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4 - 84.첫 퀘스트는 보람차게!
"강철산,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대충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우선 이유를 물어봤다.
강철산이 신중하고 냉철한 성격이었다면 이런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겠지만.
"크하하하, 그거야 당연히!"
다혈질에다가 난폭하고 자기 과시욕이 넘치는 강철산은 아주 순조롭게 자기가 온 이유를 알려줬다.
"저번에 너에게 당한 굴욕을 갚아주기 위해서지! 감히 나를 물로 봐?"
즉 제 성질에 못 이겨서 스토리와 다르게 벌써부터 등장했다는 거였다.
흠, 너무 놀렸었나?
"오늘이야말로 너의 제삿날이다! 흐읍!"
강철산이 펄쩍 뛰어올라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의 등 위에 올라탔다.
"네놈의 파티와 함께 모두 몰살시켜주마!"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강철산.
하지만 나는 그런 강철산의 말보다도 강철산이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의 등 위에 올라탄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라이더 폼…!'
강철산은 기본 혼자서 활동하는 스트렌저다.
하지만 스트렌저의 특징은 불길한 마력 외에도 몬스터를 사역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초반 보스인 강철산은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2장부터는 몬스터를 수하 대신으로 쓰거나 주요 전력으로 쓰는 적이나 보스도 등장한다.
그런데… 강철산이 확실히 나를 죽이겠다고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몬스터 사역 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 위에 올라타다니!
마치 새로운 게임 컨텐츠라든지 미공개 DLC 보스를 목격한 것만 같은 기쁨과 뿌듯함이 내 가슴을 채워갔다.
내가 아는 블블 스토리와는 다르지만 이런 깜짝 이벤트 같은 건… 오히려 좋다!
강철산 정도면 금방 대처할 수 있으니 안전 면에서도 문제없다.
"루벨트! 어떡하지!"
시훈이가 나를 보며 지시를 기다렸다.
시훈의 눈에는 강철산을 위한 적개심은 물론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피의 힘 때문에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 상대가 안 되는 실력 차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뒤에는 마음이 있는 김예슬과 친구인 리제와 유메도 있다.
혹여 이번 전투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다칠까 봐 걱정하는 시훈이의 상냥한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연히 여기서 저놈을 쓰러뜨려야지. 걱정 마, 내가 있잖아."
"…그래!"
시훈이는 바로 각오를 다잡고 강철산을 노려봤다.
나라는 존재가 강한 안심감을 시훈이에게 주고 있었다.
"리제! 우리와 같이 강철산을 친다! 유메와 예슬이는 보조마법이 끊기지 않게 주의해줘!"
힘차게 말하며 조금 긴장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원들의 정신을 깨웠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응!""
리제가 바로 자리를 이동해서 나하고 시훈이와 나란히 섰다.
"스트렝스!"
"실드!"
"스피드!"
뒤에서 유메와 김예슬이 번갈아 가며 다시 우리에게 보조 마법을 걸었다.
"죽어라아아앗!"
그리고 강철산이 툭! 하고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의 등을 다리로 두드리며 신호를 보냈고.
-꾸에에에에에엑!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는 붉은 갈기를 흩날리며 우리에게 돌진했다.
"내가 강철산을 견제할게! 리제와 시훈이는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를 처리해!"
"응!"
"네!"
활시위를 당겨 강철산을 노리며 화살을 날렸다.
쒜에에에엑!
"이딴 게 통할 거 같냐!"
카앙!
역시 1장이긴 해도 보스.
내가 날린 화살을 강철산은 손에 든 대검으로 막아냈다.
강철산은 내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고 비웃으려고 하지만 내 목적은 강철산이 리제와 시훈이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거다.
슈슈슈슈슈슝!
직접 화살을 쓰는 것에 비하면 약한 마나 애로우.
하지만 일일이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지 않고 시위를 당기는 것만으로 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강철산이 대검을 거두지 못하게 계속 내 마나 애로우를 막게 할 수 있었다.
"크윽! 이 애송이가!"
강철산이 연속으로 쏘아지는 내 화살을 막는 동안 시훈이와 리제가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의 곁에 다다랐다.
"블레이즈 슬래쉬!"
"나인 슬래쉬!"
화염을 두른 시훈이의 일격과 빠르게 9번의 참격을 날리는 리제의 단도가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의 옆구리를 베어냈다.
-꾸에에에에엑!
"이 애송이들이! 하아압!"
강철산은 자신이 타고 있는 몬스터가 공격당하는 걸 보고 시훈이와 리제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하지만 내 공격을 막느라 휘두르는 타이밍이 늦었기에 강철산의 공격이 둘에게 맞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푸푸푹!
"크윽!"
억지로 대검을 휘두르느라 강철산의 몸에 마나 애로우 3발이 꽂혔다.
"제기랄! 이대로 돌진해! 돼지 새끼야!"
화살을 맞아서 더 성질이 뻗쳤는지 강철산은 후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파이어 그레이트 보어를 날 향해 돌진시켰다.
""루벨트!""
"도련님!"
4명이 동시에 나를 부르며 걱정의 목소리를 보낸다.
새삼 내가 쌓은 인맥과 친밀도가 제대로 드러나는 상황이라 마음이 충족됐다.
