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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14화. 임솔 (2) [수정] (14/648)



〈 14화 〉14화. 임솔 (2) [수정]

"아니, 적당히 복잡하게 만들어야지  하자는 거야, 정말."

최근에 아티팩트장인 노인네가 마나 보조기를  훈련용으로 개조해 준다길래 하나 가져다줬더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돼서 돌아왔다.

일주일 정도 각 잡고 연구해봤는데 도저히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온다.


막말로 내가 못 쓰면 다른 마법사들은 손도 못 대는 건데, 이딴걸 수련용이라고 만들어오다니 노인네가 드디어 노망이 난 건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엥, 어디 갔지?"

어젯밤, 훈련용으로 쓰지도 못할 거 위험하게 내버려 두지 말고 폐기하기로 마음먹고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놨는데, 하루 만에 사라졌다.

"아, 씨. 이래서 평소에 좀 치워야 하는데."

문이 있는 곳을 제외하곤 빼곡하게 채워진 책장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논문과 서류들. 그리고 마법적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놨던 종이 쪼가리들도 뒹굴고 있었다.

슈우욱


간단히 마법진을 그려 정리를 시작했다.


바닥에 쌓여있던 책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논문이나 서류는 차곡차곡 정리돼서 책상 위에 올려졌다.


종이 쪼가리들도 쓰레기통으로 알아서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아니, 어딨는 거야. 진짜?"


개조라고는 했지만, 웬만한 물건이 아니다.

마나보조기에 가공돼있는 마법술식을 역으로 꼬아서 마나감응도를 최하로 떨어뜨리고, 마나를 끌어올리면 반작용으로 내부에 충격이 가하게 만들어놨다.

거기에 마나에 밀어내는 속성까지 부여해 몸에 과부하가 오게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시너지가 너무 좋아서 정작 수련에 쓰다가 내상만 입었다.

결국 폐기목적으로 꺼내놓고 다른 연구를 하다가 왔는데 그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뭐 어딘가 있겠지. 밖으로 가져나간 적은 없으니까."


그런 위험한 물건인 걸 알고 있으니 밖에 가지고 나간다거나 하는 멍청한 짓을 하진 않았다. 그러니 어딘가에 처박혀있을 텐데, 아무래도 책장 밑같이 찾기 힘든 곳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똑 똑

"교수님, 안에 계세요?"


"응~ 들어와."

연구를 도와주는 여조교가 방에 들어와서 놀란 듯이 말을 건다.

"오, 웬일이에요. 갑자기 방을 다 치우시고? 자연스러운 상태가 연구가 잘 된다고 하면서 안 치우셨잖아요."

"응, 찾을 게 있어서.  혹시 마나 보조기처럼 생긴 팔찌 못 봤니?"

"아, 책상에 있던 마나 보조기 말씀하시는 거면 제가 다시 실습도구함에 넣어놨어요."


"... 뭐?"


"어차피 연구하다가 까먹으실 거 같아서, 오늘 마침 신입생들 실습수업도 있길래 정리해놨어요. 잘했죠?"

"야, 이 미친... 잠시만, 오늘 실습수업이라고?"


"네. 지금 하고 있을걸요? 왜 그러세요?"


벌떡!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게 있는 조교를 밀치고 마나 연구동으로 달려갔다.

"교수님, 어디가세요! 서류 작업하셔야죠! 또 도망가시는 거예요?!"


"아오, 저 철딱서니 없는 자식이."


여기서 마나 연구동 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하기보단 달려가는  더 빠를 것이다.


마나 보조기와 개조한 수련용 마나 보조기는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다.

물론 주의 깊게 본다면 약간 어색함을 느끼고 알아채겠지만, 교수나 조교가 마나 보조기를 주의 깊게  일도 없을뿐더러 학생들은 처음 보는 물품일 테니 아예 알 수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개조된 마나 보조기를 학생이 차기라도 하면... 어떤 끔찍한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마나 회로 손상으로 입원?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평생 마나를 사용 못 하는 불구가 되거나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교를 탓할 수도 없는 게, 연구에 쓴다고 아티팩트를 가져왔다가 깜빡하고 반납하지 않은 일. 그게 몇 번이나 이어져 징계를 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위험한 물건을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잘못이 제일 크다.


'으...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마나 연구동의 입구로 들어갔다. 신입생들의 수업 장소는 다행히 1층으로, 바로 눈에 들어왔다.


