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9)

***

아스벨은 기존 휴일에 정상 출근을 하는 대신 라무스의 날로 휴일을 바꾸었다고 내게 알려 왔다. 그리하여 그 전날인 포모르의 날에 퇴근하자마자 나를 데리러 올 것이다. 멋대로 휴일을 교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신청이 받아들여지기까지 한 주는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아스벨과의 만남은 이번 주가 아닌 다음 주부터 있을 예정이었다.

오늘따라 에이반이 더 일찍 출근해야 하는 바람에 나는 혼자서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집사가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옆에서 하루 일정을 불러 주었다.

"오늘은 디베르타에서 하원하신 직후 거리로 가서 새 의복을 몇 벌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결계 속의 도시는 항상 쾌적한 기온으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날짜 흐름에 따라 매년 계절의 구분은 존재했으며 계절에 따라 사람들도 옷 색깔을 바꾸곤 했다. 명확하게 이 계절은 이 색이라고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전반적인 유행에 따르는 식이지만 말이다. 또, 이 곳 여자들의 겉옷은 너무 얇았다. 원재료가 적게 들어 경제적인 것 같으면서도 쉽게 해지거나 찢어졌다.

"그리고 오후 6시경 사무엘 중령께서 방문하시기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사무엘 중령은 에이반이 내게 소개시켜 주기로 했던 두 번째 남자였다. 일이 바빠서 시간을 내기 힘들다기래 저 멀리 날짜에 약속을 잡았었는데 벌써 그렇게 됐나.

"주인님께서 대략적인 업무가 마무리되어 오늘부터는 다시 평소와 비슷한 시각에 퇴근하신다고 합니다."

"어머, 정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집에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취침할 때까지도 오직 집사나 하인밖에 보지 못하는 생활은 왠지 모르게 쓸쓸했던 것이다.

오늘은 일정이 꽤 많다. 새로 만나야 할 남자도 있고. 만약 성교섭을 맺게 되더라도 밤에 에이반을 맞이할 체력은 남겨 놓는 게 좋겠지. 그리고 옷이라. 그러고 보니 잠옷도 새로 한 벌 맞추고 싶다. 일정에 대해 생각하며 접시를 싹 비웠다.

디베르타의 오후 수업이 조금 늦게 끝나는 바람에, 예약해 둔 옷가게에 가서도 조금 급하게 옷을 주문했다. 집사는 네 벌 정도 구입할 예정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잠옷 하나와 외투 하나, 두 벌밖에 사지 못했다. 몸에 맞춰 제작한 뒤 저택으로 받기로 했다. 굉장히 부드럽고 입은 듯 만 듯한 소재의 검정색 잠옷 한 벌, 불투명한 짙은 갈색 실크로 만들어진 팔랑팔랑하고 짧은 원피스였다. 최근은 약간 어두운 색상이 유행인 것 같았다.

조금 모자란 듯 만족스러운 쇼핑을 하고, 디저트 가게에 빠짐없이 들러 오늘 저녁 식사 이후 내어 올 망고 크림 밀피유 케이크를 구입했다. 자주 쇼핑을 하러 다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쇼핑하러 나올 때마다 예쁜 과자 하나씩을 구입해 가곤 했다. 말상대가 그다지 되지 않는 집사와 함께, 거의 혼자라 재미는 없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적잖이 피로했다.

고작 두어 시간 쇼핑 좀 했다고 이렇게 금방이라도 누워 쉬고 싶어지는 걸 보면, 주말 저녁 내내 에이반의 정력에 맞춰 주느라 소진된 체력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오늘은 손님이 오는 날이고 집사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집안 곳곳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보아 오늘의 손님, 사무엘 중령은 저번의 남자에 비해 좀 더 중요한 인물 같았다. 에르나트 중위보다 몇 계급은 더 높은 모양인데.

집사가 응접실 준비를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나는 따뜻한 목욕물에 느긋하게 몸을 담갔다. 오늘따라 물 온도가 딱이라 나가기가 싫을 정도다. 미적미적 물에서 머무르다가 어쩔 수 없이 물기를 뚝뚝 떨구며 바닥에 깔린 타월 위로 올라섰다. 소년종 둘이 수건을 들고 내 손이 잘 닿지 않는 부분까지 꼼꼼히 물을 닦아 주었다. 씻고 몸단장을 하는 데 남의 손길이 닿는 것을 처음에는 질색했지만 너무 편하다 보니 지금은 어느 정도 소년종들의 손을 빌리고 있었다.

