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21화. 인싸는 학생회에 간다. (21/648)



〈 21화 〉21화. 인싸는 학생회에 간다.

수린 누나 : [후배님. 안녕하세요?]

보낸 이는 수린 누나. 이 누나가 갑자기  연락이지?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여기서 내가 숨겨왔던 연애 세포를 발휘해봐야겠다.

나 : [안녕하세요. 말투 뭐에요 누나 ㅋㅋ]

수린 누나 : [ㅎㅎ. 문자는 처음이니까 예의를 갖추려고!]

나 : [무슨 일 있으세요?]


수린 누나 : [나는 그냥 연락하면 안 되나? 힝.]

여기서 바로 용건을 물어보면 안 되는 거 였나? 연애 세포가  죽어서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겠네.


그나저나 이 누나 왜 이렇게 귀엽냐.


일단 다시 답장을 보냈다.

 : [아니요, 아니요! 바쁘실 텐데 연락해주시면 저야 좋죠.]


수린 누나 : [실은 용건이 있긴 해. 이번 주부터 동아리 홍보인 거 알지? 혹시, 호연이 너 학생회 들어 올 생각 있어?]

학생회?

갑자기 학생회요?

 누나  급발진하시네. 게임에서 동아리 활동은그냥 히로인들과 동시에 사건에 엮이게 만드는 작위적인 장치였다.

학생회에 들어가는 루트는 없었는데, 어쩌지?

 : [제안은 감사드려요. 아직 이번 주는 많이 남았으니까 조금  생각해보고 말씀드릴게요.]


확실하지 않은데,  더 강하게 거절했어야 했나? 원래 방구석 아싸였던 나는 아직도 대화가 부족하다.


갑자기 인싸의 삶을 살라고 하는 건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라고.

수린 누나 : [알았어. 내일 다시 한번 말해보자. 오늘 꼭 잘 생각해줘!]


나 : [네. 누나. 좋은 밤 되세요.]

수린누나 : [너도 좋은 밤~ (고양이가 불을 끄는 이모티콘)]


아아, 모르겠다.


내가 생각했던 동아리는 루시의 친목동아리.


여기 들어간 히로인은 루미와 루시 두 명이다. 히로인이 둘인 만큼 저기서 발생하는 사건·사고가 너무 많아서 친목동아리는 필수 가입이다.


엘리스는 독서. 남다은은 휴식동아리. 문수린은 학생회.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선 1인 1동아리가 필수다. 그렇기에 남다은도 휴식동아리라는 곳에 들어간다. 물론 동아리 활동을 하진 않는다.

엘리스가 들어간 독서동아리에선 원작에서 이벤트로 취급될만한 큰 사건이 안 일어난다. 그래서 루시의 친목동아리만 들어가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않던 학생회에서 요청이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안 가는 게 맞는  같은데."

학생회는 분명 잘 나가는 가문이나 길드 자제들이 모인 곳일 텐데, 내가 거기 가봤자 섞이기가 힘들다.

시간 문제도 있다. 학생회는 그만큼 자기 개인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데, 나는 히로인 공략과 메인 스토리를 위해 할애하는 시간이 매우 많다. 내 개인 훈련과 공부까지 소화하려면 몸이 2개라도 부족하다.

생각해보니 학생회는 투표로 뽑지 않나? 이상하네. 원작 게임에서 투표 관련 언급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냥 중요한 이벤트가 아니라서 안 쓴 거겠지?

일단 예의상 고민을 해봤지만, 역시 거절하는 쪽으로 마음을 잡아야 하나.

"어? 잠시만, 선도부도 학생회 아니야?"

선도부도 분명 학생회 소속이다. 선도부를 해볼까?


빅토리아 아카데미는 다른 학교와는 선도부의 역할이 다르다.

품행이나 복장상태를 지적하는 잡일이 아니라, 학교에 사건이 생겼을 때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기관이다.


젊은 생도들이 힘이 생긴 만큼 여러 사건·사고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공기관의 힘을 빌리면 아카데미의 위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생도부가  역할을 맡는다.


'생각할 수록 좋은 거 같은데.'


