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5 - 115.협조는 사이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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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나는 아이카와 아나스타샤에게 물었다.
"노래는 어디서 들려줄 거야?"
"스튜디오 잡아 둔 곳 있어요!"
"여기서 많이 멀지 않답니다!"
"그렇구나. 그럼 주소 좀 알려줄래? 잠시 자택에 들렀다 가야 해서. 볼일만 끝내고 금방 그쪽에 갈게."
"네! 여기요!"
"늦더라도 몇 시간이라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하하,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아."
잠시 저택에 들러 볼일을 본 후 난 바로 두 사람이 알려준 스튜디오로 향했다.
미리 말을 해두었는지 스튜디오의 안내원은 바로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아이카와 아나스타샤가 있는 방을 알려줬다.
두 사람이 날 초대한 스튜디오는 연주나 녹음을 위한 게 아닌 뮤비 등의 영상을 찍을 때 사용하는 녹화 스튜디오였다.
방에는 나를 위한 의자가 하나 설치되어 있었고 앞에는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기 위한 무대를 본뜬 설비가 있었다.
하긴 이편이 더 무대 같은 느낌이 나서 노래를 생으로 들려주기에는 좋겠지.
""루벨트 님! 어서 오세요!""
내가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아이카와 아나스타샤가 반겨줬다.
"응. 그럼… 들려줄래?"
"네!"
"루벨트 님은 여기 앉아주세요!"
자리에 앉자 생도복을 입은 채로 아이카와 아나스타샤는 무대 위로 올랐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한쪽 팔을 위로 들어 올리고 손가락을 튕기자 두 사람이 같은 그룹일 때 불렀던 음원이 흘러나오며 두 사람의 노래가 시작됐다.
첫 노래는 역시 두 사람이 그룹을 짜고 처음 발표하는 노래를 시작해서 차례차례로 불렀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마지막 라이브 때 불렀던 노래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7곡 정도밖에 안 되는 두 사람의 노래.
두 사람은 노래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아 불렀다는 게 전해졌다.
동시에 이렇게 눈앞에서 두 사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서 난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블블은 인기가 많은 게임이다.
OST도 호평이어서 많은 유저들이 만족할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설령 캐릭터가 아이돌이라고 해서 노래까지 그대로 나오는 법은 없다.
그것도 과거 설정인 예전 그룹 때의 노래는 있을 리가 없다.
그걸 이 세계에 와서 내가 처음 두 사람의 노래의 들었을 때는 그야말로 나만이 독점할 수 있는 히든 DLC를 받은 것 같은 희열을 느꼈을 정도다.
감동에 그 시절의 두 사람을 바로 후원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지만 그랬다간 공략에 지장이 생길 것 같고 두 사람의 앙숙 대화도 들을 수 없을 거 같아 얼마나 참았던지.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두 사람의 노래를 생생히 들으면서 그때의 결단을 난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었다.
사이가 틀어져 앙숙이었던 두 사람이 날 위해 다시 힘을 합쳐 이렇게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이런 나만을 위한 라이브가 또 어디에 있을까?
""하아, 하아.""
7개의 곡을 열창하며 숨을 내쉬는 아이카와 아나스타샤.
-짝짝짝짝짝!
수고한 두 사람을 향해 난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정말… 정말 최고였어! 고마워!"
두 사람은 내 반응을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에헤헤! 루벨트 님이 그렇게 기쁘다니! 아이카도 너무 기뻐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루벨트 님!"
"나야말로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고마워. 둘 다 목마르지?"
난 저택에서 미리 챙겨서 헤파이에 넣어둔 음료수를 두 사람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루벨트 님!"
꿀꺽꿀꺽하고 두 사람이 음료수를 마셨다.
"아이카, 아나스타샤. 사실 너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보여주고 싶은 거요?"
"그게 뭐죠?"
"바로 이거야."
나는 헤파이에서 몇 가지의 물건을 꺼냈다.
"이, 이건…!"
"설마…!"
꺼내진 물건들을 보고 두 사람은 믿기지 않은 걸 본 듯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헤파이에서 꺼낸 물건.
그건 바로 두 사람이 그룹을 짰을 때 판매했던 굿즈들이었다.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두 사람의 사진이 들어간 캐릭터 카드와 머그컵, 스트랩.
그룹 이름이 들어간 손목 밴드와 머리띠, 부채 등등.
내가 직접 가진 못했지만, 사람을 시켜서 수집한 것들이다.
"트, 트윈 스타 굿즈…!"
"루벨트 님의 우리 트윈 스타 때 굿즈를 가, 갖고 있어! 얼마 판매하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두 사람이 그룹을 짰을 시절.
즉 트윈 스타 시절에 나온 굿즈는 정말로 소량이었다.
두 사람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나마 여태껏 응원해준 팬들을 위해 어떻게든 알바도 하면서 부족한 자비를 털어서 만든 굿즈들.