벌컥!

문을 부술 기세로 열고 들어갔다.


수업 중인 교실의 앞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으니, 수업 중이던 학생들의 얼굴이 보여야 하지만, 학생들은 모두 교실 뒤편에 빼곡히 모여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호연이 갑자기 쓰러졌다는데? 아 씨, 사람이 많아서 보이질 않네."

'이호연?'


저번 마법사 특기 수업때 기억에 남아서 메모를 해놨던 학생이다.

'차라리 재능이 아예 없었다면 나았을 텐데!'


적당한 재능으로 마나 역류에 반항하다가 정말 불구가 될 바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쓰러지는 편이 낫다.

나중에 응급조치할 가능성이라도 생길  있게 말이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아, 뭔데. 어어... 임솔교수님?"

모여있는 인파를 뚫고 들어가니 바닥에 쓰러져있는 남학생이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그의 외모. 저번 수업  보긴 했지만, 다시 봐도 새로웠다.

지금까지 살면서 잘생긴 사람은 정말 많이 봤지만, 이 정도면 지금까지 본 남자들은 다 오징어다.

그리고 그다음에 보인 것은, 그 잘생긴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고 찌푸리면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고?'


겉모습은 피를 토하면서 곧 죽을듯한 모양새지만, 그 속에서는 날뛰는 마나를 잡기 위해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그 수준이 너무 높았다. 게다가 처음 보는 마나 운용방식이었다.

'마나 운용이... 뭔가 어색해.'


지금까지 알려진 마나 운용법과는 궤가 다른 마나 운용이다.


마치, 수동적이고 틀에 맞춘  아니라 능동적이고 직감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듯한...


'어?'

임솔은 곧 무언가 가슴을 간질이는 느낌을 받았다. 깨달음이나 경지를 넘기 직전의 초집중 상태다. 임솔도 각성할 때 빼고 느껴본 적 없는 희귀한 현상이다.

하지만, 마나연구학 교수인 한재영 교수가 이호연의 몸을 붙잡으려는  보고 깨달음의 순간을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뭐 하는 것에요!"

"임솔교수님? 어째서 여기에 계신지요? 마침 잘 됐군요. 환자 응급조치를 해야 합니다. 한시가 급하니 교수님도 도와주십시오."


"아뇨, 건들지 마세요."

"대체 무슨 소리십니까?  학생 내부 마나 회로가 진탕이 났어요. 당장 조치해야 합니다."

"건들지 말라면 건들지 말라고!"

지금 외부의 마력이 섞여봤자 방해만 될 뿐이다. 이래서 수준 낮은 교수들은 빅토리아에서 다 잘라야 하는데, 어휴.

해골같이 생긴 교수를 째려본 후, 다시 이호연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까의 근질거리던 느낌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닌데,  미친 교수 때문에 날려버렸다. 허탈함이 몰려왔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다.

'저대로 진행되면... 확신할 순 없어.'

분명 뛰어난 마나 운용이지만, 상대가 너무 흉악했다. 개조된 마나보조기는 끊임없이 마나를 날뛰게 하며 몸에 충격을 가했다.

마나를 효율 좋게 끌어올릴 수록 반발도 더 심해지고 몸에 피로도 쌓인다.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잠시만, 처음보다 빨라진  같은데?'


마나 운용 속도가 분명 더 빨라졌다. 처음 봤을 때보다 분명히 수준이 높다.

"무의식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 임솔 교수님, 무슨 소리십니까."

이리저리 꼬인 마나 회로를 제자리로 바로 잡고, 막힌 통로를 억지로 뚫어낸다.


마나가 빠른 속도로 온몸을 순환하며 도망가려는 마나를 잡아낸다.


"이런 마나 운용이, 가능하다고?"

술식도 없이 하는 마력 제어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아니, 술식이란 게 필요 한 걸까? 처음부터 전제를 잘못 잡은 건 아닐까?


마법의 대전제를 눈앞의 학생이 깨고 있다.

다시 초집중상태로 들어가고, 새로운 경지를 엿보려 하던 찰나.

이호연이 눈을 떴다.

"아…."


나도 모르게 아쉬움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었어도 새로운 경지를 봤을 텐데!


"어... 어떻게 한 거야!"

"크헉!"






*






내가 죽을 뻔한 사고는 임솔 교수의 연구 용품이 학생용 실습기구 사이에 섞여 들어간 단순 사고로 처리됐다.

