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를 믿는다 (5)
"마하네 형님? 난 만났지."
"진짜? 언제?"
"먼저 회사 사람들이랑 지나가다가 밥 먹고 왔었어. 넌 아직 못뵀어?"
"난 뭐... 맨날 서울이랑 촬영장만 왔다 갔다 했으니까."
"거기 좋아. 고기 많이 줘."
"하하! 그래?"
양민구는 구마윤을 찾아가기 전 이길수를 만나 먼저 그에 관해서 물었다.
어떤 분이냐 물으니, 신비로운 사람이란다.
인터넷에 기사도 있고 사진도 있지만, 실물로 보면 사진의 40배 정도 잘생겨 보인단다.
"그런 분이 왜 식당을 하고 있지...?"
"그러니까, 신기하다니까."
"흠."
양민구는 마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딱히 흉도 아니긴 하지만, 그들 형제는 세상에 탈북민이란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 형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고 들었는데, 친구의 말에 의하면 굉장히 지적이고 멋진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 이란다.
"무엇보다 진짜 고기를 많이 줘."
"아니, 뭐 얼마나 주길래 그게 계속 자랑이야."
"일 때문에 가 보려고?"
"어. 급하게 마하 일로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음. 가족까지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래도 사회생활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지금은... 아무튼 주소가 어떻게 된다고?"
직접 보면, 이런 사람이니까 혼자 힘으로 어린 동생을 저런 정상에 올렸구나 싶어진단다.
양민구는 기대감을 안고 답을 구하기 위해 성남으로 향했다.
* * *
"어서오세요. 몇 분이 오셨나요?"
"아, 저 혼잔데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네."
성남 단대 오거리에 도착.
멀리서도 대충 저기구나 하는 느낌의 가게를 찾아가니, 에너지 넘쳐 보이는 젊은 직원이 맞이해 준다.
사람 없을 시간이 이야기 나누기 좋을 것 같아 일부러 한가할 때를 찾아왔는데.
"많네. 장사 잘 된다..."
가게 한두 곳에 구마하의 사진이 걸려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대화와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들, 간단히 모임을 하러 나온 듯한 주부들, 고기 몇 점 올리고 술로 자리를 점거한 할아버지들.
뭔가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양민구는 세상 걱정과 고민이 조금 옅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기한 분이라더니 가게도 주인의 분위기를 따라가는구나 싶어진다.
"뭘로 드릴까요?"
"아, 저기 주문은..."
"혼자 오셨으면 고기는 2인분 정도가 적당해요. 부족하시면 밥한 공기 추가하시면 되고요. 된장국은 기본으로 나가요."
"아, 그게..."
"하하! 저희야 뭐든 많이 드셔 주시면 고맙고요."
친화력이 엄청난 직원이구나. 대학가에 있으면 매출 꽤나 올릴 것 같다.
"어? 이건 뭐지? 혹시 마하 팬이세요? 선물을 가지고 오셨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 사장님 좀 만나고 싶어서."
"죄송합니다. 프렌차이즈 문의는 안 받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같이 일한 사람한테만 가게를 내주시는 주의라."
"아. 저는 마하랑 같이 일하는 양민구라고 합니다."
"네? 어..."
"전담 매니접니다. 사장님 좀 뵐 수 있을까요?"
"어, 잠시만요."
누굴까 이 친구는? 목소리도 씩씩하고 행동에도 힘이 느껴진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직원 데리고 있고 싶은 마음이다.
"사장님 지금 장 보러 가셨는데요."
"그러세요? 그럼 나가서 잠깐만 기다리겠습니다."
"에이, 왜 그러세요. 얘들아! 이분 방으로 안내해 드려! VIP 오셨다!"
"네! 매니저님."
양민구가 만난 사람은 당연히 이정석이었다.
이정석은 나가서 기다려도 된다는 양민구를 억지로 방으로 밀어 넣는다.
"그분이시구나. 마하네 선배님. 맞죠?"
"마하랑 아는 사이세요?"
"일단은 친군데요. 원수에요, 원수."
"하하하~ 가까운 사인가 보네."
마하가 말했던 자기네 형한테 기생하고 있다는 친구가 이 사람이라는 걸 알고 양민구도 그를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드시고 싶은 거 뭐든 드세요. 바로 주문 넣어 드릴게요."