샤워 코롱을 천에 묻혀 손발과 무릎, 팔꿈치, 등과 가슴에 톡톡 두드려 발랐다. 얼굴엔 얼굴대로 분무형의 화장수를 두어 번 뿌렸다. 입술에 달콤한 맛이 나는 글로스를 바르기도 하고 손발톱 끝에 색을 입히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런 것은 생략이었다.

몸의 라인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연하늘색 가운 같은 상의와 짧고 프릴 달린 하의로 투피스를 차려입고 손님이 올 때까지 방에서 머리카락 손질이나 받고 있기로 했다. 소년종 한 명이 상아 빗으로 머리를 빗고 한 명이 머리 끝에 하나하나 오일을 입혀 주는 중이었다.

6시가 되기 조금 전, 손님이 찾아왔다고 한다.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옷과 비슷한 푸른 색 리본으로 느슨히 묶은 뒤 아래층 응접실로 내려가 보았다.

디트리히 사무엘 중령은 에이반과 목 아래의 전반적인 체격은 거의 비슷해 보였다. 다만 얼굴만큼은 단정하고 약간 차가운 인상의 에이반과 달리 선이 꽤 굵고 남자다웠다. 에이반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지만 취향에 따라서는 충분히 인기가 있을 법 했다. 널찍한 어깨를 강조하는 제복은 푸른 계통이었으며 앞 단추 몇 개를 연 차림으로 응접실에 앉아 집사가 따라 주는 술을 한 잔 마시고 있었다. 항상 준비하던 달달한 샴페인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라 싸한 알코올 냄새가 여기까지 퍼질 정도로 도수가 높아 보이는 것이다.

"아, 왔나."

사무엘 중령은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에이반과 친하다기에 어느 정도 편하게 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외형 탓에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의 뒤로 꽤 잘생긴 외모의 시종 하나가 얌전히 서 있었다. 못 보던 얼굴인 걸로 보아 사무엘 중령이 직접 데려온 시종 같았다.

"에이반이 육성 중인 신부라지? 일단은 와서 한 잔 받아."

나는 맞은 편에 앉아서 그가 따라 주는 술을 받아들었지만, 입가에 잔을 대기만 해도 술 냄새가 너무 독해 마시지는 못했다. 남자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술은 못 마시나? 에이반은 재미 없는 남자지. 술도 엽연도 안 하고, 아, 샴페인 같은 건 술이라고 할 수도 없어. 이런 건 어차피 마시면서 느는 거니 한 모금만 해 봐."

에이반은 물론 음주를 즐기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게 술을 마시라느니 말라느니 따로 지시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집사는 일반적으로 와인이나 샴페인을 잠 오지 않는 밤마다 간혹 권했으므로, 그가 술자리에 어울려 주지 않아서 내가 술을 못 마시는 것도 아니다.

"마시기 싫어요."

그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지만 나는 방금의 강요 같은 말에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사무엘 중령은 잔에 남은 술을 한 번에 다 털어 넣고 일어섰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여자를 앞에 두고 혼자만 술을 마시는 것만큼 쓸쓸한 일도 없으니, 술은 이만 치우고 자리를 옮기도록 할까. 탁 트인 곳은 어떤가?"

"탁 트인 곳이요?"

옥상이나 정원? 아니면 발코니? 여긴 옥상이 없고 손님을 맞을 정도로 널찍하게 지어진 발코니 공간도 없다.

"1층에 후원 쪽으로 통로가 이어진 방이 있었는데. 괜찮다면 거기로 해 주게. 집사는 시중 들 젊은 하인 몇 명 정도 더 보내 주고. 보기 좋은 애들로."

"사무엘 중령……."

집사가 무언가 말하려고 하자 사무엘 중령이 눈썹을 들썩였다.

"얼른."

"……."

