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3 - 43.아카데미의 모범
[죄송합니다, 루벨트 님. 치사키가 바보 같은 실례를….]
사범님은 치사키를 혼낸 뒤 바로 나에게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사부님. 아무도 다치진 않았고… 저도 사범님이 그토록 칭찬하던 치사키의 실력을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루벨트 님은 여전히 마음이 넓으시군요. 그런데 치사키라고 그냥 부르다니….]
어김없이 발동되는 팔불출이다.
"저도 사저라고 처음엔 불렀는데 그냥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더군요. 사저의 말이면 따라야죠."
[그랬었군요.]
아직 살~짝 기분이 안 풀린 모양인데.
나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다.
"아참, 사범님. 치사키에게 들었습니다. 뇌명주를 저와 먼저 마시기 위해 치사키하고도 같이 마시지 않았다면서요? 제자로서 솔직히… 기뻤습니다."
[네? 아, 치사키 얘가 또 그런 소리를….]
"게다가 뇌명주를 저와 다 마셔버려서 매우 불만이었던 거 같았습니다."
[치사키! 뇌명주는 도련님과 둘만 마실 거라고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그걸 또 불평해!]
[나도 먹고 싶었단 말이야아아앗!]
"네, 그래 보여서 이번에는 사범님과 치사키가 함께 드실 수 있도록 뇌명주를 하나 더 준비해놓겠습니다."
[꿀꺽…! 그게 정말입니까, 루벨트 님?]
"네, 사범님이 따님과 사이가 안 좋은 건 제자로서 저도 두고 볼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이틀 후 치사키와 함께 오시면 뇌명주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하, 하, 하하하하! 이거 참! 루벨트 님에게 또 괜한 배려를 하게 만들었군요!]
아주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역시 사범님에겐 술이 잘 먹힌다.
"배려라뇨. 이건 다 제자로서 사범님을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그럼 이틀 후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하하하! 저도 기다려지는군요!]
[아빠! 이 돌 무거워! 이제 내려도 되지? 응?]
[떽! 1시간 더 들고 있어!]
[끄에에에에엑!]
사범님과의 통화를 끝내고 다시 시훈이와 이어질 여성후보 프로필을 살펴봤다.
슉슉하고 태블릿을 스와이프하며 고속으로 정보를 읽어낸다.
그리고 모든 프로필을 읽은 후 시훈이하고 어울릴 만한 인물을 찾아냈다.
블블에서 등장한 히로인도 아니며 딱히 내 취향도 아닌 여성.
그리고 마침 시훈이하고도 접점 가능성이 큰 여성.
아마 우리 반에서 반장을 맡게 될 여성.
김예슬이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가난하지 않은 평범한 서민 가정.
마력 각성은 중학생 때부터.
누군가 어려움에 빠지면 먼저 나서서 도와주려는 인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에 여태까지 솔선수범하여 반에서는 항상 반장을 맡았다.
쓰는 무기는 유메처럼 마법 지팡이를 쓰며 치유 마법을 습득하고 있다.
머리 스타일은 빨간 머리띠를 쓴 검은 생머리 검은 눈동자.
외모도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고 몸매도 평균에서 살짝 위 정도.
조사에 따르면 아마 자원봉사부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주인공이기에 심지가 곧고 누군가를 자주 도와주려고 하는 시훈이하고는 찰떡궁합이다.
원래 반장 캐릭터라고 하면 서브 컬쳐에서는 히로인 중 한 명이 되기 좋은 포지션이지만.
블블에서는 그 외 다른 특색적인 설정의 히로인이 많아서 그런지 반장은 그저 엑스트라였다.
아, 엑스트라라도 정기적인 출연은 있다.
일러스트는 없고 그냥 대화창만 뜬 상태에서.
학교 수업이 끝나는 장면에서.
반장:차렷! 경례!
생도들:고생하셨습니다!
