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2화. 인싸는 학생회에 간다 (2)
"..."
문수린이 내밀고 있는 학생회 입부 신청서를 보면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누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부터 시작해서 '이 일로 또 얼마나 어그로가 끌릴까.' 같은 생각까지.
"... 회장님.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주변에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문수린도 나한테 후배님이라고 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하겠지.
"어제 생각해보기로 했잖아. 생각은 충분히 했지?"
분명 아침에 김영한이 학생회 추천권은 인당 하나라고 했다. 그걸 나한테 쓰려고 찾아온 거다.
심지어 학생회장이 직접 왔다.
'이걸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다음부턴 직접 찾아오지 마세요. 또 어떤 소리를 들으시려고 그래요."
"미안해.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얼굴도 볼 겸 와봤어. 헤헷."
후우... 문수린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닐 텐데.
분명 게임에서 문수린은 조심스럽고 신중한 성격이다.
아마도 그 원인은 스토커와 심한 파파라치들이겠지.
근데 아직 스토커도 나타나기 전이고 파파라치들도 심하지 않을 때, 나와 만나버린 거다.
원작 게임에서는 이미 사건이 진행된 후에 이호연과 문수린이 만난다.
그렇기에 아무리 이호연이 마음에 들더라도 문수린은 천천히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또 어떤 사진이 찍힐까. 또 어떤 소문이 퍼질까. 이런 걱정들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와 너무 일찍 만나버렸다.
그렇기에 그녀는 나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면서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38 ]
- [ 성욕 : 17 ]
- [ 식욕 : 30 ]
- [ 피로도 : 40 ]
처음에 만났을 때가 호감도 20이었는데, 별 교류 없이도 호감도가 두 배가 된 것이 그 증거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승은 오히려 약간 부담이 된다. 어떤 반작용이 있을지 모른다.
"하아... 알겠어요. 당연히 들어가야죠."
"좋아. 그럼 수업 끝나고 학생회에서 보자."
"네. 이따 봐요."
문수린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강의실을 나갔다.
문수린이 떠난 뒤 생도들은 조용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한테 안들리게 쑥덕쑥덕대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 어그로 뒤지게 끌리겠네.'
또 에브리데이에 어떤 글들이 올라올까 머리가 아파온다.
결국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을 하며 다시 논문으로 눈을 돌렸다.
*
오전 오후 수업이 다 끝난 후, 학생회에 가기 전에 들릴 곳이 있다.
학생회는 도망가지 않지만, 루시는 기숙사로 도망간다.
루시의 친목동아리에 꼭 들어가야 하니, 루시에게 다가갔다.
"루시. 너 이번에 동아리 만든다며?"
"어? 누구한테 들은 거야? 아직 루미한테밖에 안 말했는데... 혹시 루미한테 들었어?"
"아, 아니. 너랑 루미랑 아까 얘기하는 걸 들었거든."
"으흥. 그래서? 너도 관심 있어?"
"응. 친구는 많으면 좋잖아."
구라다. 루미랑 루시를 제외하고 거기 있는 놈들하고는 말 한마디 안 섞을 거다.
"근데 너 학생회 들어가는 거 아니야? 학생회 일 하면서 우리 동아리 활동도 할 수 있겠어?"
"반대로 생각해봐. 동아리에 학생회 소속이 있으면 동아리 활동이 더 편해지지 않겠냐?"
"오오오!"
루시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합격! 합격이요! 나랑 너랑 루미랑 최소인원 3명 됐으니까 담당 교수님만 정하면 되겠다. 담당 교수님은 내가 찾아볼게."
"오케이. 다음에 보자."
루시는 기분이 좋은지 가방을 메고 호다닥 달려 나갔다.
"학생회나 가야겠다."
학교생활을 15년을 넘게 했지만, 학생회라니 상상도 해본 적 없다.
'[섹아]에서 진짜 여러 경험 해보는구나.'
빅토리아 아카데미에는 동아리 활동을 위해 부실을 제공하는 건물이 따로 있다.
동아리 건물은 총 17층이고 학생회는 꼭대기인 17층에 상주했다.
동아리 건물의 벽에는 동아리를 홍보하는 현수막들이 붙어있었다.
"마력연구부에, 다도 부에, 곤충 채집 부는 또 뭐야? 별 게 다 있네."
빅토리아 아카데미하고 전혀 상관없을 거 같은 동아리도 많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으로 올라갔다.
띵동-
문이 열리자 학생회실과 화장실, 휴게실 등이 보였다.
별생각 없이 학생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서 아무나 붙잡고 학생회장님 뵈러 왔습니다~ 하면 되겠지.
학생회실은 언뜻 보기에 회사의 사무실처럼 세팅되어 있었다.
개인 책상마다 홀로그램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실제로 세 명은 눈이 빠지도록 화면을 바라보면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눈에 붉게 충혈이 생긴 걸 보면 하루이틀 저러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 잘못 들어왔나."