손님에게 늘 정중한 집사가 별 대단한 요구가 아님에도 유독 내키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나는 크게 의아해하지 않고 자리를 옮기는 데 동의했다. 무엇보다 공기 중에 떠도는 유난히 독한 위스키 냄새 때문에 여기에 있기 싫었다. 남자 하인을 보기 좋은 애들로 보내 달라는 부분이 의아하게 생각할 법도 한데, 에이반도 스스로 동성 연애자였음을 밝혔기에 그 친구인 사무엘 중령도 비슷한 취향이리라 생각했다. 설마 여럿이서 하자고 할 리 없고, 그렇다고 해도 싫으면 거절하고 나와 버리면 그만이다.

후원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공간에서 사무엘 중령은 빙긋이 웃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에이반이 신부 후보를 데려와서 후원하기 시작했다고 들었을 때 꽤 놀랐어. 그 녀석, 여자한테는 통 취미가 없어서 말이지, 나중에 나이를 먹고 나서야 나나 다른 지인의 아내를 잠깐 빌려 후계를 딱 한 명 만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네……."

"왜냐 하면, 선대 아르트리어 공께서 그렇게 사셨거든. 노년에 접어 들기 직전에야 간신히 후계를 보셨어. 뭐, 그 분은 그래도 되는 분이셨으니까. 아내를 이용해 파벌을 형성해야 할 만큼 어디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제왕의 피만 받지 못했을 뿐이지 태생적으로 마력의 테크닉이 상당하여 군부에 머무르던 시절도 혼자 몸으로 상당한 공을 쌓았지. 레바단 남자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야. 조금만 더 오래 사셔서 아들의 뒤를 봐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돌아가셨어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사무엘 중령이 말했다.

"아아. 에이반이 첫 원정을 나갔을 때. 게다가 공께서 일부러 아들에게 자신의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한 덕분에, 친자인 에이반은 다른 사람들보다 한참 지난 뒤에야 부고를 들었었어. 공께서는 스스로의 죽음보다는 아들이 다른 사내들처럼 무사히 첫 원정을 끝내고 훌륭하게 공을 세워 돌아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거든. 에이반 본인은 이해하기 힘들어했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것도 나름의 부성애였다고 볼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때, 에이반의 얘기를 더 듣고 싶은가?"

"네."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사무엘 중령은 쟁반을 들고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하인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고, 내게 말했다.

"그것도 좋지만 우선은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어떻지? 입술로 나누는 대화는 우리들의 의무가 전부 끝난 뒤 느긋하게 해도 늦지 않잖나."

"아……."

나는 살짝 머뭇거렸다. 아직 그를 남자로서 받아들여도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반과 너무 상반되는 분위기 탓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에이반에 대한 얘기를 해 줄 때는 또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그는 내 심리를 꿰뚫은 듯 먼저 제안했다.

"아직 내키지 않는 거라면 내 매력을 먼저 보여 줘도 되겠는가?"

"매력이요?"

나는 좋을 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승낙했다. 넌지시 말할 때부터 눈치챘지만 그의 매력이란 제복의 안쪽에 있는 것이었다. 사무엘 중령은 버드나무를 엮어 만든 야외용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느슨해져 있는 제복의 목깃 부분을 단숨에 아래로 풀어내렸다.

윤이 날 정도로 잘 닦인 그의 상체가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여자라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군살 없이 깎인 근육들은 매일 몇 시간 이상 극단적인 트레이닝을 하는 군인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같은 훈련을 하는 듯 싶어도 에이반과 그는 근육의 형태나 비율이 달랐는데 그것은 아스벨이나 전에 만났던 에르나트도 마찬가지였다. 각각 다른, 고유의 신선한 느낌이 있었다.

특히 사무엘 중령의 몸은 에이반처럼 약으로 모근까지 깔끔하게 제모된 것이 아니라, 엷은 갈색의 체모들이 가슴부터 배까지를 뒤덮고 있다. 이런 몸은 처음이라 낯설기도 했으나 일부러 모양 내서 짧게 정리한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지저분하다고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사무엘 중령은 내 시선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과시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느슨하게 묶어 두었던 버클을 풀고 바지와 속옷을 한번에 내린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본 행위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사무엘 중령의 남근은 아주 단단하게 굳어진 상태로 우뚝 솟아올라 있었다. 색만 다를 뿐 대체로 비슷한 디자인의 제복 바지는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할 수 있는 젊은 남자들의 물건을 꽉 눌러 주는 벨트와 끈 장식이 많이 달려 있어, 이렇게 큰 물건도 밖에서는 잘 티가 나지 않는 것이다.

