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44화 (344/401)

형제는 용감했다 (2)

"그분 맞으시죠? 우리 구마하 선수랑 같이 스키 타셨던."

"아. 예. 맞습니다."

"아이고, 영광입니다."

"아니라니까, 아빠. 이분은 코치님이시고 저 옆에가 선수라고."

"어쨌든 동료는 맞잖아, 이놈아."

관중석에 앉은 김정준과 박상택에게 구마하의 팬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김정준이 머쓱하게 웃고 있는 상택에게 묻는다.

"뭘 그렇게 툴툴거리냐?"

"아, 귀찮게 뭘 찾아 와..."

"야. 너 보려고 온 거 아니야. 나 보려고 온 거지."

"뭐래. 사람들이 형도 잘 모르더만."

"하하하! 자식."

두 사람은 다시 체육관으로 눈을 돌리며 구마하를 찾는다.

"아무튼 엄청나구나. 이 정도로 인기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형? 저 새끼 찍는 광고가 몇 갠데."

"마하... 정말 이름답게 사는 놈이야."

"아 몰라! 지면 난 그대로 평창으로 끌고 갈 거야."

"하하하~ 상택아."

"지가 뭔 복싱을 해. 새끼 몸 좋으면 다 되는 줄 아나."

"그런가? 난 아까 마하 옷 갈아입는 거 보니까 엄청나게 변했구나 싶었는데."

"뭐 어떻게?"

"완전한 복싱 선수로."

"어이고. 그 짧은 순간으로 파악이 된다고?"

"그럼. 넌 차이를 모르겠어?"

"아, 됐어. 형도 잘 모르잖아."

"새끼. 모르긴. 나도 어쨌든 대표 팀 감독이야."

"아. 몰라. 민구가 그랬어. 마하 저 새끼랑 붙었을 때 지가 이겼다고."

"먼저 만났을 때 보니까, 민구 저 친구. 그런 얘길 자기 입으로 떠들 성격은 아닌 거 같던데."

"상황이 그랬다니까. 내가 없는 말 지어내는 게 아니라고."

"하하하. 알았어. 흥분하지 말고."

구마하를 생각하는 김정준의 마음에 허전함이 차오른다.

하지만 원래 마하는 육상 선수. 본가에 잠시 다녀온다고 해도 말릴 명분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때 아시안 게임 한다고 할 때 보내는 게 아니었어."

"...뭘 이제 와서."

"근데 상택아. 이제는 놔줘야 할 거 같다."

"뭘 놔줘. 놔주긴. 보라니까. 내 말이 맞을 거라고."

"너, 진짜로 마하가 지는 걸 보고 싶어?"

"뭐라는 거야. 젠장. 아 씨, 뭘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 빨리 빨리 좀 하지."

"난 마하가 이겼으면 좋겠다. 그것도 잘하는 모습으로."

김정준이 박상택의 어깨를 감싸 쥔다.

서운함을 느끼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박상택도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4계절이 있어, 스키에 그의 재능을 담기엔 이 나라의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그래도 만약 계속 운동한다면, 마하는 분명 활강을 넘어 회전과 대회전, 슈퍼 대회전까지 스키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딸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하고 싶었는데...

"응원해 주자. 음?"

"새끼. 맞고 쌍코피나 터져라."

"야, 인마! 입 좀 조심해. 여기 마하 팬클럽들 있어."

사람들의 기대 속에 시합은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오전 11시, 마침내 주인공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다음 팀 준비해 주세요."

"왔다. 준비됐냐!!"

"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 음!?"

"네!!"

"좋아. 입 벌리고."

"웁."

"가 보자!!"

정말 많은 관심이 집중 된 경기였다.

푸른 옷을 입고 있는 신인 구마하.

팬클럽은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건네주었고, 다른 이들은 헤비급 1차전 경기가 열리는 링 주위로 모여들었다.

구마하도 한 발 한 발 링 위를 거닐며 상대를 응시한다.