선도부랍시고 학교도 마음대로 싸돌아다닐 수 있고, 숨은 기연도 좀 찾아주고.

선도부는 학생회처럼 매일 활동하는 게 아니니까 친목동아리 활동이나  개인 시간도 크게 구애받지는 않을 거다.

어차피 선도부가 개입하는 규모 있는 사건은 다 나도 개입해야 한다.

"좋다. 고민 끝."

고민도 끝났으니 잠이나 잘까.





*






"1학년 A클래스 이호연이다."


"예. 빅토리아 아카데미 모든 동아리에 블랙리스트로 달아놓겠습니다."

"확실하게 처리해. 우리 마력연구부를 무시하고 담당 교수님을 모함한 천박한 놈이다."


"걱정 마십시오. 모든 동아리에서 이호연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학을 뗄 겁니다."


마력연구부라고 쓰여 있는 동아리방에서 마력연구부 부장과 빅토리아 아카데미 동아리 회장이 뒷거래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마력연구부는 동아리 중에서 입김이 굉장히 센 편이었다. 사람이 많기도 했고, 마력연구부 부장인 김현도의 집안이 대대로 마법 명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아리 회장은 졸업 후에 김현도의 집안 길드에 계약하는 조건으로 마력연구부의 뒤를 많이 봐줬다.


그 덕에 마력연구부의 위세는 학생회를 제외하고 모든 동아리의 위에 있었다.

"그, 확실히 뒷배가 없는 놈은 맞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고아 출신에 엮여있는 길드도 없다. 최근에 학생회장하고 사진이 찍혀서 잠깐 이슈가 되긴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고 밝혀졌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작업해라."

"아이고, 알겠습니다."

"저런 놈들은 꿈틀대지도 못하게 확실히 밟아야 자기 처지를 아는 법이거든."


"맞습니다. 다 부장님 말대로  겁니다."

"이호연. 임솔 교수님을 어떻게 속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되찾아오겠다…!"



크하하! 하하핫!

남자 둘의 호탕한(?) 웃음이 동아리 방을 가득 채웠다.







*







띠리링- 띠리링-

화요일은 힘세고 좋은 아침!

이제 기숙사에서 눈을 뜨는 아침이 익숙해졌다.

물론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건 여전히 곤욕이지만.

대충 정신을 차린 뒤 세수를 하면서 욕실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진짜 잘생기긴 했네…."

거짓말이 아니라, 말이 안된다. 오뚝한 코에 뭘 바르지도 않았는데 생기있는 피부와 입술, 적당히 솟아있는 남자다운 눈매.

 친구라면 같이 다니기만 해도 내 어깨가 올라가는,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소개해주기 싫은 그런 얼굴이다.


생도복을 챙겨입고 1학년임을 나타내는 브로치까지 가슴에  후에 기숙사를 나섰다.


오늘따라 기분이 상쾌한 게 좋은 일이 생길  같은데?

"호연아! 같이 갈래?"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한테 친한 남자친구라곤 한 명밖에 없다.

금발 양아치 김영한. 금발양아치 라고하면 불안하긴 하지만 그냥 얼굴만 그렇게 생겼지. 아주 건실한 친구다.

내가 히로인들 꼬시느라 바쁜 와중에도 김영한과 잘 지내는 이유다.

이놈은 절대 배신을 안 한다.


원작 게임에서 주인공한테 위기가 닥치려고 할 때마다 먼저 알려주고, 뭔가 소식이 있으면 어디선가 주워와서 알려준다.


후반에는 주인공을 위협하는 집단이 김영한의 목숨을 위협하며 정보를 요구해도 끝까지 안 말하는 독한 놈이다.

쉽게 말해서 그냥 착한 놈. 곁에 둬서 손해  거 없는 놈이다.

비상식량으로는 못 쓰지만 고기방패로는 쓸 수 있는 든든한 국밥같은 친구다.

"그래. 가자."

남자 둘이 으레 그렇듯이 별 얘기 없이 걸어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김영한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너 동아리 어디 들어갈지 정했어?"


"나? 생각해둔 곳이 두 개 있긴 해."


