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해줘요(2)
시합을 치른 날이라 일찍 자야 했지만, 정신이 산만하여 명상을 하고 있었다.
“후우우. 여자 없는 삶이라.”
감독님 말씀도 일리가 있어. 나는 여자를 조심해야 해.
지금까지 상처 입은 모든 일들은 다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벌어졌으니까.
근데 또 그렇게 냉정하게 받아들이자니…
여자 없었음 내가 어떻게 행복을 느꼈겠냐고.
애초에 나한텐 메달도 승리의 영광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데.
돌겠네. 오늘따라 좌선하는데도 왜 이렇게 번민이 떨쳐지질 않는지.
딸이라도 쳐야 하나…
명상도 효과가 없자 침대에 누워 슥슥 손을 움직였다.
이럴 땐 역시 한 발 빼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지만. 평상시 오줌이나 싸는 물컹한 녀석을 만지고 있자니 이게 뭐라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지…
“음. 흠.”
그래도 역시 이렇게 멍하니 꼬추나 만지고 있으니 더더욱 그런걸 깨닫는데, 사람은 절대 혼자선 살아갈 수 없는 존재란 거다.
자위하다 무슨 개소리냐고?
원래 그런 거야. 남자의 의식 구조란 머리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 사타구니로부터 시작하니까. 생긴 것도 갈림길 가운데 이정표같이 생겼잖아.
늘 생각하는 거지만, 자위와 섹스의 메커니즘은 다를 게 없다.
성욕이란 뇌내 도파민이 분출되는 과정 속 만족과 희열을 느끼는 결과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교감에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점이 나뉜다.
교감은 서로가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 너와 내가 하나 되는 기분은 뇌 내 물질이 아닌 가슴에서 오는 울림이니까.
지금 리틀 구마하를 만지는 게 내가 아닌 아리따운 여성이라면 혼자 할 때 느끼는 쾌감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겠지.
쾌락을 효율적인 측면으로 보더라도 섹스가 자위보다 더 큰 흥분과 기쁨을 준다 이거야.
하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딸 칠 기분도 안 나네…
“아. 섹스하고 싶다….”
단순 무식하게 지껄이지만, 말의 본 뜻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애초에 자위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인간은 진작 딸딸이만 치고 살아도 괜찮게 진화가 됐겠지. 아니잖아. 혼자선 육체나 정신적으로 그 어두운 골이 채워지질 않아.
널찍한 침대의 절반을 나누는 누군가.
나를 만지고 너를 만지게 해주는 그 누군가.
그래서 서로의 호흡을 맡으며 서로의 민감한 구석을 자극해 의식을 나눈 끝 나를 인식하는 과정을.
그런 걸 누리며 살고 싶은데…
사랑이다. 진짜 사랑만이 정답이야.
괜히 종교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겠냐고.
이웃집 하숙생. 이웃집 미망인. 이웃집 과외 누나 같은 것도 다 근본이 있는 얘기였던 거지.
그런데 앞으론 사람을 만나기가 더 어려워진다, 라…
그 말이 쉽게 떨쳐지질 않는다.
감독님이 해 준 이야기니까 틀린 말은 아니겠지. 그분이 지금까지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잖아. 괜히 서울대겠어?
잘 되면 잘 될수록 더 많은 인기와 사랑을 얻을 줄 알았는데…
승리를 통해 얻은 과정이 나를 더 외로운 위치로 몰아넣는다.
이제 와선 내게 쏟아지는 환호와 열정이 앞으로 만날 인연과의 만남을 미리 끌어 당겨 쓰는 것만 같다.
이것이 앞으로 나의 미래라면.
한시라도 빨리 누군가를 만나야만 하는데.
한 사람. 딱 한 사람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아 씨… 누굴 만나지….”
섹스가 아닌 진짜 사랑. 연인.
연애의 끝은 결혼이고 결혼의 끝은 죽음인데.
와 진짜 죽을 때까지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 준다면…
왜 나는 그런 여자를 못 만났지?
