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2 - 152.헤프닝은 유연하게!
"뭐야."
강설화는 이동을 멈추지 않은 채 약간 내 쪽을 뒤돌아봤다.
"궁금한 게 있어서. 이동할 때도 얼음을 생성하면서 이동하잖아? 마력 소비는 괜찮은 거야?"
"이동할 때는 최소한의 마력을 쓰고 있어. 이동만 한다면 24시간 해도 문제없어."
"하지만 던전에서는 전투도 하잖아?"
"그때를 위한 마력 포션이잖아?"
"하긴 그러겠네."
강설화는 감정을 내세워 필요한 질문조차 대답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라 전력 걱정을 위한 질문에는 딱딱한 말투긴 해도 제대로 대답했다.
'이런 구분을 제대로 한다는 게 강설화의 매력이지.'
뭐, 사랑하는 사람이 연관되어 있으면 냉정함을 잃은 점 또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무난한 질문으로 도입을 시작했으니 이번에는 정말로 호감도를 올릴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그 전투복 역시 잘 어울리네."
"갑자기 뭐야?"
뜬금없는 칭찬에 도중 이동을 멈추고 강설화가 경계하며 나를 쳐다봤다.
"아니, 강설화 네가 싸우는 방법은 아이스 스케이팅을 응용해서 한 거잖아? 쓰는 스킬도 그렇고. 오늘 싸우는 걸 보니까 네가 그 디자인의 옷을 입고 피겨 스케이팅 주니어 선수권에서 우승한 때가 떠올라서."
"뭐, 뭐?! 네가 그걸 어떻게 하는 거야?"
내 말에 강설화는 적잖이 당황했다.
블블에서 강설화하고의 일상 스토리에서 밝혀지는 전투복 유래 설정.
나처럼 영재교육을 받은 강설화는 특히나 피겨 스케이팅에 재능이 있었고 또한 좋아했었다.
성별이 여자이기에 피겨 스케이팅을 해도 딱히 진성 그룹에 흠을 낼 것도 없고, 또한 강설화가 헌터로 각성하지 않을 때 여성으로서의 외모나 매력을 유력 재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진성 그룹 회장인 강설화의 아버지는 강설화가 피겨 스케이팅을 적극 지원했다.
어릴 적의 강설화는 그런 진성 그룹 회장의 속셈은 모르고 그저 자기가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걸 그저 아버지가 좋아하고 있다고 신나 하며 즐거워하던 스케이팅에 더욱 불을 지폈다.
원래부터 있던 의욕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쭉쭉 강설화의 피겨 스케이팅 실력을 늘렸고 마침내 피겨 스케이팅 주니어 선수권에서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강설화가 수상대 위에서 트로피를 받고 있을 때.
강설화의 눈에는 관객석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평소에는 강설화가 100점을 맞든 어떤 경연대회를 나가든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은 진성 그룹 회장의 출석.
강설화의 아버지가 출석한 결정적인 이유는 강설화를 보는 게 아닌 교양 및 자식들의 경기 모습을 보러 관객석에 앉은 유력 재벌들이었지만 당시의 강설화가 그런 걸 알 리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경기를 보러왔다는 것만으로도 강설화에게 있어서는 큰 기쁨이자 해당일이 소중한 날이 된 건 변함없었다.
그날 입었던 옷의 디자인까지도 말이다.
"나도 여러 영재교육을 받고 있었으니까. 피겨 스케이팅을 직접 한 적은 없고 다른 수업 스케줄 상 직접 경기를 보러 갈 시간은 없었지만 경기 영상만은 감상했었거든. 그 경기의 강설화 너의 춤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어."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감으며 감명 깊은 것을 본 거 같은 어조를 연기하며 이어서 말을 내뱉었다.
"그건 출중한 재능은 물론이며 그 재능을 꽃피울 정도의 의욕과 열정 그리고 노력이 녹아든 모습 그 자체. 당시 별명대로 빙판 위의 요정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웠어."
"읏…!"
강설화의 얼굴이 평소 내게 보였던 것처럼 분해서가 아니라 낯간지러움과 부끄러움 때문에 빨개졌다.
이걸 말하는 상대가 딱히 아무런 감정도 없는 남이거나 동성 친구였다면 고맙다고 가볍게 끝내겠지만.
정작 지금 이 말을 한 건 강설화가 당장에 이성적인 의미는 아니라 경쟁심이라도 의식하고 있는 내 입에서 나왔다.
그것도 어렸을 적에는 듣고 기뻐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에 와서는 대놓고 당당히 자랑하기엔 복잡 미묘한 빙판 위의 요정이라는 별명.
아무리 내가 말하는 게 순수한 칭찬의 의도를 담았다고 해도 강설화의 주관으로는 마치 중2병 시절 흑역사를 들춰내 놀림이라도 받은 기분일 거다.
"빙판 위의 요정 말인가요?"
"그래, 마리아. 그때 경기 영상은 나중에 다시 봐도 아름다웠어."
"어머! 그랬군요."
"보고 싶다면 내가 나중에 보여줄게."
"정말인가요? 빙판 위의 요정이라고 불릴 정도라니… 어릴 적 설화가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기대…."
가뜩이나 복잡미묘 부끄러움까지 느끼고 있는데 악의 없는 순수한 마리아의 추격까지 들어가니.
"저, 전투하는 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야지!"
강설화는 크게 호통을 치며 새빨개진 얼굴을 휙 돌렸다.
"어!? 서, 설화!? 왜 그러세요! 가, 같이 가요!"
앞장서는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걸어갈 때 리제가 내 곁으로 와서 말했다.
"일부러 놀리셨군요, 도련님?"
"반응 재밌지 않았어?"
"시훈이가 하는 반응에 비하면 약합니다."
