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5화. 루시 (5/648)



〈 5화 〉5화. 루시

"아으읏 피곤해...!"

키가 160cm도 안 되는, 누가 보면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소녀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빅토리아 아카데미 제복과 압도적인 흉부가 그녀가 중학생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몸의 성장호르몬이  가슴으로 간 건지, 작은 몸집에 과 맞지 않는 가슴이었다.

이제 막 프라이빗룸에서 마나 훈련을 끝마치고 나온 그녀, 루시는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훈련실로 달려온 이호연과 같은 독종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나가던 프라이빗룸의 복도에서, 사이렌이 울리며 치이익-하는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났다.

"어? 뭐야, 사고야? 어?"

루시가 지나가던 복도의 프라이빗룸의 문 하나가 위로 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녀는 입구에서 나눠주지만 아무도  읽는 트레이닝센터의 안내 책자를 열심히 읽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훈련 중 마나 탈진 현상!'

프라이빗룸에서 마나 탈진 현상이 나타났을 경우, 빠르게 조치하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훈련시스템이 바로 감지해, 구조대원들을 즉시 출동시키고, 혹시나 주변에 사람이 있다면 응급조치를 할  있도록 사이렌이 울리는 것이다.

"저기요, 괜찮아요?"

연기로 인해 사람의 형상만 보일 뿐 누군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루시는 손을 휘휘 저으면서 연기를 걷어내고,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뭐야,  사람 입학식 때 자던 사람 아니야?"

입학식 때 옆에서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이 들길래 깜짝 놀라서 깨웠던  남자다.

'그때도 느끼긴 했는데 지금 보니까 진짜 잘생기긴 했네.'

쓰러진 남자의 잘생긴 얼굴에 놀라기도 잠시, 루시는 빠르게 남자에게 다가갔다.

"씨잉, 야! 정신 좀 차려봐!"

툭 툭 볼을 쳐봐도 남자가 정신을 차리지 않자, 루시는 무언가 응급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시는 안내 책자만 열심히 읽었을 뿐, 그 옆에 있던 응급조치안내서는 읽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응급조치라고 해봐야 중학교 때 배운 심폐소생술밖에 없었다.

'안 하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낫겠지?'

사실 심폐소생술은 심정지가 아닌 사람에게 하면 매우 위험한 응급조치술이었지만, 루시는 거기까진 알지 못했다.

흉부 압박 자세에서 손을 모으는데 팔 가운데로 가슴이 눌리면서 굉장히 야릇한 모양새가 되었다.

하지만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녀는 진지하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으으... 으..."

"오? 정신이 들어?"

남자가 반응을 보이자, 제대로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루시는 다시 한번 심폐소생술의 가슴 압박 자세를 잡았다.

그때, 남자의 손이 갑자기 위로 올라왔다.

"어?"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한 루시는, 자신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손을 보고도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주물 주물 주물

"끼...끼야아아악!"

*

뭐지?

분명 마나가 정상적으로 모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눈앞에 수박  덩어리가 출렁출렁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안 돼 몽롱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그 수박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수박이 이렇게 부드러운 과일이었나? 아닌데... 이건 대체 뭘까?

부드러운 게 마치 여자 가슴같...

"끼…. 끼야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귀에 박혔다.

그제야 제대로 의식이 돌아왔다.

시야를 부드러운 수박의 위로 올려보자, 웬 제복을 입은 어린아이가 날 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히로인 상태창

[루시]
- [ 호감도 : 8 ]
- [ 성욕 : 5 ]
[ 식욕 : 50 ]
- [ 피로도 : 60 ]

잠시만, 루시가 왜 여기서 나와?

유럽 쪽 피가 섞인 혼혈인 그녀는 쌍둥이 히로인 자매의 언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과 빠르게 친해져서 친구가 많고, 주인공과도 쉽게 친해지지만, 오히려  성격 탓에 친구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기가 어렵다.

거기에서 지극정성을 다하는 주인공을 통해 점점 그런 마음이 사라지고 주인공에게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첫 만남부터 사고를 쳐버렸다.

"어... 저기,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이... 이익! 너, 너  나쁜!"

얼굴이 홍조를 넘어 불처럼 뜨거워진 루시가, 손위로 불의 화살을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만, 잠시만, 진짜 실수였어. 조금만 진정해봐!"