과연 에이반의 말대로 그의 물건은 에이반과 전반적인 크기라던지 두께가 많이 비슷했다. 외모도 언행도 거의 상반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남들 눈에 숨겨진 이 부분만 유독 닮다니.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이반이 조용하고 다정한 분위기의 남자라면 그는 단호하고 직설적이다. 에이반의 외모가 단정한 편이라면 그는 상당히 선이 굵고 자유분방한 호남형의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물건 하나만큼은, 그러니까, 믿음직했다.

"만져도 되고, 빨아도 상관 없어. 가능하면 빨아 주는 쪽으로."

사무엘 중령은 물건을 내밀고 주장했다. 나는 생전 들어 본 일 없는 요구에 머뭇거렸다.

"빨아 본 적 없어요……."

에이반의 혀나 손가락을 빠는 훈련은 자주 했지만 이 물건은 한 번도 빨게 하지 않았다. 디베르타에서는 이론상으로만 짤막하게 배웠다. 애초에 전희는 원활한 관계를 위하여 남자가 봉사하는 영역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무엘 중령은 그런 행위를 당연시 요구할 정도로 여자에게 꾸준한 어필을 받는 인물인 모양이었다.

"이거 실례했군. 에이반이 안 가르쳤나?"

"……."

다시 내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자 사무엘 중령은 난처해했다. 그는 서둘러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그렇지. 그렇겠지. 에이반의 취향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어. 그건 그렇다 치고 나 역시, 혀를 쓰는 일은, 흔히 말하는 것과는 다른 쪽이지만 꽤 자신이 있거든. 보여 드릴 테니 테이블 위에 앉아 보겠나."

그러니까 자기가 빨아 주시겠다? 그의 혀는 꽤 두툼하고 힘있어 보여 묘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나는 약간 고민 후에 그가 권한 대로 탁자 위에 올라가 앉았다. 그가 나를 살짝 안아들어 자리잡기를 도왔다.

예상한 것과 달리 그는 내 다리를 모아 쥐고 발등부터 정중하게 입술을 올렸다. 살짝 거칠거칠한 수염 흔적이 매끈한 발등에 닿으며 자극을 주었다. 발가락 끝을 모으고 눈을 감자 뜨겁고 물기 어린 입술이 발등의 얇은 피부를 빨아올렸다. 열기를 전달하듯 입술로 애무하고 흐르는 타액을 혀로 핥아낸다.

"으응."

능숙한 혀가 종아리를 타고 오르며 허벅지의 넓은 면 중에서도 예민한 근육의 틈새만 골라 핥았다. 아직 본격적인 행위를 할 정도로 마음이 열리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다리가 벌어지고 말았다. 사무엘 중령은 하의를 벗기지 않고 헐렁한 팬츠를 젖히고, 그 사이의 흰 속옷 위를 노리고 진하게 키스했다.

다리를 집중적으로 애무당해 본 것도, 속옷 위를 빨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는 자꾸 내가 해 보지 않은 것을 시도했다. 나도 모르게 나는 그와의 관계에 소극적으로나마 응하게 되었다.

"핫, 잠깐……. 사람을 좀 내보내고……."

"그냥 내 몸종일 뿐이야. 그렇게 신경이 쓰이나?"

떠나라는 지시를 받지 못한 사무엘 중령의 시종은 물에 젖은 수건이 올라간 쟁반 옆에서 그냥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무엘 중령은 그 남자에게 손짓을 했다. 어떻게 봐도 떠나라는 것보다는 더 가까이 오라는 제스쳐 같았다.

"잠깐, 뭘 하는 거에요."

"시선에 부끄럼을 타는 것은 몇 번만 연습하면 고쳐질 거야. 그렇게 수줍어해서야, 미래의 귀부인이 될 몸인데 남들 시중이나 편하게 받겠어?"

"하, 하지만!"

"나중에는 싫어도 익숙해지게 될 거야. 미리 연습이나 한다고 생각해."

