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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기로 가버렷-372화 (372/401)

Monster(10)

"참, 축하해. 오늘 시합했지?"

"응. 아이고,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정말? 봤을 땐 긴장 하나도 안 하는 거 같았는데."

"봤어? 어디서?"

"숙소. 우리도 오늘 연습 있어서. 은재는 지금 난리 났어."

"왜?"

"너 기사마다 찾아다니면서 댓글 쓰느라고."

"아니. 지 경기해야지. 왜 나를 신경 쓰고 있어."

"내 말이. 걔는 지금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거 같아. 그러니까 그런 걸 왜 사 줘서."

"불러서 한마디 해야겠네. 기집애 올림픽까지 와서."

"아하하하~!!"

"왜 웃어?"

"니가 기집애라고 하니까. 남자가 그런 말을 쓰냐."

숙소 근처 조용한 벤치에 머물다 만난 주영이 누나.

누나는 여름에 맞춰 핫팬츠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있었다.

스타일이 고맙다.

간단하게 입었는데 그게 멋있어.

역시 몸매가 명품이면 뭘 걸쳐도.

"누나는 어디 가?"

"응.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어서. 매점."

"같이 가자. 나도 당 떨어지는 거 같다."

근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진짜 많이 성장했구나. 인간적으로 뭔가 내면이 굉장히 성숙한 거 같아.

어떻게 이런 사람이랑 같이 있는데 아무렇지 않지?

말도 자연스럽고 행동도 그렇고.

리틀 구마하 이 새끼도 존나 얌전하고.

허벅지가 이렇게 하얀데.

발목이 저렇게 가느다란데.

슬리퍼가 하이힐보다 더 섹시하게 느껴지는 몸매에서 이 평정심이란.

"날씨 좋다. 북경은 공기 안 좋다고 들었는데. 그치?"

"그러게. 맑네."

"은근 습도도 잘 없는 거 같고. 오늘 밤은 잘 때 에어컨 꺼도 되겠지?"

근데, 말하면서 보니까 슬리퍼 끝에 발가락들이 뭔가 귀엽다.

저 발 입에 넣고 쪽쪽 빨았으면….

아니 누나랑 그러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냥 요즘 몸과 마음이 그런 게 있으니까.

허전하잖아.

"야."

"음?"

"뭐해. 고개 좀 들어."

"아. 그냥 땅에 뭐 떨어진 거 없나 싶어서."

"뭐가 떨어져. 아까도 사람들이 너 알아보고 지나갔는데. 고개숙이고 있으니까 못 다가오잖아."

"에이. 하루 이틀인가. 괜찮아."

"오오~ 스타."

"하하하! 스타는 무슨."

"근데 나 오늘 너 보면서 권투 처음 본 거 알아?"

"그래? 어땠어? 재밌었나?"

"모르겠어. 근데 조금 무섭더라. 지수도 많이 떨었어."

"저런 저런. 오라비 생각하는 동생들의 마음이 기특하구만. 은재나 지수나."

"뭐래, 아저씨같이…."

그때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다 우리를 쳐다봤다.

사람들이 나를 보는 걸까? 아니면 주영이 누나를 보는 걸까?

남자들이니까 누나를 봤겠지?

역시. 예쁜 여자는 존재 자체가.

"아 맞다. 너 혹시 걔 알아?"

"누구?"

"다닐로바. 다닐로바 레스카야라고. 벨라루스 선수 있는데."

"몰라. 처음 듣는데."

"진짜? 은재는 걔가 너 아는 애 같다고 하던데."

"어디서 봤는데?"

"우리 연습장에서. 리듬 체조 선수야."

"아~ 아! 아! 혹시 걘가?"

"알어?"

"금발이지? 얼굴 조그맣고 키 작고."

"얼굴은 작은데. 키는 커."

"아아~ 하하! 오~ 그래. 있어. 리듬 체조 한 명 알아. 걔가 걘가?"

이름은 모르겠지만 빅키와 룸메이트 했던 작고 귀여운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4년이 지났으니, 걔도 이제 18인가? 아님 20?

"맞구나. 은재 촉이 좋네."

"하하~! 잘은 모르고. 그 룸메이트랑 내가 가까웠지."

"혹시 그때 그 스캔들 모델?"

"스캔들은 아니고. 뭐 그때는 그냥 그랬던 애지."

"와… 앞으로 뭐 영감받을 일 있으면 은재한테 물어봐야겠다."

도란도란 떠들며 걷다 보니 어느덧 매점 앞.

"음?"