"그건 시훈이가 놀리는 맛이 특출나게 좋을 뿐이야."
시훈이는 얼마나 발리든 불굴의 의지로 나에게 도전하는 그야말로 원작 주인공다운 굳센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놀릴 때 진심으로 분해하는 것도 그야말로 열혈이다.
그 뒤 4번 정도 더 플레어 폭스 무리와 조우했다.
"하아아앗!"
촤아아아악!
-크애애애애앵!
그리고 그때마다 강설화가 부끄러움과 짜증을 풀어내듯이 듬뿍 마력을 담아 연속으로 스킬을 사용하며 신속하게 플레어 폭스를 퇴치했다.
혼자서 몬스터를 다 해치우니 당연히 그만큼 마력을 소비했지만.
"꿀꺽꿀꺽! 다음!"
강설화는 바로 마나 포션을 헤파이에서 꺼내 웟샷하며 계속 던전을 나아갔다.
"아, 아앗… 제가 할 역할이…."
마리아가 처음 내가 제안한 작전을 쓰지 못해 아쉬워하면서도 심상치 않은 강설화의 기세를 느끼고 섣불리 강설화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몬스터 쓰러뜨리면서 조금은 흥분이 가라앉았을 거 같으니 이만 말리기로 하자.
물론 내가 말렸다간 바로 다시 점화될 테니 말을 거는 건 내가 아니다.
"리제."
"네."
중간에 위치한 리제가 강설화에게 다가갔다.
"강설화, 멈추세요."
리제의 부름에 강설화가 걸음을 멈췄다.
"뭐야? 어서 던전이나 공략하고 돌아가고 싶은데?"
"그것에 반대는 하지 않습니다만 이번 실습의 목적은 다른 반과의 연계를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혼자서 모두 해치우면 실습의 의미가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힐끔하고 리제가 마리아 쪽으로 고개를 돌린 다음 강설화를 바라봤다.
"이래선 탱커로서 마리아가 성장할 경험을 앗아갈 뿐입니다."
"…미안, 내가 너무 흥분했나 보네. 나답지 않게…."
같은 반인 마리아를 화제로 꺼내자 강설화는 짜증을 가라앉히며 사과했다.
"아뇨, 지금부터라도 연계를 해나가면 될 일입니다. 마리아, 탱커 잘 부탁합니다."
"네! 리제! 열심히 할게요!"
리제는 할 말을 마치고 뒤를 물러나고 그런 리제를 쫓듯 강설화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당연히 나를 보게 된다.
"으…!"
강설화는 날 보자마자 얼굴 보기 싫은 녀석을 봤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응, 아주 좋아.'
지금 보인 반응을 끌어내는 것만으로도 호감도작 시도를 한 건 충분했다.
중간고사 결과 발표 직후 강설화의 마음속에서 난 꼭 이겨야만 하는 목표이자 방해물이었다.
하지만 내가 라이벌로 보고 있다는 말에 강설화의 마음속에서는 방해물이라는 부정적인 인상보다는 경쟁하는 상대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박혔다.
함께 의뢰를 수행에 조금이나마 괜찮은 녀석이라는 인식을 추가로 준 다음 바로 오늘.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긴 하지만 남의 입에서 꺼내지면 부끄러운 과거를 칭찬하고 그 과거의 결과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까지 이해하는 짜증 나는 녀석이라는 인식이 강할 거다.
라이벌로서 이기고 싶으면서도 괜찮은 녀석이라는 건 알지만…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짜증 나는 녀석.
흔히 청춘물에 나오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사건 하나가 계기가 되어 짜증 났던 마음은 오히려 발화점이 되어 마음이 기울어지는 히로인의 심리 상태나 마찬가지란 거다.
'그리고 강설화의 마음이 크게 기울거나 나에 대한 인식이 매우 호의적으로 바뀔 사건은 오늘 일어날 거야.'
◈
30분 후.
조우한 플레어 폭스를 이번에는 제대로 연계를 맞춰가면서 마리아의 역할 또한 제대로 챙기며 우리는 던전의 끝에까지 순조롭게 도달했다.
하지만.
"…너무 조용한 거 아니야?"
보통 던전 끝에 다다랐을 때 만날 던전 보스가 없었다.
다른 생도들이 먼저 와서 해치웠다기에는 시체는 없었고 더군다나 전투의 흔적도 없었다.
"길은 잘못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마리아가 헤파이에 탑재된 맵기능을 이용해 현재 위치를 재확인했다.
"도련님, 뭔가가 이상합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편이 좋아 보입니다."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리제가 나에게 충고를 한다.
이 뒤로 일어날 일은 나밖에 예상 못 한다.
분명 내가 생각하는 상대는 내가 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 일단 후퇴하…."
[쿡쿡, 그렇겐 안 되지.]
""…!!!""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설화, 리제, 마리아가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그래봤자 소용없어. 너흰 이미… 내 덫에 들어왔으니까.]
푸른 수풀로 감싸였던 풍경이 검붉게 변하며 완전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10마리가 넘는 거미형 몬스터가 주위에 나타나고 공간 여기저기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다.
바닥에는 던전 보스인 스칼렛 플레어 폭스가 얼굴만을 내놓은 채 거미줄에 돌돌 말려 삐쩍 말라 절명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는.
"어서 오렴, 꼬맹이들아."
진한 녹색의 이마를 깐 웨이브 머리를 하며 몸에 착 달라붙은 검은 드레스를 입은 요사스러운 미모의 스트렌저이자 유괴사건의 범인이자 블레이즈 블러드 2장 보스.
"비참하게 죽을 준비는 됐니?"
루크치아가 모습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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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화인 150화의 엘리와의 씬의 삽화를 추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