"후우 훅."

"..."

"양 선수 중앙으로."

오늘 처음 보는 사람과 싸움을 시작하는구나.

"급소 가격 절대 안 되고, 파울은 페널티 받습니다."

심판이 짧게 룰을 설명하는 가운데 구마하는 시합 전 최두필 관장이 건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하야, 그때 정 사장네 가게서 처음으로 다 같이 한잔했던 날 기억하고 있냐?)

(민구 형한테 개털린 날이요?)

(야! 너 아직도!!)

(하하! 그래, 그날)

그날 구마하는 모두에게 승리가 부담이 되어 스포츠계를 떠났다고 말했고, 그에게 최두필 관장은 복싱은 승리냐 패배냐 둘 중 하나밖에 없다고 답했다.

(내가 물으니 니 입으로 분명히 말했지. 이기고 싶다고. 기억하지?)

(물론이죠.)

(단순한 거야. 복싱은 많이 맞으면 지고 많이 때리면 이긴다.

알겠냐?)

(네.)

(주저하지 마라. 스파링이랑 실전은 다른 거니까.)

(명심할게요, 관장님. 고맙습니다.)

"준비 됐습니까?"

"네."

"예!"

"그럼 시작합니다."

살벌한 눈빛이다.

그래. 상대방도 맞고 때리는 무대에 올랐다.

각오가 있는 거야.

어쨌든 나도 싸우기 위해 나섰으니 물러서지 말자.

그것이 복싱이니까.

땡!

"파이트!!"

심판이 큰소리를 외치며 물러선다.

파란 옷과 빨간 옷을 입은 두 선수가 가볍게 주먹을 맞대며 인사를 대신했다.

시끄러운 함성 소리에도 긴장감은 고조되고, 붉은 옷을 입은 상대방 코치가 먼저 소리쳤다.

"혁수야! 뭘 보고만 있어. 자신감 있게 나가!"

상대방의 코칭에 양민구가 최두필 관장을 슬쩍 돌아보며 묻는다.

"관장님은 마하한테 아무 말씀 안 해 주세요?"

"뭘 해 줘?"

"네?"

"괜찮아.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돼."

여유 만만한 최 관장의 모습에 양민구의 가슴이 다급해진다.

"그래도. 정혁수 저 선수. 아까 보니까 대학 팀 대회에서 준준 결승까지 갔던 친구던데요?"

"그래? 나름 잘하는 놈이었구먼."

"관장님?"

"있어 봐, 그냥. 괜찮으니까."

"어..."

경기장 모두가 짧아도 5년에서 7년 글러브를 끼고 운동을 해왔다.

사람들은 구마하의 자세 하나하나를 뜯어보았다.

몸은 훌륭하나, 누가 봐도 초보자의 자세. 과연 시합이 될까?

스타의 명성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던 붉은 옷의 상대방도 이제는 슬슬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돈지 가늠이 되는 것 같다.

"후우욱. 훕!!"

그래서 먼저 호흡을 가다듬으며 달려든다.

"읍!"

구마하도 경계하고 팬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지고 온 소지 품을 바짝 움켜쥔다.

양민구, 김정준, 박상택. 그와 가까운 모두가 심장이 오그라드는 긴장감을 느끼는 가운데.

최두필 관장만이 씩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훅!"

공격이 들어오니 당연히 방어가 펼쳐지고,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구마하가 배운 대로 잽 잽 원투 펀치를 내지른다.

주먹은 민첩했고 스텝은 부드러웠다.

두꺼운 몸통과 거대한 덩치가 순식간에 상대방의 품으로 파고들어, 기본 콤비네이션 레프트 훅과 라이트 훅이 연이어 뻗는데.

"다운! 다운!!"

다급하게 심판이 다가와 그와 상대방을 말린다.

구하마가 주먹을 멈추자, 붉은 옷의 선수가 링 위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어?"

"1! 2!"

"어라?"

"TKO!! 시합 종료! 청코너 승!!"

