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5 - 95.오해 해명은 원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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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메는 리제에게 씻겨진 후 집으로 돌아갔다.
씻는 도중 리제는 유메에게 대략적인 내 여성사정을 설명했다고 했다.
"안나 씨에 대한 것도 말했어?"
"네, 놀라긴 했지만 우선 나중에 설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빨리 말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유메의 상태가 더 좋았다면 저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유메는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했으니까요."
"…."
그리 말하니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유메를 엄청 지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바로 나니까.
마음속으로 유메에게 사과하면서 유메와 이어졌다는 실감과 뿌듯함이 가슴을 채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기에 여유가 생겼다는 게 기뻤다.
강철산을 해치웠으니 2장.
다음 스트렌저가 등장하기까지에는 한 달은 넘어야 한다.
즉 그동안은 일상적인 이벤트가 일어나는 구간이라는 뜻.
말하자면 그동안 내가 공략한 히로인들과, 내 여자들과 꽁냥거릴 시간이 생긴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직 치사키는 한번하고 만 정도고 그 외에도 공략할 히로인들 그리고 포석을 회수할 히로인들도 있다.
블블은 히로인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으니 한 달 안에 전부 다는 못 해도 내가 충분히 즐길 만큼의 시간은 될 게 분명했다.
그런 시간이 시작될 내일이 기대됐다.
그리고 다음 날.
"루벨트 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양다리라니…! 양다리라니…! 설명해봐!"
시훈이에게 생각지도 못한 추궁을 받게 됐다.
◈
'유메는 잘 극복했을까?'
월요일.
아카데미에 향할 준비를 마치며 이시훈은 유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토요일, 이시훈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유메가 과연 루벨트와 좋게 마무리를 지었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고 분명 이쯤이면 어떻게든 마무리가 됐겠지라고 생각하며 이시훈은 유메에게 메세지라도 보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저으며 그만뒀다.
'루벨트한테 차여서 힘들 텐데 괜히 연락하는 건 안 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야. 크흑! 유메야…!'
그리고 찾아온 월요일에 이시훈은 집을 나섰고.
""아….""
마침 동시에 옆집에서 집을 나선 유메와 마주쳤다.
"유, 유메야. 안녕."
"응, 안녕. 무슨 일이야? 시훈이 네가 일찍 일어나고?"
"야, 몇 번 빼고는 원래 난 일찍 일어나거든?"
평소와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 유메와 이시훈.
하지만 이시훈은 평소보다 더 유메의 얼굴을 살폈다.
'애써 밝은 척을 하고 있겠지만 난 보여… 평소보다 피곤해 보여. 분명 주말 동안 슬픔에 잠기느라… 크흑! 안 돼! 내가 슬퍼해서 어쩌자고! 유메는 더 슬플 텐데…!'
이시훈은 물밀려 오는 슬픔을 꾸욱 참으며 유메와 같이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 도중 유메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이시훈에게 말했다.
"아참, 시훈아."
"응? 왜?"
"그… 저번에 전화할 때 있었잖아. 그때 나 응원해줘서 고마워."
"고맙긴…."
'이럴 때 나한테 고맙다고 하다니. 내가 응원해봤자 유메 너는…!'
"헤헤, 시훈이 네가 응원해준 덕분에 루벨트랑 잘 될 수 있었어."
"유메야…."
'그래, 루벨트랑 잘 대화해서 차일 수 있던 거구나.'
유메의 심정을 나름 상상해서 슬퍼하는 이시훈.
하지만 말을 꺼낸 유메는 순수하게 이시훈이 루벨트와 자기 사이를 끝내 응원해준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유메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 시훈아. 헤헤. 루벨트랑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시훈이 응원도 있어서 용기 내서 고백할 수 있었어."
"…응?"
이시훈은 유메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봤다.
'고백하고… 이어졌다고? 어?'
이시훈은 발걸음을 멈췄다.
