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9 - 49.모녀덮밥은 푸짐하게!
쉐에에엑!
더욱 필사적으로 변한 보스 텐타클 리자드의 촉수가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실드도 없기에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
평소보다도 더 크게 발에 힘을 주며 공격궤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더 거리를 벌림으로써 내 뒤에 있는 카구라와 유메의 모습이 보스 몬스터의 시야에 들어오게 한다.
몬스터라고 해도 보스 몬스터.
다른 몬스터들보다도 지능은 물론 생존본능이 높다.
자신이 농락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
혹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적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키에에에에에엑!
보스 텐타클 리자드는 내가 마련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개의 촉수가 각각 유메와 카구라를 향해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유메! 카구라!"
둘을 돌아보며 다급한 목소리를 내며 쏘아지는 촉수 중 유메를 향한 촉수를 향해 카타나를 던졌다.
서걱!
마력을 담아 힘껏 던졌기에 텐타클 리자드의 촉수는 유메에게 쏘아지다 끊어졌다.
하지만.
휘리리릭!
"으으윽!"
"카구라!"
카구라를 향해 쏘아지는 촉수는 재빠르게 카구라를 휘감아서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블블에서 봤던 유메의 촉수 속박씬의 카구라 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보스 몬스터의 촉수라서 더 굵다는 정도.
"치사키! 엘리! 서둘러 마무리를 해줘!"
"알았어! 역천!"
"엘리멘탈 스팅!"
파지지지직!
휘우우우웅!
내 지시에 치사키와 엘리가 바로 스킬을 쓰며 보스 몬스터를 공격했다.
"1번!"
그사이에 나는 던진 카타나 대신 직검을 꺼내 카구라를 휘감은 촉수를 베어냈다.
서걱!
내가 촉수를 베어낸 타이밍에 맞게 엘리와 치사키의 공격에 보스 몬스터가 쓰러졌고.
동시에 카구라를 휘감은 촉수 또한 빛이 되어 사라졌다.
"꺄악!"
공중에서 떨어지려는 카구라를 재빨리 공주님 안기로 잡아내 받아냈다.
"괜찮아, 카구라?"
"어, 으, 응…! 고, 고마워."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묻자 카구라가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내가 좀 더 주의했어야 하는데."
"아니야. 이건 피하지 못한 내 잘못인걸. 게다가 유메가 걸어준 실드 덕분에 다친 곳은 없어."
"다행이네."
부드럽게 카구라를 내려놨다.
카구라는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어?"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려던 걸 내가 지지했다.
"어, 어라? 왜…."
"텐타클 리자드의 촉수에는 마비 효과가 있다고 들었어. 그거 때문일 거야."
블블에서는 유메가 단단히 촉수에 휘감겼던 탓에 마비가 걸려 움직일 수 없어 등에 업고 귀환한다는 이벤트가 있었다.
그저 잠깐 막는 것 정도라면 실드의 효과도 있어서 문제없지만 온몸을 단단히 휘감겨 효과가 나타난 거다.
"카구라! 괜찮아?"
유메가 다가와 카구라의 안부를 물었다.
가장 가까이서 카구라가 휘감긴 모습을 보니 상당히 놀랐겠지.
"괘, 괜찮아. 하지만 몸이 마비됐나 봐."
"어, 어떡해!"
"당분간 안정을 취하는 게 나을 거야. 카구라 팔은 움직일 수 있겠어?"
"팔? 응, 조금이라면…."
"그럼 됐어. 꽉 잡고 있어."
"꽉 잡으라니 뭘… 으응!?"
바로 카구라를 등에 업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이 풍만한 볼륨.
아야메보다 살짝 작은 이 몰캉몰캉한 거대 마쉬멜로의 감촉은 예술이었다.
이렇게 좋은 건 위만이 아니라 아래도 사이좋게 느껴야 하는데.
"루, 루벨트!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움직일 수 없는데 그대로 둘 수도 없잖아. 마비가 풀릴 때까지 내가 업고 갈게."
"하, 하지만…!"
등 뒤에서 부끄러워하는 카구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카구라의 얼굴은 새빨개져 있지 않을까.
"엥? 뭐야? 왜 카구라 업고 있는 거야, 사제?"
"촉수의 마비 효과 때문에 카구라가 지금 움직이질 못해."
"그렇구나."
"루벨트 님에게 업히다니… 부러워요!"
"보스 몬스터도 잡았으니 우린 이만 귀환하자. 만일을 위해서 카구라도 치료받는 편이 좋으니까."
내 말에 반대하는 인원은 없었다.
카구라는 부끄러워해서 내 등에서 내릴만한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수긍했다.
◈
야기츠네 카구라는 불안했다.
무엇이 불안하냐면 현재진행형으로 뛰고 있는 자신의 고동소리가 등 너머로 루벨트에게 들리지 않을까 불안했다.
전투가 거의 끝난 줄 알고 긴장을 풀고 루벨트, 엘리, 치사키가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걸 보고 있던 카구라는 최근에 생긴 고민거리를 떠올리며 정신이 팔렸던 카구라.
그 고민의 원인은 최근 들어 자신의 어미인 야기츠네 아야메에게 무슨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었다.
자신을 홀로 키워준 고맙고 상냥한 엄마가 고민하고 있다.
직접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물어도 얼버무릴 뿐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아야메가 딸인 자신에게 얼버무린 일은 한 번도 없었기에 카구라는 더욱 아야메에 대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대체 무슨 고민을…."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던 때.
"유메! 카구라!"
"…!?"
카구라는 자신을 덮쳐오는 촉수를 피하지 못해 휘감기고 몸이 마비에 걸려 지금 이렇게 루벨트에게 업힌 채로 이동하고 있다.
