴리아나는 모르는 모양이다.


역시 계약서는 숨겨야지.

릴리아나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고, 남자는 릴리아나에게다가갔다.


'이제 나가야 하나?'


흠. 근데, 좋은 생각이들었다.


마족 서큐버스가 몇 대 맞는다고 죽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진 않을 거 아니야.

분명 계약서에는 죽거나 그에 맞먹는 장애를 얻어야 한다고 써있었다.

 남자의 마력 양은 허접 그 자체.

그냥 각성만하고 마력을 조금 사용할  있는 초보자다.


일반인들이야 저걸로 속일  있어도, 아카데미 생도인 나를 속일 수는 없다.


그런데 저런 초보자한테 몇 대 맞는다고 릴리아나의 목숨에 위협이 생길까?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니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릴리아나의 성격을 파악할 기회기도 했고, 상황이 안 좋을 때 구해줘야  고마워할 거 아니야.


"매, 매혹!"


"매혹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악!"


남자가 릴리아나의 머리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아, 저건 좀 아파 보이는데.'


"아파…. 아프다고…. 흐흑…."


릴리아나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제 슬슬 나가도 되겠는데?


"일어나. 이 년아."

문신 돼지 충이 릴리아나의 머리채를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려고 했다.

저건 안되지. 릴리아나는 내 껀데. 걔가 얼마짜리인지 알아 임마?

"이 개새끼들이, 내 소환수 몸에 상처를 내?"

선빵으로 쌍욕을 박으면서 골목길로 들어갔다.

문신 돼지는 갑자기 들린 사람의 목소리에 당황하더니,  얼굴을 보고는 다시 자신만만해졌다.


"뭐야,  애새끼는? 형님들이 지금 바쁘니까 곱게 말할 때 꺼져라."


얼마나 허접 새끼들이면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생도복도 못 알아볼까?

문신 돼지는 아직도 릴리아나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었다.


"구, 구해주세요…! 거지라고 한 거 사과할 테니까!제발요!"

릴리아나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아까는 반말이더니, 이제는 존댓말이네? 역시 나중에 구해줘서 그런가.


표정도 아까보다 훨씬 좋아졌다. 아까는 싸가지없는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울먹거리는  귀여웠다.


혹시  약간 S 체질인가?

일단 릴리아나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문신 돼지를 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 어어? 꼬, 꼬맹이. 너, 뭐냐 그 마법은!"

"뭐긴 뭐야 새끼야. 맞아보면 알겠지."


화르륵-!

"으악!"


내 손에서 순식간에 생성되어 날아간 불덩어리는 문신 돼지의 오른팔을 강타했고, 갑작스럽게 힘이 빠져서 놓친 릴리아나의 머리는 그대로 바닥에 박혔다.


쿵!


"어…?"


"으아악! 내,  팔이!"


"괘, 괜찮냐! 젠장!  자식이!"


"…."


릴리아나는 기절했는지 머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박힌 채로 미동이 없었다.

문신 돼지들은 불타는 오른팔을 붙잡고 이리저리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아오, 빨리 꺼져 이 새끼들아."

문신 돼지들한테 몇 개의 불덩어리를 더 던졌다. 온몸에 불이 붙은 놈들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도망쳤다.


이미 팔은 복구 불능 정도로 불탔고, 몸이 불타 죽든지 말든지 그건 내 알바가 아니었다.

"하아."


아직도 미동이 없는 릴리아나를 어깨에 둘러매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





정말 천운으로, 기숙사로 오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흑흑. 흐끄그극."


릴리아나는 기숙사로 돌아오고  정신을 차리더니,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계속  상태다.

"흐흐흑. 흑. 엄마아. 보고시퍼어."

"어휴."


 망나니 새끼들은 사고가 일어난 다음에 정신을 차리더라. 그 때는 이미늦었는데 말이야.

나는 배도 고프겠다. 치킨을  마리 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얘가 먹을지 안 먹을지는 모르겠는데, 지갑도 여유롭겠다, 혹시 모르니 두 마리 시켰다.


생각해보니 이 년 때문에 이제 지갑도 여유롭지가 않네. 씨발.


띵동-

벨 소리에 나가자 치킨이  앞에 있었다.

"흐그그흡. 쓰읍. 흑흑."

아직도 울고 있는 릴리아나를 내버려 두고 식탁 위에 치킨을 세팅했다.

"야, 밥이나 먹어."


"흑흐... 킁킁."


릴리아나가 무릎에 파묻혀있던 고개를 쳐들더니, 눈가가 빨개진 상태로 코를 킁킁거렸다.


꿀꺽.

방금까지 울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회복력이었다.


"뭔 냄새야 이거."


"…어이가 없네.


릴리아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식탁을 바라봤다.

"나는 네 계약자니까. 식사 정도는  수 있어. 같이 먹자."

"…네. 알겠습니다."

대체  존댓말을 하는 거야?

릴리아나는 식탁 앞에 앉고선 눈을 반짝거리면서 날 바라봤다.


아무래도 먹고 싶은데 어떻게 먹는 건지 모르는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순살을 시켜서 다행이다. 뼈는 먹는 법을 알려주기 귀찮잖아.


"자, 그냥 입에다 넣고 씹어 먹어. 쉽지?"

몸소 시범으로 치킨 한 조각을 씹어먹었다.

역시 치킨은 옳아.

젓가락을 쓰는 법을 모를까 걱정했는데, 지옥에도 젓가락은 있는 모양이다.

"마, 맛있어! 이런 음식을 먹다니, 역시당신은 황족인가요…?"


"황족…?"

뭔 개소리지?

"이, 이건 무슨 음식입니까?"


"아아, 이것은 치킨이라는 것이다."


"치, 치킨!"


"그리고 어색하니까 하던 대로 반말해라."

"네, 넷! 아니. 응."

"무슨 이상한 오해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평범한 계약자니까. 편하게 대해. 그리고  뺏어 먹을 테니까 치킨 네 앞 접시로 옮겨놓지 마."


"으응, 알았어. 너 좋은 사람이구나."

릴리아나는 자기 앞에 치킨을 10조각이나 쌓아놨다.


다행히 밥을 먹고 나니 좀 진정된  같다. 이제  말이 통하겠지?

"내가 아직 서큐버스를 잘 몰라서 그런데, 네 얘기 좀 해볼래? 앞으로 같이 지내야 할 거 아니야."

"어, 으응."


그렇게 거미줄 치기 장인 서큐버스의 말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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