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26화. 던전 실습 (3)
내가 꺼낸 말에 남다은이 멈춰 섰다.
남다은과 루미, 이병훈까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여기는 바람도 안 불고 있어. 오면서 만났던 몬스터들을 생각해보면 바닥에 흔적을 남길만한 놈들도 없다고."
이병훈이란 놈. 의외로 두뇌파였다.
동굴형 던전 공략의 기본을 잘 알고 있었다.
공기의 흐름과 몬스터의 흔적.
물론 기본이 있다면 고급도 있고 심화 과정도 있는 법이다.
동굴형 던전의 특징은 높은 마나 밀도.
포탈로 이동하는 '던전'이기에, 입구와 출구가 없어서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설정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설령 바람이 불지 않더라도 마나는 흐르고 있다.
너무 높은 밀도인 데다가 미세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느끼지 못할 뿐이다.
실제로 마나의 움직임으로 출구를 찾는 방식은 웬만한 헌터들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정확도도 떨어질뿐더러 시도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잠시만 기다려봐."
하지만 나는 다르다.
[마나 감응]과 [개안]
마나를 느낄 수 있고 흐름을 관측할 수 있는데, 마나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개안'
지잉-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동공이 확장된다.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나. 그 마나의 미세한 흐름을 관측한다.
"저기네."
검지 손가락을 들어서 10개의 통로 중 하나를 가리켰다.
왼쪽에서 세 번째 통로.
모든 마나 들이 그곳을 경유해서 오고 있다. 저곳이 통로였다.
"그 금색 눈은 뭐야? 미안한데, 어떻게 거기라고 확신하는 거야? 대충이라도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이병훈이 내 말에 의문을 표했다.
"...설명해도 안 믿을 텐데 그냥 여기로 가자고 하면 안 갈꺼지?"
"내 성적이 걸린 일이라고. 너라면 그렇게 넘어가겠냐?"
넓어진 시야로 눈알을 굴려 슬쩍 옆을 보자 남다은은 나를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남다은도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을 생각인 것 같다.
루미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눈을 깜박깜박하고 있었다. 불만이 없는 걸 보니 루미는 그냥 내가 하자는 건 뭐든 괜찮은 것 같다.
"마나의 흐름을 읽었어. 모든 통로의 마나가 세 번째 통로를 경유하고 있어서 세 번째 통로라고 판단한 거야. 흐름을 어떻게 읽었냐고는 묻지 마."
"아니, 생도 수준에서 마나의 흐름을 읽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이병훈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우리 조장님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으니까.
파바밧-
남다은이 먼저 세 번째 통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에?에에엣?"
나도 루미의 팔을 잡고 그 뒤를 쫒아 갔다.
이병훈은 뒤에서 '아오, 시발. 나도 모르겠다.'라고 불평하면서 달려왔다.
그렇게 이따금 뛰쳐나오는 몬스터를 남다은이 처리하면고 나도 사이사이에 마법을 때려박아 점수를 야금야금 쌓으면서 달린 지가 약 15분.
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이번엔 여덟 갈래로 나누어진 통로들이 있었다.
"네 번째."
타다닥-!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키면서 달리자 남다은이 속도를 늦추지않고 바로 그 길로 향했다.
"아니, 진짜 믿어도 되는 거 맞…, 아오, 그래. 따라간다. 따라가."
이제는 슬슬 지루할 정도로 던전을 달렸다.
물론 다른 조는 몬스터들과 전투를 대비하느라 긴장을 놓치지 않아서 그럴 틈이 없겠지만, 우리 조는 몬스터 전용 버스 기사가 있었다.
"루미야."
"넵?"
"남다은한테 쉴드라도 걸어줘. 너도 점수는 먹어야지."
"앗, 너무 빨리 몬스터를 처리하셔서 그 생각을 못 했어요. 기본 중에 기본인데...."
아무리 나중에 비중이 큰 인물이여도 아직은 생도에 불과하다.