보고에 따르면 소량으로 만든 굿즈마저 조금밖에 안 팔려 재고를 두 사람이 싸서 가져갔다는 슬픈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먼 옛날을 회상하듯이 대각선 위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나는 엘드라를 잇기 위한 수업으로 정말로 바빴어. 그래도 여러 음악을 듣는 취미는 마음의 평온을 위해 계속 유지했어."
이 몸 스펙이 뛰어나서 그다지 힘들진 않았지만 일일이 두 사람을 직접 만나러 갈 시간이 없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중에는 대중적인 노래나 아직 새싹인 아이돌이나 뮤지션의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들어있었고… 트윈 스타를 알게 된 거야."
"우리를…."
"두 사람의 노래는 정말 마음에 들었어. 직접 가진 못해도 사람을 시켜서 노래를 녹음시키거나 두 사람의 모습을 찍어서 본 적도 많았어. 관객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은 정말 반짝였었어."
"읏…!"
움찔하고 떨며 두 사람의 눈이 파르릇 떨렸다.
"굿즈도 내가 직접 갈 시간이 없어서 사람을 시켜서 이렇게 모았던 거야. 난 두 사람이라면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우릴 그렇게까지 봐주셨다니…."
"물론이지. 실제로 두 사람은 지금 이렇게 각자 최고의 아이돌이라고 듣잖아? 어쨌든… 그래서 본격적인 투자가 필요할 때가 오면 내 이름으로 두 사람을 지원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러려고 할 때 트윈 스타는 해체하고 말았어."
""…!""
아이카와 아나스타샤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 했다.
내가 트윈 스타 때 두 사람을 지원하려는 말은 예상하지 못한 거겠지.
"그때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정말 아쉬웠어. 두 사람의 노래를 이대로 들을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정말로… 안 좋았어. 그런 때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사무소 오디션에 참가하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그때 우리를 추천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사무소의 스폰서가 되고요."
"맞아."
고개를 끄덕이자 아나스타샤가 나에게 물었다.
"루벨트 님… 하나 물어도 될까요?"
"뭔데?"
"어째서… 저희의 스폰서가 루벨트 님이라는 걸 그때 알리지 않았던 건가요?"
◈
나카자와 아이카는 내심 침을 삼키며 아나스타샤의 질문에 루벨트가 어떻게 대답할지 지켜보고 있었다.
루벨트가 트윈 스타 시절 굿즈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고 또한 기뻤다.
마치 여태껏 드러나지 않은 자신들의 열광적인 원초팬이 나타난 듯한 그런 감동이 있었다.
동시에 어째서 루벨트가 자신들에게 지금에 와서 정체를 밝히는지에 대한 궁금증 또한 커졌다.
'어째서 루벨트 님이 지금에 와서….'
두 사람의 물음에 루벨트는 쥐고 있던 부채 및 굿즈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볼 낯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볼 낯이…."
"없어요?"
"내가 좀 더 빨리 두 사람을 지원했었다면 트윈 스타가 깨질 일도 없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어. 그래서 각각 다른 사무소에 있던 두 사람을 지원해도 섣불리 내가 스폰서라고 적극적으로 밝히는 건… 마음이 켕겼었거든."
"그런 이유였다니."
"루벨트 님…!"
루벨트의 대답에 아이카와 아나스타샤는 각자 입을 두 손으로 막으며 극한의 감동을 맛보고 있었다.
설마 그런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고 하다니.
이런 반응이야말로 진정한 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두 사람을 봤는데 사이가 안 좋아 보였어. 그건 트윈 스타의 팬이었던 나에겐 마음 아픈 일이었지. 서로 다른 사무소가 돼도 난 둘이 다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뭐… 그 자리에서 강경수단을 썼던 거고."
""아, 아아앗…!""
이어지는 감동의 2연타.
자신들이 싸우는 모습에 마음 아파하는 루벨트가 여태까지 밝히지 않았던 정체를 밝혔다는 사실은 두 사람의 마음속에 강렬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자신들이 모르는 뒤에서 자신들의 팬이자 계속해서 지원해준 루벨트에 대한 감사와 함께 루벨트에게서 느끼는 이성적인 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루벨트 님…!!!''
아이카와 아나스타샤는 감동에 격차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망울을 맺힌 눈동자를 루벨트를 바라봤다.
"내가 그때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 말했어. 충분할까?"
두 사람은 끄덕끄덕하고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이번엔 내가 묻고 싶은데. 어째서 트윈 스타는 해체하게 된 거야? 괜찮다면 자세히 들려줄 수 있을까?"
"어."
"그건…."
"물론 부담스럽다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 내 궁금증 때문에 괜히 두 사람에게 억지를 부릴 순…."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렇게까지 자신들을 생각해주는 루벨트의 바람을 두 사람은 이뤄주고 싶었다.
게다가 이미 트윈 스타가 해체된 지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딱히 과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두 사람은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카와 아나스타샤는 어째서 과거 짰던 트윈 스타가 해체하게 된 사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