"변태는 죽어야 해! 이 범죄자야!"

지금 저걸 맞으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당장 마력을 움직여서 막아야 하는데, 마력이 움직이질 않는다.

"402호다! 402호에서 긴급상황경고가 울렸어!"

"바로 저 앞입니다! 어? 학생! 여기서 마법을 쓰다니  하는 거야!"

정말 다행히도 타이밍 맞게 구조대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내가 쓰러졌을 때, 트레이닝센터 내부에 있는 시스템이 내 상태가 위급하다고 판단해 구조대를 보낸 것 같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기에요!"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다행히도 나에게 불화살을 쏘려던 루시는 구조대에게 양팔을 잡혀 제압당했다.

구조대가 양팔을 잡고 제압하고 있지만, 키가 작다 보니 공중에 거의 뜬 상태가 되었다.

그 상태를 벗어나려고 버둥버둥하는데, 공중에서 흔들리는 가슴만 눈에 더  뿐이었다.

루시는 게임에서도 눈이 돌아가 버리면 말이 안 통한다. 차라리 잠시 빠졌다가 진정되면 사과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다행히도 루시는 자신을 제압한 구조대에게 정신이 팔려서 날 잠시 잊은 듯 하니,  틈에 빨리 도망가야겠다.

"아니 이 학생 대체 왜 이래? 지금 응급환자가 있다니까! 어? 어디 갔어?"

"아까 저 코너로 혼자 달려가던데요?"

"야 이 새끼야, 그걸 가게 내버려 두면 어떡해?"

"근데 너무 멀쩡해 보여서..."

"이거 놓으라고오오!"

"아오. 진짜 돌아버리겠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긴급구조요원은  일을 때려치워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

"마력 탈진 현상?"

내가 겪었던 게 마력탈진 현상인 모양이다. 몸 내부 마력의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마나를 무리하게 운용하려 하면 생기는 현상이란다.

게임에선 이런 거 안 나오던데, 불친절한 세상이네! 진짜.

전력을 다해보고 싶어서 마나를 쥐어짰으니 이해는 된다. 게다가 컨디션도 만전이 아니었다. 이제 내 마나 총량을 깨달았으니 다신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지.

'하필이면 첫 실수를 왜 루시 앞에서 하냐. 아오.'

이번엔 마법 사용에 재미가 들려서 너무 흥분했었다. 다시는 없을  실수가 하필 히로인 앞이었다.

일단은 수련이 더 필요하다. 당장 마나 통이 너무 부족한 게 문제다.

'그리고 루시도 문젠데...'

루시도 '섹아'의 히로인중 한 명이다. 게다가 같은 A반이기 때문에 당장 내일 첫 수업부터 마주칠 텐데, 그런 사고를 쳐버렸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무언가 조처를 해야 하지만, 솔직히 지금 당장   있는  없다.

그냥 구조대랑 싸우다가 내 존재를 잊었다에 거는  확률이 제일 높을 거 같은데.

하, 모르겠다. 주인공 버프를 믿는 수 밖에.


*

첫 등교인 화요일 아침.

빅토리아 아카데미는 굉장히 넓다. 학년별로 건물이 따로 있고, 마력수업이나 대련장, 식당 등등 모든 건물들이 휘황찬란하니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아카데미 길도 좀 외우면서 천천히 걷다보니 1학년 건물 앞에 도착했다.

[A 클래스]

확실히 A반보단 A클래스가 더 있어보이지.

"후우..."

두근 두근-

이게 뭐라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릴 때 학년이 올라갔는데 친한 친구가 같은 반에 아무도 없을 때 느끼던 떨림이다. 내가 여기서 잘 적응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심호흡을 한 번  후, 자신감 있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교실이라기보단 강의실이란 느낌이었다.

깔끔한 흰색 인테리어에 대학교에서 봤던 기다란 책상들이 계단식으로 늘어서 있다.
강의실의 앞에는 교단과 홀로그램 장치기가 있었다.

문을 열고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교실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순간 집중된다.

원래 이런 건 순간 집중됐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시선들이  떠나질 않는다.

"야, 뭐야, 잠시만, 와 뭐야?"

"누구지? 잘생겼는데?"

"나 쟤 어제 TV에서 본 거 같은데."

