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1 - 151.헤프닝은 유연하게!
모두의 복장이 전투복으로 바뀌었다.
난 하얀 양복, 리제는 메이드복, 강설화는 하늘색의 피겨 스케이터들이 입는 디자인의 레오타드, 그리고 마리아는 전신 갈색 스타킹 소재에 중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상당히 야릇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제작진이 전에 야겜을 만들던 회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덕심을 자극하는 수녀 또는 성녀=야한 복장이라는 공식을 성립하게 해주는 아주 바람직한 복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리아의 전투복은 처음 보네. 직접 고른 거야?"
"아, 네! 제가 생각해서 직접 만들어봤어요!"
설마 했던 오더 메이드.
마리아는 내추럴 스케베 복장 디자이너였다.
"잘 어울려, 예쁜데?"
"고, 고맙습니다!"
내 칭찬에 마리아가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귀엽다.
"빨리 가자. 다른 조한테 늦춰지겠어."
강설화의 재촉에 우리는 던전 안을 나아갔다.
아니, 강설화만큼은 앞에 얼음을 만들어내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미끄러지면서 나아가기에 걸을 때마다 좀 더 다리를 뻗는 범위와 각도가 걸을 때와는 미세하게 달라서 뒤에 있는 내 시야에서는 강설화의 허벅지와 엉덩이가 더욱 부각되어 보였다.
'스케이트를 하고 다녀서 그런지 아주 탄력 있어 보이는 튼실한 하반신이군!'
자고로 히로인들의 몸매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좋다.
몸매가 좋다는 건 곧 꼴리는 몸을 가졌다는 소리다.
물론 시라 케밀지아 이사장님이나 라히샤 룬베르그 회장님, 디아스 선생님 같은 비중이 있으며 엑스트라 캐릭으로 일시적으로 파티에 참전하는 캐릭터도 히로인들과 맞먹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럼 공략에 들어가 볼까.'
우선 상대에게 관련 있는 소재를 꺼내는 게 좋은 공략의 첫걸음이다.
'하지만 그 전에….'
-캐애애애앵!
우선 조우한 플레어 폭스를 상대할 차례다.
3마리의 플레어 폭스 무리가 털을 곤두세우며 모습을 드러냈다.
플레어 폭스는 D급 몬스터로 보통 여우보다도 2배는 큰 덩치에 지그재그로 붉은 털이 몸통에 있는 게 특징이다.
주로 사용하는 건 물론 이름처럼 불꽃.
이런 수풀에서 상대하다가 대규모 화재가 일어날 것만 같지만 이 던전의 수풀은 습도가 그럭저럭 높은 데다가 플레어 폭스가 사는 던전인 만큼 불꽃에 대한 내성이 높다.
"파워! 실드! 스피드!"
플레어 폭스가 나타난 것을 보고 바로 보조 종합 세트를 걸었다.
그리고 보조 다 걸린 그 타이밍에 플레어 폭스 3마리가 동시에 입을 벌리며 불꽃을 뿜었다.
"마리아!"
"홀리 프로텍트!"
맨 앞에 있던 마리아가 왼손에 장착한 버클러를 내밀며 스킬을 발동했다.
백금색의 마력이 버클러를 중심으로 퍼져나가 거대한 원을 형성해 방패가 되어 불꽃을 막아냈다.
"읏…!"
플레어 폭스가 내뿜는 불꽃은 구형으로 한 방에 가는 게 아닌 방사형이다.
그것도 3마리의 D급 몬스터 공격을 막고 있는 마리아는 신음을 흘렸다.
방어 스킬로 인해 내가 있는 곳까지는 열기가 퍼지지 않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잘못 맞았다간 헌터라도 큰 화상을 입을 공격이다.
그 위력을 나타내듯 쩌적하고 마리아의 실드의 외각 부분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리제!"