아니. 어쩌면 이미 만났는데 내가 인연을 놓쳐 버린 건가?
왜 매번 연애를 해도 결과가 안 좋지?
이제는 돈도 있고 체력도 좋고. 키도 크고. 생긴 건 여전히 그래도 몸이 있는데…
왜? 뭐가 문제야?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문제는 상대방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걸 수…
띠리리링.
“어우 씨 깜짝이야. 뭐야?”
혼자 이것저것 주절거리다 호텔 전화기가 울려 생각이 멈췄다.
시계를 돌아보니 어느덧 자정이 지난 시간.
뭔데? 무슨 일이 있길래 이 시간에 전화가 울려??
“Hello?”
뭔가 싶어 받아보니 로비에서 누가 나를 찾아왔단다.
누가 왔길래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하니 저쪽에서도 상대방이 수화기를 드는데.
―마하 씨. 저예요.
“써니 씨?”
내 남은 인생 함께 걸어 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을 때 써니 씨가 나타났다.
솔직히 조금 감동이었다.
주변엔 조심하겠다고 했지만, 그녀가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주인의 손길을 거부하던 녀석이 빠르게 불끈거리기 시작한다.
역시 본능은…
“써니 씨? 이 시간에 어쩐 일로…?”
―그냥. 보고 싶어서요.
“그래도 호텔로 직접 오실 것까진. 연락을 하시지.”
―전화기 꺼져있더라고요.
“아. 맞다. 여기저기 메시지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꺼 뒀구나.”
그래도 역시 약속은 약속.
감독님이나 민구 형은 나를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그녀를 반기기엔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우선 거절을 했다.
―올라갈게요.
“어. 근데… 써니 씨. 잠깐만요.”
―네.
“지금은 어려울 거 같아요. 코치님이 계셔서….”
―다른 방에 계시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조용히 시간 보내요. 먼저 같이.
저돌적이라고 느끼면 내가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뭐 물론 그녀는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그럼으로 인해 스릴넘치는 경험을 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음….”
에잇. 뭘 고민하고 있어.
동료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맞는 거야.
주저하지 말고 끊을 건 끊자.
“미안해요. 진짜로 오늘은 안 될 거 같아요.”
―왜요…?
“왜라뇨… 그냥.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음에. 결승 끝나면 그땐 시간이 나니까 제가 그때 연락 드릴게요.”
―마하 씨.
“네.”
―지금 절 만나는 게 나으실 거예요.
이건 또 뭔 소리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거부하지 마세요. 그게 당신을 위해서도 좋아요.
“저를 위해서요?”
―네.
잠시 숨을 고른 뒤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써니 씨. 지금 이게 다 무슨 소리세요?”
―오늘 경기장에 갔어요.
“아. 네.”
―잘하셨어요. 멋있었고. 승리 축하드려요.
“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너무 압도적인 실력에 저들이 겁을 먹었어요.
뭐라는 거야? 우리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왜 나타나?
저들? 저들이 누군데??
“그게 누군데요?”
―…….
“써니 씨. 지금 누굴 말씀하시는 거세요?”
짧지 않은 시간.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이상하게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 침도 삼키지 못하고 있는데, 그녀가 천천히 느린 목소리로 답했다.
―…만나면 설명드릴게요.
알게 된 건 짧아도, 한 번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지금 이 통화가 나에게 그녀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저. 끊겠습니다.”
―마하 씨, 잠깐만요.=
“네….”
―만나요. 우리.
“저기… 앞으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찾아오지도 말고.”
통화를 마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냐? 뭐였어 방금? 이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써니 씨가 맞나??
정체 모를 어둠이 온 몸을 휘감는 기분.
나는 본능적으로 방을 나가 황 선생님을 찾아 스위트룸을 가로 질렀다.
“서… 선생님…!”
넓직한 거실을 가로지르는데, 아까까지도 아무렇지 않던 럭셔리한 가구나 장식들이. 우리가 먹고 남긴 푸짐한 저녁 식사 모든게 다 이상하게 느껴진다.