"그래? 나는 다도 동아리랑 낚시 동아리 들어가려는 데 어디 생각 중이야?"

다도랑 낚시라니, 금발 양아치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다. 그럴 거면 흑발로 염색해라. 이 자식아.

"나는 학생회랑 루시가 만든 친목동아리 들어갈 거 같아."

"학생회? 너 학생회 추천권 받았어?"

"추천권? 그게 뭔데?"


"추천권 몰라? 학생회 들어가려면 현 학생회 임원한테 추천권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어."

이게  개소리야. '섹아'에선 우리나라가 공산주의인가? 아닌데. 그런 설정 없었는데.


"학생회 그거 투표해서 뽑는 거 아니야?"

"학생회는 2년에  번 바뀌는데 이번 학생회는 작년부터 했으니 아직 1년 남았잖아. 그래서 도중에 들어가려면 학생회 임원 중 한 명한테 추천권을 받아야 들어갈  있어."



뭐 그런 병신같은설정이 있냐. 대놓고 낙하산 타라 이거 아니야?


"아, 그랬구나. 몰랐네."


"응, 근데 별 이유 없는 추천권은  쓰지. 규정에 정해진 건 아니지만 대부분 결원이 생겼을  자리를 채워 넣을  쓰거든."


그래도 최소한의 구실은 맞추는구나.


왜 갑자기 상황이 복잡해진 거 같지?

학생회에 결원이 생겼다는 얘기는 없다.

그러면 문수린은 별 이유 없이 날 뽑으려는 거 같은데, 학생회장이 낙하산으로 뽑은 신입생이라니.

쓸데없이 어그로 끌기 좋은 상황 아닌가?


"너도 나랑 같이 낚시 동아리 어때. 대물을 노려보자고."

허공에 대고 가상의 낚싯대를 잡은 듯이 릴을 돌리고 있는 김영한을 내버려 두고 1학년 수업동으로 걸어갔다.

"빅토리아 아카데미 엘리트 마법사들의 동아리! 마력 연구부 신입 부원 구합니다!"


"검술 동아리 신입생 급구요~. 선착순  명 너만 오면 검술 훈련 고~."

"낚시 동아리입니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재미를 느껴보세요!"


확실히 동아리 홍보가 많이 늘었다. 몇십 명의 생도들이 길에서 팸플랫을 뿌리고 있다.

"저거 네가 찾던 낚시동아리 아니야? 한 번 가서 물어봐."


"오? 그럴까? 너도 같이 와봐."

"아니, 나는  간다니까...."


김영한은 낚시 동아리 팸플릿을 받으러 달려가서는 낚시 동아리 생도와 뭐라뭐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휴."


가입할 생각은 없지만 저걸 버리고 갈 수도 없으니 옆에 가서 섰다.


"그럼, 신입 부원 두  자리 있는  맞죠?"


"네네. 두  자리야 충분히 있죠! 사실 작년부터 신입 부원이 잘 안 들어와서... 올해에 10명 넘게 늘리는 게 목표에요."

"그럼 가입신청서 두 개 주시겠어요?"

"혹시 두  중 한 명이 나는 아니겠지?"

"당연히 너지 호연아. 너도 자연과 하나가 되자."

"아니 안 한다니까?"

"어, 저기. 이쪽은 김영한 씨고, 새로 오신 분이 혹시 이호연 씨 인가요?"


"네. 맞긴 한데, 가입할 생각은…."

"죄송합니다. 자리가 하나밖에 안 남아서 이호연 씨는 들어오기 힘들 것 같아요."


"…네?"

뭔 개소리야 갑자기? 방금 올해에는 신입 부원을 10명 뽑는다고 어쩌고 하지 않았나?


"무슨 소리세요? 두 자리는 충분히 있다고 하셨잖아요."


김영한도 이상한 소리를 하는 홍보 생도한테 의문을 제기했다.

"죄송해요. 착오가 있었어요. 김영한 씨 들어오면 자리가 꽉 찰  같아요."

"...."


뭐지?  찜찜한 기분은?

어차피 자리가 있어도  들어갈 거지만, 내 이름을 듣자마자 말을 바꾸는 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같은데.