방심하고 말아 당해버린 수치심.
동시에 자신을 공주님 안기로 안으면서 걱정했던 루벨트의 얼굴.
그리고 지금 이렇게 밀착한 채 업히고 있는 상황이 모두 합해져서 카구라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고 있다.
'제발…! 제발 들리지 마라…! 요루기츠네 님, 부디 힘을…!'
카구라는 부디 가슴 고동이 루벨트에게 들리지 않도록 빌고 또 빌었다.
"루벨트, 무겁진… 않아?"
"전혀. 가볍기만 해."
"읏…!"
자신이 조금 신경 쓰는 부분을 신사답게 대답하는 루벨트.
더 빨라지려고 하는 고동에 카구라는 괜히 말을 걸었다고 후회했다.
야기츠네 카구라에게 있어서 루벨트는 이른바 백마 탄 왕자님이나 다름없었다.
야기츠네 신사가 완전히 망해가기 일보 직전.
생활은 점점 궁핍해지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어릴 때부터 자라온 신사가 없어져 버릴지도 모를 위기의 순간 나타나 준 루벨트.
후원이란 명목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어줬다.
처음에는 고마우면서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 수상한 속셈이 있어서 후원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루벨트는 주기적으로 신사에 찾아와 참배하고 선물도 가져다주며 언제나 신사다운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카구라는 경계를 풀어가고 남은 건 루벨트에 대한 감사와.
자신을 구해준 루벨트라는 남자에 대한 호감이었다.
오히려 세월이 지날수록 루벨트에 대한 호감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엘드라를 이을 남자라고 하더라도 커지는 호감은 멈추지 않았다.
후원하는 자와 후원받는 자.
최고의 재벌 후계자와 망해가고 있던 신사의 딸.
카구라는 어느새 커지는 호감의 대리만족을 위해서 자신과 루벨트의 처지가 비슷한 로맨스 만화나 소설에 빠져들 정도가 됐다.
너무 닮으면 양심에 찔리니 즐겨 보는 주제는 루벨트하고는 성향이 다른 나쁜 남자 재벌이 가난한 여성에게 관심이 이끌려 몸과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술수를 부리는 것이다.
그중 카구라가 가장 좋아하는 씬은 이런 장면이었다.
-이제 니 주제를 잘 알겠지?
-이, 이 비겁한…!
-가게가 뭉개지기 싫으면 순순히 내 말에 따르라고. 이렇게…!
-꺄악! 이, 이러지 마! 안 돼…!
처음에는 난폭한 느낌으로 수위 높은 장면이 이뤄지지만 결국에는 여성은 점점 나쁜 재벌에게 빠지고 나쁜 재벌도 여성을 더욱 사랑하게 되어 성격도 조금씩 순해지는 그런 장면을 읽거나 보는 날엔 카구라는 흥분해서 약간 밤을 새워가며 10번이나 같은 장면을 번갈아 읽었다.
루벨트와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고 마음 한편으로는 알고 있기에 그 대리만족하자는 마음이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카구라에게 있어서 마치 아련한 꿈이 깨질 것만 같은 상황이 왔었다.
입학식 날 본 루벨트의 약혼자 엘리 글래스너.
딱 봐도 재벌 아가씨이며 루벨트와 어울려 보이는 여성.
'아… 역시 약혼자가….'
겉으로는 대놓고 티는 내지 않았지만
카구라는 내심 몇 년간 품어온 연심의 싹을 잘라낼 각오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친목을 겸해 여성진 4명이서 같이 카페에서 대화를 나눴을 때 카구라는 몇 번이고 충격을 받았다.
루벨트가 색골이라고 말하는 리제의 말에 이어 이미 루벨트가 엘리만이 아니라 메이드인 리제하고도 했다는 사실.
루벨트가 엘리나 리제 말고도 다른 여성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만약 자신이나 유메 같은 친분 있는 여성이 마음을 담아 유혹하면 넘어올 수 있다는 사실.
연심의 싹이 잘리기도 전에 불도저에 깔리려다가 초강력 불법 성장제를 들이 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카구라는 집에 돌아간 다음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며 정말로 많은 상상을 하고 말았다.
자신이 유혹하여 루벨트와 그런저런 일을 하는 상상.
또는 루벨트의 성격이 자신이 즐겨보는 장르 느낌으로 변해서 후원금을 계속 받고 싶으면 몸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서 그런저런 일을 하는 상상.
마지막에는 자신도 루벨트의 하렘에 들어가서 행복한 삶을 사는 상상.
계속하면 할수록 가슴이 뛰고 몸이 뜨거워지는 생각에 그날 카구라는 늦잠을 잤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하고 말았으니 겨우 하루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야기츠네 아야메를 걱정하면서도 이불을 덮고 잘 시간이 되면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루벨트와의 다양한 상황 상상을 할 정도였다.
그런 매우 복잡한 심경의 한복판에 있는 카구라가.
마음을 품고 있는 루벨트의 등에 업히고 있다.
그것도 스스로 생각해도 상당히 노출이 있는 복장으로.
'제, 제발 들리지 말아라! 내 심장소리! 제발…! 그런데 루벨트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가, 가슴이 닿고 있는데. 성욕이 왕성한 색골이라면 당연히 내 가슴이 닿아서 좋다고… 아, 아니! 루벨트는 신사야! 이런 상황에 그런 생각을 할 리…! 그, 그래도 조금은 그런 생각을 하면 좋을 거 같은데… 이이익! 나, 난 이런 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푸쉬이이이… 하고 연기가 날 것 같은 기세로 카구라의 머릿속은 복잡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