다급한 몸짓으로 노크도 없이 선생님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선생님! 선생님!!”
“크어~ 커어억! 음? 어… 뭐냐 마하야…?”
“우리 빨리 선수촌으로 돌아가요.”
“어…? 이 시간에…?”
“네! 뭔가 좀 이상해요!!”
“무슨 소리야… 너 뭐 자다가 악몽이라도 꿨어?”
코를 골며 주무시던 황 선생님을 깨워 나가야겠다 마음 먹는 그 때.
띵동.
“…….”
이번엔 누군가 벨을 눌렀다.
“뭐야? 누구 왔어?”
“…모르겠어요.”
“너 뭐 간식이라도 시켰냐?”
“아니요….”
“근데 이 시간에 누가 찾아와?”
그걸 모르니 불안하다.
누구지? 써니 씬가? 아니면 그녀가 말했던 ‘저들’이라는 사람들?
그 저들이 대체 누구길래…?
“마하야. 어디 가니.”
“잠깐만 계세요. 나가 볼게요.”
“뭔 소리야. 너 가만 있어.”
황 선생님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깨닫고 급하게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셨다.
“누구쇼?”
“선생님. 후 이즈 잇이라고 물으셔야….”
“후― 이즈. 에이 씨. 밖에 누구냐고!!”
아무런 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 침묵이 또 한번 무섭게 느껴졌다.
“마하야. 너 방에 들어가 있어라.”
“선생님. 제가 나가 볼게요.”
“어허.”
“…….”
“선수는 가만있어.”
선생님도 완전히 잠이 깬 표정으로 현관문에 손을 올리셨다.
바짝 긴장된 상태에서 누가 나타날까 지켜보는데, 복도에 있던 경호원들이 들어와 꾸벅 인사를 건넸다.
“뭡니까?”
영어가 안 되는 선생님을 피해 그들이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마하야. 이놈들이 뭐라는 거냐?”
“…….”
“마하야?”
이상한 내용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말하길, 특별 보호 프로그램은 나 한 사람을 위한 것이니,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코치님은 지금 당장 방을 옮겨야만 하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전할 뿐이다.
“그래서 선생님을 위해 따로 방을 준비했다는데요….”
“오밤중에 뭔 개소리야?”
“…….”
“어이. 당신들 뭐야? 어!!”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감정이 대화를 이끈다.
황 선생님 역시 체구는 작아도 한 때는 세상 두려울 게 없었던 복서.
위축되지 않는 자세로 무뚝뚝한 경호원들을 밀치시는데.
“Sir. Please. don't do that.”
“이것들이!! 어쭈. 놔. 안 놔.”
경호원들도 물러서지 않자 분위기는 더 없이 심각해졌다.
선생님도 돌아가는 상황이 뭔가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으며 나를 돌아보셨다.
“마하야 이놈들 이거 갑자기 왜 이러냐!!”
“후우우….”
이건가? 그래서 써니 씨가 자기를 보는 게 나을거라고 했던 건가?
그럼 써니 씨는 이 보디가드들과 한패?
“아. 놓으라고 자식들아.”
결국 선생님과 경호원들이 몸싸움을 하며 실랑이를 벌여 세 사람을 뜯어 말렸다.
서로 한발짝 거리를 둔 상태에서도 짝퉁 맨인블랙 같은 인간들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나의 신변은 자신들이 보호할 테니 안심하라는 일방적인 주장만 펼칠 뿐이다.
“시끄러!! 니들이 뭐라는지는 몰라도 우리 선수는 우리가 데리고 있어!!”
“저 선생님….”
“야. 이놈들한테 당장 내가 하는 말 통역해. 꺼지지 않으면 턱주가리 돌아갈 줄 알라고.”
“선생님….”
“뭘 야려 이것들이. 야. 빨리 전하라고!!”