"예. 알겠습니다. 자리가 없다니 어쩔 수 없네요."

"어? 호연아! 어디가!"


"나 먼저 갈란다. 너는 가입하고 와라."

꿍꿍이고 뭐고 귀찮다. 어차피 안 들어갈 거다.


근데 내 이름을 듣자마자 앞에서 동아리 홍보에 바쁘던 생도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그리고선 나랑 눈을 안 마주치려는 듯 티 나게 딴청을 부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


진짜 뭐 있는 거 같은데...


하아. 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수업이나 들으러 가자.







가슴  켠에 불편함을 끌어안은 채로 아카데미에 등교했다.

김영한은 곧 따라와서 내가 떠나자마자 낚시동아리 생도가 다른 사람한테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고 얘기해줬다.

"나도 뭔가 찜찜해서 안 들어가려고."

역시 금발양아치 답지 않은 의리가 있는 놈이다.

의자에 앉아서 담임 교수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시선이 두  느껴졌다.


슬쩍 바라보니 하나는 루미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왜 저러지?


'루미랑은 같은 동아리 들어갈 수 있으니까 괜찮겠지.'

히로인이 너무 많다 보니 신경 쓸 곳이 많다. 루시랑 루미는 친목동아리에서 케어 하자.


하나는 엑스트라 라이벌인 도진혁이었다. 얘는 거의 살기를 내뿜고 있다.


진짜 이해가 안 되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러는 거지? 주인공인 거 빼고 잘못한 게 없는데.


혹시 그게 잘못인가?

물론 살다보면 별 이유 없이도 싫어지는 사람이 있긴 하다.  녀석은 애초에 악역인 만큼 그렇게 태어난 운명일지도 모른다. 불쌍한 자식.

드르륵-


강의실 문이 열리고 담임 교수 김진혁이 들어왔다.

오늘도 검은 양복에 올백 머리다.


"다들 동아리는  찾아보고 있나? 동아리 1개는 필수로 권하고 있으니  가입하도록 해라."


그는 오늘도 차분하게 할 말을 전했다.


"다음주에 던전 실습이 있을 예정이다. 다들 알겠지만 빅토리아 아카데미에 출석점수나 수업태도 점수는 없다. 수업을 다 빠져도 시험 성적이 1등이라면 1등이란 소리다."


저래서 나중에 남다은이 수업을다 빠진다. 어차피 실기는 1등이라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던전 실습 훈련은 과정도 점수에 포함된다. 조 단위로 진입하지만, 조원 각자에게 개인 점수가 부여된다. 그렇다고 점수를 위해 억지로 나서지 않아도 될 상황까지 나서서 팀플레이를 방해한다면 감점이 부여된다. 알아서 판단하도록."


쉽게 말해 협동성을 길러주는 훈련이다.  성자들은 헌터 활동을 하든 협회에 들어가든 협동이 필수니까.

"오늘 수업은 특이사항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질문 있나?"

"...."

"없다면 수업 준비하도록."

담임 교수 김진혁은 그 말을 남기고 강의실을 나섰다.

담임 교수가 나가자마자 강의실은 다시 왁자지껄 해졌다.


'나도 수업 준비나 할까.'


이론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굳이 땡땡이쳐서 교수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필요도 없다.


가방에서 논문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읽어도 읽어도 논문은 끝이 없이 나오더라.

드르륵-!


그때 교실 문이 다시 열렸다.


이론 수업 교수가 오기에는 약간 이른 시간인데, 오늘은 약간 일찍 왔나 보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속 논문을 읽었다.


근데 교수가 들어온  치고 주변이 시끄럽다.


"하, 학생회장님? 1학년 교실엔  오신 거지?"


"저기, 여기 이호연이라는 애가 있지 않아?"


"네, 넷. 이호연은 저기 있는데요…."

"고마워. 후후."


이 교실에서 들려선 안  목소리가 들린다. 심지어 날 찾고 있다.

저벅저벅


고개를 들자 내 앞에는 문수린이  있었다.


아, 큰일 났네.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후배님, 생각은 다 했지?"

그녀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면서 학생회 입부 신청서를 내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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