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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게임체인저 (26/40)

26화. 게임체인저

V. Game  changer

세영은 그의 장황한 설명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의 거짓말에 기분이 나쁘다거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무혁이 그녀를 위해 부담을주지 않으면서도 집 다운 집으로 옮기라고 배려 해주는 모습에 감동을 할 뿐이었다. 

"어차피 저는 보증금도 없고요 .." 

"보증금이라는 것이 실상 임대료가 밀릴까봐받는 것인데 

세영씨가 그럴리 없다는걸 잘 알고 있으니 필요하지 않습니다. 

창고로 쓰는 별채인데 부담 느끼지말고 지금 지내는 곳에서 내는 비용만큼만 내고 쓰도록하세요."

세영이 마음 상할까봐 그는 이번에도 긴설명을 이어 나갔다. 

고마운 마음에 심장이 쿵쿵 거렸다. 

이렇게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라면 그와 행복한 가정을 이룰수도 있을 것 같았다. 

건축가 차무혁이 별채를 비워두면 비워 두었지 창고로 방치해 두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그가 돈 한푼이 궁해 아버지가 쓰시던 공간을 임대 해줄일은 더욱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설사 임대를 내어 준다고해도 성북동의 차무혁이 직접 설계 한 단독 주택 별채를 

고시원 방값으로 빌릴 수 없다는 걸 더 잘 알았다. 

누군가가 나를 이토록 챙겨준 적이 언제 있었던가. 

연애란 정말 달콤한 것이었다. 

사람을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 배려 넘치는 말이었지만, 세영은 그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연애는 떳떳하게. 그가 조금 더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당당하게 해나가고 싶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순탄해 보였다. 오만하기 그지 없던 무혁이 그녀를 위해 배려를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 감사한 말씀이지만, 지내던 곳에서 지낼 게요." 

"음...나와 지내는 게 아무래도 불편할 테죠?"

세영은 단어 선택을 잘못해서 혹시라도 그가 오해 할까봐 신중히 생각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3개월 동안은 서로 차근차근 알아가기로 했으니까요. 대신 자주 갈게요."

세영이 말을 끝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영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도 될까요?" 

"오늘 저녁에 같이갑시다."

세영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벽처럼 느껴지 던 무혁과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그의 언어를 아직 오롯이 이해할 순 없었지만,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럼 일어나보겠습니다."

세영은 일어 서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예감이 좋았다. 

무혁은 출근하자마자 부소장실로 가서 제주도 대지 답사 관련 서류들을 

경열의 책상 위로 내던지며 그를 노려 보았다. 

경열은 멋쩍게 웃으며 서류를 주섬주섬 챙겼다. 

'나 나이롱 환자 아니야. 그렇게 노려 보지마. 아직 아프다고.'

입원이 길어질것 같다며 무혁을 제주도로 보내놓고 

심심하다며 출근해서 회식까지 열었던 경열은 그의 눈치를 보며 엄살을 부렸다. 

'됐고요. 한세영씨 대출 어떻게 됐습니까.' 

'세영씨 대출? 어, 어. 그 얘기 김우식 실장한테 들었지. 

근데 아직 법무 법인에 검토도 안해서. 그게 복잡 하더라고. 세무 처리도 해야한다는데. 

뭐 사내 복지 차원에서 해주기로 한거니까 처리는 할건데 조금 시간이 걸리겠어.'

무혁은 구구절절 한 경열의 설명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일단 제 사비로 대출하는거로 얘기 해주시죠.' 

'사비로? 차 이사 사비로 하겠다고? "

경열은 듣고도 알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되물었다.

'들어 보니 상황이 안좋은 것 같습니다. 쓸데없이 시간 질질끌다가 일당백하는 직원 이직하게 만들지 않는게 좋을텐데요. '

'그, 그래. 차이사 뜻이 그렇다면 뭐 어려울건 없지. '

무혁은 통보를 마치고 부소장실을 빠져 나왔다. 

세영이 직접 무혁에게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 벌인 일이었다. 

일 분일 초라도 빨리 세영의 고민을 없애주고 싶어 곧장 3층으로 향했다. 

그녀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상하게도 떨렸다. 가슴이 두근 거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세영을 본 순간, 무혁의 기분은 금세 가라앉았다. 

그녀의 책상에 걸터앉아 수다를 떠는 최성수 대리의 모습에 가슴 한편이 찌릿했다.

