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51화 (351/401)

형제는 용감했다 (9)

"잠깐만요, 잠깐만요!! 회사를 대표해서, 매니저로서 한마디만 할게요."

민구 형이 나섰다.

"좋습니다. 경비 문제도 선수 문제도 훈련도 다 해결이 된다고 해요. 하지만 저한텐 중요한 문제가 남습니다."

"중요한 거 뭐?"

"말씀하시죠."

"마하요. 마하는 생각 안 하십니까?"

"이놈이 왜?"

"관장님. 아까 왜 그렇게 속상해하셨는지 벌써 잊으셨어요?"

"아. 이놈 몸?"

"네!! 외국 그렇게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운동하는 사람한테 얼마나 안 좋은데요."

형... 형은 왜 양 씨로 태어나서. 한 1000년 전쯤 구 씨로 태어나지...

"괜찮습니다."

이제는 특별하지도 않다. 그래. 나의 혈육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보자.

"괜찮다고요?"

"네. 제가 옆에 있을 거니까요."

"..."

"형님이요?"

"네."

관장님도 이건 잘 모르겠다는 듯 형을 보며 묻는다.

"자네가 뭘 할 수 있나?"

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관장님을 자리에 앉도록 손짓한다.

"음주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뭐, 아무래도. 사는 게 사는 거 다 보니까."

"몸이 많이 지쳐 보이십니다. 손을 잠시."

그리고는 여기저기 주물거리며 마사지 비슷한 걸 하는데.

"어어. 어라? 뭐야, 이거?"

"조금만 쉬시면 곧 몸이 편안해질 겁니다."

"으어어. 지... 지금 내 몸에 무... 무슨 짓을... 크어억, 크어억~"

물론 내공을 썼지.

뭔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관장님 몸 속 여기저기 기운이 막 움직이며 그대로 흥분해 날뛰던 양반이 고꾸라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커억, 크어억~~!!"

"..."

"뭐, 뭐... 뭐야? 마하야, 관장님 갑자기 왜 저러셔?"

당황해 하고 있는 민구 형을 향해서도 형은 거리낌없이 다가가 말했다.

"사형은 몸이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네?"

"잠시 어깨를."

"아. 저. 전 괜찮습!!"

그러나 내공이 움직이는 마사지는 사우나 뜨거운 물 저리가라할 정도로 육체의 긴장을 풀어주고 피로를 날려 버린다.

민구 형도 그간 고된 매니저 업무를 이겨 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하하, 하하하..."

"잠깐이면 돼. 한 30분 정도면 일어나실 거야."

"뭐해? 이제는 숨기지도 않네?"

"마하야."

"아니, 나한텐 힘자랑이니 뭐니 그러던 사람이. 자기는 진짜 일반인들 상대로 뭐 하는 거야, 지금?"

"미안하다."

아, 젠장. 진짜 짜증나게...

그렇게 나오면 내가 또 할 말이 없잖아...

"뭐가."

"내가 널 오해하고 있었어."

"아, 됐어. 치워."

"이 자식, 건방진 말버릇하고는."

제기랄, 젠장. 화가 나야 하는데. 화를, 화가, 분노가…….

"아직도 마음이 안 풀리냐?"

"..."

"형이 미안하다니까."

"됐다고. 이제 와서 무슨..."

"비행이라는 거, 너 응원 갈 때나 수정이랑 여행갈 때 타 봤지만 힘들긴 하더라. 역시 사람이 구름을 넘어선다는 건 무리가 있는 얘기 같애."

"뭐야? 사과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딴소리를 해."

"니가 됐다며."

"하! 아... 진짜..."

"화 풀어. 형이 도와줄게."

형이 도와준다라.

잠깐만, 잠깐만... 좋아할 게 아니야.

이론은 좋아. 우리 형이 있으면 일주일 걸릴 회복이 하루도 안걸릴 수 있고. 그만큼 연습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니까. 다만.

"가게는 어떡하고?"

"정석이 있잖아."

"그 새끼한테 가게를 맡긴다고?"

"이제는 맡아도 되지. 잘 하는데."

"..."

"이동은 최소로. 연습은 최고로. 그런 수행의 길이 되면 좋겠다."

"형수님은?"

"수정이는 너랑 화해하지 않으면 자기가 짐 싸서 친정으로 가겠다고 하고 있어."

"화해했네. 가서 형수님이랑 있어."

"후후후. 수정이가 그 정도로 봐줄 사람이 아니지."

진짠가. 우리 형이 가게를 벗어나 나랑 있는다고...?

"형, 지금 다 진심이지?"

"그럼."

"진짜에 진심이지? 맹세하는 거지?"

"그렇다니까."