일단 이러고서 있을순 없으니 적당히 주변을 둘러보다 중간  맨 끝 창가 자리를 잡았다.

맨 뒤에 앉으면 너무 양아치 느낌이고  앞은 쓸데없이 교수들의 관심을 받으니 중간이 딱 좋다.

책상을 보니 책상마다 홀로그램 영상기가 장치되 있어서 수업  필요할 때마다 눈앞에 자료가 나오는 것 같다.

자리를 잡고 나서 주변을 둘러봤다. 맨 뒷자리에 루시와 루미가 같이 앉아 재잘재잘 떠들고 있다.

둘은 일란성 쌍둥이로, 정말 오랫동안 가까이서 루미와 루시를 관찰한 부모님이 아니고선 자세히 봐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게 생겼다.

다행히도 머리와 옷 스타일, 말투 등이 둘을 구별하게 해주었다.

루시는 머리를 푸른색으로 염색했고, 항상 가디건으로 자신의 몸매를 최대한 가리고 다녔다. 친구가 많아 루미와 같이 다닐 때가 아니면 항상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루미는 트레이드마크처럼 청순한 빨간 리본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다니고, 아카데미 정복 차림을 고수하며 순하고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한다.

 히로인 상태창
[루시]
- [ 호감도 : 1 ]
- [ 성욕 : 5 ]
- [ 식욕 : 40 ]
- [ 피로도 : 20 ]


★ 히로인 상태창
[루미]
- [ 호감도 : 15 ]
- [ 성욕 : 30 ]
- [ 식욕 : 40 ]
- [ 피로도 : 30 ]

루시의 호감도는 1까지 떨어져 있었다. 저 정도면 길가의 돌멩이보다 낮은  같은데, 어제 확인했을 때보다 더 낮아졌다.

루미의 호감도는 평범한 걸 보니, 루시가 나에 관한 얘기를 한  같진 않다.

그렇게 루시와 루미의 상태 창을 바라보고 있자, 웃으며 루미와 얘기를 하던 루시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루시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진다.

옆에 있던 루미는 갑자기  이러는 건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더 보고 싶었지만, 바로 눈을 돌렸다.

원래 필기 수석인 엘리스와 실기 수석인 남다은도 A클래스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갑자기 왜 그래 루시, 무서워..."

맨 뒷줄에서 가슴을 책상 위에 얹은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루시의 시선이 느껴졌다.

드르륵-

다행히 곧 교관이 문으로 들어오면서 나에게 쏠려있는 시선이 흩어졌다.

검은 양복의 올백 머리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와 교단 앞에 섰다.

"A반 담임 교수를 맡은 김진혁이다. 반갑다."

말을 마치자마자 강의실을 눈으로 한번 훑어보고 불만이 있는  눈을 찌푸린다.

"첫날부터 신나 보이는 학생들이 많군. 여러분들은 좀 더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생도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품위 있게 행동해야 한다."

지휘봉으로 교단 뒤의 스크린을 툭툭 치자 OT에 대한 안내가 펼쳐졌다.

"기본적인 교칙과 시간표는 개인적으로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도록 하고……"

대충 지루한 시간이 끝난 뒤, 스크린에 조 편성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헌터의 기본은 협력이다. 던전 탐사, 빌런 퇴치, 긴급 출동 등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헌터와의 협력이 주가 된다."

맞는 말이다. 굳이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싸울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많은 수업은 조별 수업으로 이루어진다."

탁 탁. 스크린에  편성리스트가 떠올랐다.

빅토리아 아카데미 내부의 시스템이 입학성적으로 자동 분류한 조합이다.

"지금 편성된 이 조원들은 다른 모든 과목에서도 적용된다. 조원 교체는 원칙상 불가능하고, 다음 학기 성적으로 다시 분류될  있다. 누가 맘에 안 드네, 못하겠네. 이딴 소리를 하는 어린애는 없길 바란다."

강의실이 시끌시끌해진다. 조원 구성에 맘에 안 드는 학생도 있고, 다행히 친한 친구와 걸려서 얼싸 끌어안고 있는 학생도 있다.

내 조원 구성은... 오?

[7조. 남다은. 루미. 이병훈. 이호연]

남다은과 루미. 히로인이 같은 조에 둘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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