'안색이 어두워요. '

세영의 안색이 어두운 걸 왜 최성수 따위가 신경 쓰냔 말이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세영을 어둡게 만든건 모두 제 탓 같았다.

.'요즘 일이 좀 있어서요. '

이어지는 세영의 말에 무혁은 수없이 절망했다. 

채무문제 때문일까. 사람이 살만하지 못한 고시원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에 들지 못하게 행동하는 무혁자신 때문일까. 

제발 후자가 아니길 바랐지만, 어쨌든 그녀의 고민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사님, 송서림 사인은 받아 오셨어요? 

아쉽네요. 어제 보니까 세영씨가 송서림 배우팬이라고 하더라고요. 

다음에 소장님께 부탁해 봐야겠다.'

심지어 세영이 송서림을 좋아했다니. 제주도에서 아무일도 없었건만,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세영의 눈에 잘 들고자 마음에없는 얘기부터 불쑥 튀어 나왔다. 

'기회 되거든 준비해 보도록 하죠.' 기회가 있을리가. 

아무리 송서림이 무혁에게 질척 거린다고해도 호텔에서 그런 망신을주고 나왔는데 

사인은 커녕 앞으로 얼굴을 마주칠 일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무혁은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세영이 실망할까봐. 

들떴던 마음이 한풀 꺾인채 무혁은 이사실로 향했다. 

그리고 혹시나 세영이 불쾌해 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대출 이야기를 꺼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었다. 세영은 무혁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곧이 곧대로 믿었다. 

해맑게 웃는 그녀를 보며 무혁도 미소를 지을 뻔했지만, 그녀가 의심할까 봐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26화 아이를 낳았으면합니다 

'감사는 저기 윗사람 한테하고.'

그리고 밤새 고민했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별채에 들어와 살라는 말. 돌려 말했지만, 동거를 하자는 얘기였고그녀는 고민도하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다. 

세영의 기분을 살피려다 보니 말이 장황해졌다. 

세영이 혹시 불쾌하진 않았는지 마음이 불안했다. 아직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순 없었다. 

세영은 마음이 불편해도 항상 미소를 짓는 사람이었으니까. 

무혁은 사람의 감정을 읽는데 능숙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표정은 언제나 맑았기에 기분을 알아챌 재간이 없었다. 

성격대로라면 억지로 그녀를 끌고와 집에 앉혀 놓고싶은데. 어쩐지 세영에게는 조심스러워진다. 

무슨 핑계로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며 자연스럽게 그녀를 집으로 데려 갈 수 있을까. 

'3개월 동안은 서로 차근차근 알아 가기로 했으니까요. 대신 자주 갈 게요.'

세영은 오히려 무혁의 기분을 살피며 다정하게 말을하고 일어 섰다. 

대화는 행복 하게 끝났지만, 무혁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혹시라도 별채에 살라는 말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한건 아닌지. 

그도 아니면 무 혁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동거를하고 싶지 않은건 아닌지. 

그랬다. 그의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대출이 필요한 세영에게 문제가 해결되었다. 

돈으로 그녀를 유혹 하려던 무혁 이었는데 이제 그녀에게 급한 돈이 필요없어 졌으니 

그의 자신감이 떨어지고 만것이었다. 천하의 차무혁이 여자를 잃을 까봐 자신감 마저 떨어지다니. 

천지가 개벽 할 일이었으나 현재 벌어지고있는 사건이었다. 

세영이 마음의 짐을 덜어낸 것은 무혁으로서도 행복하고 뿌듯했지만, 

이제 그녀의 앞에서 내세울 것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더 세영이 간절해졌다.

"하, 미쳤다고 내가…."

무슨 정신으로 세영 한테 돈을 운운하며 아이를 낳아 달라 말한 거지? 

도대체 어디서 나온 자만심으로 어디서 나온 무례함으로 그녀에게 실수를 저지른걸까. 

무혁은 어제했던 후회를 한번 더 반복했지만, 후회의 농도는 지난밤보다 훨씬 더 짙어 져 있었다. 

세영은 더 이상 돈이 필요하지 않았고 자신이 내세울건 돈 밖에 없었기에. 

이제 상황을 완전히 전복 시킬 게임 체인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세영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 모든 수컷이 그러 하듯, 구애를 해야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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