"시훈아?"
"유메야, 무, 무슨 소리야? 이어졌다니? 루벨트랑 잘 됐다는 게 이, 이어졌다는 소리야?"
"응. 그야 당연하지. 나도 설마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 헤헤."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하는 유메.
그 얼굴에는 이시훈이 예상했었던 슬픔이 가득한 얼굴이 아닌 진심으로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루벨트한텐 엘리가 있잖아? 그런데 유메랑 이어졌다고? 서, 설마…!'
유메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며 이시훈은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양다리…!'
양다리.
즉 루벨트가 유메의 마음을 생각해서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치게 됐다는 가능성이었다.
유메의 고백이 너무나도 절박했기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인 루벨트.
그리고 유메 또한 루벨트에 대한 마음이 강하기에 설령 양다리라도 루벨트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는 게 이시훈이 떠올린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그건… 안 돼! 그래선 결국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어!'
떳떳하지 못한 양다리.
이건 분명 엘리한테는 비밀로 하는 거라고 이시훈은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내가 루벨트에게 단단히 말해야 돼! 친구로서…!'
이시훈은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설령 유메가 지금 슬퍼하더라도 루벨트에게 제대로 결단을 내리라고 과한 동정은 오히려 루벨트에게도 안 좋다고 이시훈은 친구로서 루벨트에게 충고하자는 결심을 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이시훈은 루벨트를 따로 불러낸 것이다.
◈
아무래도 내가 하렘을 차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유메가 시훈이에게 나하고 이어졌다고 말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시훈이가 지금 날 추궁하고 있는 거겠지.
우선 차분히 시훈이에게 설명하자.
"시훈아, 그게 있잖아."
"루벨트…!"
내가 뭐라 말하기 전에 시훈이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강하게 쥐며 말했다.
"아무리… 아무리 유메가 불쌍하다고 해도 양다리는 안 되잖아! 그래선 약혼자인 엘리한테도 미안하잖아! 그래선… 그런 결정을 내려선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어!"
"어…."
시훈이가 대충 어떤 상상을 했는지 짐작이 갔다.
적어도 내가 유메의 마음을 갖고 놀려고 하는 매우 나쁜 놈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은 게 여태껏 쌓아온 우정의 힘을 보여주는 거겠지.
"시훈아, 진정하고 일단 내 얘기를 좀 들어봐."
"…알았어."
시훈이가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나는 해명에 들어갔다.
"우선 말해두지만 난… 양다리 같은 건 하지 않았어!"
"뭐, 뭐라고…!? 그, 그럼 설마 엘리랑 헤어질 각오로 유메랑…!"
"그건 아니야!"
"그럼 대체 뭐라는 거야!?"
"시훈아, 난 정식적으로! 모두의 동의를 얻고…!"
주먹을 불끈 쥐고 이글거리는 의지를 눈동자에 담으며 시훈이에게 선언했다.
"하렘을 구축하고 있는 거야!"
"하… 렘!?"
"시훈아! 내가 누구지! 세계최고 재벌! 엘드라의 후계자야! 돈! 지위! 능력! 삼박자를 다 갖추고 있어! 그렇다면…! 남자로서 하렘을 꿈꾸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
대담한 발언을 할 때는 우선 뻔뻔하게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상대방에게 설득력이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물론 이건 내 독단이 아니야! 엘리도 내가 하렘을 차리는 걸 알고 있어!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하고 있지!"
"엘리도… 안다고!?"
"당연하지! 난 하렘을 차리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 약혼자에게 알리지도 않는 비겁한 겁쟁이가 아니야!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물론 알고 있지!"
"부, 부모님도!"
"약혼자가 알 정도면 부모님도 당연히 알아야지! 그래야 뒤탈이 없다고! 안 그래!"
"마, 맞는 말이긴 한 데… 그래도 너 고등학교 때 그렇기 인기 있었으면서 사귀는 애는 한 명도…."
