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야 (7)
이유이는 사회적 성공을 이룬 디자이너였다.
패션쇼나 스튜디오에선 말도 못 걸 정도로 카리스마와 프라이 드로 자신을 무장하며, 그 결과 자신의 힘으로 패션의 본고장 파리에서 유럽인들의 인정을 받았다.
언제나 삶에 있어 긴장감을 놓지 않으며, 불합리한 걸 참지 않고 아니다 싶은 건 과감하게 버린다.
그래서 늘 마음 한구석 지울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아아~ 으응!!"
"그렇게 좋아?"
"허억, 허억. 좋아요."
"그럼 엉덩이 더 바짝 들어 봐."
"네."
깊은 외로움이 굵고 뜨거운 무언가로 채워지는 것 같다.
자존심과 의지로 살아온 한 여자가 열여덟 연하의 풋내 나는 사내 앞에 엎드려 애정을 갈구한다.
몸만 좋고 순박하리라 여겼던 구마하의 거친 모습은 그녀에게도 충격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그래서 좋다.
원래라면 기분이 상하고, 어디서 건방을 떠느냐! 한 소리 쏘아붙이고도 남을 순간을 그녀는 거부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그의 말을 따랐다.
오히려 마하는 생각보다 여자의 몸을 잘 알고 있었다.
전희에서 기대감을 최고조로 올려놓더니, 본경기에 들어와서도 지치지 않는 스태미나로 흐름을 끊지 않았다.
상상이 현실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하아, 자기야. 자기 정말 최고다."
"훗. 뭐 때문에 그러는데?"
"그냥 다. 모든 게."
그는 한순간도 긴장감을 놔주지 않는다.
그냥 기분이 좋아 칭찬 한마디 건네주고 싶어 던진 말에 바로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며 두 다리를 꽉 움켜 든다.
"뭐가."
"헉헉! 응?"
"뭐가 다냐고. 말해 봐."
"하아, 아아~ 너무 기분이 좋아."
"그러니까. 어디가 그렇게 좋다는 건데."
이곳을 말하라는 듯 사내는 허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여인의 대답을 갈구한다.
속도감에 맞춰 이유이의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전신에 쾌감이 밀려오고, 가슴과 배, 허벅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여인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몸을 꼬았다.
하지만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하반신을 마치 제 것인 양 붙잡고 놔주질 않으니까.
두 다리의 자유를 구속당한 상황에서 구마하가 다시금 몸을 바짝 찔러 넣으며 물었다.
"어디가 좋아. 말해."
"아아~ 하아~"
이유이는 그의 움직임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 보...지가..."
"하하하! 크게 좀 말해. 안 들리잖아."
"참... 못됐다..."
이유이는 샐쭉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건넨다.
입과 입이 끈적이며 서로를 갈구하고, 생식기가 탐닉하는 소리가 질척하게 방안에 울려 퍼진다.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벗어던진 원초적인 남녀로 돌아간 두 사람.
20대 초반들이나 할 법한 음란한 대화가 또 한 번 두 사람의 정신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구마하는 원래 그렇게 시건방진 성격이 아니다.
다만, 이혜정과 함께하는 동안 너무 착한 남자 친구 역할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절제하고 감내하는 시간 속에서 그의 내면에 검은 욕망이 싹을 틔웠다.
그는 과감히 짐을 벗어 버린 이유이 덕분에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끼는 중이다.
답답한 옷을 벗고 필드에 나가 땀을 흘리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그녀를 만족하게 해 주려 애를 쓴다.
가슴을 꼭 밀착하여 안아 주고 온몸 구석구석 별이 떠오르도록 혀로 간지럽힌다.
그러면서도 허리를 멈추지 않았다.
흡연자인 이유이는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소리가 마치 어미 젖을 찾는 새끼 고양이같이 변해 가고 있었다.
"아아! 하앙~"
꾸미거나 남자 기 세워 주려고 일부러 내는 소리가 아니다.
온몸에 들이닥치는 거친 에너지가 그녀의 소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유이의 머릿속이 하얀빛으로 물들며, 의식을 과거의 한 지점으로 돌려놓았다.
구마하가 엉금엉금 기어 다닐 때, 그녀는 청청 패션에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번화가의 빵집 같은 곳에서 대학생 남자 친구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곤 했었다.
그래. 그때가 처음이었다. 허름한 여인숙 같은 곳. 냄새도 쾨쾨하고 침구는 눅눅했지만, 청춘 하나만 믿고 앞을 보고 달렸다.
남자가 뭔지, 섹스가 뭔지도 모르면서 경직된 자세로 경험을 가졌었는데.
"윽. 흐으윽."
"갑자기 왜 그래요?"
"아니야. 계속해."
"제가 너무 심하게 했어요?"
"으으음. 괜찮아."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흘렀다.