당하는 내 입장에서야 죽을 뻔 한 위기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 정도까진 아니었던 모양이다.


원래 단순 마법 실수로도 피를 토하는 경우는 많다고 한다.


물론 임솔교수와의 관계를 위해 조용히 처리하자는 내 동의를 받고 이뤄졌다.

정신을 차린 임솔 교수한테 사과도 받았고, 나도  후유증이 없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굳이 아카데미와 교수와 척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사건이 흐지부지된 후, 난 임솔 교수에게 납치됐다.


"니 집처럼 편히 있어."


방긋방긋.


 상황은 대체 뭘까.

세기의 천재 마법사라는 사람이  관상용 인형보듯이 앉혀놓고 웃고있다.

"앗, 내 정신 좀 봐 차라도 내올게."

짝짝

푸른색 로브 사이로 튀어나온 손이 박수를 두  치자마자, 찻잔과 티 세트가 저 멀리서 탁상위로 날아왔다.

임솔은 손수 찻주전자를 들고 내 잔에 따라줬다.

"자자, 이거라도 마시면서 편히 있어."

"네, 감사합니다."


찻잔을 들고 맛을 봤다.


호로록.


아니, 믹스커피잖아 이거.


슬쩍 앞을 보니 임솔은 그런 사소한 건 신경도 안 쓴다는 듯, 해를 보는 해바라기처럼 내 얼굴에 시선이 꽂혀있다.


"크흠, 교수님? 그래서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임솔은 앗. 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뜨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일단, 먼저 사과할게. 내 실수로 피해를 보게해서 정말 미안해."


임솔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 원래는 정식으로 사과를 했어야 하는데, 아카데미에서는 사건을 묻기를 원해서….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보상할게."


"진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마세요."

원래 이렇게 말하면 사람이 미안해서 더 챙겨주고 싶고 그러는 법이다.

진짜 나쁜 새끼라면 그냥 입 싹 닫고 끝이겠지만, 임솔은 그런 캐릭터는 아니다.

"고마워."

"저한테 사과 때문에 부르신 거에요?"


사과때문에 불렀다기엔 좀 이상했다.


치료를 하자마자 명목상이지만 사과를 받긴 했으니까.

굳이 한  더 하려고 불렀다기엔 좀 앞뒤가 안맞다.

"제대로 사과하고 싶기도 했고, 너한테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어."


"제안이요?"


원작에서 없던 일이 갑자기 벌어지니까 당황스럽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했다.

"너한테는 갑작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연구를 도와줬으면 해."


"연구? 제가 도와드릴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하겠지만... 그런 일이 있을까요?"

"일단 얘기 전에 하나 짚어두고 가도 될까? 아까 직접 꼬인 마나 회로를 복구했던 마나 운용법. 혹시 누구한테 배운 거야?"


마나 운용법? 갑자기 그게 왜 나오는 거지.

임솔이란 캐릭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재능의 마법사. 단순히 마법이란 분야를 극한까지 다뤄 S급으로 인정받은 마법사다.

그런 사람이 내 마나 운용법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내 마나 운용법에서 뭔갈 봤다는 건데...

생각나는거라곤 역시 [마나 감응]뿐이다. 내가 자력으로 마나회로를 뚫는 과정을 보고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저기?"

아, 사람을 앞에 두고 너무 고민했네.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 마나 운용법은 따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럼 100% 네 오리지널이라는 거지?"


"어... 예 그렇겠죠?"

이 세계에 특전으로 받은 [마나 감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아마 나밖에 없을 거다.


"그 대답, 믿어도 되지?"

"예, 믿으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못 믿는 거 같길래 확언을 해줬다.

"하... 스읍."

갑자기 임솔이 발정난 고양이처럼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혼자 스읍스읍 하면서 심호흡을 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잡았다.

"너... 이호연. 너 천재야. 지금까지 내가 봤던 마법사든 S급 헌터든 너랑 비교하면 그냥 불가사리라고!"


"불가사리요?"

"그래! 이 불가사리들!"


"... 아닙니다. 너무 과찬이세요."


갑자기 불가사리를 왜 저렇게 연호하는 거지? 불가사리랑 앙숙이라도 되나?


"과찬이 아니야. 이 정도 재능이면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단위에서 경쟁자를 찾아야 할 텐데..."

"제 재능이 그 정도라고요? 그냥 괜찮은 정도 같은데."