루미도 이제 첫 실습이니 충분히 실수 할 수 있다.
그래도 루미의 포지션이 보조형 마법사인 만큼 쉴드만 걸어줘도 어느 정도 점수는 챙길 수 있을 거다.
나도 길을 안내하고 있는 데다 틈이 보이면 마법으로 한 마리씩 건드리면서 점수를 챙기고 있다.
우리 조는 그래도 점수를 다 챙기겠네.
...아닌가? 뭔가 잊은 것 같기도 하고.
촤아악-
남다은은 혼자서 도마뱀 하나를 썰어버렸다.
뱀은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길을 찾느라 계속 [개안]을 발동하고 있어서 그런가, 남다은의 움직임이 좀 더 제대로 보였다.
그녀가 처리한 도마뱀의 몸은 마치 단면도를 보는 것처럼 말끔하게 잘려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권능을 순간 가속이라고 알고 있다. 저 비정상적인 절삭력은 스킬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둘 다 틀렸다.
그녀의 권능은 공간 지배.
가속 능력은 그녀의 몸을 둘러싼 공간의 시간 흐름을 빠르게 돌리는 것이다.
남다은이 빨라지는 게 아니라 그녀가 존재하는 공간 자체가 빨라지는 것이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가속이겠지만.
저 비정상적인 절삭력 또한 마찬가지, 그녀의 검이 존재하는 공간 자체를 베어버리는 힘이다.
여기까지는 설정으로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리고 아무리 설정에 미친 제작자라도 게임 설정에 남다은의 몸을 둘러싸는 공간을 가속하는 마력 운용법 따위를 묘사해놓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권능이란 본래 한 사람이 타고난 것이고 다른 사람은 사용할 수 없는게 기본설정이다.
하지만, 결국 권능이나 스킬 같은 이능의 힘은 모두 마력에서 비롯된 힘이다.
남다은의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 그 중에서도 공간을 가속하는 마력 운용.
내 [개안]이 그녀의 마력 운용을 실시간으로 읽어 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권능을 흉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던전 실습 훈련을 끝낸 생도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 조의 돌파 시간은 당연히 압도적인 1등이었다.
너무 빨리 나온 탓에 도진혁 따까리를 못 만난 점이 아쉽긴 했다.
다른 조들은 옷이 찢어지고 땅을 굴렀는지 흙먼지가 묻어있었고 피가 보이는 생도도 있었지만, 우리 조는 다들 말끔했다.
그나마 남다은의 옷에 몬스터의 피가 조금 묻어있었을 뿐이었다.
"크읏. 아파...."
"피 좀 난다고 사내새끼가 엄살 부리지 마라."
부상자들이 백아영의 앞에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조는 어차피 공략이 끝나고 쉬는 타임이었으니, 백아영이 뭐 하나 구경이라도 하려고 백아영에게 다가갔다.
"하읏, 하읏, 하아아."
백아영은 게임과 똑같이 이상한 효과음을 내면서 생도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아무리 들어도 지쳐서 내는 신음이랑은 다른 소리가 나는데.
남들은 위화감을 못 느끼는 건지, '성녀'라는 타이틀이 야릇한 상상과 연결되지 않는 건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고생하시네요."
방금 막 한 명의 치료를 마친 백아영에게 말을 걸었다.
"아, 호연 씨. 아니에요. 이게 제 일이니까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녀의 입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직업 만족도가 꽤 좋네요? 제가 본 힐러들은 다 죽을 상이던데."
치유는 기본적으로 마나도 소모하지만 자신의 체력도 소모한다.
그렇기에 치료를 끝낸 힐러들은 다 지쳐서 널부러지기 마련인데 백아영은 그렇지 않았다.
"네. 사람들을 치료하고 살리는 일은 항상 보람차니까요. 정말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돈도 많이 벌구요. 헤헷."
마지막은 장난스럽게 끝마쳤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졌다.