"어?"

그리고 운동선수들이 많이 모이는 그 앞에 내가 그토록 반기던 커다란 상자가 있었으니. 바로 올림픽 콘돔이었다.

"……."

"하하하~! 미친놈들."

남자 3명과 여자 2명이 시끄럽게 다가와 바구니에서 한 움큼콘돔을 집어 가고 있었다.

주영이 누나는 급격하게 말수가 줄어들고 나는 추억과 더불어 3:2 구성이 어떻게 펼쳐지나 괜히 혼자 즐거워졌다.

"외국 애들은 민망하지도 않나 봐…."

"뭐 어때. 피임인데. 건전하지."

"……."

"저런 거 뭐라고 하면 안 돼. 오히려 좋은 거야."

"야. 여기 한국 사람들도 있어. 말조심해…."

"아, 괜찮아. 그리고 내가 콘돔 챙겼나. 외국 애들이 챙겼지."

그때 옆을 지나던 검은 동양인이 한국 사람이었나 슥 우리를 한번 돌아보고 지나간다.

"이것 봐."

"괜찮다니까. 그보다 아이고 막상 여기 오니 배가 고프네. 역시 시합을 뛰긴 뛰었나."

"너 밥 안 먹었어?"

"먹었는데. 뭐 알다시피 원체 내가 먹성이 좋아야."

매점에 들려 누나는 커피를 나는 간식이나 조금 먹으려고 했던게 또 걷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식당으로 이동하게 됐다.

"누나, 피자 먹어 봤어?"

"한 조각. 맛있긴 하더라."

"그냥 한 판 이렇게는 아예 못 먹는 거야?"

"먹으라고 해도 못 먹고. 먹을 수 있어도 참고."

"진짜. 대단해. 여자는 식욕이 성욕이라던데. 그걸 어떻게 참 나."

"대신 성욕을 안 참지."

콘돔 피플 때문에 이 누나도 뭔가 개방적인 시각이 열린 건가.

뜬금없는 이야기에 말문이 턱 막힌다.

"왜? 너도 아까 그런 얘기 했잖아."

"어. 아니… 좀. 음."

"뭐 어떠냐. 어차피 성인인데."

"하긴 그렇지. 그렇고말고."

주영이 누나의 섹스라….

역시 리듬 체조니 몸은 부드러울 것이고.

남자 친구랑 이것도 저것도.

"넌 해 봤지?"

"하하하~ 하하하하…."

"왜? 혹시…?"

"걱정하지 않으셔도. 연애도 해 보고 여자 친구도 많이 사귀어보고."

주영이 누나는 그런 게 있다.

모두가 같이 있을 땐 되게 조용하다.

솔직히 지수나 은재에 비해 별로 그렇게 가깝다는 생각도 잘 안들었는데, 먼저 자금성 관광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둘이 있으면 은근 개방적인 성격이 되는 거 같다.

"아. 하긴, 너 그때 그 외국인 모델이랑 스캔들 호텔에서 났었구나."

"저기. 당사자 앞에 놓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왜? 불편해?"

"그리고. 그때 그 일은 나한테 좀 안 좋은 일이기도 해서…."

"정말? 미안. 그건 몰랐어."

"괜찮아. 모를 수 있지."

"무슨 일인데?"

"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아닌가? 내가 묻는 게 이상한 건가."

"그게 아니라."

잠깐 고민한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뭔가 혜정이 얘기를 처음으로 여자한테 한다는 생각에 어딘가 조금 설렘이 느껴져서.

"진짜 애기였을 때부터. 아니. 그냥 걔 존재 자체가 내 첫사랑인 애였지."

"와~ 구마하의 첫사랑."

"걔랑 그때 그 일로 깨졌거든."

"……."

"그러게. 기자 새끼들… 생각해 보면 내가 이것들에게 잘 대해줄 이유가 없는데."

"그런 얘기 나한테 해도 돼?"

말이 잘 통하는 상대완 원래 이런 대화 저런 대화 다 할 수 있는 거라지만. 나도 이 누나한테 이 얘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응."

"내가 어디 가서 얘기하면?"

"해도 돼. 뭐 어때. 대신 앞으로 누나 안 보고 살면 그만이지."

"그건 너무 매정하고…."

"그냥 나도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뭔데?"

"왜 여자들은 잘해 주는 걸 싫어해?"

"…그걸 누가 왜 싫어해?"

"걔가 그랬었어. 내가 너무 잘해 줘서 싫었대."

"정확하게 뭘 어떻게 했는데?"

