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6 - 36.입학식은 보람차게!
"이제 실습시간이니까 괜찮잖아?"
한시라도 빨리 내 실력을 알고 싶다며 눈을 반짝이는 치사키.
"너한텐 강한 녀석의 냄새가 나니까 빨리하고 싶단 말이야! 몸이 근질근질거린다고!"
원작대로 약간 전투광 기질이 있는 데다가 특유의 후각도 여전한 거 같다.
덴라이 치사키는 이른바 냄새를 잘 맡는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강자의 냄새 약자의 냄새 등 자기 감각으로 냄새를 분별하며 그게 아니더라도 선천적으로 코가 좋다.
그래서 커뮤니티에서도 별명이 개코였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했는데 치사키에게 홍어 냄새를 맡게 해서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팬아트가 자주 나왔다.
한국인인 시훈이가 홍어의 참맛을 히로인인 치사키에게 알게 한다!
같은 느낌으로.
…나중에 진짜 홍어 먹게 해볼까?
"헤파이 사용하는 건 어쩌고? 익숙해졌어?"
"이런 거 익히는 건 금방이지! 봐!"
치사키는 헤파이의 버튼을 누르며 시동어를 외쳤다.
"셋!"
치사키는 눈앞에 나타난 카타나를 잡았다.
동시에 치사키의 피부에 마력 배리어가 펼쳐졌다.
옷은 따로 등록하지 않았기에 복장은 생도복 그대로다.
"잘 다루지? 그러니까 빨리 뜨자고!"
"그래. 대련하자. 하지만 선생님에게 허락은 맡고."
"그럼 빨리 허락 받자고!"
우리 반을 맡고 있는 쥬라 디아스에게 갔다.
"디아스 선생님."
"엘드라와 덴라이군. 무슨 일이지?"
"헤파이의 시운전 겸 치사키하고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대련? 혈기왕성하군."
힐끔 하고 쥬라 디아스는 치사키 쪽을 봤다.
"덴라이도 헤파이의 사용법은 벌써 숙지한 모양이군."
"버튼 누르고 시동어만 외치면 되는데 뭐가 어렵다고~."
"…마침 다른 생도들에게 시범을 보여주기 좋겠군. 좋다, 자리를 마련해줄 테니 해봐라. 다만 덴라이 우선 헤파이를 꺼라. 둘이서 헤파이를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네~."
다시 헤파이의 버튼을 누르며 카타나를 집어넣는 치사키.
그리고 잠시 후 쥬라 디아스가 헤파이 시범을 위한 우리의 대련이 있을 거라고 생도들에게 알렸다.
다른 생도들이 구경하기 쉽도록 나와 치사키는 강당의 단상 위로 올라갔다.
생도들은 입학식 때처럼 아직 치우지 않은 의자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았고.
멀리 있는 생도를 위해 단상 위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에 카메라에 찍힌 우리가 비쳤다.
치사키가 우리를 보고 있는 생도들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러니까 무슨 학예회 무대에 선 거 같네."
"긴장돼?"
"설마. 관객이 있든 없든… 상대에게 집중하는 게 검사야."
치사키가 이쪽을 향해 투기를 뿜어냈다.
정말 전투광이네.
[그럼 서로 헤파이를 작동해라.]
마이크를 든 쥬라 디아스 선생님의 말을 듣고 우리는 바로 헤파이의 버튼을 눌렀다.
딸칵!
""셋.""
헤파이를 작동시키며 처음 꺼낼 무기를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서로의 피부의 마력의 배리어가 둘러지고 눈앞에 카타나가 나타나 쥐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미리 설정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는 것뿐이다.
"뭐야, 이미 옷 설정해둔 거야? 흐음~ 부잣집 도련님 같은 복장이네, 사제."
"진짜 부잣집 도련님이니까. 치사키, 너도 마음에 든 옷 있으면 헤파이에 등록해봐. 최근 헌터 업계에는 패션 열풍도 불고 있어."
"패션엔 딱히 관심없는데~ 뭐, 그건 아무래도 좋고."
스릉!
치사키가 검신을 뽑고 검집을 헤파이에 돌려놨다.