"정석이가 가게 다 말아먹을 수도 있어. 형 없는 사이에 손님 다 사라지고. 상인회 사람들 막 형 찾아다니고. 수정이 누나 딴 사람이 다가와서 말 걸고."

"하하하! 그렇게 한눈팔 사람이면 내가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았지."

"난 형이,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않던 걸 벗어나는 게 영 이해가 안 돼."

"무슨 상관이야. 내 동생이 구마한데."

"..."

"넌 니 친구를 그렇게 못 믿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리고 설령 정석이가 가게를 못 지킨다 해도. 그때는 능력 있는 동생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되니까."

양쪽으로 관장님과 민구 형이 코를 골며 기절해 있는 곳에서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야?"

"그냥. 이제는 너가 다 컸다는 걸 알았어."

"그럼 내가 컸지. 내가 형보다 키도 더 커."

"후후후. 그래. 몸도 더 커졌지."

감독님한테 이야기도 듣고, 어제 한주고 사람들한테도 내 얘기를 들었단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하고 있구나 싶었어."

"..."

"기분 좋더라. 뭔가."

"평상시도 가게 오는 사람들 내 얘기 많이 한다면서. 그땐 별로였나 보지?"

"그땐 체감이 잘 안 됐었어. 무엇보다 부와 명성이 너한테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고."

"음... 돈 많음 좋은 거지. 그게 왜 도움이 안 돼."

"너가 늘 힘들어하니까."

형은 내가 혜정이랑 헤어진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방황하고 지쳐 하는 것도 형은 못내 자기 탓인 것 같았단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전부 우리가 가지지 못 한 어린 시절 때문에 저러나 싶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

"많이 실망하시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너가 대회에 나간 것도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던 거야."

운동에 형이 참가하면, 나는 분명 지금보다 몇 곱절 이상은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선수가 아닌 형제로서 풀어야 할 일이 있었다.

"형, 지금 여기 나 혼자 운동하잖아. 월세가 얼마인 거 같애?"

"여기? 글쎄?"

"나도 몰라."

"하하! 근데 왜 말해."

"저기 저 기구는 얼마인 거 같애?"

"몰라."

"이 샌드백들은? 펀치 백들은?"

"흠."

"난 그냥 감독님한테 복싱을 하겠다고 했고, 훈련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만 했어."

"고마우신 분들이지."

"아니, 내가 회사에 그만한 성과를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거야."

어제 정 사장님이 해 주신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선수를 키워 낸 건 구마윤이란 사람이고."

"니가 알아서 했지. 내가 뭐."

"혹시나 내가 무슨 일이 생기고. 무슨 사고를 쳐도. 내가 해 온 일들은 웬만해선 지워지지 않아. 부모님이 형을 봐도 뭐라고 못해. 만약 뭐라고 하면 그땐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

"야, 부모님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상관인데. 날 살리고 키운 건 구마윤이지, 부모님이 아니라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내가 복싱에 도전하는 진실을 알려 주었다.

"지금 내 명성에 만약 또 좋은 성과라도 난다면 그땐 정말 세상이 뒤집어질 거야."

"..."

"아프리카 산간 오지까지 내 이름을 알게 될 거야. 그럼 부모님이 우리를 찾아올 수도 있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래. 나 어린 놈 아니라니까?!!"

알았으니 그만 떠들고 팔이나 이리 줘 보란다.

여기저기 형이 온 몸을 꾹꾹 누르고 만지자 욱신거리던 통증이 한번에 잡혔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야?"

"어렵지."

"알려줘 봐. 나도 내공은 있잖아."

"싫어."

"왜?"

"너보다 내가 잘하는 거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싶으니까."

늘 어렵기만 했던 형의 장난스런 말은, 처음으로 나를 어른으로 인정해 준다는 느낌을 전해주었다.

뭔가 마냥 기쁘다고 하긴 뭐하고, 슬프다고 하기도 뭐 한 기분이었다.

"됐어. 나도 익히면 돼."

"못할걸. 이건 혈을 알아야 하는데. 넌 혈이 뭔지 모르니까."

"하!! 그런 거 내공을 읽다 보면."

"좋은 혈이구나 하고 찔렀다간 사혈을 눌러 온 몸이 굳거나 내공이 빠지겠지."

"..."

"가만히 있어, 그냥. 까불지 말고."

그래도 구마윤은 언제든 구마윤이구나.

* * *

"으어어! 자네 대체 내 몸에 뭔 짓을 한 거야?"

"와. 뭐지? 나 지금 몇 시간을 잔 거지?"

30분이 조금 지나자 관장님을 시작으로 민구 형까지 일어나 눈이 번쩍 뜨였다는 듯 호들갑을 떤다.

형은 간단하게 기공 마사지를 익히고 있다면서 두 사람을 납득시키는데.

이상하게 그게 통한다.

"아. 그렇구나. 기공이라, 역시."