라는 반복적인 패턴 씬에서의 등장이다.
참고로 보이스는 당연히 없다.
핸드폰으로 리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다, 도련님."
"리제, 얘 봐봐. 시훈이랑 잘 어울릴 거 같지 않아?"
리제에게 김예슬의 프로필을 보여줬다.
"…확실히 잘 어울릴 것 같군요. 여러모로 참견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시훈이와 좋은 상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치? 좋았어. 그럼 시훈이의 큐피트 작전 대상은 바로 얘다."
"시훈이도 시훈이지만 주인님도 참 참견하기 좋아하시는군요. 보통 친구의 상대 찾기까지는 안 할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리제, 생각해봐~ 시훈이가 만약 이대로 솔로인 채로 계속 있어 봐. 분명 나중에 술에 취해서 나한테 신세 한탄할걸? 나도 듣기 거북하고."
"차단하면 되지 않나요?"
"친구로서 그건 좀… 게다가 시훈이에겐 몰래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으니까. 최대한 보답해야지."
"시훈이의 피… 말씀이군요."
"그래. 시훈이가 있어서 이 헌터 사회가, 인류가, 그리고 엘드라가 더욱 번창하게 된다고. 당연히 큐피트 역할 정도는 몸소 나서줘야지."
가까워질 이벤트 많다. 반장 선거는 물론이며 첫 던전 실습이나 그 이후로도 있는 협동 훈련.
조짜기에서 억지로든 그럴싸하게 시훈이랑 짜게 해서 이벤트를 쌓게 만든다.
원래 같은 이벤트를 반복할수록 서로를 향한 친근감은 늘어나지.
그게 비슷하고 죽이 잘 맞는 성격의 남녀라면 더더욱.
게다가 시훈이는 원래 주인공이 될만한 성격과 인격의 소유자.
반장이 안 넘어올 리 없지.
"후후후후후."
"도련님, 최근 보시는 드라마의 흑막 같은 웃음을 내시는군요."
"알아보겠어? 역시 리제라니까~."
"네, 주인님에 관한 거라면 뭐든 이해하고 알고 있는 도련님만의 전용 메이드니까요."
자랑스럽게 자신을 소개하는 리제도 정말 귀엽다.
◈
"오늘은 반장을 뽑도록 하겠다."
입학한 지 3일째.
반장 선거가 열렸다.
조금 빠른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반을 통솔하거나 제어할 인물은 빨리 뽑는 게 편하겠지.
"반장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라."
디아스 선생님의 말에 손을 든 건 3명이었다.
3명 모두 예상대로였다.
한 명은 학교에 다니면서 반장을 빼먹은 적이 없는 미래의 시훈이의 와이프 김예슬.
다른 2명은 블블의 히로인.
한 명은 명량 큐트 컨셉의 아이돌.
나카자와 아이카.
머리 중앙에 빨간 브릿지를 넣은 금발 짧은 포니테일 캐릭터.
눈색은 나랑 똑같은 빨간색이다.
주로 쓰는 무기는 대검이며 불꽃 속성.
다른 한 명은 쿨 섹시 컨셉의 아이돌.
아나스타샤 가르노프.
애칭 아샤.
푸른 생머리에 눈동자는 은색.
주로 쓰는 무기는 쌍권총이며 얼음 속성.
한때 같은 그룹에 있었지만 방향성의 차이로 찢어지며 현재는 서로 다른 소속사에서 일하고 있다.
말하자면 라이벌이며 앙숙 관계다.
블블 초반에도 이 반장선거는 두 사람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호감도가 달라지는 자그마한 개그 이벤트다.
왜 개그냐고?
어느 쪽을 고르든 둘 다 반장은 못 되거든.
덤으로 말하자면 아이카가 반장에 출마한 건 인기 있고 관심을 끌 거 같아서.
아나스타샤는 아이카가 손을 들어서 질 수 없다는 마음에다.