사무엘 중령의 허락과도 같은 말을 듣자 그 시종은 고개를 들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나는 아직 허락하지 않았는데! 내가 다리 사이에 자꾸 입을 대려는 그의 어깨를 다리로 밀어내며 고집을 피우자 사무엘 중령이 마지못해 말했다.

"그렇게 집중 안 되나? 정 시선이 불편하면 치울까?"

시종을 향한 말이었다. 나는 한참 생각한 다음 마지못해 응한다는 태도로 대꾸했다.

"……됐어요."

그의 말솜씨엔 살짝 혹했지만, 무슨 일이라도 허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떠나 내 의사와 무관하게 벌어지는 것은 싫었다. 나는 기어코 이 관계에서 내가 조금이나마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다. 정작 사무엘 중령은 미묘한 실랑이의 결과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저 녀석은 내 명령이 없는 한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고. 그럼 당신도 슬슬 벗도록 하지."

상의를 위로 벗어젖히자 디베르타 제복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훨씬 얇고 부드러운 속옷이 드러났다. 유륜의 붉은 색깔과 유두의 형태가 두 겹의 얇은 견사 아래로 살짝 비쳐 보였다. 침과 애액으로 젖어 축축한 하의도 벗었다. 사무엘 중령은 참지 못하고 손을 올려 내 가슴을 덮었다.

"옷 위로도 감탄했지만 이건 실로 대단하네. 누가 보면 신부 후보가 아닌 줄 알겠어."

가볍게 그 손을 밀어내고 허리를 숙이며 하의를 벗자마자 그는 이번에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내 엉덩이에 손을 댔다. 그는 여성과의 관계가 매우 능숙한 듯 하여 조금만 방심해도 금세 우위를 빼앗겨 버릴 것 같다.

"위쪽 속옷은 안 벗는 건가?"

"벗을 필요 없잖아요."

세리스 에르나트에게는 몸소 옷을 벗고 가슴을 마음껏 만지게 해 줬던 반면 그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가 내게 조금 무례했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세리스 에르나트에게는 가슴을 마음껏 만지게 해 줬지만, 너무 흥분해서인지 정작 본 행위를 제대로 못 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런 건 싫었다.

내가 속옷까지 마저 벗고 탁자에 앉아서 다리를 벌리자 사무엘 중령은 탁자 앞에 꿇어앉고 내 다리 사이에 입을 댔다.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혀를 빙글빙글 굴렸다. 상당히 격렬하게 빨아 주기도 했지만, 일부러 곁에 세워 둔 시종에게 들으라는 의도도 있는 듯 하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중령은 시종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시종이 집사의 명으로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저택의 다른 하인들을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나는 탁자에 앉은 채 그의 행동을 흘겼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그들은 대체로 당혹스러운 눈치였으나,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냥 사무엘 중령의 의사를 따르기로 한 모양이다.

사무엘 중령은 탁자에 누운 내 다리를 안고 삽입을 준비했다. 제 물건을 쥐고 내 그곳의 균열에 질척질척 문질렀다.

"에이반이 엉덩이 쓰는 법도 가르쳤나? 내 시종에게 빨아 주게 할까?"

"시, 싫어요."

"그래? 필요하면 말 해. 어지간한 건 다 할 줄 아니까."

몸이 나른하게 풀리며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사무엘 중령의 두꺼운 귀두가 찬찬히 내부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허리를 후퇴시켰다. 삽입감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적인 움직임이다.

"쿠으……, 에이반이 미쳐 살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내가 허벅지를 바르르 떨며 느낀 것을 확인한 뒤에야 사무엘 중령은 신음을 느리게 내뱉었다.

"엄청난 명기로군. 안쪽도 바깥쪽도 어느 한 곳 빠지는 부분이 없어……."

"아으응!"

"에이반 녀석, 여자라면 당신밖에 모르니까 중위를 조루라고 비난할 수 있었던 거지. 이런 여자가 어디 흔한가. 젠장, 이래서야 나도……!"

격렬하게 하반신을 치대는 탓에 그 다음부턴 뭐라고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사정감이 아슬아슬해서 위험한 모양이었다. 나는 익숙한 크기나 평상시보다 격렬한 피스톤질 덕분에 쉽게 느껴버리고 말았다. 오르가즘으로 전신을 떨며 훌쩍이는 내 위에서 사무엘 중령이 거칠게 한숨을 돌렸다.