"이것도 한의학이죠?"

만약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운동을 한다면, 폭력은 있어도사기는 없을 거야. 이런 단순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좋아! 이런 게 있다면야. 환영한다!"

"그럼 진짜 수행의 길을 떠나는 건가요?"

"음! 니놈 생각은 어떠냐?"

나의 생각. 나의 생각은...

"당연히 가고 싶죠!"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우와... 하하하. 너 진짜 괜찮겠어?"

"제가 뭐. 형 있고, 민구 형 있고, 관장님 있고. 무서울 게 없죠."

다만, 아쉬운 건 있다.

수행의 길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엔 남미 대륙이 떠올랐다.

"으으음!! 남미! 아르헨티나. 칠레! 복싱의 본고장이기도 하지!!"

"남미면 멕시코까지 올라가는 데 복싱 체육관이 적어도 몇백개는 있겠죠?"

"몇백 개? 아니지. 몇만 개가 있지."

"그 정도라면 마하를 상대해 줄 강자들은 얼마든지 볼 수 있겠네요."

진짜 아쉬운 게 있다.

남민데, 수행의 길인데...

여자들이...

라틴 아메리카 현지의 그 뜨거운 분위기를...

"으하하! 이런 훈련은 전세계 그 어디를 찾아봐도 없을 거다."

"꼭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같네요."

"그게 뭔데요 민구 형?"

"체 게바라라고. 남미 혁명가가 있는데, 오토바이 하나 타고 친구랑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이야."

"오~ 혁명."

"그래!! 혁명이다!!"

아이고, 관장님... 제발 저 흥분을 좀 어떻게...

"이건 복싱계의 혁명이야! 가자!! 다 쓰러뜨리는 거야!!"

스파링이 왜 또 혁명까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뜨거워지고 싶진 않다고요...

"아, 맞다. 형."

"음?"

"여기까지 온 김에, 잠깐 누구 좀 만나고 가자."

"누구?"

"저기, 그. 나 밥 해 주시던 분."

"그런 분이 계셨어?"

"이자, 가끔 훈련도 도와주신 분인데."

.

.

.

"그... 그런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네. 어떻게 하다 보니까."

"아, 그... 그래?"

형을 워낙에 보고 싶어 하던 정 사장님이었다.

다 같이 저녁도 먹을 겸 가게로 찾아왔다 어찌저찌 이렇게 하기로 했다 이야기가 되고 말았는데.

"그렇구나... 그래. 훈련을 해야지..."

모두가 정 사장님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도 데려가 줘... 라는 그 절박한 마음을...

하지만 이쪽이야말로 진짜 생계가 걸려 있어, 아무도 그 말을 못 하고 있었는데.

"함께 가시겠습니까?"

"네? 제가요?"

"잠깐 위에서 이야기를 나눴을 땐. 꽤 긴 여행이 될 것 같은데.

영양 잡힌 식사를 담당해 주실 분이 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에이... 제가 뭘요. 그 마하 씨 형도 식당 하시는 분이……."

"저는 따로 역할이 있어서요. 요리까지는."

"그... 그럼 저도 같이 갈 수 있나요?"

관장님도 슬쩍슬쩍 눈치를 보시며 한 말씀 거두셨다.

"그, 뭐. 정 사장이면. 이론도 많이 알고. 수석 트레이너 정도는 할 수 있지."

"...관장님?"

"아니, 멤버가 그렇잖아. 난 감독, 민구 이놈은 매니저, 마윤이 저 친구는 의무 팀. 트레이너가 없긴 하다고."

속닥속닥 민구 형에게 묻는다.

"형, 이렇게까지 우리 맘대로 해도 되는 거예요?"

"엄밀히 우리 맘은 아니지... 어른들이 다 결정하고 있잖아."

형이 물었다.

"함께 가시는 걸로."

"마하 씨...?"

"에이 모르겠다. 다 가요! 갔다와서 성과로 보이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복싱에서도 팀 구마하가 짜여졌다.

감독 최두필, 선수 구마하, 매니저 양민구, 의무 및 회복에 우리 형 구마윤, 마지막 식사와 트레이너에 정 사장님.

"그럼 앞으로 사장님을 코치님이라고 불려야 하나요?"

"에이! 에이~!! 마하 씨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코치야!"

"왜요, 좋은데요. 정 코치님."

"아하하하! 아, 하지 마. 민구 너까지 왜 그러냐."

"잘 부탁드립니다. 정 코치님. 식사 준비하실 땐 저도 돕겠습니다."

"어우, 어우! 무슨 말씀을! 제가 배워야죠. 사업으로선 한참 선밴데."

"으하하하! 어이! 다들 착각하지 말라고. 놀러 가는 게 아니야.

엄밀히 이건 도장 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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