대체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세상을 살며 부와 명성을 쌓았지만, 사는 게 힘든 만큼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과감해지고 말았다.
그 결과, 가정을 두 번이나 파괴하는 실수도 저질렀었다.
세 번째 남편은 좋은 사람이지만, 마음 한구석 자리한 외로움을 떨쳐 내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서로의 사생활은 터치하지 않는, 애정으로 맺어진 부부라기보단 이해타산이 맞는 동반자의 느낌으로 걷고 있다.
외로움은 사람으로 채워지는 거라 믿었던 이유이는 드러낼 수 없게 섹시하고 멋진 남자들도 만났고, 어쩔 땐 너무 매력적인 여성들도 피하지 않았다.
호스트바 에이스도 데리고 놀아 봤고, 사회에 명성을 떨친 알파 메일들도 겪어 보았다.
그렇게 채우면 비워지고 비우면 채우고를 반복하던 가운데, 오늘 마침내 그를 만났다.
모든 추억이 지금 한 남자로 인해 사라져간다.
과거는 없다. 이제는 미래만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아. 프란체스카 존슨은 매디슨 카운티다리를 품었다면, 내 안엔 파리의 야경과 그가 있다.
충동적인 결과였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이 녀석은 최고야. 사교계에 명성이 자자한 한동 그룹 딸이 왜 그렇게 매달리고 울며불며했는지 겪어 보니 알겠다.
"으으으~ 흐으음!!"
까딱하다간 세 번째 가정 법원을 찾게 될지도 모를 지금.
삽입 전 세례를 내리듯 입에서 입으로 침을 흘려 넣던 한 남자에게 매달려.
정말 오랜만에 여자가 된 기분이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성공의 기쁨인지, 신체에 퍼지는 오르가슴인지 모르게 이유이는 다리를 떨며 쾌락을 느꼈다.
"하아, 하아."
"다 끝났어요?"
"응~"
"다행이네요."
섹스가 끝나자 그의 연기도 끝난다.
매너를 아는 애구나. 끝까지 시건방을 떨면 한 소리 해 주려고 했는데.
이유이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구마하와 눈을 마주치며, 그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너. 이런 애였구나?"
"하하! 제가 뭐 어떤데요?"
"끝나니까 태도 바뀌는 것 봐. 한편으론 조금 무섭다..."
"...선생님도 그러시네."
"왜? 또 누가 그런 소리를 했었니?"
"아니요. 그냥. 있어요."
구마하는 말을 끝내며 이유이의 다리를 돌려 눕힌다.
"어?"
"진정되셨으면 바로 또 가시죠."
"무, 무슨 소리니?"
"전 아직 안 끝났어요."
"음??"
늘 그렇듯이, 구마하는 다시 2차전 3차전을 이어 간다.
이유이는 침대에 엎드린 상태로 허리가 끊어져라, 그를 받아 냈다.
이래서 보약이 과하면 사약이 된다고, 나중엔 그녀가 먼저 울며 불며 사정했다.
"흐응, 으으으... 이제 그만. 응?"
"하악, 하아! 다 됐어요. 조금만 더."
연속 삼 회전을 뛰고도 그는 흥분이 가라앉질 않는지, 이유이에게 가슴을 모아 앉으라 말한 뒤 몸을 비볐다.
"정말, 대단하구나."
"하아, 하아~ 힘드세요?"
"아니. 괜찮아."
"선생님. 입으로 끝에 좀."
"응. 이렇게?"
한 번도 이런 서비스를 해 준 적이 없었던 이유이는 어색하게나마 그의 욕정을 달래 준다.
두 가슴 사이에 뜨거운 물건을 끼우고서 그녀가 묻는다.
"마하야. 여자 친구랑도 이랬니?"
"네? 예. 뭐."
"너도 적당히를 모르는 애구나."
"..."
여러 가지를 깊게 돌이킬 여지가 있는 듯한 한마디였다.
그래도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니까.
구마하는 이유이의 머리를 움켜쥐고 리듬을 올린다.
"웁우웁!!"
"하아, 아아. 조금만 더."
"읍읍!"
그렇게 가슴과 얼굴에 또 한 번 희고 진한 애액을 흩뿌리고 나서야 그는 멈췄다.
침대에 뻗은 마하를 보며 이유이가 다가와 조심스레 묻는다.
"이제는 정말 끝난 거니?"
"네. 피곤해서 더는 못 하겠네요."
"피곤한 게 이 정도라고...?"
"며칠 잠을 못 잤거든요. 시차가 적응이 안 돼서."
"대단하구나. 진심으로."
* * *
"시원하세요?"
"응. 마하야. 넌 어쩜 이렇게 여자 몸을 잘 아니?"
"마사지는 여자 몸이고 남자 몸이고 없어요. 사람 근육은 다 똑같죠."
"정말, 너란 애는 알면서도 모르겠다."