이름을 불리자 리제는 바로 내 뜻을 파악하고 플레어 폭스의 공격이 닿지 않는 홀리 프로텍트의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강설화도 리제가 움직이자마자 반대쪽으로 움직이며 홀리 프로텍트에서 벗어났다.
불을 뿜고 있던 2마리의 플레어 폭스가 리제와 강설화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불길을 멈추고 남은 한 마리만이 계속 남아 불길을 뿜었다.
부담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깎인 홀리 프로텍트의 내구도가 회복하는 건 아니다.
'10초 후면 홀리 프로텍트도 견디지 못하고 깨지고 만다.'
불길을 멈춘 2마리의 플레어 폭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향한 순간 땅을 박차며 마리아의 옆으로 이동했다.
"마리아, 수고했어."
"루벨트 님!"
"마나 프로텍트!"
마리아가 펼친 실드 바로 한겹 위에 방벽을 펼친다.
한창 불이 쏘아지는 중이라 형성하는데 평소보다 더 많은 마력이 필요하지만.
'이 정돈 나한텐 아무것도 아니지.'
마나 프로텍트가 성공적으로 펼쳐진 걸 보자 마리아가 홀리 프로텍크를 해제했다.
"죄송해요, 루벨트 님. 제가 더 힘내야 하는데."
"아니, 충분히 잘했어. D급 몬스터 3마리의 공격을 한꺼번에 막아냈잖아. 마리아 덕분에…."
시선을 앞으로 향하며 옆으로 빠져나간 두 사람의 상황을 확인했다.
리제와 강설화, 그리고 2마리의 플레어 폭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벌였었다.
플레어 폭스는 각자 짧게 화염을 뱉어내며 두 사람을 공격했고 리제와 강설화는 그 화염을 문제없이 피해내며 접근하여 몇 번이고 공격을 가했다.
2마리의 플레어 폭스의 가죽은 두 사람의 공격으로 찢겨져 본래 있던 붉은 털 말고도 주황색 털을 피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무리를 짓기 위해 각자 스킬을 사용했다.
"나인 슬래쉬."
"아이스 컷터!"
연속으로 휘둘러지는 단검의 참격과 중거리에서 날려진 얼음의 참격이 각 플레어 폭스의 몸을 난자했다.
피를 튀기며 2마리의 플레어 폭스는 힘을 잃고 그대로 쓰러지며 절명.
남은 건 한 마리뿐이었다.
마침 방벽을 공격하고 있던 불꽃도 사그라졌기에 마나 프로텍트를 해제했다.
"…! 루벨트 님!"
마리아가 황급히 내 이름을 불렀다.
방금 불을 꺼뜨린 남은 한 마리의 플레어 폭스가 다시 입 안에 불을 담아 뿜어내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제와 강설화는 떨어져 있어서 바로 남은 플레어 폭스를 공격하기에는 늦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플레어 폭스의 화염이 나와 마리아를 덮치겠지만.
'그렇겐 안 되지."
지팡이에 빠르고 신속하고 마력을 보내면서 좌표를 정하고 술식을 처리한 뒤 시동어를 내뱉으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어스 니들."
플레어 폭스의 입에서 금방이라도 불꽃이 뿜어져 나오려던 순간 땅에서 솟아난 바위 송곳이 플레어 폭스의 턱을 꿰뚫었다.
입이 완전히 꼬챙이 상태가 된 플레어 폭스.
퍼엉!
그대로 쏟아져나오려던 화염은 출구가 박힌 채 플레어 폭스의 입 안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자신의 목숨을 앗아갔다.
리제와 강설화가 다시 돌아왔다.
"훌륭하십니다, 도련님."
"마리아, 괜찮아?"
"네, 네! 루벨트 님이 부족한 절 도와주셨어요."
"아니, 마리아는 부족하지 않아.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해."
나에게 도움받았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소침해 하는 마리아를 강설화는 위로했다.