뒤로 돌아가서 다시 확인해보니 학생회실이 아니라 총학생회실이었다.
잠시만, 똑같은 거잖아?
"어떤 일로 오셨어요?"
잠시동안 입구에서 멍청하게 얼타고있다보니, 학생회 임원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와서 말을 걸었다.
"학생회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학생회 추천을 받았어요."
"아~ 그, 호연 씨 맞으시죠? 역시 인상이 좋긴 하네."
"네? 아, 감사합니다."
"회장님~ 호연 씨 왔어요."
"잠시만!"
학생회실 안쪽에 [학생회장실]이라고 쓰여 있는 문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2분 정도 뒤에 깔끔한 생도복 차림의 문수린이 학생회장실에서 나왔다.
"미안. 기다렸지? 이쪽으로 올래?"
나는 문수린의 뒤를 따라 학생회장실로 들어갔다.
학생회장실은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하게 정돈돼있었다.
문수린은 직접 커피를 타서 나에게 갖다줬다.
"이거 마시고 있어."
"감사합니다.
쪼록.
무슨 커피인지는 몰라도 임솔 교수처럼 믹스커피를 주지 않는 점에 감사했다.
"한 명 더 와야 해서, 조금만 기다려줘."
한 명 더 온다고? 이상한데.
문수린이 나를 좋아해서 학생회에 넣는 것까지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지만, 한 명 더 넣을 이유는 뭐지?
잠시만, 혹시 나를 좋아해서 뽑는 게 아니야?
떡 줄 생각은 없는데 나 혼자 추천권이니 형평성이니 설레발 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호연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요... 그냥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요."
"어머, 누나의 개인 공간에 와서 그런 건가?"
후후후하며 웃고 있는 수린 눈나를 보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수린눈나의 저 미소는 호감이 없고는 나올 수 없는 미소다. 나한테 호감이 있는 건 확실하다.
일단 한 명 더 온다는 사람을 기다려봐야 하나.
"그러고 보니 요즘 임솔 교수님하고 친하다면서?"
"어? 어떻게 아셨어요?"
"꽤 유명하던데? 임솔 교수님 개인 연구실에 들어간 생도는 네가 처음일걸?"
"아...."
마도관에서 마력연구부하고 드잡이질했던 일이 벌써 퍼졌나 보다. 쓸데없이 소문이 빠르네.
"그래도 조심해. 임솔 교수님 예쁘고 능력 있잖아. 팬도 많아서 호연이 너를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몰라."
"그럼 지금 회장님과 대화도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응? 어머, 이게 벌써 누나를 놀리는 거야? 후후."
좋았어. 분명 방금 대화도 점수를 딴 거 같다.
이렇게 조금씩 점수를 따다 보면 금방 공략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세상일은 항상 쉽게 풀리지 않는다. 계속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회장님. 손님 왔어요."
그때 아까 나를 안내했던 임원의 목소리가 우리의 대화를 끊었다. 조금만 늦게 오지. 아쉽네.
"응, 들어오라고 해줘."
벌컥.
문이 열리고, 찰랑이는 금발과 새하얀 피부의 여자가 들어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1학년 수석 엘리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 호감도 : 16 ]
- [ 성욕 : 2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50 ]
'얘는 뭐지? 왜 여기 있는 거야.'
엘리스는 학생회랑 연관이 없다. 그 어떤 루트를 타도 학생회 근처에도 오지 않는다.
엘리스는 내 머릿속의 고민을 무시하는 듯이 문수린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학생회장님. 1학년 A클래스 엘리스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물론 자리가 내 옆자리 밖에 없긴 하다.
"어서 와요. 엘리스 양.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학생회장님. 그런데, 혹시 이호연 생도도 홍보부에 들어오는 건가요?"
"네. 맞아요. 두 분이 홍보부를 담당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홍보부? 그게 뭐야. 저 선도부 하고 싶었는데요...?
"저기 눈... 학생회장님? 홍보부라는 건 뭔가요?"
"너는 그걸 듣지도 않고 여기 앉아있는 거야?"
엘리스는 나를 힐난한다기보단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니, 이게 내 탓이냐고.
"어머, 미안해. 미리 말하는걸 깜박했네."
그럼 나 혼자 추천권이 어쩌고 선도부가 어쩌고 고민한 건 뭐가 되는...
그래. 그럴 수 있지. 이런 부조리를 처음 당하는 거도 아닌데 참자.
"홍보부는 빅토리아 아카데미 홍보를 위해 이번에 신설한 곳이야. 작게는 학생회 홍보부터 크게는 빅토리아 아카데미를 대표해서 외부에 홍보대사로 나갈 예정이야."
"그런 엄청난 역할을 제가 한다고요? 저는 그런 거 해본 적이 없는데요."
"으음... 괜찮아. 호연이 너는 못 할 수가 없는 일이야."
"...?"
못 할 수가 없는 일이라는 건 뭔 소리야?
