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한계점을 비비며
세영은 무혁의 품에 안긴채 그의 아내가 된 미래를 상상했다.
일밖에 모르는 남자, 집에있는 시간보다 외근이나 출장을 가는일이 많은 남자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애 틋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애틋하려면 쌍방 사랑부터해야 하겠지.
이러다가 혼자 애틋 해지는 건 아닌지 몰라.
아, 그건 생각만으로도 너무 슬프다.
이런 저런 상상들로 홀로 붉어진 얼굴을 한지도 모른채
무혁을 열심히 관찰하던 세영은 번쩍 눈을 뜬그와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뒤로 물렀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무혁이 세영의 얼굴을 잡아끌고는 그녀의 입술을 빨았다.
더듬거리는 손이 그녀의 하반신을 어루 만졌다.
자면서도 발기해 있던 흉흉한 성기가 까딱거리며 세영의 아랫배를 쑤셨다.
"이, 이사님 .. 근데 아침 비행기라고 하셨 잖아요?"
무혁과의 섹스는 환상적이었지만, 지금은 녹초였다.
다리 사이가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인데 이상하게도 그의 손길이 닿자 회음부가 바짝 조여들었다.
"어차피 일은 내일부터 시작이라 상관없어."
세영은 그가 균열을 헤집는것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놀라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일밖에 모르는 천하의 차무혁이 세영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비행기 시간 마저 늦췄다는 뜻일까.
세영은 그의 한마디 말에 밀려 드는 벅찬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렇게 여린 짐승이 어리바리 영문도 모르고 눈망울만 깜빡이는 사이
맹수는 다시 입술을 빨며 그녀 위에 올라 타 제 품안에 가두었다.
아프다. 쉬고 싶다. 배고프다. 나중에하자. 따위의 말은 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는 이미 그녀의 몸속을 파고 들었고
세영은 그녀를 포위한 그의 근육질의 팔을 붙잡고 암캐처럼 소리 지를 뿐이었다.
모든 게 그저 황홀했다. 차무혁과 함께 잠들었던 것도.
잠든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보던 것도.
마치 다른 사람처럼 존댓말을 쓰다가 갑자기 짐승으로 돌변하는 것도.
눈을 뜨 자마자 그녀에게 흥분하는 것도.
차무혁의 숨결 마저 황홀 할 정도였으니 이미 그녀의 마음은 그에게로 모든걸 내어 준 것이었다.
남녀가 몸을 섞는다는 일이 이토록 서로를 온전히 알게되는 행위인줄 미처 몰랐다.
단순히 쾌락만을 나누는거라 생각했는데 그와 교합하고난 이 아침,
세상에서 차무혁과 가장 친밀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음경을 뽑아 낸 무혁이 누운 세영을 그대로 엎드리게했다.
통통한 엉덩이를 벌리고 활짝 벌어져 제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질구 속으로 돌입했다.
한쪽 팔로는 그녀의 가슴을,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균열선을 지탱한채 허리를 반복적으로 쳐 올렸다.
"고개 돌려."
발정 난 짐승처럼 붙어서도 모자란 듯 무혁은 그녀의 입술을 기어코 빨았다.
"흐음, 아웃, 아앙."
한숨 자고 난 세영도 다시 오르가슴에 빠져 들어 허리를 앞뒤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세영의 음란 한 움직임에 잠시 무혁은 키스를 멈추고
그녀의 허리를 두 손으로 단단히 붙든 채 출입을 반복했다.
퍽, 퍼퍽!
세영의 몸을 와락 붙들고 자궁 경부까지 쏟아진 그가
선단으로 한계점을 비비며 마지막까지 정액을 쏟아 냈다.
세영의 몸을 바짝 끌어안아 쓰러지듯 함께 침대에 누워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얼굴이 뜨거워져 무혁과 눈을 마주 칠 수 없었지만, 그는 집요하게 시선을 맞추며 키스를 쏟아부었다.
"어때."
"네?"
"합격입니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가 지난밤 그가 섹스도 테스트냐며 물었던 말이 떠올랐다.
부끄러움에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자 그가 나른하게 웃었다.
미소짓는 그의 얼굴을 놓칠 수 없어 세영은 살짝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차무혁의 미소는 자신만이 소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저, 정말, 테스트 아니 었어요.…."