승부욕이 강하고 위로 올라가며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한 강설화지만 기본적으로 동료들에겐 약간 무뚝뚝할지언정 일부러 싸늘하게 대하거나 밀쳐내는 성격은 아니다.
물론.
"리제도 강설화 너도 훌륭했어. 혼자서 D급 몬스터를 이렇게 빨리 사냥하다니. 둘 다 대단해."
"감사합니다."
"자기는 한 번에 쓰러뜨렸으면서… 비꼬는 거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한텐 이런 태도지만.
강설화는 나한테 틱틱 튕기지만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겨야 공략이 수월해진다.
공략을 달성하면 이 틱틱 대는 모습도 볼 수 없을지 모르니 오히려 즐기자.
"난 좀 재치를 살려서 한 것뿐이야. 자, 다시 출발하자."
"…흥."
"어? 어어…? 설화? 루벨트 님하고 사이 나쁘신가요? 사이좋게 지내요! 같은 조가 됐으니까요!"
내가 즐기고 있는 한편 사정을 모르는 마리아는 나와 강설화 사이를 걱정하며 중재하려고 했다.
마리아의 중재에 강설화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짓고 이어서 떨떠름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마리아에게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강설화가 고민할 때 내가 먼저 마리아에게 말했다.
"마리아. 걱정하지 마. 나랑 강설화는 사이가 나쁜 게 아니야. 이건 말하자면…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라이벌이요?"
"경쟁심이라고도 할 수 있지. 중간고사 때 내가 1위가 강설화가 2위였잖아? 신입생 대표는 강설화였고. 나랑 강설화는 좋은 성적을 노리는 라이벌, 즉 경쟁자니까 무작정 친하기보다는 지금처럼 있는 게 서로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거야. 그치?"
"시, 시끄러!"
친절하게 강설화의 태도를 마리아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지만 강설화는 성을 냈다.
뭐… 당사자로서는 눈앞에서 이런 설명을 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
자기 속마음을 다 까놓게 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빨리 가기나 하자."
강설화는 진행을 재촉했고 싱긋 웃은 나는 마리아에게만 들리게 귓가에 속삭였다.
"거 봐, 강설화도 부정은 안 하지?"
"아, 네!"
마리아는 그제서야 이해가 됐는지 방긋 웃으며 앞으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기다려 주세요, 설화! 맨 앞은 전위인 제가 맡아야 해요!"
다시 진행하며 2번 정도 더 플레어 폭스와 조우했다.
이 2번의 조우에도 플레어 폭스는 마치 습성과도 같이 첫 컨택 후 화염방사라는 방식을 사용하려고 했다.
아무리 마리아가 탱커이고 3개의 화염방사를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조우할 때마다 그런 공격을 막으려면 마력이 빨리 소모된다.
그렇기에 미리 녀석들이 먼저 화염을 발사하기 전에 빠르고 위력이 낮은 마법으로 놈들을 견제하며 거리를 벌리게 만들고 거리가 벌어지면 리제와 강설화가 플레어 폭스를 해치웠다.
"또 제가 할 일은 없었어요…."
하지만 이 방법은 탱커인 마리아가 하는 일이 없어서 마리아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낙담하지 마, 마리아. 다음에는 전법을 바꿔볼까? 이번엔 내가 적극적으로 마법을 쏘며 공격할 테니까 마리아가 날 지켜줘."
"네!"
"강설화 너랑 리제는 함께 협동해서 한 마리에 집중해보는 건 어때? 한 조가 됐고 두 사람은 같은 근접 타입이니까 합을 맞추긴 해야 하잖아?"
"알겠습니다."
"…그래."
내 작전에 모두가 동의하며 계속 던전을 나아갔다.
'몇 분간은 몬스터와 조우할 거 같진 않군.'
주변 기색을 살피면서 딱 좋은 타이밍이라고 느꼈기에.
"강설화."
강설화의 이름을 부르며 호감도작 작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