섹스를 마친 뒤. 두 사람은 샤워를 하고 나와 마사지 타임을 가졌다.
이유이는 침대에 누워 지친 몸을 그에게 맡긴다.
애무는 부드럽고 섹스는 거칠며 마사지는 편안하다.
만약, 10년만 젊었다면 세 번째 이혼을 감행하고 그의 그림자로 살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양 실장님한테 대충 들었어."
"뭘요?"
"사랑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면서?"
"네... 그랬었죠."
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구마하의 손이 멈춘다.
이유이도 편안하게 돌아누워 그에게 물었다.
"너 같은 애가 왜 그렇게 사랑에 목을 매니?"
"왜라뇨. 그럼 선생님은 왜 그렇게 성공에 목을 매시는데요?"
"내가 언제 성공에 목을 맸어."
"한국에서도 이미 충분히 잘 나가는 분이 굳이 여기까지 오셔서 매장을 연 건 그런 뜻 아닌가요?"
"나는 그게 내 삶의 원동력이야."
"저도 마찬가지예요."
허탈한 마음을 비워 내듯, 구마하는 한숨을 내뿜는다.
"사랑은 절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었어요."
창밖, 파리의 야경 속,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구급차 소리가 멀어지고 있다.
구마하는 껌벅껌벅 눈을 감았다 뜨며 말한다.
"아까 보니까 사람들 키스 무지하게 하던데."
"너도 했잖아."
"그런 거 말고요..."
"후후후. 선 긋기는."
이유이도 구마하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파리라고 하잖니."
"원래는 여기도 같이 오자고 했었는데..."
"그럼 오늘 같은 일은 없었겠지."
그녀의 이야기에 구마하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이유이가 부스럭 몸을 부비며 그에게 다가와 안긴다.
구마하도 손을 들어 이유이를 감싸 주었다.
"그때 그 아이지?"
"...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볼래?"
"싫어요..."
"왜? 내가 상담해 줄 수 있잖아."
"그냥, 쪽팔려서요..."
이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단단한 몸을 토닥토닥 달래 주었다.
"마하야.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모르겠어요. 알면 이런 멍청한 짓을 반복하지 않았겠죠."
"여자는 말이야. 이 남자를 정말 사랑하면, 그가 무슨 짓을 해도 떨어지지 않아."
"..."
"그래서 매 맞고 사는 여자들도 있지만, 어쩌겠니. 그것도 사랑이라는데."
"선생님. 저는요, 사랑이 그냥 좋은 건 줄 알았어요."
"다들 그렇게 희망을 품고 있지."
"그런데요, 사랑, 뭔가... 알면 알수록 더러운 거 같아요."
그의 이야기에 이유이가 덧붙여 준다.
"마하야. 세상에 좋은 게 있다고 그게 다가 아니야. 나쁜 것이 발견됐다고, 그것도 전부가 아니라고."
"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겠죠.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나쁜 게 많다고 하여 좋은 게 사라진 건 아니듯이. 사랑도 긍정과 부정이 공존함을 외면할 순 없어."
"..."
"누가 봐도 예쁜 아이더라."
"그랬었죠."
"그런 친구와의 만남에 실패했다고, 너를 깎아내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고맙습니다."
할 말은 마쳤다는 듯 이유이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팔다리를 큰 대자로 뻗는다.
"후유. 피곤하다."
"누우시면 잠들 건데."
"안 그래도 너무 졸려, 지금."
"뒤풀이 다시 안 가셔도 돼요?"
"뭐하러 가니. 아마 지금쯤이면 다들 흩어졌을걸?"
"흠."
"넌 어떻게 할래? 자고 싶으면 여기서 자고 가도 좋고. 내일 스케줄 없잖아."
"그러고 싶은데, 생각해 보니까 가야 할 거 같아요."
"왜?"
"민구 형이 걱정하고 있을 거 같아서요."
"후후. 그렇구나."
대화를 마친 이유이는 스위치를 꺼 버린 듯 그대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구마하는 그녀의 무방비한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위로해 주고 싶으셨구나.
그래서 선을 깨 버리셨고.
정말 내가 인복은 있는 놈인 거 같다.
곯아떨어진 이유이의 잠자리와 방을 정리한 뒤 구마하는 옷을 챙겨입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 1시. 시끌벅적하던 도심도 적막하게 변해 버렸다.
사랑의 도시. 추억의 도시.
만약 이곳에 혜정이가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유이도 말했듯이, 좋은 것만 볼 수는 없다.
지금은 지금을 살아가는 법.
구마하는 우두커니 도심을 지켜보다 동료가 기다리고 있는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어디 갔다 오냐."
"형."
"...새끼야.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움직이든가."
매니저 양민구가 파티장에서 가지고 나온 듯한 와인병을 두어 병 비워 놓고 그를 노려본다.