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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맞닿은 몸에 (7/40)

7화. 맞닿은 몸에

별장을 살피던 내내 아무 내색하지 않던 그도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사과를 하려고 찾아온걸까. 

역시 부하 직원에게 말하기에 적절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말씀하세요.“

세영은 최대한 차갑고 쌀쌀맞게 대답했다. 

돈한푼이 아쉬워 아이를 낳아주는 쉬운여자가 아니라는걸 항변하듯이, 

그날밤 일은 그녀가 쉬운 여자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저 술에 취했다는걸 반증하듯이, 

그를 경멸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랑 연애는 할 수 있겠습니까?”

심장이 또 다시 쿵. 

맹세코 그에 대한 짝사랑을 아주 오래전 접었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연애를 하자는 그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설레 귀까지 붉게 익고 말았다.

"그, 그건 그렇지만 .. “

그건 그렇지만 이라니. 이 빌어 먹을 주둥이. 하지만 생각보다 먼저 나가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연애부터 해야겠다면 연애부터 하죠. “

이 남자의 관심사는 여전히 결혼이었다. 결혼을 조건부로 하는 연애였다. 

하지만 그걸 의식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커다란 무혁이 한 걸음 가깝게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너무 떨려 해야 할 말조차 하얗게 잊고 말았다.

"한세영 씨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싶습니다. “

세영은 침을 꼴깍 삼켰다. 

아이를 낳아 달라는 부적절한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 당연히 모질게 상대를 돌려 보내야겠지만, 

차무혁 앞에서는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차무혁 이사의 말을 곱씹으며 열을 올렸던 마음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냉정한 차무혁 이사 앞에서 생각해 보겠다며 그를 돌려보냈다간 다시는 이런 떨림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그의 말 한마디에 미친 듯이 가슴이 뛰어댄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도 완벽하기에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호감이었다. 

가까이 다가서기엔 너무도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세영에게 조건을 달긴 했지만, 결혼을 전제로 만나보고 싶다며 이야기했고 

세영의 마음은 갈대처럼 낭창낭창 흔들렸다. 

떨리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간 이상한 말만 쏟아질 것 같아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의 커다란 손이 낚아채듯 세영의 목덜미를 잡아끌고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문질렀다.

"흐음. “

기어코 세영이 우려하던 이상한 소리가 잇새로 터져 나왔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무혁의 살덩이가 밀어닥쳤다. 다리에 힘이 풀린 세영이 휘청거리자 

무혁은 단단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춤을 붙들었다. 

견고한 성벽 같은 남자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부드러운 혀가 입 안을 가득 점령했다. 

느른하게 살덩이를 얽었다. 다디 단 타액으로 젖어 드는 순간, 떨리는 숨결에 더운 숨이 터졌다. 

"하음.“

일렁이는 차무혁의 눈동자에 세영의 얼굴이 가득 드리웠다. 

더운 시선에 화들짝 놀라 발버둥 쳐보았지만, 그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보드라운 혀가 잇몸 여린 살을 살살 간질이고 천장의 요철을 비벼 댔다. 

입술 사이를 오가는 숨결에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균열이 일었다. 

훈훈한 열기가 가슴을 적시고 사지를 향해 뻗어 나갔다.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잡아 무는 그의 간지러운 입술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번쩍 뜬 눈을 깜빡였다. 

입을 다문 채 입술을 진득하게 문지르는 그의 애무가 어쩐지 짐승의 교미 행위처럼 느껴졌다. 

이성적이고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의 키스 한 번에 이렇게 무너지다니. 

세영의 뺨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에 발끝에 힘이 풀렸다. 

미세 혈관을 타고 온몸에서 맥박이 박동했다. 

입술을 느른하게 문지르던 무혁을 고개를 틀어 다시 그녀의 입 안 깊숙한 곳까지 혀를 밀어 넣었다. 

"흐읍!“

이번엔 키스가 더욱 깊어졌다.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에 몸이 녹아들듯 뜨거워졌다. 

그의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정맥을 타고 용암처럼 뜨거운 것이 왈칵 쏟아졌다. 