구마하의 첫 데뷔전 KO1R.

1라운드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야... 너...?"

"어, 뭐지? 형, 저 뭔가 했나요?"

"아니... 펀치가 들어가긴 했는데..."

"근데, 왜 그렇게 쉽게?"

너무 경이롭고 놀라운 광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복싱을 잘 모르는 관중들은 구마하가 뭔가 파울이라도 한 건 아닌가 걱정되는 마음에 입을 열지 못했고, 선수나 코치, 체육관 관장들은 혀를 내두르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일순간 정적에 잠겨 버린 경기장 속에서 최두필 관장이 선수와 매니저를 챙겨 자리를 벗어난다.

"이놈들아, 어서 비켜 주지 않고 뭐해? 다음 팀 시합해야 돼."

"아, 네."

"민구야, 가방 들고 와라."

"네!!"

최두필 관장은 솟아오르는 어깨와 콧대를 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에게 오랜 동료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어이, 두필이. 뭐야?"

"뭐가 뭐야."

"아니. 방금..."

"몰라. 우린 시합 끝났어. 나중에 보자고."

조용히 구석진 자리를 찾아가는 세계체육관 소속의 세 사람.

그들을 중심으로 물기둥이 솟아나듯 함성과 파장이 퍼져나갔다.

"하하하! 뭐야! 타이슨이야!!"

"어이! 최두필이!! 대체 육상 선수한테 무슨 훈련을 시킨 거야!!"

그제야 구마하나 양민구도 우리가 이겼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가한 구석에 와서야 최두필 관장이 설명을 해 줬다.

"레프트 훅이 제대로 턱에 꽂혔다."

"아, 예. 저도 느낌은 왔었어요."

"원투도 깔끔했고. 상대방도 너무 교과서적으로 나오니 한번 맞아 보자 했던 거 같은데, 니 힘을 간과했던 거지."

"마하보다 몸집은 큰 선수였잖아요."

"그놈도 맷집은 있겠지. 하지만 말했잖아. 이놈 힘을 간과했다고."

최두필 관장이 자기 양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민구야. 내 팔 한번 잡아 봐라."

"어. 네."

"어때? 통뼈지? 나 어릴 때 우리 동네에서 씨름했다고 애들 괴롭히고 힘자랑하던 놈이 있었어. 그놈도 내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었지. 내가 몸은 작아도 그만큼 뼈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최두필 관장이 말하길 구마하의 미트를 잡아주다 보면 뼈가 울리는 날이 있었단다.

나중엔 아파서 훈련을 봐 줄 수 없기에 샌드백으로 돌리고 체력 훈련을 시켰다.

"아, 죄송해요."

"뭘 죄송해. 다 그런 건데. 근데 진짜 이대로 가다간 네놈 올림픽 보내기 전에 내가 쓰러지겠더라고."

아무리 짧게 때려도 샌드백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도 다 그의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헤비급이라 하더라도 지방과 살로 만든 주먹과 근육이 꽉꽉 들어찬 주먹은 파괴력이 다르다.

"다음 시합부턴 더 주저하지 말고 가는 거야. 알겠지?"

"네!"

"모두가 니놈 주먹이 위력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엄청나게 빨빨거리고 도망치겠지만."

최 관장이 고개를 돌려 본다.

적지 않은 곳에서 경계하는 시선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는 또 한 번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봐야 지 놈들이 너보다 빠르겠냐. 안 그래?"

정말 그의 말대로 시합이 진행되었다.

2회전, 상대방은 구마하의 주먹을 피하려고 과도한 위빙을 하느라 자세가 흔들린다.

3회전, 먼저 유효타를 때리기 위해 성급히 덤비다 빈틈을 내곤 카운터를 맞았다.

시합을 거듭할수록 구마하의 펀치는 깔끔하고 정확하게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KO!!"

그저 초심자일 뿐. 기본기를 충실히 몸에 익힌 움직임은 오히려 군더더기가 없기에 빠르고 정확할 수 있었다.