“선생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어떤 상황인지 몰라도 이 모든 결과를 초래한 것이 결국 나라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그래서 써니 씨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여자를 만났다고…?”
“네….”
“언제?”
“…….”
실망하는 표정. 당황스런 표정같은 건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라 따로 죄송하단 느낌을 받기도 어려웠다.
그보단 선생님도 놀란 감정이 진정되질 않으시는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선생님 몰래 만나고 있었어요….”
“아니 대체 언제? 너 나랑 계속 같이 붙어있었잖아…?”
“죄송해요….”
“…그래서?”
“네?”
“그 여자랑 지금 이 상황이 무슨 관곈데?”
그게 핵심이었다.
그리고 나는 써니 씨가 던진 경고 비슷한 말도 가감없이 알려드린다.
“호텔로 왔다길래 거절했는데, 그러니까 자기를 만나는 게 나을 거라고….”
“만나면…?”
“…….”
“자기를 안 만나면 어쩌고? 그리고 만나면 또 뭘 어쩌려고?”
“죄송해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 * *
“일단, 그러니까 처음 호텔 오던 날. 그날부터 정체도 모를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외교관이라고 해가지고.”
“어느 나라 외교관인데?”
“중국이요….”
“후우….”
경호원들이 거실 중앙까지 들어와 있었다.
반드시 황 선생님을 데리고 나가겠다는 결의에 찬 표정은 변함이 없다.
우린 빠르게 정보를 나눴다.
“그럼 내가 니네 매니저 애들이랑 쇼핑 갔을 때도 그 여자랑 있었고.”
“네….”
“마하야. 난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 아니. 그게 왜…?”
백 보 양보해 여자를 몰래 만났다고 하자.
근데 왜 그게 지금 이런 상황을 초래했느냐 라는 거다.
나도 모르겠다.
나도 지금 머리가 어질어질해 도무지 생각이란 게 떠오르질 않는다.
“이 호텔… 어쩐지 처음부터 너무 호의적이라니….”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였네요.”
“잠깐만. 그럼 그때 대사관 직원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건가…?”
“…….”
하나가 의심되기 시작하니 걸리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대사관이고 뭐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의심해야 되는지…
“그래서 내가 방을 빼면 너는 어떻게 되는 거냐.”
“…저놈들 말은 지들이 보호한다는데요.”
“아니 그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세계인이 지금 널 지켜보고 있는데, 다짜고짜 지들 사정만 들이미는 놈들이….”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세계인이 지켜보는… 올림픽 결승 진출자…
“선생님.”
“어.”
올림픽이란 단어와 함께 뭔가 여러 가지가 빠르게 합이 맞아 떨어졌다.
그녀는 중국 외교관이고. 여기 이 보디가드들도 중국에서 붙여 준 경호원. 그리고 이 방은 중국 측이 마련해 준 특실.
그런 곳에 머무는 난 며칠 뒤 중국 선수와 금메달을 놓고 승부를 벌인다.
“말인 즉슨, 그녀가 말한 저들은 중국 그 자체다?”
“너무 과잉해석일까요….”
“말고는 딱히 의심할 것도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중국이 왜? 국가가 나를 왜? 올림픽 결승에 올라서? 아니면 오늘 내가 이긴 선수가 뭔가 엄청난 권력자의 아들이라도 됐던 건가?
그래도 중국이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순간 선생님이나 나는 확실한 위협을 느끼니. 그들이 바로 이번 올림픽 주최국이란 사실이었다.
가뜩이나 지금 중국은 세계인의 잔치 올림픽에 자국 민족주의를 퍼트리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도 꿈쩍도 안 하는데.
만약 이 모든 것이 어떤 치밀하게 설계된 함정이라면.
먼저 우리가 만났던 대사관 직원도 진짜 한국 대사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선수촌을 빠져나와 호텔에서 묵는 건 온전히 우리의 책임이 되니까…
그런 와중에 여자나 끼고 다니고 했던 내 행실은…
소름이 돋다 못해 오싹거리는 느낌이 심장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다.