백아영은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 그 자체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부상자들을 모두 치료한 뒤의 백아영은 정말 지쳐 보였다.
땀에 젖은 정장 속 블라우스에 백아영의 분홍색 속옷이 비쳐 보였다.
땀방울이 깊은 가슴골을 따라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꿀꺽. 나도 모르게 정욕이 올라온다.
아니, 안 이상한가?
저렇게 땀 흘리면서 야릇한 신음을 내고 있는데 치료니까 아무도 의심 하지 않는 이 상황이 나만 이상한 거냐고.
나만 쓰레기 만드는 거야?
무의식적으로 백아영의 가슴을 훔쳐보다가 시선을 올렸는데, 눈이 딱 마주쳤다.
좃됐다. 들켰다.
"어, 어. 다행이네요. 아영 씨가 힘들까 봐 안 다치도록 노력했는데."
"고마워요. 후후...."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는데, 다행히 눈치를 못 챈 것 같다.
... 눈치 못 챘겠지?
*
모든 조의 던전 실습 훈련이 끝나고, 생도들은 처음처럼 모여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까 사이가 좋아 보였던 조가 냉전이 된 경우도 있고, 사이가 별로였던 조가 절친이 된 경우도 있다.
우리 조는 놀랍게도 그대로였다.
- 1등 13조. (남다은 이호연 이병훈 루미)
- 2등 7조. (서민준 김서연 정예준 엘리스)
- 3등 8조. (도주원 하서윤 채수아 루시)
우리가 첫 번째 투입 조를 구경하던 홀로그램에서 성적 우수자들을 공개했다.
"모든 조의 영상은 A클래스 sns에 올라올 테니 참고할 부분은 참고하도록 해라. 다음 수업에서는 던전 실습 훈련에서 좋았던 부분과 고쳐야 할 부분을 지적해주겠다."
담임 교수인 김진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남은 생도들은 웅성웅성대다가 각자 흩어졌다.
우리 조는 가장 먼저 남다은이 어딘가로 사라지려고 하길래, 내가 붙잡았다.
"남다은."
"...?"
그래도 같이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정이 생겼는지 내 말을 아예 무시하지는 않네.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1등을 했지만, 다음에도 너 혼자 독주하면 1등을 유지하기 힘들거야."
"...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남다은은 잠깐 눈을 찌푸리더니 저 말을 하며 혼자 사라졌다.
"어휴, 제대로 된 충고를 해줘도 듣질 않네."
그래도 말투가 덜 공격적인 것에 감사해야 하나.
아직까지야 신입생인 만큼 협동성이 낮아도 적당히 배려해주지만,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면 당연히 협동성 부분에서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점수를 낮게 줄 수밖에 없다.
남다은은 그렇게 조만간 1등을 내준다.
그러고 그 대가로 당하는 꼴은... 상상하기도 싫네.
그때서야 후회하지만, 지금 내가 아무리 설명해봤자 이해하지 못하겠지.
*
콰앙-! 파앙-!
"쟤가 신입생이라고? 우리 길드 2군에 당장 투입해도 되겠는데?"
"그래서 이미 길드전속 계약까지 마쳤잖아요. 소문으로는 계약금의 3배를 준다고 해도 무시했대요."
"쯧. 내가 봤을 땐 약점 잡힌 거야. 바이어 길드 안 좋은 소문 도는 거 업계에서 모르는 새끼가 없는데 왜 냅다 전속계약을 했겠어."
던전 실습 훈련이 모두 끝난 후, 수십 개의 모니터가 화면을 송출하고 있는 모니터 룸에서 교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한 소녀가 앞장서서 달려가고 있고 세 명이 뒤에서 따라오는 영상에 향해있다.
"다른 애들한테 아예 전투할 기회를 안 주는데?"
"확실히, 전혀 팀원과 협력을 하려고 하질 않아요."
"그래도 재능 하나는 압도적이네. 다음에도 저러면 감점을 할 수밖에 없지만."