"아니요. 저는 잠깐 사장님만 뵙고 가면 됩니다."
"그래도 배고프잖아요. 곧 있으면 저녁이고. 잠깐만 계세요."
진수성찬이 차려지고 불판에 고기가 올라간다.
이정석이 능숙하게 식탁을 차리며 말을 건넸다.
"마하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잘 있습니다."
"그래요? 힘들어하거나 혼자 이상한 짓 하는 거 없어요?"
"...왜 그러시죠?"
"그냥, 최근에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양민구는 침묵을 지키며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걔가요, 원래 되게 의지하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놈이 최근에 군대를 갔거든요."
"아, 네."
"그 새끼. 아,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놈이 세상이 아는 것 같이 막 그렇게 침착하고 당당한 그런 애가 아닌데. 아우, 우리 형님.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마하의 여린 성격을 알고 있었구나.
한상률 대표가 왜 자신을 매니저로 뽑았는지 알 것 같다.
이정석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양민구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을 요구받는지 보다 분명하게 깨닫는다.
얼마 뒤,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양민구에게 구마윤이 찾아왔다.
"아. 그래? 그런 분이 오셨다고?"
"네, 사장님. 방에 계세요."
문밖으로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양민구도 구마윤이 왔다는 걸 깨달으며 숟가락과 식기를 정리하는데.
드르륵 문이 열리며, 웬 연예인 같은 사람이 찾아 들어온다.
"어어?"
"안녕하세요. 마하 사형 되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네. 어어..."
"죄송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네요."
"아, 아. 아니요. 제가 갑자기 찾아온 건데요."
구마하와 함께하며 연예인이나 해외 모델들도 다수 경험해 본 양민구였다.
하지만, 구마윤은 그런 인물들과는 결이 다른 멋이 있었다.
신비한 사람. 그래, 길수의 평가가 정확하구나.
이런 환경, 이런 분위기, 그리고 저 사람의 외모와 아우라가 묘하게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를 이루고 있다.
"동생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꼭 한번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아. 예..."
"동생 일로 오신 것 같네요."
"..."
"이놈이 겉보기와 다르게 수행이 부족해서 가끔 이런 일이 생기네요..."
"저... 저 아직 아무 말씀도 안 드렸는데요...?"
"감사합니다."
"뭐, 뭐가요...?"
"동생한테 이런 사형이 계시다니. 사부님도 그렇고 사형도 그렇고, 정말 뭐가 감사를 드릴 수가 없네요."
뭐지? 왜 아무런 말도 안 듣고 모든 걸 아는 듯 말하지?
하지만, 구마윤은 양민구의 몸과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의 성질을 읽고 어느 정도 마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실은 제가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마하가 요즘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신다고요?"
"정확히는 안다기보다, 언젠가 이런 일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게 맞겠죠."
"아... 예."
"마하는 언제나 목표가 있었죠. 그래서 문제가 올 것을 알았습니다. 목적이 있는 수행이란, 자주 그런 문제에 봉착하는 편이거든요."
사용하는 단어나 어투의 진중함은 둘째치고, 뭔가 대화를 나눌수록 양민구는 구마윤에게 빠져드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곳을 찾아온 목적을 잃지 않았다.
"...어떻게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흠. 저도 동생이 걱정은 되지만, 이건 어떻게 말씀을 드릴 수가 없는 문제라..."
"그래도, 마하가 지금 저렇게 있는데 형님께서 좋은 이야기라도 해 주신다면."
"아버지가 무도인이셨습니다."
"예. 저도 짧게 들었습니다. 무술 하셨다고."
"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주변 환경이 평범한 식당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양민구는 자신이 지금 현대에 있는지 과거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구마윤의 이야기는 진중했었다.
언제나 수행의 목적은 마음을 단련하는 데 있어야 한다. 왜 심신(心身)이라 하는가? 어찌하여 몸이 아닌 마음을 우선하는가?
보통은 무(武)를 단련하는 데 있어, 복수나 천하제일을 바랄 것이다.
부와 명성을 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욕망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이 동력이 됨을 간과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식의 수행이란 결국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버진, 오직 마음의 수행을 바라고 행동한다면, 몸의 발전은 자연히 따라오게 될 것이고."
"..."
"그리하면 천하제일도, 부와 명성도. 그 또한 자연히 내 손안에 쥐어지게 될 것이라 하셨죠."
"..."