"예슬아! 유메! 나한테 근력보조 마법을 최대한 걸어줘!"
"파워 스트렝스!"
"아! 스, 스트렝스!"
내 외침에 유메와 김예슬이 바로 보조 마법을 걸어줬다.
몸에서 힘이 솟아났다.
특히나 화이트 프리즘으로 위력이 강화된 유메의 파워 스트렝스가 더 큰 힘을 나에게 부여했다.
"겨우 보조마법 정도로 이 강화된 돌진을 막을 수 있을 거 같냐! 오의도 쓸 겨를도 없이 치여 죽어라!"
"8번."
활과 화살통이 대형 방패와 메이스로 바뀌었다.
"더 빨리 달려라!"
강철산이 내 장비를 보고 안색을 바꿨다.
당연히 그러겠지.
이 방패로 쓴 초필이 자기 초필을 막았으니까.
내가 초필을 쓸 틈도 없이 강철산은 이대로 날 치려고 했다.
스트렌저의 마력은 사역하는 몬스터의 레벨을 올린다.
E급 보스 몬스터인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가 강화됐으니 아마 D급 보스 정도로 한 단계 올라갔을 거다.
하지만 D급 보스 정도의 스펙은 중후반에서 사냥하는 A급 던전 잡몹보다도 훨씬 약하다.
이미 중후반 스텟치를 가진 내가 근력 보조 마법까지 걸어진 상태라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실드 배쉬!"
돌진해 오는 강철산을 태운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를 향해 오히려 내가 돌진하여 방패를 부딪쳤다.
떠어어어어어엉!
묵직한 울림소리와 함께 내 방패 돌진을 맞은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가 처음 서 있었던 장소까지 날아갔다.
-꾸에에에에엑!?
"뭐라고!?"
방금 일어난 현상에 강철산이 경악하며 눈을 크게 떴다.
"어? 방금 그거 뭐야?"
그리고 놀란 건 강철산 만이 아니었다.
시훈이가 앞뒤를 번갈아 보며 날아간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와 나를 번갈아봤다.
중후반 스텟에 추가로 걸어진 근력 보조마법이 있다면 강화된 E급 보스 몬스터 따위 손쉽게 날려버릴 수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상당히 보기 좋게 성대히 날아갔다.
'이 맛에 스텟 키우는 거지.'
난 게임에서 고전을 즐기는 것보다는 압도적인 스텟과 딜로 찍어누르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다.
즐기려고 하는 게임에서까지 스트레스받기 싫으니까.
아이 러브 이지 모드.
"방금 그거 루벨트가 한 거야!?"
"그럼 내가 하지, 누가 하겠어? 안심하라고 했잖아?"
"어… 응."
"역시나 도련님입니다."
"괴, 굉장하다…."
"대단해, 루벨트!"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니 파티에서 과도한 긴장과 불안함이 없어졌다.
그건 좋지만 완전히 긴장을 풀면 안 되지.
"아직 방심하지 마, 적은 아직 안 쓰러졌어."
-꾸으으으윽….
"이 괴물 같은 애송이 새끼가… 일어나 돼지 새끼야!"
잔뜩 성을 내는 강철산이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의 살집을 붙잡고 억지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우우우웅!
-꾸엑! 꾸욱! 꾸에에에에에에에엑!
허용량이 넘는 마력의 과도 주입.
그것은 일시적인 전투력은 높이더라도 몬스터의 생명력을 깎아내리는 방식이다.
마력이 과다주입된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꾸르으으으으윽!
그나마 의식이 있어 보였던 눈동자는 완전히 일그러진 마력으로 인해 붉게 물들고 그 안에는 적을 죽인다는 광기만이 남아있었다.
변모한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를 보고 모두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몬스터라지만 저런 식으로…."
"너무해."
"읏…."
"역시 스트렌저군요."
"크하하하하하! 자아! 이번에야말로 죽여주마!"
대검에 가득 마력을 담으며 선언하는 강철산은 이번엔 굳이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 위에 올라타진 않았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2페이즈 전투 시작이었다.
앞으로 전투를 위해서 나만 스텟을 올려서 싸우는 방식을 고집할 순 없다.
그러니.
"리제, 시훈아. 그레이트 파이어 보어를 부탁해. 난 강철산을 맡을게."
적당히 상대할 수 있는 상대는 다른 파티원에게 맡긴다.
"알았어!"
"받들겠습니다, 도련님."
"이봐, 애송이. 지금 날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당연히 그러지. 저번에도 날 상대로 꽁무니 빼고 도망간 녀석이 누구더라?"
"끄득…!"
"게다가 나보다 약한 녀석을 가뜩이나 여럿이서 상대하는 건 아무래도 마음이 아파서 말이야. 난 아무리 적이라도 약한 놈을 필요 이상으로 패는 건 싫어해서."
"개자식이이이이이잇!"
내 도발에 제대로 걸려던 강철산이 시훈이와 리제를 지나치고 나만을 바라보며 거리를 좁혔다.
"뒈져어어어어어엇!"
강철산의 마력이 듬뿍 담긴 대검이 휘둘러졌다.
가뿐히 옆으로 피한 다음.
"실드 배쉬!"
떠어어어어어엉!
"커헉!"
싸움의 여파가 다른 파티원들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강철산을 방패로 때려 동굴 벽까지 날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