"준비나 해."
"알았어."
마찬가지로 카타나를 뽑아 검집을 헤파이에 되돌려놨다.
서로 같은 텐라이류의 준비 자세를 하는 나와 치사키.
그 모습을 바라본 쥬라 디아스 선생님은 말했다.
[둘 다 준비가 됐나보군. 그럼… 시작!]
호령이 떨어진 직후.
치사키의 몸에서 파직파직하고 마력이 일렁였다.
"순뢰!"
파지지지직!
처음부터 스킬 쓰기냐.
쌈잘알이네.
순뢰는 치사키가 쓰는 속도중시형 스킬이며 주인공이 유일하게 하나 쓸 수 있는 스킬이다.
나름 마비치도 높아서 게임에서도 애용한 스킬.
잘 맞으면 우선 마비를 제대로 걸 수 있어서 초반에 치사키 턴이 오면 일단은 순뢰를 쓰는 일이 많았다.
카아아앙!
물론 같은 텐라이류를 배운 난 잘만 막으면 마비 걸릴 일도 없다.
"와, 잘 막네?"
"멋으로 사범님에게 가르침을 청한 게 아니라서 말이… 야!"
팔에 힘을 담아 카타나를 휘둘러 치사키를 뒤로 물러나게 만든 다음 바로 추격에 들어갔다.
마력 배리어를 둘렀으니 일부러 마력을 담지 않은 공격이라면 막힌다.
그러니 주저 없이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스킬도 쓰지 않은 공격을 설정상 재능이 넘치는 치사키가 쉽게 맞아줄 리도 없다.
"바로 목을 노리다니 살벌한데?"
"마력 배리어가 있으니까 괜찮아. 너무 위험할 거 같으면 선생님이 말려주시겠지. 애초에… 처음부터 스킬 쓴 치사키가 할 말은 아니지!"
"아하하하!"
캉! 캉! 캉!
이어지는 치사키와의 검합은 수 십번에 다다랐다.
서로 마력 각성자인 헌터 지망생.
게다가 같은 텐라이류의 사용자.
서로가 어떤 움직임을 할지 대략 알고 있기에 쉽게 결판은 나지 않았다.
물론 내 스텟을 풀로 활용하면 억지로 찍어누를 수 있지만.
이건 대련이고 치사키의 공략을 위해 다 드러낼 수는 없지.
게다가 대련을 하면서 치사키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며 엄청 즐겁다는 걸 온몸으로 뽐내고 있다.
호감도작을 위해서 이번 대련은 중요하다.
"이건 어때! 낙뢰!"
파지지지직!
위력에 중점을 둔 스킬 낙뢰.
위력등급을 알파벳 순으로 나누자면 순뢰는 c급이고.
낙뢰는 b급의 스킬이다.
마력을 두르지 않고 아무런 조치 없이 막을 수 있는 위력은 아니다.
그렇기에.
"역천!"
텐라이류에 있는 올려 베기 스킬로 맞대응한다.
파지지지직!
텐라이류 특유의 푸른 전기가 서로 맞부딪치며 굉음과 함께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좋아좋아좋아, 진짜 좋아!"
만족스러운 대련이었는지 눈을 크게 뜨며 치사키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좀 더… 좀 더 신나게 해보자고!"
너무 신난 거 같은데?
설마….
우우우우우우웅!
치사키의 몸에서 대량의 마력의 뿜어져 나왔다.
진짜냐.
"필드…
[멈춰라, 덴라이!]
"전개!"
대련에서 초필 쓰려는 거냐!
블블에서는 초필살기. 흔히 오의라는 개념이 있다.
MP가 아니라 일정 행동을 하면 쌓이는 게이지가 있는데 그거 가득 차면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개인마다의 초필살기가 써진다.
그리고 시동어는 필드 전개.
외친 순간 대량의 마력이 주변에 퍼지면서 시전자의 공격 위력이 올라가는 건 물론 필요하다면 심상이 구현화 되어 지형이 바뀐다.
게임에서는 자주 보는 초필을 쓰자마자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진다거나 갑자기 바위가 솟아난다거나 로드롤러가 나타난다거나 그런 거다.