이래서 다들 경고를… 진작부터 내가 사람을 조심했었다면…
말도 안되는 호의를 덥썩 물지만 않아다면…
“마하야!”
“네?!”
“인상 풀어 이놈아. 뭘 그렇게 심각하게 끙끙거리고 있어.”
“…선생님.”
“후우우… 일단 진정하고.”
할 말씀은 많지만 긴 말은 안 하시겠다며 선생님이 빠르게 정리 해주셨다.
“사람은 누구든 실수를 한다.”
“…….”
“하물며. 예상치 못 한 사고란 언제 어느 때라도 벌어질 수 있는 거야.”
“선생님….”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허벅지를 꾹 누르시더니 방으로 가 짐을 챙기셨다.
“선생님. 어디 가세요?”
“일단 지금은 놈들 장단에 맞춰 주는 수밖에 없겠다.”
고개를 돌려 손목시계를 보고있는 경호원들을 노려보며 말씀하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놈들은 물러가질 않을 거야.”
“선생님 그냥 저 새끼들 쓰러뜨려 버릴까요?”
“이놈아. 훈련받은 사람을 무슨 수로.”
“저도 훈련받은 선수잖아요. 괜찮아요. 두 새끼는 5초면 기절시킬 수 있어요.”
“마하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올림픽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너나 나한테 이 이상의 위협은 없다고.”
“그래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협박에 휘둘리는 건.”
“하지만 문식이를 생각해야지.”
그랬다. 나는 현재 개인이 아닌 팀으로 움직이는 상황.
중국이란 거대한 그늘이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다면, 위협은 내가 아닌 주장에게도 미칠 수 있다.
“걱정말자. 음? 푹 자고 아침에 봐.”
“…죄송해요. 선생님.”
“괜찮아. 푹 쉬어라.”
“흑. 정말 죄송해요… 제가 조금만 더 신중하게 행동을 했었어야 되는데.”
“이 자식이 울기는….”
선생님이 꼭 안아 주시며 말씀하셨다.
“뭔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구덩이에 발을 담갔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아니요. 제가… 제가 너무 한심하게….”
“그랬다면 놈들은 우리가 모를 또 다른 수법을 썼을 거야. 그러니까 그만 울고. 쉬어. 가서.”
얼마나 화를 내고 싶으실까. 얼마나 혼을 내고 싶으실까.
그럼에도 아무 말씀 안 하시는 건 내가 며칠 뒤 시합을 앞 둔 선수니까…
“에이 씨발!!”
선생님은 경호원들과 호텔 방을 나가셨다.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멍하니 써니 씨 번호를 눌러보았다.
당연히 연락은 닿지 않는다.
뭐라뭐라 씨부리는 중국 말에 짜증이 솟구쳐 핸드폰을 냅다 던져 버렸다.
“후우….”
그 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잡는다.
미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뭔 상황이냐고…
정말 원하는 게 금메달인가?
메달 하나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다는 게 말이 돼?
“하아. 하아. 후우.”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분노로 눈물이 아니라 불길이 치솟는 기분이다.
오케이. 좋아. 함정이라고 쳐.
세상에 공짜 없어. 좋다고. 인정하겠어.
그럼 넌 대체 뭐였어? 당신의 정체는 뭐냐고??
우리는 사랑을 나눴던 사이잖아.
“흑… 흐윽… 흑… 혀엉….”
이게 뭐야. 여자 한번 잘 못 만났다고 왜 이런 상황에 쳐해야 되는데.
내가 그 정도로 뭔가를 잘 못 한 거야?
레스토랑에서 처음 써니 씨를 만났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의 웃음. 행동. 나와 함께 한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니.
나의 두근거림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보며 느꼈던 설렘은 거짓이 아니었다고.
“씨발… 그때 그냥 딸딸이나 치고 잘 것을….”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왜 사랑만 하면 결과가 이렇게 되는지…
왜 내가 여자만 만나면 매번 끝이 이러는지…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