세영이 해명하자 그가 집요하게 시선을 마주치며 물었다.
"그래서 결과는. 합격이냐고.”
"정말 아니에요. "
"탈락이라 말돌리는건 질색인데. "
"아, 아니요. 탈락 아니에요. 당연히 합격, 합격이죠. 아, 아니, 그게 아니고…. "
연신 미소짓는 무혁을 보며 세영은 그제야 그가 장난을 치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차무혁 이사님이 장난이라니!
장난을 알아채지 못하는 세영을 놀리는 그가 야속하면서도
세상에 무혁의 장난을 본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니 심장이 울렁거렸다.
이렇게 혼자만 자꾸 사랑에 빠져도되는 걸까.
세영은 침대 위로 쏟아지는 햇살의 왈츠에 넋을 놓았다.
따스한 햇볕이 가슴으로 스며 들었다.
무혁의 품에서 달뜬 심장은 경쾌하게 원을 그리며 춤추었다.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세영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길 고양이 밥을주고 주말내 못본 노견 '뭉치'를 부둥켜 안았다.
주말이라해도 일하는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사무소였지만, 뭉치는 제 생명의 은인인 세영을 가장 좋아했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우리뭉치 얼른 좋은집으로 데려 갈게. "
세영은 습관처럼 얘기하다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고시원에 살기 때문에 뭉치를 사무소에서 키우고 있지만, 무혁과 결혼하면 뭉치를 집에서 키울 수도있을 테다.
역시 결혼을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뭉치야, 아빠한테와."
일찍 출근 한 최성수 대리가 뭉치를 번쩍 안았다.
뭉치는 최성수 대리의 얼굴을 핥으며 발작 하듯 꼬리를 흔들었다.
문득 무혁이 사랑을 나누며 최성수 대리한테도 자자고 물었냐며 날을 세웠던게 떠올랐다.
설마, 아무 남자한테나 먼저 자자고하는 쉬운 여자라고 생각 했을까.
휴게실에서 역시 쉽게 그에게 안긴 잘못이다. 세영은 경솔했던 행동을 후회하며 걸레를 들고 책장을 닦았다.
건축사 사무소에 방문한 손님들이 대기하며 읽는 건축 매거진을 훑어 보았다.
잡지란 잡지마다 무혁의 기사들이 가득했지만, 세영은 한번도 무혁의 기사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무혁의 기사를 훑어 내려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무혁'에 대한 기사라기 보단 그가 지은 건축물에 관한 기사 였지만,
무혁에 대해 한두 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 거렸다.
무혁이 잘나가는 건축가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의 개인사는 들어 본 적 없었다.
이사라는 자리가 워낙 까마득한 자리이기도했고
세영도 나름 그를 몰래 짝사랑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괜스레 오해를 받을까봐 겁이나 잡지를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잡지 몇 권을 뒤적이다 보니 유학시절 굴지의 뉴욕 건축사사무소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그가 한국행을 택한 이유가 나와 있었다.
'뉴욕에서는 언제나 한국이 그리웠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건설 할 수 있는건 낯선 건물뿐 이었죠. 결국, 제가 돌아와야 할 곳으로 돌아 왔습니다.'
건축가라면 뉴욕의 바벨탑에 제 마천루 하나쯤 갖는게 소원이라는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이루기위해 뉴욕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세영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영화배우 송서림이 자신의 싱글 라이프를 소개하는 꼭지를 보고 무혁이 떠올랐다.
건축 잡지 한장 차이로 종이를 사이에두고 붙어있는 무혁과 송서림이 꼴보기 싫어
세영은 남몰래 송서림의 기사를 북뜯었다.
종이를 찢고보니 종이에 질투하는 제 모습이 너무도 하찮았다.
하지만 사무소 사람들 앞에서도 대놓고 무혁에게 들러붙던 그녀가
제주도에서 얼마나 활개를 칠지 보지 않아도 선했다.
무혁을 믿지 못하는게 아니라 송서림을 믿지 못했다. 가슴이 찌르르하다.
심장속에 흐르던 3박자의 경쾌한 왈츠춤곡이 뚝 끊기고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흐른다.
물론, 빠 바바 밤! '까지만.
"세영씨."그때였다.
시무룩한 세영의 옆 자리에 최성수 대리가 앉으며 그녀가 뜯어놓은 잡지페이지를 힐긋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