설마 그런 게 현실로 가능할까 생각했었는데.
이 블블 세계에서는 그게 당연하게 일어나는 특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참고로 사용하려면 상당한 기량이 필요하며 한 마디로 기술의 극치라고 할 수 있어서 세간에서는 스킬의 궁극형태라는 느낌이 강하다.
쉽게 설명하자면 엄청 강한 스킬이니까 적이 아닌 상대한테 쉽사리 쓰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
근데 그걸 치사키는 쥬라 디아스 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고 바로 사용했다.
진짜 전투광이라니까.
말리긴 글렀으니.
어울려 줘야지.
우우우우우웅!
"필드 전개."
치사키에 맞서 나 또한 마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필드를 전개했다.
[엘드라! 너까지!]
"저를 믿어주세요, 디아스 선생님.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맞아! 동문끼리의 대결일… 뿐이라고!"
타악!
치아키가 나를 향해 돌진하며 초필을 사용했다.
"오의… 광천뇌참!!!"
콰르르르릉!
파직 거리는 전기가 아닌 그야말로 천둥소리와 함께 휘둘러지는 치사키의 카타나.
텐라이류 오전을 달성하면 쓸 수 있는 기술.
현재 나로서는 쓸 수 없는 기술이다.
하지만.
나는 텐라이류만 배운 건 아니라서 말이야.
"8번."
순식간에 카타나에서 대형방패로 장비가 바뀌었다.
"…!?"
그 광경에 눈을 크게 뜨며 놀라면서도 휘두르는 검을 멈추지 않는 치사키.
쿠웅! 하고 대형 방패를 바닥에 찍으며 내가 쓸 수 있는 초필을 사용했다.
"이지스 실드!"
이것은 블블에서 스트랜저가 초필을 쓸 때.
혹은 강적 몬스터가 강력한 스킬을 쓰려고 할 때 단골로 쓰이던 방어형 초필.
효과는 절대방어.
마법공격이든 물리공격이든 1턴 동안 파티 전체의 대미지를 0으로 만드는 초필이다.
물론 그 효과는 내가 사는 세계에서도 똑같다.
치사키의 초필인 광천뇌참은 내 방어초필에 의해 막혔다.
"뭐… 뭐야, 그게에에에에에엣!"
치사키가 크게 외치며 방방 바닥을 밟으며 항의했다.
"뭐야, 그 방패! 왜 카타나 안 쓰는 건데! 같은 텐라이류로 맞서는 거 아니었어!"
"난 그런 소리 한 번도 안 했어. 그냥 대련이라고 했지. 애초에 난 아직 중전이라고. 텐라이류만으로 오의를 막을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래.도오오오! 왜 다른 무기 꺼내서 찬물 끼얹는데!"
"이거 안 쓰면 내가 다치니까. 가장 안전하게 대련을 끝낼 수도 있고. 설마…."
씨익 미소를 보이며 치사키에게 무인으로서의 건들기 어려운 점을 지적했다.
"대련이라고 하지만 카타나만 써서 나보고 '전력'을 내지 말라는 건 아니겠지? 그건 무인으로서 실례잖아?"
"윽…."
"확실히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쓴다. 당연하잖아."
"그건 그래도… 아아아! 정말! 재미없어! 이 사제 재미없어!"
내가 카타나를 안 쓰고 방패를 꺼내서 무척이나 삐친 모양이다.
근데 지금 성질부릴 때가 아닐 텐데.
"덴라이!!!"
"응!?"
쥬라 디아스 선생님이 울긋불긋 인상을 찡그리며 단상 위로 올라왔다.
"무슨 생각이냐! 대련 중에 오의를 사용하다니 제정신인 거냐! 같은 생도를 적으로 간주하는 거냐!"
불같이 화내는 쥬라 디아스 선생님의 모습에 치사키가 식은땀을 흘린다.
"아니, 이건~ 동문끼리의 특별~한 대련이라고 할까…."
"변명 집어치워라! 수업이 끝나면 남아라! 설교받을 줄 알아!"
"으아아…!"
치사키의 비명이 강당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