"아직 첫 평가니까요. 널널하게 해줘야죠."
그중에는 A클래스 담임 교수인 김진혁도 있었다.
'확실히, 실력에 비해 인성 부분이 아쉬워.'
김진혁은 홀로그램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남다은의 이름 옆에 '95점. 하지만 다음 평가 때는 인성 부분을 더 강하게 채점할 것.'이라고 메모했다.
- 아, 몰라! 그냥 다 죽여버려!
- 야, 야! 잠깐만!
콰콰콰쾅!
김진혁이 요란하게 마법이 폭발하고 있는 다음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는 몬스터 몇십 마리를 한 번에 제압하는 루시의 모습이 송출되고 있었다.
그녀의 전투방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공격은 최선의 방어] 였다.
자신의 방어를 최소화하면서 내가 쓰러지기 전에 적을 먼저 쓰러뜨리겠다는 소년만화 같은 전투방식.
좋게 말하면 소년만화고, 안 좋게 말하면 미련한 전투 방식이다.
아직은 몬스터들이 루시의 마법 세례를 버티지 못하고 루시의 근처에 오기 전에 쓰러지지만, 나중에 일정 수준 이상의 몬스터에겐 통하지 않을 전술이다.
저 방식이 동생인 루미와 합쳐진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것도 알고 있지만, 24시간 내내 루미와 함께 행동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가정은 좋지 않다.
결국, 김진혁은 루시의 이름 옆에 83점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이번 신입생들은 진짜 물건이 많네요~ 귀여운 쌍둥이에 엘리스 생도에 남다은 생도까지, 모두 보석이에요."
"그렇죠. 그 외에도 도진혁이나 이호연이라는 학생도 괜찮던데."
'이호연.'
김진혁은 엘리스나 남다은의 영상보다 이호연의 영상이 더 흥미로웠다.
고속으로 이뤄지는 남다은의 전투 사이에 마법을 끼워 넣는 마력 운용도 좋았지만,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하면서 길을 완벽하게 찾아내는 것.
생도 수준에서 마력의 흐름을 읽는 건 그 쪽으로 특화한 스킬이 있다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사실 동굴형 던전이 어려운 이유는 길을 들락날락하면서 누적되는 피로와 스트레스도 한몫하는데, 그걸 없애버렸으니 꽤 큰 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팀을 구성할 때 남다은이 들어간 팀인 만큼 다른 인원들은 수준이 낮음을 고려해보면, 자기 수준보다 더 활약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전투력 측면에서 뭔갈 보여주진 않았지만, 비범함이 느껴지는 생도였다.
"으음...."
김진혁은 고민 끝에 루시보다 3점 높은 86점이라는 점수를 메모했다.
김진혁은 머리가 좋은 생도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다 좋은데 마나 용적이 조금 아쉽네. 너무 마나 용적이 적어. 마나 회로도 좁고. 설마 진짜 마법에 입문한 지 한 달이 안 된 건 아니겠지? 근데 그렇다기엔 마력 운용이 너무 좋아. 마력 순도도 매우 높고. 스킬이 있다고 했으니 그쪽에 특화된 스킬인가? 역시 다음에 불러야… 근데 연구를 하려면 그런 일을… 그래, 이건 다 인류를 위해서…."
중얼중얼중얼...
"?"
김진혁은 옆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임솔 교수가 이호연의 모니터를 보면서 무언가 마구 써내려 가고 있었다.
"교수님? 여기서 뭐하십니까?"
평소에 이런 자리에 출석하지 않던 임솔이 저렇게 열정적으로 생도를 평가하고 있으니 김진혁에게도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스리슬쩍 아카데미에 퍼지고 있는 임솔 교수가 관심이 생긴 생도가 있다는 소문의 진위도 궁금했다.
"아, 아아... 아무것도 아니에욧!"
하지만 임솔 교수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류들을 품에 껴안고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 뭐야 대체."
순간 그의 눈에 비친 임솔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