"3명이군. 그럼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자기어필을 해라
"그럼 아이카부터 할게요~."
손을 번쩍 든 아이카가 경쾌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왔다.
"안녕안녕~ 넘버 원 인기 아이돌~ 나카자와 아이카야~! 모두 내 얼굴은 한 번씩 알지?"
찡긋하고 윙크를 날리며 3인칭 화법을 쓰는 아이카.
게임에서 자주 들었던 터라 딱히 오글거리진 않았다.
그리고 아이카의 외모도 귀엽고 빼어나니까.
귀여움이 오글거림의 90퍼를 없애준다.
반의 몇몇 남자들도 헤벌레하며 아이카를 보고 있다.
"아이카는~ 반장이 꼭 되고 싶어! 이 반에서도 인기 넘버 원! 이 될 거야! 물론 반장 일도 열심히 할 거야! 모두 아이카를 뽑아줘~."
아이카는 방긋 웃으며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헹."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아나스타샤를 보고 비웃음을 날렸다.
"…!"
아나스타샤의 표정이 순간 험악해진 걸 난 놓치지 않았다.
블블에서도 컷 신으로 자주 본 표정이다.
이번에는 아나스타샤가 앞으로 나가서 가볍게 머리를 흩날렸다.
"아나스타샤 가르노프입니다."
아나스타샤는 어른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섹시함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촐싹대면서 자신이 넘버 원이라고 거짓말하는 누구하고는 다르게 성실하게 반장 일에 임할 생각이에요. 반장 일은 놀이가 아니니까요. 잘 부탁드립니다."
"…."
훗, 하고 아이카를 향해 미소를 짓는 아나스타샤.
말은 없지만 아이카의 기색이 분노로 바뀌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생도들은 그런 둘의 분위기는 모른 채 남자들은 아이카하고는 다른 미소에 넋을 놓고 여자들은 질투 반 선호 반이 섞인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예슬이 앞으로 나왔다.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며 김예슬인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김예슬이라고 해요. 저는…."
김예슬은 지금껏 자신이 해온 반장의 경력에 대해 나열한 다음 자신이 얼마나 반장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지, 반장이 되면 어떻게 반을 위해 일할 건지, 같은 반 생도들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선생님에게 중요사항이 전달되면 어떻게 전달할지 등에 대해 세세히 설명했다.
블블에서는 그저 여생도A가 나와서 연설을 했다라고 짤막하게 나왔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어째서 블블에서 김예슬이 반장이 됐는지 알 수 있었다.
넋을 놓고 아이카나 아나스타샤를 보고 있던 남자 생도들도 다른 여자 생도들도 김예슬의 연설을 들으면서 점점 차분한 표정이 됐다.
다들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예슬이가 반장을 해야겠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구체적으로 체계적이며 나중의 아카데미 생활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연설이었다.
아이카와 아나스타샤의 표정을 흘깃 보니 둘 다 입을 쩍 벌리며 패배자의 얼굴이 됐다.
아, 블블의 컷신에서 본 개그 표정이다.
"그럼 투표를 시작한다. 각자 지금부터 나눠주는 종이에 원하는 후보의 이름을 적고 이 상자에 넣어라."
잠시 후 모든 학생이 종이를 내고 디아스 선생님이 한 장 한 장 뽑아서 확인했다.
그리고 반장으로 뽑힌 건.
"앞으로 이 반의 반장은 김예슬이다. 잘 부탁한다. 김예슬 생도."
"네!"
"아이카가 지다니…!"
"크윽…!"
반장 선거가 끝나고 나는 시훈이에게 물었다.
"시훈아, 넌 누구 뽑았어?"
"응? 예슬이. 그 연설 들으면 안 뽑을 수가 없겠더라."
"역시 그렇지?"
잘했어, 시훈아.
역시 뽑으려면 미래의 와이프를 뽑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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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표지가 될 예정인 서유메의 일러 러프입니다아아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