자랑은 아니지만 살면서 그런 인플루언서 활동은 해본 적이 없다. 맨날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던 터라 진짜 자신이 없는데.
"하아. 너 진짜 바보니?"
"후후, 감이 안 올 수도 있죠. 진정해요. 엘리스 양."
멍청한 표정이 너무 티가 났는지, 엘리스가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신입생 남자 중엔 너. 신입생 여자 중엔 나. 빅토리아 아카데미 홍보를 위해 뽑은 거라고.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어?"
여자 중에는 엘리스.
남자 중에 이호연.
하는 일은 홍보. 작게는 빅토리아 홍보대사에서 크게는 외부에 홍보대사로...
아. 이제 감이 왔다.
진짜 100% 얼굴만 보고 뽑은 거구나.
그래서 못 할 수가 없다고 한 거였다. 하긴 잘생기고 예쁘면 대충 가오잡고 있어도 화보가 나온다.
빅토리아 아카데미 홍보에 중요한 건 말 잘하고 능력 좋고가 아니다. 미남 미녀가 능력을 쓰면서 홍보하는 거 자체가 중요한 일이었다.
신입생중에 루미와 루시도 히로인인 만큼 예쁘지만, 아무래도 엘리스가 좀 더 균형 있는 미인이다 보니 엘리스가 뽑힌 모양이다.
"으음, 알겠습니다."
아니, 살면서 잘 생겨본 적이 있어야 공감을 하지 이 사람들아!
나는 너희처럼 어릴 때부터 예쁘다 예쁘다 소리 들으면서 자라지 않았다고!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너희 둘 다 가만히 서서 사진만 찍어도 웬만한 모델보다 효과가 좋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네. 회장님."
"네."
나는 대답하면서도 참 부끄러운데, 옆에 엘리스는 이게 일상이라 안 부끄러운가?
"뭐, 어쨌든 오늘은 같이 일하게 된 사람들끼리 인사라도 하자고 부른 거니까. 학생회 사람들하고 인사라도 한 번씩 해."
그 후에는 학생회 사람들과 교류를 나눴다.
"와, 홍보부 신입들은 진짜 얼굴 깡패들이네."
"반가워 반가워~."
"부회장이 길드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을 때 와서 아쉽네."
솔직히 학생회에 중요한 인물은 거의 없다.
여자들도 평범하게 생겼고 남자들은 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단 한 명. 부회장 신동민은 주의해야 한다.
부회장 신동민은 문수린 루트의 빌런이다. 그는 학생회장을 사모하고 있다.
아직까지 적의를 보이진 않는 것 같으니 괜찮은 것 같지만... 주의는 해야겠지.
문수린 루트의 스토커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 다행히 스토커 사건의 발생 시점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총 동아리 회장이란 사람이 나를 보더니 히이익 놀라고는 급한 일이 생겼다고 사라졌다.
순간 낚시 동아리에게 당한 일이 떠올랐지만 방금 동아리 회장이랑 나랑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으니,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리고는 이곳이 홍보부가 쓸 방이라면서 안내를 받았다.
"일단 홍보부도 절차상 필요해서 부실을 준비하긴 했는데..."
내부는 책상 두 개가 놓여있었다. 게다가 학생회랑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조명이 세워져 있었고, 홀로그램 컴퓨터, 화장실, 침대까지 있었다.
거짓말 안 하고 빙의 전에 내가 살던 원룸보다 좋았다.
"아마 문서작업 같은 사무 일은 없을 거야. 그런 건 다른 학생회 실무진들이 할 일이고, 너희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외부활동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진짜 얼굴마담으로 뽑은 거네. 근데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실무 일도 안 시키면서 얼굴만 보고 사람 뽑고 이러면 문제 되지 않아?
모르겠다. 알아서 하겠지.
"매일 홍보부에 출근을 해야 하거나 할 필요는 없어. 그냥 내가 홍보 일이 생기면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하자. 나는 일이 남아서 가볼 테니까. 편하게 있다가 돌아가. 둘이 이야기라도 나누는 건 어때? 앞으로 같이 활동할 거니까."
문수린은 엘리스에게 안 보이는 각도에서 나한테 윙크를 날리고는 방에서 나갔다.
문수린이 방에서 나가자 나와 엘리스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엘리스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무언가 만지고 있고,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이제 뭐 하지?'
엘리스는 먼저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먼저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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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가 전송되었습니다.』
[인싸의 시작은 대화부터]
엘리스는 굉장히 까다로운 캐릭터입니다.
그녀의 취향에 맞는 대화를 30분 이상 나눠보세요!
- 보상 : 엘리스의 호감도 소폭 상승. 랜덤 능력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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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던 중에 퀘스트가 나왔다.
이러면 말을 걸 수밖에 없네.
약간 긴장되지만 내 인싸력이라면 충분히 대화 할 수 있다. 괜찮아.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엘리스는 히로인이다.
히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때부터 주인공밑에 깔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