"하하하! 아니, 어떻게!!"

"미쳤다. 뭐야, 대체? 복싱 얼마나 했다고?"

"아니, 뭔 사람 주먹이..."

팬들도 이제는 안심하고 그의 승리를 기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잘못되거나 반칙을 한 것이 아니다.

늘 그랬듯, 천재가 천재의 모습으로 세상을 놀랍게 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고, 미친 새끼. 또 KO야?"

"하하하! 상택아. 평창은 우리끼리 가야겠는데?"

"젠장."

김정준은 허탈함을 연기하는 박상택을 위로하며 시합을 즐겼다.

그리고 결승전.

"청코너 세계체육관 소속."

구마하가 움직이면 관중들은 주저하지 않고 함성을 질렀다.

모두의 관심과 기대 속에 펼쳐진 제61회 전국 아마추어 복싱대회 국가 대표 선발전.

"KO!!"

"미쳤냐고! 말이 되냐고!!"

"전 경기가 1라운드 KO..."

"와. 진짜 운동할 맛 안 나네..."

그곳에서 구마하는 또 한 번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입증해 보이며 새 종목의 태극 마크를 달 자격을 거머쥐었다.

* * *

"대표님! 대표님!! 방금 양 실장님한테 전화 받았는데요!"

"어. 알고 있어요."

"네? 어떻게 아세요?"

"기사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네..."

서울 한구스포츠 사무실.

책상 앞에 앉은 한상률이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다 1라운드 KO라는데, 이게 맞나?"

"양 실장님이 지금 현장 분위기도 장난 아니래요!!"

"와, 이놈은 대체 무슨..."

한 번씩 체육관에 찾아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긴 했었다.

자신감 있게 하고 싶다고 하더니,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 싶었지만...

"실검도 지금 난리 났어요!"

"대표님. 대표님!!"

"네. 왜요?"

"언론에서 지금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데요."

"음. 양 실장이랑 잘 상의해 보고 결정하도록 하세요."

"네!!"

구마하의 승전보에 세상이 뜨거워지고 있다.

구마하 복싱, 국가 대표 선발, 올림픽 복싱 등 앞으로의 일정과 방향이 실시간 검색에 오른다.

왜 시합을 중계해 주지 않느냐는 불만도 가득했다.

기쁘면서도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한상률에게 반가운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선생님."

"마하가 권투를 시작했다는 건 들었다만."

"알고 계셨어요?"

"그렇게들 뉴스를 때리는데 모르겠냐. 나도 지금 두희랑 현석이한테 엄청나게 전화 들어오고 있다."

"마하가요. 부모님을 찾았어요."

"정말로? 어디서?"

"근데 아직 완전히 찾은 건 아니고요. 찾기 위해서 이놈도 발벗고 나서고 있어요, 선생님. 복싱은 그런 이유로 시작했고요."

"상률아. 마하한테 아버지가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고 꼭 좀 전해 줘라."

"네. 알겠습니다."

"축하한다."

"고맙습니다. 조만간 찾아뵐게요."

천병욱 외에도 이주영 한주고 감독, 거래처와 광고 기업 등 많은 축복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한상률은 깊은 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후우... 다들 이렇게 좋아해 주는데..."

한상률은 핸드폰을 들어 구마윤이란 이름을 찾는다.

무거운 감정으로 마른침을 꿀꺽 넘기는 사이 통화가 연결되었다.

"네. 형님."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저... 소식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아니요. 아무 얘기도 못 들었습니다. 지금 가게에 있습니다."

"저기 그게... 먼저 말씀드렸던 선수 선발전 말인데요."

"아. 네."

"마하가 우승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엄청 잘 했다고 하네요. 현장 분위기도 시끄럽고. 아마 오늘 밤 뉴스에서도 이야기가 나올 거 같습니다."

"..."

"그러니까 형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

이어지는 구마윤의 침묵에 한상률도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시.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저한테 이제 그런 동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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