세영의 온몸은 젖은 새처럼 바들바들 떨렸지만, 단단한 그의 몸은 성벽처럼 견고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가 쏟아내는 욕정 어린 숨결을 꿀꺽 꿀꺽 받아 마셨다. 

입이 맞닿은 순간 이미 거부할 수 없이 일방적으로 퍼붓는 날숨이었다. 

언제나 일에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던 그의 세계에 세영은 발을 내디뎠다. 

발을 내디딘 순간, 뒷걸음질 칠수도없이 그의 손아귀 안에 잡혀 끌려가고 있었다. 

묵직한 슈트 입은 몸이 그녀를 바짝 끌었다. 쌔근거리는 세영의 가슴이 그의 몸에 맞닿았다. 

열기에 흐물흐물 몸이 녹아 버릴 지경이었다. 

키스만으로도 그의 포로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건축주의 별장 안에서 부적절한 짓이었다. 

좋았다. 아니, 싫었다. 

아니, 좋았다. 모르겠다. 어지러웠다. 

짝사랑했던 무혁이 사귀자고해서 좋았지만, 아이를 낳아 달라는 그의 말은 싫었고 

무혁의 키스는 좋았지만, 사귀자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키스부터 하는 그는 싫었다. 

아니, 박력 넘쳐서 좋았다. 아니, 우습게 보는 것 같아 싫었다.

아니, 정말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어지럽다. 

설마, 아이를 갖자더니 지금 갖자는 건 아니 겠지? 

"그만 좀 하세요!“

세영은 자신도 모르게 무혁의 뺨을 때렸다. 맹세코, 태어나서 누군가를 때려 본 적은 처음이었다.

때리고도 놀란 세영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혼란은 더욱 커져만 갔다. 

무혁에게 자존심이 상했던 마음에 쉬운 여자가 아니라는걸 항변하듯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손이 나간 모양인데. 

정말 이건 맹세코 의도하지 않았던 거였다. 

성벽같이 단단한 그의 몸이 쉽게도 물러섰다. 당혹감을 가득 담은 차무혁의 눈빛이 순간 붉은 빛을 띠었다. 

세영은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가슴이 너무 뛰어 차마 무혁의 눈을 다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연애 해 봅시다.“

무혁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세영은 그의 턱에 간신히 시선을 올려붙인채 고개를 끄덕였다. 

무혁은 그렇게 돌아섰다. 

방문을 닫은 세영은 그대로 문에 기댄 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와 맞닿았던 입술, 뒤섞였던 혀, 

주고 받았던 호흡, 맞붙었던 가슴, 모든 게 떨려 믿기지 않았다. 

구름 위를 두둥실 걷는 것처럼 발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남자와 처음하는 키스에, 그게 차무혁이라는 사실에 압도 당했다.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펄펄 끓는 두 볼에 손을 얹은 채 세영은 간신히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키스의 잔상이 도저히 사라지지 않았다. 창밖에서 몰아치는 검은 비바람마저도 아름다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느껴졌다. 

세영은 밤새 한숨도 이룰 수 없었다. 아직은 그가 했던 말의 의미를 조곤조곤 헤아려볼만한 여유가 그녀에겐 없었다.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 

차무혁의 방점은 '결혼'에 있었지만, 세영의 방점은 아직 '연애'에 있었다. 

남자와의 연애는 커녕 키스조차 처음인 그녀가 감당하기엔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ii 섹스부터 할까요?

노랗게 저물어가는 초겨울의 태양이 사무실 창을 통해 꿀처럼 녹아내렸다. 

녹진한 당분이 일터를 온통 끈적하게 뒤덮어 어깨가 축축 늘어지는 퇴근시간이었다. 

디자이너들은 하나 둘 저녁 식사를 하러 미적미적 몸을 일으켰다. 

오늘의 업무를 마친 세영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되었지만, 피로에 지친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차무혁 이사와 함께 외근을 나갔다가 하룻밤을 별장에서 자고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오던 순간, 

조수석에 앉은 세영은 난생 처음 느껴 보는 설렘에 호흡 곤란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그날 밤도, 그다음 날 아침도, 벌써 깊은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하루종일 차무혁과의 키스를 떠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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