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4 - 114.협조는 사이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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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단의 물음에 시훈이와 아이카, 아나스타샤가 동시에 깜짝 놀랐다.
아니, 시훈이 너는 왜 놀라.
알고 있잖아.
"왜 그래, 시훈아?"
"아, 아니. 왜 그래냐니! 너, 너 그거 바로 밝혀도 되는 거야?"
아하.
시훈이는 내가 이 일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리고 그 숨기는 일을 그래도 자신한테 알려줬다는 걸로 생각하나 보네.
"왜 숨겨? 난 딱히 숨길 일도 아니고… 난 당당한데?"
"허업…!"
시훈이가 두 눈과 입을 동시에 벌리며 경악했다.
시훈아, 그래도 명색이 블블 주인공인데 그런 표정 지으면 되겠냐.
"쿠단,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그냥 궁금해서다. 교실에 있을 때… 네 주변에 있는 여자애들은 뭔가 분위기가 달랐으니까."
"그랬구나."
묵묵한 쿠단이 알아차릴 정도면 다른 생도들도 낌새는 느꼈으려나?
적어도 저기 놀라고 있는 두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정말 놀랄 정도로 바로 인정하는군."
"시훈이한테도 말했지만 딱히 숨길 일은 아니니까. 몰래몰래 관계 가지는 게 아니라 모두 서로 알고 있는 아주 원만한 관계야."
"흠, 약혼자인 글래스너도 인정하는 애인 구축이라…."
"쿠단, 애인이 아니라 모두 내 아내가 될 애들이라고 난 1위 2위 따지지 않는 남자니까."
"그것도 참… 놀랍군."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도 놀랍다고 얘기를 해도 전혀 놀란 거 같지가 않아.
"시훈아, 넌 언제까지 놀라고 있을 거야."
"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바로 당당히 밝히는 거 보고 안 놀랄 수 있냐!"
그건 그래.
그래도 그런 점을 무시하고 당당하게 나가야만 하렘의 길을 차릴 수 있는 거야!
"훗, 시훈이 넌 아직 멀었구나."
"아, 방금 그 표정 진짜 짜증 나! 너 그거 나 게임 이겼을 때 내던 그 재수 없는 표정!"
"시훈아, 말은 제대로 해. 이긴 게 아니라 아주 발라버렸을 때 표정이지."
"야!"
한번 시훈이를 골리고 있을 때 아이카가 어정쩡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저, 저기 루벨트 님? 진짜… 진짜… 그 여러 여자애들하고 사귀고 있는 거예요?"
"맞아. 같은 반에서 엘리하고 리제, 카구라, 유메, 치사키하고 사귀고 있어. 모두 좋은 애들이지."
"어, 어쩌다가 그렇게 많아진 거예요? 엘리 님은 그 약혼자고 리제는 메이드라고 쳐도!"
아이카는 내 여성관계에 대해 매우 궁금한 모양이다.
물론 그건 아이카만이 아니겠지.
아이카 뒤에서는 굳은 아나스타샤가 꿀꺽하고 침을 삼키며 날 보고 있고 쿠단도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하지만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 나를 좋아해 주고 내가 그 애들을 좋아하니까. 남녀 간의 이유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어… 마, 맞는 말인데…."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아주 쉽게 내뱉으니 아이카는 크게 반응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난 다수의 여성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그런 내가 법으로도 제정되지 않은 윤리관에 얽매일 필요는 없잖아? 애초에 헌터 중에서도 여러 아내를 가진 사람들도 있고."
"그렇… 네요."
"궁금증은 이제 해결됐어?"
"네, 네."
"쿠단, 너는?"
"아주 당당한 대답에 나도 이해했다. 이것이 갑부의 당당함…"
쿠단은 왠지 뭔가를 깨달은 듯이 말을 흐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건 풀렸지? 그럼 다시 가자."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고 시훈이가 자그맣게 투덜거리듯 중얼거렸다.
"…괜히 나만 마음 졸였잖아."
시훈이도 나름 내가 하렘 선언을 한 후 날 생각해준 모양이다.
고마워, 시훈아.
예슬이랑 더 잘 되게 도와줄게.
◈
아나스타샤는 옆에서 걸어가는 루벨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렘? 하렘을 차려? 루벨트 님이? 아니, 그럴 수도 있지만 정말로 하렘?'
방금 전 들은 당당한 루벨트의 하렘 커밍아웃.
그 주제에 아나스타샤는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도 세상 물정 모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연예계에 발을 들인 만큼 매우 선정적인 소문이나 이야기는 많이 듣는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어느 사무소의 스폰서는 자신이 후원한 여자 연예인들을 상대로 대접을 받거나 이미 아내가 있으면서도 몰래 애인 관계를 구축하는 경우도 있다고 아나스타샤는 들었다.
하지만 루벨트처럼 당당히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렘을 차리고 있고 애인 같은 관계는 없으며 모두가 아내가 될 여자.
즉 결혼할 거라고 선언하는 건 처음 보았다.
'루벨트 님이 이렇게나 개방적이었을 줄은 몰랐어!'
여전히 몇 번을 생각해도 충격적인 사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며 잠시 정신이 차분해진 아나스타샤는 루벨트가 자신의 팬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루벨트 님은 내 팬이자 내 스폰서… 게다가 루벨트 님은 자신이 좋고 자신을 좋아한다면 하렘에 포함할 마음이 있어. 그, 그렇다면 혹시…!'
아나스타샤는 연예인 헌터의 결혼상대에 대한 통계를 떠올렸다.
1위는 스포츠 헌터 선수
2위는 일반인
3위는 어디 기업에서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는 부자였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3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해당 연예인의 팬인 경우가 많았다.