어느 정도 정리도 됐고, 그리고 또 혜정이의 그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해서 손을 놓기도 했지만.

그냥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야. 그건 잘해 주는 게 아니지. 부담스럽지."

"걔도 그랬었어."

"흠. 글쎄다. 사람 따라선 그런 걸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긴할 건데."

"나도 좀 미숙했던 건 있는데. 아무튼 그래서 대판 싸우고 걔가 헤어지자고 집 나가고 그래 가지고."

"……."

"그날이지. 그리고. 빅토리아랑 같이 있고."

"……."

"왜?"

"집을 나가? 무슨 소리야? 같이 살았어?"

"응."

"와… 너 진짜… 보기랑 정말 다른 애였구나."

"아하하하! 나도 사람인데."

혜정이 이야기 하니까 너무 좋았다.

그 친구가 아직도 내 안에 이만큼 큰 존재로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는 게 좋아.

"남자의 첫사랑은 쉽게 못 잊는다고 하긴 하던데."

"정말 그래. 차라리 그냥 안 만났으면 싶은 마음도 들 때 있어."

"……."

"근데 또 걔 없었으면 내가 운동선수가 될 일도 없고."

"마하는 진짜 의외인 면이 많구나."

주영이 누나가 그렇게 말하며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나를 보는데.

"난 너 철저하게 운동만 하고 사는 앤 줄 알았는데."

미쳤다. 이 누나 역시 예쁘긴 예뻐.

저런 눈빛으로 저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건 반칙이지. 애인도 있는 사람이….

"아, 이거 참 너무 떠들었나…."

"은재한테도 이런 얘기 해 주지. 진짜 좋아했을 건데."

"거 뭐 어린 애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합니까. 쪽팔리게."

"아하하? 그럼 나는?"

"누나는 나보다 한 살 많고."

"너 나 빠른 인 건 알어?"

"……."

"나도 86이야."

"뭐야. 나보다 한 살 많다면서."

"한 학년 높긴 하니까."

"학년이 나이는 아니잖아."

"그게 그거지."

"어이, 이주영."

"아하? 하하! 하하하하!!"

"뭐야. 지금까지 누나라고 한 거 다 물어내."

"너 진짜 웃긴다. 애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구나."

주영이 누나가. 아니 주영 씨가. 아니 얘가.

아 젠장 이래서 한국의 나이 문화란….

"연상 좋아하는구나."

"딱히 연상이라고 좋아하진 않아. 근데 음."

"근데?"

"생각해 보면 은근 만났던 사람 중에 연상들이 많은 거 같기도?"

"몇 살까지 만나봤는데?"

"보자. 그분이. 나이가. 마흔이 넘었으니까."

"허억… 와…."

"모르겠다. 아무튼 꽤 많어."

그러자 주영 양이 긴장한 얼굴로 물어본다.

"너 진짜 이런 얘기 나한테 해도 돼?"

"뭐 어때. 원래 나 여자들이랑 있음 별 얘기 다 해."

"왜?"

"들어 주니까. 내 얘기를 듣고 싶어 하기도 하고. 지금 누나도.

아이 씨. 또 누나라고."

"그래도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이렇게 너 얘기 하는 건. 글쎄.

난 좀 위험할 거 같은데."

"사심이 없어서도 그럴 수 있지."

"사심?"

"나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말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하고 그러지."

"으음. 이건 조금 흠."

"왜? 기분 나쁘신가."

"별로 그런 건 아닌데. 어딘가 조금 기분은 나쁜 편이네."

"하하! 내가 원래 애인 있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진 않아."

"왜?"

"왜라니. 그게 맞지. 애인 있는 사람을 좋아할 이유가 어딨어.

어차피 날 좋아해 주지도 않을 건데."

"난 좋아하는데?"

뭐야 이건? 왜 대화 속에 갑자기 카운터펀치가 날아와?

맥락이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남자 친구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감정이 앞서면 그럴 수 있지."

"그건 문제가 있지."

"넌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마흔이라는 그분은 누군가 있었을 거 아니야."

"뭐. 음."

그런가? 유이 누나 말고도 따져보면 혜정이도 엄밀히 지민이 형을 만나고 있긴 했었지.

흐음.

"아무튼 누나는 남자 친구 있으니까. 조금 더 편하다는 거야."

"그 남자 친구 말이야."

"음?"

"거짓말이면 뭐라고 할 거야?"

먼저 자금성 관광 때도 얼핏 느꼈지만.

이 사람. 확실히 뭔가 아닌 듯하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그런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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