너무 좋아하는 곳만 집중해서 찔러버리는 바람에 한껏 몰아붙여진 몸은 급격히 박동이 빨라졌다. 몸이 식기 전에 중령은 나를 반대로 엎드리게 했다. 그가 탁자 아래서 자세를 잡았다. 다시 그곳에 거리낌없이 얼굴을 박고 쭉쭉 빨아댔다.

정말로, 너무 느껴 버려서 그런지 주위에 누가 있는지도 까마득히 잊었었다. 나는 중간 애무를 당하는 시점에 와서야 사방에서 남자들이 나와 사무엘 중령의 관계를 맨 눈으로 지켜본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각기 다른 남자에게 나체를 보이는 일이 몇 번 있었던지라 이제는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부끄러워……!'

게다가 집사가 중령의 주문에 맞게 골라 보낸 남자 하인들은 하나같이 젊고 미남인 축에 속했다. 에이반 자체만 해도 워낙 잘생겼고, 또 에이반에게서 부족한 점은 아스벨이 고스란히 채워주는지라 굳이 주변 하인들을 유심히 쳐다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보니 다들 그럭저럭 평균 이상이었다.

그런 남자들이 눈을 빨갛게 붉히며 나와 건장한 남성의 정사를 기꺼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갑자기 끌려와서 타인의 섹스나 반강제로 관음하게 되어 꽤나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 속에서, 나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그가 빨아주는 음핵으로 또 한 번 느껴버렸다.

사무엘 중령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시했다.

"다리 들어올려 봐. 또 한 번 가게 해 주지."

아직도 가볍게 경련하며 떨리는 한쪽 다리를 어설프게 올렸다. 그걸 사무엘 중령이 붙들어 올려 팔로 받쳤다. 어차피 탁자가 몸을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드는 행위는 삽입각을 활짝 여는 수준에 그쳤다. 그는 아직 사정하지 못해 검붉게 흥분한 성기를 대고 단숨에 밀어넣었다. 처음처럼 감각을 맛보이듯 조금씩 넣을 때와는 또 느낌이 달랐다. 이제는 꽤나 깊은 곳까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내부가 빠듯하게 벌어졌다.

"아흥, 앙, 아, 아, 아앙!"

완전히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가 안으로 찔러넣을 때마다 머리의 일부가 폭죽처럼 흩어진다. 사무엘 중령이 적어도 섹스가 능숙하다는 사실만큼은 진짜였다. 박아댈 때마다 내 몸을 받친 탁자가 덜컹거렸다. 꽤 안정감 있는 탁자인데 사무엘 중령의 허리 힘에는 견디지 못하나 보다.

더욱 더 예민해진 몸은 손쉽게 극치감을 느끼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내게 절정을 선물한 페니스의 형태를 제대로 느끼고 싶어 아래를 꽉 조여물자 중령이 입술을 깨물며 사정했다.

"하으, 하아, 큿, 하흣……."

"지금 여기가 어딘지, 밖인지 안인지 막상 깨닫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멍했다. 짧은 시간에 대체 몇 번을 느낀 건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그의 테크닉이 괜찮았던지라 기왕이면 좀 더 느긋하게 하고 싶었다는 아쉬움도 남지만, 한껏 참다가 쏟아낸 뒤 축 늘어진 사무엘 중령의 페니스를 보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래 버틸 수 있는 대신 재기가 느린 편이라고 변명했다. 몇 번이나 가 버리며 죄어대는 동안 한 번도 싸지 않았으니까 오래 버티긴 했다.

사무엘 중령은 다음에 또 즐기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오거나 불러도 좋다며 자기 부서 위치까지 남기고 갔지만, 내가 궁정에 출입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 못 한 모양이다. 게다가 오늘같이 성급한 섹스는 자주 즐기기에 그렇게 좋은 스타일은 아니다. 녹초가 된 몸을 욕조에 뉘이고 하인이 자리를 비키자 소년종 둘이 와서 거품 가득한 타월로 몸을 닦아 주었다. 아까도 씻었기 때문에 땀만 물로 씻어내면 된다. 손을 내저어 소년종들을 물리자, 베르타가 나가기 전에 머뭇대며 말했다.