이 케이스에 아나스타샤는 자신과 루벨트를 끼워봤다.
'가, 가능성 있어! 루벨트 님은 하렘파니까!'
만약 어정쩡한 부자였다면 하렘을 차린다고 해도 사회적인 야유를 수없이 받았을 거다.
하지만 루벨트가 누군가.
세계 최고 재벌인 엘드라가의 후계자.
세계최고 클래스의 부자가 하렘을 차린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기 질투보다는 감탄과 납득을 한다.
그리고 그런 반응은 결혼한 후에도 연예계 활동을 멈출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루벨트의 성격을 보면 결혼한 상대를 고생시킬 성격은 아니었다.
'루벨트 님과 내가… 아아아~.'
순간 뇌리를 스치는 행복한 상상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아나스타샤.
그때 순간 아나스타샤의 머리에는 행복한 상상만이 아닌 아이카의 존재가 스쳐 지나갔다.
'내가 이럴 생각할 정도라면…!'
아나스타샤는 전위 위치에 있는 아이카 쪽을 바라봤다.
'역시…!'
아이카가 힐끔힐끔하고 루벨트를 뒤돌아보고 씰룩씰룩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 아나스타샤는 아이카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왠지 모를 아이카를 향한 괘씸함이 아나스타샤의 안에서 생겨났다.
'아이카는 예전부터 막무가내로 돌진할 때가 있어. 내가 만약 정신 차리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망상.
막무가내로 루벨트에게 들이대며 어떻게든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고 루벨트의 여자가 되려는 아이카와 강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루벨트.
그런 루벨트의 반응에 흥분하고 잔뜩 신이 나서 폭주한 끝에 루벨트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라고 방까지 잡아 루벨트를 초대하는 아이카.
그리고 아이카는 루벨트와 둘만의 비밀 촬영회 이벤트를 펼치는 것이다.
-현역~ 최고 큐트 아이돌 나카자와 아이카입니다~ 지금부터 러브러브한 루벨트 님하고 첫 경험 졸업 이벤트 할 거예요~.
-앙! 앙! 아아앙♡ 루벨트 님의 절대신 스폰서 자지 기분 좋아~♡
아이카가 말할 것 같은 대사를 떠올리며 빠득하고 아나스타샤는 이를 갈았다.
'절대로 그렇게 안 둬. 적어도 나보다 먼저 하게는 안 둬! 나도 아직 해본 적 없는데 아이카가 감히 먼저 하려고 해!'
아나스타샤는 아이카와 마찬가지로 아이돌 활동에 전념하느라 남성과 사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아이돌 활동에 이성 관계는 거의 금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아나스타샤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루벨트에게 말했다.
"루벨트 님~."
"왜?"
"혹시 오늘 방과 후에 시간 있으세요? 그… 저번에 듣고 싶으셨다는 저희 노래 루벨트 님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정말? 알았어. 그럼 시간 낼게."
"네!"
'훗, 먼저 말을 걸어서 내가 이 이벤트의 주체라는 인식을 루벨트 님에게 심는 거야!'
"으득…!"
'먼저 루벨트 님에게 선수를 쳐…! 아샤. 이 불여우!'
그 모습을 보고 힐끔힐끔 뒤를 보고 있던 아이카는 이빨을 갈았다.
'…불편해.'
그리고 중간에서 그런 두 사람의 기색을 눈치챈 시훈이는 속이 쓰렸다.
남자로서 여자들에게 인기 많다는 부러움도 있지만 여성들의 기싸움 자체가 시훈이에게 정신적인 부담감을 주고 있던 것이다.
◈
내가 하렘을 이루고 있다는 발언 후 아나스타샤와 아이카의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
혹시 자신에게도 기회가 없나 하는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시선.
거기에 더해 아나스타샤가 직접 말을 거니 이번에는 아이카 쪽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아나스타샤에게 보냈다.
아나스타샤도 질세라 매서운 눈빛을 보내니 나를 향한 공략 경쟁이 일어나는 게 훤히 보였다.
그런 시선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막상 전투에 들어가면 두 사람은 전투에만 집중하며 익숙해진 느낌으로 연계를 이어나갔다.
만약 기싸움 하느라 연계까지 망가지면 한 소리 하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내가 있던 파티가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진 못했다.
"오! 사제! 이제 왔어. 히히히! 보스 몬스터는 이미 우리가 쓰러뜨렸다고!"
우리 파티보다 꽤 앞 순서에 출발한 치사키, 리제, 엘리, 유메, 카구라. 일명 내 하렘 인원 파티가 먼저 도착해 와일드 오크의 상위 개체인 와일드 오크 챔피언을 쓰러뜨렸다.
"저 인원이 다…."
"루벨트 님의… ."
"다시 보니 흠, 대단하군."
"어머, 뭐가 대단하다는 건가요?"
아이카, 아나스타샤, 쿠단의 중얼거림에 엘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그게…."
"그냥 내가 너희와 하렘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 감탄하고 있던 것뿐이야, 엘리."
"어머! 그랬던 거군요! 오호호호호! 그런 이유면 놀랄 수도 있죠! 루벨트 님의 포용력과 대단함은 평범한 분들에겐 놀랄 만한 일이니까요!"
"그렇게 추켜 세워주니 나도 기뻐, 엘리! 하하하!"
"루벨트 님이 기쁘다니 저도 무척이나 기뻐요! 오호호호!"
엘리와 약혼자끼리 화목하게 웃음을 나눴다.
"이게 갑부의 가치관… 대단하군."
"아니, 쿠단. 갑부라도 모두 다 저러진 않을 거야. 저건 루벨트네가 특별한 거라고."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