마나 운용법이라고 해봤자 그냥 스킬빨인데?

"하, 다른 불가사리들이  말 들으면 널 죽이려고 할지도 몰라. 참고로 네가 직접 풀었던 그 팔찌, 나도 그거 차고 마나 운용 힘들어."

"예? 진짜요?"

물론 진짜 위험하긴 했는데,  팔찌가 현역 S급도 못 쓰는 물건이라면 저렇게 반응할 만하다.


 재능이, [마나감응]이 그 정도였다고?


"응! 그러니까 네가 내 연구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분명 마법이라는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가 될 거야!"

"으음..."


마법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는  따위는 관심이 없는데... 그래도 도와주는  이득이 크겠지.

비록 히로인은 아니더라도 임솔 교수의 능력 자체가 출중하다. 앞으로 학교생활에 도움이 클 것이다.

교수  명과 친해져서 손해 볼 일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솔직히, 연구를 도와줄 자신이 없다.


임솔이 꽂힌 내 마나 운용법은 그냥 특전 빨 이다. 내게 연구에 도움이 될만한 지식이나 재능 따위가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일반인과 다른 점을 꼽자면 마나의 이해력이 다르긴 하겠지만,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의 영역이다.

고민 끝에, 그냥 솔직히 얘기하기로 했다. 아직 히로인들도 제대로 못 공략했는데 확실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쏟을 수도 없으니, 이게 맞겠지.


"제가... 도움이 될까요? 사실 마나 운용법은 제 스킬에 영향을 많이 받은 거라, 교수님의 연구를 도와드릴 정도의 식견은 없습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사실 이호연이라는 사람도  연구 대상이거든."


"네??"


"이래 보여도 모아놓은 돈도  많아. 보상도 뭐든 원하는 대로 해줄게."


으음, 솔직히 돈이야 많으면 좋긴 한데...

내 흥미가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게 보이자 임솔 교수가 답답한 듯 손을 앞뒤로 흔들고 있다.

"아니, 이건 진짜 전인류적 손실이야. 세계 마법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자신이 말하고도 진정되지 않는지, 으악! 하면서 손으로 자기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진짜 마법에 미친 광신도같은 모습이다.

마구 흔드는  때문에 후드가 뒤로 넘어가고, 고양이상인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분명 게임에선 차갑고 성숙한 어른 여성의 느낌을 주던 캐릭터인데, 어떻게 그랬던 사람이 이렇게 푼수처럼 변하는 거지?

마법과 관련되면 성격이 바뀌는 건가?


"어... 일단 진정하시고, 천천히 얘기해보세요."

"알았어. 스읍... 하아..."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는 임솔, 로브 사이로 보이는 몸매가 꽤 매력적이었다.


큼, 괜히 아까 뭐든 해준다는 말이 머리에 맴돈다. 진정하자.

"...내 가슴에 관심이 많은가 봐?"


"ㄴ…. 네?"


어떻게 알았지? 로브가 펄럭거릴 때마다 훔쳐보긴 했는데, 그걸 들켰다고?

임솔이 입을  다물더니 무언가 결심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르륵-


로브가 몸의 라인을 타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상의로 입었다기보단 가슴에 걸친 듯한 핑크색 박스티와 허벅지를 감싸는 검은색 레깅스의 익숙하지 않은 조합.

정말 순수하게 편함을 추구한 조합이지만, 임솔의 육감적인 몸매는 오히려 부각됐다.


임솔은 그 상태로  옆자리로 옮겨앉았다.

섬유유연제향과는 다른, 여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달콤한 향기가 화악하고 올라왔다.

"사과의 의미 겸 ... 네가 원하는 게 이거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


갑자기  그러세요. 교수님. 무서워요...


옆자리에 앉은 임솔은 허리를 숙여서 날 밑에서 위로 올려봤다.

예쁜 여자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감각이 무언가 어색했지만, 약간의 쾌감도 느껴졌다.


내 허리춤부터 얇은 손가락이 몸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톡. 톡.

그 미약한 건드림은 오히려 민감하게 다가왔고, 흥분됐다.

천천히 내 얼굴로 다가오는 임솔의 얼굴과 몸을 타고 올라오는 손가락에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 임솔이 다시 말을 꺼냈다.


"호연아. 같이 연구할래?"

"... 세계 마법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선택이야. 후후."

역시 사람은 범인류적 관점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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