"저도 동생에게 처음부터 그것을 강조했지만, 마하는 아직 나이가 어린지라... 죄송합니다. 제가 동생을 더 타일렀어야 하는데."
"아, 아. 아니요. 어우, 그런 말씀을..."
양민구가 손사래를 치며 정신을 차려 묻는다.
"저. 형님은 그럼... 마하가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물론이죠. 아직 동생은 미숙한 부분이 많습니다."
"...마하는 이미 세계 신기록 보유잔데요?"
"네. 훌륭한 경공술을 보여 주었죠."
"동하 걔 금메달리스트예요. 그것도 금메달로요! 팀 종목도 아닌 개인 종목에서 된 건데, 여기 이상 더 올라갈 곳이 있다고요?!"
어떤 말을 꺼내도, 구마윤은 그저 부처님 같은 미소만 지을 뿐이다.
"목적을 비우고 수행에 임한다면 저는 무엇이든 가능하리라 봅니다."
저런 얼굴로 저런 목소리로 저런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쏟아 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이상하게 믿음이 생긴다.
"그! 그럼 마하가 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는 드릴 말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형님이시니까?"
"마하는 이미 어른이에요.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고요. 여기서 제가 동생의 앞길에 왈가왈부하는 건, 책임과 수행에 방해가 될 것입니다."
"형님, 마하는 아직 스물두 살이에요. 어린 친구라고요. 저도 제가 어른이라고 생각을 안 하는데."
구마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양민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왜 우리 형제를 이곳으로 보내셨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예..."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좋은 의지와 사람이 있음을 아는 것, 이보다 멋진 배움이 어딨겠습니까."
이런 분이 초등학교도 안 나왔다고...?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는 양민구를 향해 구마윤이 답한다.
"마하가 좋은 사부님을 만나고, 그리고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형을 만나게 됐음에 저는 만족합니다."
"..."
"동생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시, 실은...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찾아왔습니다."
구마윤은 양민구가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흔들림 없는 자세로 경청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에도 큰 우승을 경험한 적이 없고, 실력도 그저 그랬다.
연세대도 어찌 보면 승부 조작에 가까울 정도로 부모와 학교 선생님의 합의에 의해 상을 받고 올 수 있었다.
"근데... 마하가 우리 학교에 온 거죠."
"그러셨군요."
"그때부터 대한체대도 실업 팀도 아무 상관이 없어졌어요. 정말로."
열아홉의 나이에 올림픽이란 무대를 지배하고 나타난 한 사람으로 인해, 양민구는 처음으로 열등감을 벗어던지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육상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를 선배라고 해 주면서... 내가 뭐라고... 자식."
"사형께서는 그래서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으셨을 겁니다."
"...제가요?"
"예. 제 눈엔 보입니다. 고생스런 수행을 거듭해 오셨네요."
"아니요... 저는 선수로는."
"그것 말고, 다른 것이 있지 않습니까?"
설마...?
"...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구마윤이 주먹을 쥐어 보이며 미소를 짓자, 양민구의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이, 이게 무슨 말씀이신지...?"
"옳지 못한 방법이긴 하나, 저는 동생을 많이 혼냈습니다."
"..."
"이놈이 영 정신을 못 차린다면, 힘껏 쥐어박아 주세요. 그럼 마하도 알아서 깨달을 겁니다."
"지금... 때리라고요?"
"네."
"어떻게 그렇게 해요."
"답은 저보다 사형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설마가 아니다. 이 사람은 내가 복싱을 해 왔던 걸 알고 있어.
"그래도 될까요?"
"전 지금까지 마하가 지나온 수행을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더 빠져들 거 같은데요."
구마윤이 구마하의 지나온 과정을 말해 준다.
"육상은 마하에게 강한 몸을 가질 수 있게 해 줬죠. 스키란 운동은 담력을 키워 줬습니다."
"..."
"슬슬 기술을 키워도 될 것 같습니다."
도를 믿든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든 상관없다.
이 사람의 말을 들어 보자.
"마음의 수행을 놓지 않는다면 말이죠?"
"네. 그럼요."
양민구는 구마윤과의 만남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며 구마하에게 연락을 걸었다.
"어, 마하야.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디냐고 묻는 말에 양민구가 답한다.
"그건 몰라도 되고, 너는 운동복이랑 가벼운 신발이랑 챙겨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