"저, 호, 혹시 아까 그 분이 난폭한 짓을 하셨던 건……."

탁자 가장자리에 눌린 부분이 붉게 변한데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몸이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린 바람에 오해한 모양이다. 더군다나 사무엘 중령의 근엄한 외모는 잘 봐 주면 군사부의 높으신 분 같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폭력단 두목처럼 생기기도 해서, 어린 아이들의 오해를 사기 딱 좋은 편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 교섭 뒤에 에이반의 얘기를 해 주겠다던 말은 어떻게 된 거지? 나나 그나 꽤 체력 소모가 심해서 어차피 얘기를 더 못했겠지만, 왠지 속은 기분이었다.

지친 얼굴로 고개를 젓고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루에 옷을 몇 번씩 갈아입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이라면 물이며 세제가 아깝다고 욕을 들어먹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옷이 더럽지 않아도 하루 세 번씩은 차림을 바꾸는 것이 권장된다. 디베르타라도 가는 날에는 네 번 넘게 갈아입을 때도 있었다.

꽃물 든 마냥 분홍빛 수가 놓인 캐미솔로 갈아입고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 남자의 실력이 꽤나 만족스럽긴 한 모양이다. 오늘 저녁에 하려고 했던 독후감 작성조차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

다음 날 아침에서야 에이반은 내게 사무엘 중령과의 만남이 어땠는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하지만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이미 하인에게서 약간의 정보를 들었는지 꽤 표정이 굳어 있다. 내가 잘못한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그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흠칫하게 된다.

"왜, 왜 그러는데요?"

"디트리히 사무엘이 강제로 하인 여럿을 성교섭 중에 관음시키고, 장소도 멋대로 결정했으며, 무엇보다 제대로 된 방의 침대나 소파가 아니라 딱딱한 테이블에서 당신을 깔아뭉갠 점!"

그는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에이반의 추궁에 겁에 질려 작게 중얼거렸다.

"하인 얘긴 어쨌든 저도 동의한 거긴 한데……."

"그럼 다른 부분은 전부 진실이라는 말입니까?!"

에이반이 식탁을 짚고 벌떡 일어섰다. 나는 당황해서 그를 말렸다.

"저기, 그렇게까지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좋고 싫고를 떠나서 저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요……. 실외도 아닌 실내였고."

이미 내 기준으로는 그와 처음으로 교섭을 벌였던 응접실 소파도 야한 짓을 벌이기에 적절한 현장은 아니었다. 장소에 초연해지게 만든 것은 에이반이었다. 뒤늦게 든 생각에 서둘러 질문했다.

"그런데 두 분 친구 아니었어요?"

"하, 친구? 이제는 아니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에이반이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분한 것을 꾹 눌러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네에? 에이반, 정말 괜찮아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심각한 일은 없었어요. 테이블이나 장소도, 제가 싫었다면 싫었다고 말했을 거에요."

굳이 나서서까지 감싸주고 싶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약간 오만하게 굴었던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에이반에게 투정 식으로 일러바칠 거라고 다짐했는데도 에이반이 너무 과한 반응을 보이자 되려 내가 놀라서 그 대신 면명해 주었다. 에이반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정도로 그가 마음에 들었습니까?"

"음……. 테크닉은 좋긴 했지만 제 취향은 아니에요."

그 발언이 둘의 관계를 그나마 살려낸 줄은 모르고, 나는 느낀 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에이반 얘기를 많이 해 준 점은 좋았어요."

"……제 얘기를?"

그러고 보니 남의 입에서 듣기에는 조금 곤란한 내용이었나.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에이반이 재촉했다.

"어떤 얘기?"

"에이반의 아버지나 첫 원정에 관한 얘기요. 어……, 들으면 안 되었나요?"

"제 아버지에 대해 얘기를?"

그는 내가 껄끄러운 표정을 짓자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딱히 큰 비밀은 아니었습니다. 제 가족사 같은 건 차라리 제게 물어보셨으면 더 자세히 대답해 드렸을 텐데요. 뭐, 좋습니다……."

헛기침을 하며 다시 포크를 쥐어 드는 그는 이 상황이 약간 민망한 것 같기도 했다. 일단 화는 풀린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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