"내가 인기 있는 거랑! 내가 마음에 드는 여자랑 사귀는 건 별개야! 나도 내 기준이 있어! 시훈이, 넌 널 좋아한다고 하는 여자가 있다고 무조건 사귈 거야?"
"윽…!"
시훈이는 내 말에 반박 못했다.
좋아, 더 밀어붙인다!
"시훈아, 난… 엘드라야! 엘드라를 이을 남자야! 그런 나는 많은 여성을 책임질 자신이 있어! 그러니까 나는… 남자로서의 꿈! 하렘을 이룰 거야!"
"루, 루벨트…!"
"게다가 중혼은 불법도 아니고 무엇보다 능력 있는 헌터가 여러 여성과 결혼한 건 너도 잘 알잖아?"
"응."
"그렇다면 나도 이루겠어, 하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손을 안 뻗는 건 남자가 아니잖아!"
"아아…!"
털썩! 하고 시훈이가 무릎을 꿇었다.
"그렇구나… 루벨트는 하렘을 이룰 생각이구나."
"그래."
"그럼 유메도 양다리나 그런 게 아니라…."
"정식으로 나랑 사귀는 거야. 엘리도 받아들여 줄 거야."
"그렇구나. 뒤가 켕기는 관계가 아니구나. 다행이다."
충격적인 내 발언을 듣고도 시훈이는 유메가 몰래 나랑 뒤가 켕기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에 가장 먼저 안심했다.
이렇게나 사람이 좋으니 당연히 주인공에 걸맞은 거겠지.
"그래, 그러니까 안심해, 시훈아. 유메도 내가 책임지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무릎을 꿇은 시훈이에게 손을 뻗었다.
"다른 놈이 말했으면 말이 되겠냐고 했겠지만… 뭐, 루벨트 너니까 안심되네."
시훈이는 내 손을 잡고 일어난 뒤 모든 궁금증과 고민이 풀린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루벨트, 유메 슬프게 하면 내가 가만히 안 둘 줄 알아?"
"나한테 게임으로 맨날 발리는 시훈이가 그런 말 하니까 너~무 무서워서 다리가 다 떨린다, 야. 그런 일 없도록 더 조심해야겠어~."
"야! 너 방과후에 시간 내! 이번에 내가 아주 발라버릴 테니까!"
"얼마든지."
농담을 주고받으며 귀가 전에 시훈이하고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루벨트 하렘차리겠다고 했잖아. 지금은 유메랑 엘리뿐이야?"
"설마, 지금 내 여자는 리제랑 카구라도 있다고."
치사키는 완전히 내 여자가 되기엔 애매하니 제외하고 아야메까지 설명하기에는 아직 시훈이에겐 충격이 크니까 꺼내지 않았다.
"리제는 그렇다 치고 카, 카구라까지…!?"
경악하며 시훈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루벨트, 예, 예슬이는 건들면 안 된다! 알겠지!"
"야, 내가 아무리 하렘을 이룬다고 해도 친구 여친한테 손댈 쓰레기로 보이냐. 애초에 예슬이랑 너 사이 좋아지라고 도와주고 있는 거 나거든."
"그, 그치! 아하하! 미안! 그, 그리고 아직 예슬이는 내 여친이 아, 아닌데… 뭐, 그래도 사귀려는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평소에 둔하고 연애 경험이 없기에 시훈이는 매우 풋풋하고 소심하게 반응했다.
이건 이것대로 보고 놀리는 맛이 있다.
턱! 하고 이번에는 내가 시훈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시훈아, 예슬이랑 잘 돼서 거사치를 거 같으면 우선 나한테 가장 먼저 말해. …아주 좋은 거 줄게."
"아, 아주 좋은 거? 그게 뭔데?"
"…아주 좋은 거야. 미리 알면 재미없어. 알았지?"
"…응."
시훈이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